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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불꽃같은 이야기-안성

깜보입니다 2015. 9. 1. 11:21

문화재향기

 

제목 [예인의 고장, 불꽃같은 삶]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5-08-31 조회수

 

 

 

 

안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안성 유기와 남사당패, 그리고 바우덕이다. 기술을 천시하던 조선시대와 전통문화를 탄압했던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끊임없이 기예를 닦으며 스스로 깊어졌던 사람들.
이들을 그토록 매료시켰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보부상과 객주들이 몰려들던 조선 3대 시장, 안성장시

 

가난하지만 비범한 선비 허생이 부인의 성화에 길을 나선다. 허생이 한양 최고 부자 변씨에게서 1만 냥을 빌려 향한 곳은 안성장. 허생은 안성장으로 들어오는 과일을 모두 사들여 곳간에 쌓아놓는다. 과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한양에서는 과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허생은 그렇게 모은 돈으로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한다. 소설 『허생전』의 이야기다.
안성장은 삼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조선시대에 이곳이 마비되면 한양장시까지 제 기능을 다할 수 없었다. 지금은 경부선 철도가 뚫리며 보부상도 객주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틀 장, 이레 장이 서는 날이면 아직도 안성 사람들은 장터로 모여든다.

 


- 안성맞춤, 장인의 솜씨를 엿보다

 

 

길을 물을 때마다 환하게 화답해오는 표정들에서는 여전히 자부심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유기’라는 두 단어만 듣고도 단박에 안성맞춤박물관으로 가는 길을 일러주었다. 가는 길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김수영 선생이 운영하는 유기공방에 들러보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유기공방에서는 운이 좋으면 유기를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쇳물을 끓여 녹이고 틀에 부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서 형태를 잡아 장식을 달고 광을 내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어느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정성 어린 손길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기품 있고 은은한 광채를 내는 안성 유기가 만들어진다.

 


-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나온다

 

 

안성 유기와 더불어 안성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 바로 바우덕이(1848~1870)다. 남사당패의 여성 꼭두쇠로 알려진 바우덕이는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나온다’라는 노래가 유행할 정도로 출중한 기예를 지닌 재주꾼이었다. 남사당패는 본래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남사당패에 맡겨진 바우덕이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기예를 익힌다. 타고난 재주로 남사당패 여섯마당을 모두 익힌 그녀의 특기는 보는 사람을 모두 숨죽이게 하는 줄타기, 어름이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두려움의 연속인 줄타기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여자임에도 남사당패로 자라난 바우덕이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줄 위에 올라 자신의 한과 설움을 민중들의 그것과 함께 풀어놓았다. 웃음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바우덕이의 몸짓은 사람들을 매료시켜 바우덕이가 줄 위에 서면 일꾼들이 정신을 빼앗겨 빈 지게를 지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바우덕이는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어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이제 더 이상 줄 위에 선 바우덕이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안성 바우덕이 남사당패’가 그 뒤를 이어 놀이판을 벌이고 있다. 남사당 여섯 마당을 모두 재현한 공연은 전통을 따르면서도 현대적인 재담을 더해 재미를 준다. 주말이면 상설 공연장에 빈자리가 거의 없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남사당패의 기예는 사람들의 시선을 제대로 사로잡는 듯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재주꾼이 많기로 유명한 안성에서는 남사당패뿐 아니라 향당무와 태평무도 만날 수 있다. 남성적인 느낌의 화랑무, 흰 수건을 들고 추는 학춤, 여인의 애절함을 느끼게 하는 홍애수건춤 등으로 이루어진 향당무는 화려함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그에 비해 태평무는 우아함을 살린다.
음악은 경기무속장단인데 평소에 자주 듣던 전통 장단에 비해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 음률 사이를 가로지르며 바쁘게 움직이는 발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흥이 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전수관에 들러 그 춤사위를 직접 배우며 즐겨봐도 좋을 것이다.

 


- 남사당패를 품어준 따뜻한 절, 청룡사

 

 

“남사당패 공연을 봤으면 청룡사도 가봐야지.” 남사당 공연장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 관객이 흐뭇한 얼굴로 다음 여정지를 권한다. 청룡사는 공연장에서 차로 40분 남짓 걸리는 곳에 있었다.
청룡사는 전국을 누비며 공연하던 남사당패가 겨울이면 찾아든 곳이었다. 남사당패의 공연은 인기가 좋았지만, 그들은 마을에서 천대받는 존재였기 때문에 마땅히 머물 곳을 찾기 어려웠다. 청룡사는 그런 남사당패에게 겨우내 크고 작은 일거리를 제공하고 식솔로 받아들였다.
청룡사가 남사당패에게 머물 장소를 제공하고 보호해주었다면, 남사당패는 공연을 통해 생긴 먹을 것이나 현금 등을 시주하곤 했다. 안성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했던 남사당패 뒤에는, 그들의 굴곡진 삶을 가만히 안아주었던 청룡사의 넉넉한 따스함이 있었던 것이다.

 


- 세월의 흐름 위에서 다시 안성을 만나다

 

불당골은 청룡사에서 나오는 길 근처에 있다. 바우덕이 사당에 들렀는데 사당은 문이 굳게 닫혀 있고 한쪽에 서 있는 바우덕이 동상만 눈에 들어왔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흥겹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사라졌다. 안성장은 예전의 규모를 잃었고, 백성들의 일상품이던 유기는 이제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에 자리를 내주었다. 바우덕이와 함께 최고의 기예를 뽐내던 남사당패는 여섯 마당 중 일부만을 간직하게 되었다. 청룡사 역시 조선시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던 청기와를 얹으며 융성하던 시절의 위용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러나 문화재를 만나는 여행길에서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 공간에 서서 오래전 기억을 불러내는 것, 그리고 가만히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여전히 안성에서는 전통 장이 열리고, 유기공방에서는 무형문화재인 김수영 선생이 전통 기법을 지켜가며 유기를 만든다. 매년 가을마다 열리는 바우덕이 축제에서는 한바탕 놀이판이 열리고, 청룡사는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그곳에 그대로 서 있다. 안성은 여전히 불꽃같은 삶을 살고 있는 예인들의 고장이다. 다만 필요한 것은 그들을 아끼고, 전통을 더욱 발전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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