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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관촉사석불과 갑사부도의 의문점에 대하여

깜보입니다 2007. 4. 30. 11:44
관촉사석불입상 (문화재청자료)

 

관촉사 석불과 갑사부도의 의문점에 대하여

 

며칠 전 윤증고택, 관촉사, 쌍계사, 갑사, 동춘고택, 남간정사의 답사를 다녀왔다. 다른 곳은 이미 많이 소개되었기 때문에 답사기는 생략하고 그 중에서도 관촉사와 갑사부도의 몇 가지 의문점에 대한 것을 논의하고자 한다. 그간 나는 관촉사 석불 머리부분의 처리 방식과 갑사부도의 맞춤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이 두 부분의 처리방식은 상식과 이전의 관행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어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생각을 해왔었다. 이미 이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관촉사 석불에 대한 글에서 관촉사 석불의 부두가 거칠게 마감된 것을 놓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머리 부분이 교체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 불상을 조성한 석공은 천재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머리 부분의 처리를 보면 매우 거칠게 다듬었다. 섬세하게 조각된 얼굴이나 몸통부분에 비하여 머리의 부분은 매우 거칠게 다듬어졌다. 정자국이 그대로 살아있는 처리는 몸통의 섬세함에 대조를 보여주면서 섬세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만일 머리 부분까지 섬세하게 다듬었다면 이러한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관찰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같은 글에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기재된 설명을 실었는데 그 설명은 다음과 같다.

 

"높이는 18.2m이고 사기(寺記)로나 인상(印相)으로 보아 관음보살임이 분명하다. 불신은 허리를 중심으로 두 개의 돌을 이어 만들어졌는데, 머리부분 만 거대하고 전체적인 비례나 균형이 맞지 않아 괴이한 느낌을 준다. 머리 위에는 높은 원통형 관을 쓰고 그 위에 사각형의 보개를 이중으로 올려놓았는데, 관의 윗 부분은 8각형으로 다듬어 보개 밑 부분의 팔각홈과 맞추었다. 그리고 팔각홈 주위에는 단판연화문을 조각하고, 네 모퉁이에는 금속령(金屬鈴)을 달았다. 그 위의 보개는 훨씬 작은 것으로 밑에는 연판 4엽이 조각되어 있으며, 위에는 보주가 올려져있다. 원통형 관에는 3척 정도의 금동불입상이 있었으나 한말에 분실되었다고 한다. ......... "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여 볼 부분은 "원통형 관에는 3척 정도의 금동불입상이 있었으나"라는 부분이다. 즉 지금 거칠게 정질을 한 부분에 금동불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지금 머리에 위로부터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철물은 이 불상을 고정하기 위한 철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화불 만이 있었다면 단순히 불상만을 설치하여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주변으로 머리를 감싸고 원통형장식을 둘러놓았을 것이다. 이러한 장식을 설치하기 위한 고정장치들이 지금 머리 주변 좌, 우측에도 보인다. 따라서 현재의 거칠게 정질한 부분은 원래는 원통형의 금속장식물이 있었고 그 앞에 불상이 설치되었던 것이다.

 

정질이 거칠게 되었던 것은 결국 감싸질 부분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정질을 정밀하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앞에 감싸고 있던 장식물이 벗겨지고 나니 거칠게 정질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으로서 일부러 의도한 마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민속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대로 머리에 불상이 있었다면 이 부처는 미륵보살이 아니고 화불이 있는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손에 쥐고 있는 연꽃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야후백과사전에서의 관세음보살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 관세음보살 觀世音菩薩

 

자비를 덕으로 삼고 가장 널리 믿어지고 있는 보살. 관음·관자재(觀自在)·광세음(光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라고도 한다. 《무량수경(無量壽經)》을 보면, 이 보살은 <극락정토(極樂淨土)>에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협시(脇侍)로서 부처의 교화를 돕고 있는데 단독으로도 신앙의 대상이 되어 중생이 괴로울 때 그 이름을 외면 그 음성을 듣고 곧 구제한다고 한다.

