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e이야기

문화재로 재테크합시다. [이유범]

깜보입니다 2007. 11. 5. 20:32
문화재로 재테크합시다. [이유범]

문화재로 재테크합시다
 
   엊그제 사무실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남 함양에서 걸려온 이 전화는 우리를 흥분케 하기에 충분했다. 내용인 즉 “문화재인 전통 한옥을 구입할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여건만 허락되면 낡고 비좁은 한옥을 부수고 그 땅에 번듯하게 고급 빌라나 아파트를 짓고 싶어 하는 마당에 한옥을, 그것도 사유재산권 행사가 쉽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문화재 한옥’을 목돈을 주고 사겠다는 말은 현장에서 근대문화유산의 훼손과 멸실을 몸으로 막는 우리 부서원들에게 무척이나 고무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한옥은 사람의 손때가 항상 묻어야만 유지된다. 이런 한옥의 특성을 감안하고 지금까지의 ‘사후 보수‘에서 ’사전 예방‘으로 선제적 투자를 함으로써 국가예산도 절감하고자 내년부터 기획예산처에서는 문화재 지정 한옥 소유자에게 매월 30만원의 경상관리비를 지원키로 했다. 이 시책이 그 한통의 전화를 오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그 동안 문화재에 대한 인식 변화가 민(民)과 관(官)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지난 60-70년대에 불었던 개발주도의 바람이 더 거세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흔히 보이던 고풍스런 기와집과 어릴 적 뛰어놀던 정겨운 골목길은 이제 온통 아파트로 포위되어 푸른 가을 하늘을 가리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은 애물단지? 보물단지?
  
그러나 아직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주도의 '이승만 별장', 최초의 자장면집 ‘공화춘', 바닷가 부근의 ‘간이역', ‘돌담길'이 잘 보존된 마을 등 근대문화유산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 근대문화유산은 비단 문화재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활용가치가 높은 매력 덩어리다.

 


   우스개 소리로 서울역 모르면 간첩이다. 그 만큼 서울역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잘 알려져 있다. 어느 홍보전문가는 1백년 동안 매일 TV광고를 한 것만큼의 브랜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근대문화유산은 보이지 않은 내공이 크다. 이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만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애물단지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비호감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 그
것은 문화재로 지정되면 사유재산권이 제약받는다는 인식이다. 일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문화재로 지정되면 해당 건물은 물론이고 주변 건물까지 건축고도 제한에 걸릴 뿐만 아니라 집값이 하락하고 생활에 불편을 초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역시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쉽게 풀리게 되는 오해가 될 수 있다.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를 보완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이지만 지정문화재와는 그 뿌리가 다르다.

   지정문화재 제도가 국가에서 반드시 보존해야 할 문화재를 지켜나가는 국가 중심형 문화재 보존제도라고 한다면 등록문화재는 소유자의 활용 의사를 반영하여 국가와 소유자가 함께 보존해 가는 소유자 중심형 문화재 보호 제도이다. 다시 말해 등록문화재 제도는 사유재산권도 존중하고 근대문화유산도 보존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상속세 유예 · 수리비 국가지원 등 혜택 수두룩
  
오히려 문화재 특성을 살리면서 현실적인 용도에 맞게 내·외부를 고치거나 새로운 건축물을 올릴 수 있어 사유재산가치가 더 올라갈 수 있다. 게다가 문화재를 수리하는데 드는 비용을 ‘나랏돈'으로 지원해 주는가 하면 등록문화재가 자리잡고 있는 대지안에서 새로운 건물을 지을 경우 건폐율이나 용적률이 최대 150%까지 보상되어 다른 건물보다 더 높게 지을 수 있는 특권을 갖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재산세의 부담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속세를 안내도 된다. 상속세가 수백만원에서 수십억까지 징수유예 되어 금전적으로 상당한 특혜를 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로또에 당첨되는 격이다. 이밖에 양도소득세 감면 등 다양한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이쯤 되면 ‘애물단지'로만 여겨졌던 근대문화유산을 ‘보물단지'로 불러도 괜찮을 듯 싶다.

미래에 잘 살고 싶으면 오늘 문화재에 투자하라
  
이제는 문화 마케팅 시대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문화재가 지닌 고풍미와 역사성을 비즈니스와 접목해 활용하려는 경향이 세계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서울의 복판에 있는 일제 강점기 경성재판소 건물을 분위기 있는 시립미술관으로 변신시켜 놓았는가 하면 건국대학에서는 조형미가 뛰어난 애국단체 ‘서북학회'의 건물을 학교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오르세라는 옛 기차역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했는가 하면, 일본의 요코하마는 배를 만들던 조선소를 문화광장으로 만들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게다가 선진국들은 불과 20년 밖에 안 된 건물도 근대문화재로 등록하고 있는가 하면 서로가 앞 다퉈 근현대기 건축물을 문화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문화재 마케팅은 문화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눈치 빠른 기업인이라면 더 늦기 전에 한옥이라도 한 채 사둘 일이다. 문화재로 사회공헌도 할 수 있고 문화재로 재테크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경남 함양에서 걸려온 그 전화의 주인공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지 모른다. 내일 아침 한 통의 전화를 더 받고 싶다.


▶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장 이유범

게시일 2007-04-27 09:4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