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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5. 19:10
문화재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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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유물 (孤兒遺物) [ 문년순 ] | ||||||
사전적 의미로는 단순히 부모 잃은 아이를 「고아(孤兒)」라 한다. 그러나 좀 더 포괄적인 뜻으로는 의지 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외로운 신세를 의미한다. 유아기에 부모를 잃어서 자신의 이름도 고향도 모를 때, 그 고아는 자기 존재에 대하여 증명할 기본자료 마저 없다. 어디서 고향과 부모를 찾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며, 혹시 길에서 부모를 만나더라도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을 것이다. 유물도 마치 고아처럼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떠도는 경우가 있다. 이 같은 유물은 우리나라 유물의 다수를 차지하지만 대개 골동품 판매업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흘러 다닐 뿐,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그 유물이 가진 가치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수년 전, 부산 국제 여객 부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업무가 한창 바쁘게 시작되는 오후 2시경, 우리 사무실로 K씨가 비문화재 반출 신고를 했다. K씨 : ‘돌 한 점 가지고 가는데.......한 번 보겠습니까? 그냥 아무것도 없는 돌입니다.’ 이 직업에 종사하는 우리들은 가끔 골동업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뿐만 아니라 골동상인과 관련한 일에는 경찰 수사관처럼 어떤 직감력이 발동하기도 한다. K씨의 ‘그냥 아무것도 없는 돌’이란 한마디에 ‘뭔가 있는 돌’임을 직감하고 수화물을 부치는 「별송장」으로 나가서 그 돌을 보았다. 포장이 되어있었는데 크기는 길이가 약 120cm, 가로가 약 60cm 정도였다. 야무지게 묶여진 줄을 풀려고 했으나 어려웠다. 이럴 때 우리는 가장 난감하다. 화주(貨主)가 잘 정성들여 포장해 온 물품을 풀어 헤쳐서 확인을 해야 하니 화주로서는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화를 내기도 하여 민원봉사자의 입장에서는 미안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시 물품을 화주가 해 왔던 대로 잘 포장하기란 쉽지 않아서 여간 곤란하지 않다. 그저 마치 죄라도 짓는 양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조심조심 개봉을 해서 본 뒤 다시 포장해 주거나 화주 자신이 하기도 한다. 이 돌도 포장을 아주 단단하게 하여서 해체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다시 포장해 주려면 무게 때문에 매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화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선 묶여진 끈과 끈 사이를 비집고 손을 넣어 돌을 더듬어 보았다. 그의 말대로 아무것도 새겨진 것이 없으면 굳이 다 풀어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손에 닿은 돌의 단면은 약간 거칠 뿐 주의를 느낄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쪽도 만져 보아야겠는데 돌의 무게가 무거워서 도무지 뒤집을 수가 없었다. 화주는 곁에 서서 ‘뭐 뒤집을 것도 없이 뒷면도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였지만, ‘그냥 아무것도 없는 돌이라면 비싼 운임을 쓰면서 반출할 까닭이 없다’는 의문이 생겨 화물을 나르는 다른 부서의 근무자 남성 4명에게 도움을 받아 겨우 함께 돌을 뒤집었다. 그리고 다시 손으로 만져보았더니 뭔가 조각 같은 것이 손끝을 긴장 시켰다. 눈, 코, 입 얼굴이 잡힌 것이다. 그때서야 개봉해 보니 거기에는 연대가 꽤 되어 보이는 좌불(坐佛)이 새겨져 있었다. 마애불(磨崖佛)을 떼어낸 것이었다. 불상의 좌대는 연꽃으로 새로 조각한 것이었는데 본디 있던 연꽃이 마모가 심하여 그 흔적을 따라 다시 조각을 한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불상은 돌출된 바위에 새겨져있던 것을 통째 뜯어낸 것으로 뒷면은 돌을 떼어낼 때 생긴 어떤 자국들이 선명하였다. 불상이 확인되자 화주는 자신의 물품이 아니고 남의 부탁을 받은지라, 부탁한 사람의 말을 믿고 아무것도 없는 돌이라고 했다면서 그러나 좋은 불상도 아닌데 보내달라고 하였다. K씨는 주로 도예품만 취급하였으니 실제로 불상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남의 부탁이란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우리 업무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의 눈에는 그 불상이 있어야할 자신의 자리를 잃고 긴 유랑의 길을 떠나기 직전의 슬픈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더구나 아무런 명문(銘文)도 없는 이 불상이 일본으로 나가면 이제 국적조차 알 수 없는 ‘국제미아’가 되고 말 것이었다. 불상은 마모현상이 제법 진행되고 있어 깨끗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음양각의 선이나 돌의 표면에서 새로 손질한 연꽃좌대 외에는 위작(僞作)의 분위기를 집어낼 수 없었다. 불상 양식에서 보면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라갈 수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좀더 시간을 두고 살펴보고 싶었으나 ‘반출불가’에 심기가 틀린 화주는 급히 포장을 하고 용달차를 불러서 어디론가 보내버렸다. 혹시 이 불상이 문화재적 가치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반출을 불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를 반출시켜주고 나면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또 다른 불상들이 수난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재보호라는 우리의 입장에서 반출을 불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불상이 반출은 불가 되었지만 언제 어떤 통로로 다시 일본으로 가게 될지 걱정스럽고 또한 이미 이 불상은 자신의 고향을 영원히 잃고 떠돌 고아유물이 되어버린 것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뒤 K씨를 졸라서 그 불상의 본 주인이라는 사람의 연락처를 겨우 받았고 전화를 하였더니 50대의 남성 음성으로 ‘자신도 잘 모른다. 양산의 어느 계곡에 있던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고 할 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연락을 취하니 전화번호가 없는 번호로 나왔다. 더 이상의 추적은 할 수가 없었다.