 

관세음은 세간의 음성을 관(觀)한다는 뜻이고, 관자재라 함은 지혜로 관조(觀照)하므로 자재한 묘과(妙果)를 얻는다는 뜻이다. 또 중생에게 온갖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無畏心)을 베푼다는 뜻으로 시무외자(施無畏者)라 하고, 자비를 위주로 하므로 대비성자(大悲聖者)라 부르며, 세상을 구제하므로 구세대사(救世大士)라고도 한다. 이 보살이 세상을 교화함에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체로 나타난다. 이를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 하는데, 33신(身)이 있다.

 

왼손에 연꽃을 들고 있는데 이 꽃은 중생이 원래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나타내며, 그 꽃이 핀 것은 불성이 드러나 성불(成佛)한 것을 뜻하고, 그 봉오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필 것을 나타낸다. 그 형상을 달리함에 따라 육도(六道)의 중생을 제도하는 성관음(聖觀音)·천수(千手)관음·마두(馬頭)관음·십일면(十一面)관음·준지 관음·여의륜(如意輪)관음 등 6관음으로 나뉘는데, 그 중 성관음이 본신이고 그 밖의 것은 보문시현의 변화신이다. 그 정토, 또는 있는 곳을 보타락가(補陀落迦;Potalaka)라고 하나, 본래 《화엄경(華嚴經)》에 남인도의 마뢰구타국을 보타락가라고 한 것이 처음이며, 중국에서는 저장성[浙江省(절강성)]의 저우산열도[舟山列島(주산열도)]를 보타락이라 한다.


다음으로 갑사부도에 대한 것이다. 갑사부도는 탑신부 바로 아래의 부재는 다른 많은 부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연결되어 있다. 예전에 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는데 과거 일제시대에 찍은 부도의 사진도 같은 모습이어서 일단 현재의 모습을 원래의 모습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사부도와 같은 탑신석 받침의 모습은 갑사부도 하나밖에 없어 계속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의심하는 부분은 탑신석 받침부분 즉 기단의 상대석 부분이다. 대부분의 부도에서는 상대석의 앙련이 강조되어 조각되어 있고 탑신받침이 약하게 조각되어 있다. 현재의 갑사부도를 보면 탑신석을 받치고 있는 돌이 뒤집어져야 맞는 것이다.

 

갑사의 부도사진으로 일제시대에 찍은 사진은 대정6년(1917년)에 찍은 사진과 조선고적도보에 있는 사진 두 점이다. 상륜부의 모습과 주변의 모습으로 추론하여보면 대정6년에 찍은 사진이 보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사진에서 보여지고 있는 갑사부도의 모습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되어 있다. 두 사진은 앵글을 잘 잡아 전혀 손상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정 6년의 사진을 보면 우측의 우동이 일부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미 1917년 이전에 한번 도괴되었던 것을 다시 세웠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잘못 놓여졌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즉 일제시대 이전에 잘 못 맞추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부도의 형식은 <그림 1>에서 보듯이 탑신 아래 탑신 괴임이 있고 탑신 괴임을 하대석이 받치고 있는데 하대석은 앙련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하대석의 앙련이 매우 강조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갑사부도에서는 탑신 받침에 복련이 있고 다른 곳의 탑신괴임의 모양이 하대석의 받침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다른 곳의 상대석과는 완전히 반대 즉 상대석부분이 뒤집혀져 있는 모습으로 맞추어졌다는 것이다.

 

이번에 부도를 돌아보면서 탑신 받침으로 되어 있는 부분의 하부를 들여다보았다. 여기서 예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부를 보면 기둥의 초석과 같은 문양이 정확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이것은 탑신석에 있는 기둥을 놓이는 초석과 그 주좌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림 2 참조> 또한 이 문양은 아랫부분의 중대석과는 전혀 맞추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언듯보기에도 중대석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모습이었다.

 

갑사부도는 매우 잘 만들어진 부도이다. 현재 남아 있는 부도 중에서도 최고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도가 상대석과 중대석의 맞물림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다른 곳의 조각은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었고, 하대석의 구름문양의 배수장치 등이 정교하게 계산되어 설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상대석과 중대석이 만나는 곳이 전혀 맞춤이 되지 않게 만들어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갑사부도의 맞춤에 대하여는 다시 한번 검토하여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1 )  일반적인 부도 형식

               
 그림 2)   갑사부도 탑신석 받침의 하부 문양

   

갑사부도 (출처:신라하대와 고려시대 승탑연구)

대정 6년 갑사부도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최성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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