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인의 고장, 불꽃같은 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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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화재청 | ||
작성일 | 2015-08-31 |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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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안성 유기와 남사당패, 그리고 바우덕이다. 기술을 천시하던 조선시대와 전통문화를 탄압했던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끊임없이 기예를 닦으며 스스로 깊어졌던 사람들.
가난하지만 비범한 선비 허생이 부인의 성화에 길을 나선다. 허생이 한양 최고 부자 변씨에게서 1만 냥을 빌려 향한 곳은 안성장. 허생은 안성장으로 들어오는 과일을 모두 사들여 곳간에 쌓아놓는다. 과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한양에서는 과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허생은 그렇게 모은 돈으로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한다. 소설 『허생전』의 이야기다.
길을 물을 때마다 환하게 화답해오는 표정들에서는 여전히 자부심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유기’라는 두 단어만 듣고도 단박에 안성맞춤박물관으로 가는 길을 일러주었다. 가는 길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김수영 선생이 운영하는 유기공방에 들러보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유기공방에서는 운이 좋으면 유기를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안성 유기와 더불어 안성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 바로 바우덕이(1848~1870)다. 남사당패의 여성 꼭두쇠로 알려진 바우덕이는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나온다’라는 노래가 유행할 정도로 출중한 기예를 지닌 재주꾼이었다. 남사당패는 본래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남사당패에 맡겨진 바우덕이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기예를 익힌다. 타고난 재주로 남사당패 여섯마당을 모두 익힌 그녀의 특기는 보는 사람을 모두 숨죽이게 하는 줄타기, 어름이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두려움의 연속인 줄타기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여자임에도 남사당패로 자라난 바우덕이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줄 위에 올라 자신의 한과 설움을 민중들의 그것과 함께 풀어놓았다. 웃음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바우덕이의 몸짓은 사람들을 매료시켜 바우덕이가 줄 위에 서면 일꾼들이 정신을 빼앗겨 빈 지게를 지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바우덕이는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어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남사당패 공연을 봤으면 청룡사도 가봐야지.” 남사당 공연장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 관객이 흐뭇한 얼굴로 다음 여정지를 권한다. 청룡사는 공연장에서 차로 40분 남짓 걸리는 곳에 있었다.
불당골은 청룡사에서 나오는 길 근처에 있다. 바우덕이 사당에 들렀는데 사당은 문이 굳게 닫혀 있고 한쪽에 서 있는 바우덕이 동상만 눈에 들어왔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흥겹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사라졌다. 안성장은 예전의 규모를 잃었고, 백성들의 일상품이던 유기는 이제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에 자리를 내주었다. 바우덕이와 함께 최고의 기예를 뽐내던 남사당패는 여섯 마당 중 일부만을 간직하게 되었다. 청룡사 역시 조선시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던 청기와를 얹으며 융성하던 시절의 위용을 잃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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