골동(骨董)의 어원(語源)은 글자에서 나타나듯 옛날 중국에서는 오래 고울수록 맛이 나는 뼈 국물을 ‘골동’이라고 했는데, 이처럼 오래 깊이 둘수록 그 가치가 오른다는 뜻에서 희소가치가 있거나 유서 있는 고미술품 또는 기물을 ‘골동’이라고 했으며, 이에 다른 말로 고동(古董)이라고도 하였다. 즉「오래 깊이 간직해온 가치 있는 옛 물건」정도의 뜻이다. 따라서 골동에는 역사적 의의와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이 많다. 오랜 세월동안 전세(傳世)되어온 옛 물품들, 혹은 무덤 등을 도굴하여 파낸 것인데 이들이 골동의 의미를 알고 골동을 좋아하는 수집가들에게 팔린다면 다행이지만, 단순히 부의 축적을 위한 매개물 정도로만 생각하는 ‘업자’들 손에서 농간(弄奸)을 당하면, 골동(유물)으로서의 가치는 이미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골동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세상에 존재하는 동산(動産)은 흘러 다니는 게 정상적인 이치이지만 그러나 무덤 속에서 나온 골동이 활발하게 유통된다면 전국의 산야에 있는 옛 무덤이 계속 도굴되어 조상들이 평안하게 잠들지 못할 것이며, 성한 무덤이 없을 것이다. 이미 연대있는 무덤들은 도굴꾼의 발길에 밟히지 않은 분(墳)이 없을 정도가 된지 오래라고 하지 않은가? 국가에서는 이들 유물이 국외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문화재감정관실의 운영도 좋지만 근원적으로는 상인들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유물을 자주 구입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현장에서 좋은 문화재급의 골동을 보면 어디든 국내의 박물관에다 구매의사를 타진해 보라고 권한다. 그럴 때 지체 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그게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정직성을 의심받기도 하여서 관(官)에서는 골동상인들의 물품을 당연히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혹 구입해 준다고 해도 가격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야시장 가격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으로 가지고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에겐 골동판매업이 농부에게 농사일처럼 삶의 한 방법으로 허가받은 당당한 ‘생업’이라는 것이다. 상거래는 이윤추구가 목적인데 국가에서 우리물건을 제대로 값을 쳐서 구입해주지 않으므로 일본으로 간다고 하였다. 상인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시중에 흘러 다니는 유물 중에 반듯한 것들은 예산을 책정해 놓고 구입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첫째로 우리나라의 박물관들은 유물의 양이 연구의 범위에 많이 모자라는 실정이고, 둘째로 시중에 떠도는 유물을 최대한 잘 보호하기 위해서이며, 셋째는 해외로의 밀반출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통일신라 이전의 떠도는 유물 중에 발해와 고구려, 마한과 백제, 가야와 신라에 대한 지역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고 심지어는 우리 문화재의 대표성 노릇을 하는 국보 78호와 83호의 미륵반가사유상이 어느 지역의 불상인지 아직도 학자 간에 논의가 끝나지 않는 것도 유물이 제자리를 잃고 떠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골동상인의 손에 흘러 다니는 유물들은 언제 진정한 수집가나 제대로 운영되는 연구소, 박물관 등으로 정착될지 모른 체 어두운 골방이나 가게의 진열장에서 무심한 세월의 먼지만 쌓고 있다. 이들을 국가차원에서 구입하여 부족한 연구 자료로 보충하는 한편 희귀한 유물은 박물관의 전시관을 빛낼 수 있도록, 우리 문화재청이 골동상인에 대한 관심을 이와 같은 방향으로도 쏟는 것은 어떨까?
▶문화재청 김해공항 문화재감정관실 문년순감정위원 | ||||||
게시일 2007-11-02 17:41:0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