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문화재보호구역을 법으로 규정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고도보존법과 경관법을 우리나라보다 앞서 도입한 일본이 선뜻 보호구역 제도를 법으로 정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날 처음 알았다.
삼국(한국·프랑스·일본) 간 문화유산 정책 공동 연구의 첫 단추를 끼우다
지난 3월 17일 토요일 오후, 나는 동경의 국립정책대학원(National Graduate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세미나실에서 국립정책대학원 부설 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인 가키우치 교수, 프랑스 솔본느 대학교의 그레페(Xavier Greffe)교수와 함께 세 나라의 문화재 제도에 관해 돌아가면서 설명을 나누며,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자유토론을 시작하였다. 한국의 진보적인 제도에 대한 찬사를 들려 준 사람은 이날 세미나의 좌장 격인 가키우치 교수였다. 그녀가 주선하여 열린 이 세미나는 일본측 초청으로 방문한 나의 편의를 위해 주말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작년 5월, 내가 세종연구소 공식 프로그램으로 이 국책대학원을 방문했을 때 가키우치 교수와 점심을 겸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프랑스인 학자를 포함해 세 명이 함께 나서 문화유산 정책을 공동으로 연구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개인 차원의 활동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나의 공식적 업무와 관련된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그 제안을 수락하였다. 이 날 세미나는 그 구상의 첫걸음에 해당되었다. 이틀 동안의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주로 문화재 관련 제도의 변천과 현재의 고민거리에 관해 토론하였다. 일본과 프랑스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문화재 보존 제도와 정책이 경제, 사회 발전과 궤적을 함께 하면서 보호 대상을 확대하고, 개발과의 타협점을 찾으며, 시민사회의 역할을 중시하고, 문화유산 가치의 활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 왔다. 거시적 흐름 속에서 세 나라가 갖는 공통점과 차이점은 매우 흥미로운 토론 주제가 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이뤄진 일본의 문화재 보호 및 보존 정책과 그 활용
일본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문화재 보존에 나선 것은 명치유신 이후 19세기 말부터라고 볼 수 있지만 20세기 전반의 전쟁 중에는 문화재 보호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호류지 화재를 계기로 1950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문화재 보호 행정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6~70년대 전국에 걸쳐 성행한 국토 개발 공사의 물결 속에서 전통문화 환경이 마구 파괴되었는데, 이 때 문화재 보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가 2004년에 제정한 ‘고도보존법’을 일본인들은 1966년에 만들었다. 요코하마 근교 카마쿠라 중심부의 한 신사의 뒷산에 택지를 조성하려던 계획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법은 카마쿠라, 교토, 나라 등 몇 개의 역사도시에만 적용되었지만, 이때부터 각 지방 정부는 개별적으로 역사 경관을 보존하기 위한 법령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에 따라 1975년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되었는데, 이때 ‘중요전통적건조물군보존지구’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지정된 건조물 집합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상태에서 외관뿐 아니라 내부 시설들도 보호를 받는다. 90년대 이후 일본인들은 문화재를 활용하여 관광 수입을 올리고 문화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992년에는 전통공연예술을 활용하여 지방 산업을 진흥시키는 법안이 제정되었으며, 2001년에는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기반으로 ‘문화예술진흥기본법’을 제정하여 문화예술의 통합된 개념 속에서 문화재의 가치를 활용하려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2004년에는 ‘경관법’을 제정하여 도시와 마을 경관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려는 첫 번째 법적인 조치를 시행하면서 ‘문화 경관’의 개념을 제도화하였다.
중앙 정부 주도로 시작된 프랑스의 문화재 보호 정책과 그 발전 과정
프랑스의 경우도 중앙 정부 주도로 문화재를 보호해왔는데, 최근에는 지방 정부와의 역할분담에 관해 고민 중이라 한다. 1913년 ‘역사적 기념물 법’을 제정하면서 정부는 동산문화재와 부동산문화재를 지정하여 보호하고, 1943년에는 이 법을 개정하여 지정된 부동산 문화재의 500m 내에 있는 다른 부동산 문화재도 보호대상에 포함시켰다. 지정문화재의 현 상태를 변경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되나, 필요한 경우 정부가 허가한 범위 내에서 가능하며, 이 경우 지정기념물의 수리와 유지 경비의 50%를 중앙 정부가 보조한다. 그 결과, 당장 지정할 필요는 없지만 정부의 개입으로 보존 활동이 필요한 동산문화재와 부동산 문화재를 ‘등록’하는 제도가 이때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등록 제도는 지정 제도를 보완하여 보다 넓은 범위의 문화재를 보호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이후 프랑스는 1930년 ‘자연기념물, 그리고 예술적·역사적·학술적·설화적·회화적 장소의 보호에 관한 법’에 자연유산의 지정 등록 제도를 시행하였으며, 1941년 ‘고고학적 발굴의 규제에 관한 법’을 제정해 매장문화재를 보호하였다. 또, 1973년에는 ‘도시계획법’을 통해 일본의 ‘전통건조물보존지구’와 같이 집단적 문화재 보존 대상을 지정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프랑스와 일본의 모습을 통해 본 우리나라 문화재 정책에 남겨진 과제물
이날 토론에서 다시금 확인한 것은 문화재 정책이 고도의 정치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270여 년 동안 에도의 번영을 상징적으로 전해주는 니혼바시 다리는 도시계획에 대한 정치적 판단에 따라 여러 차례 운명을 달리하는 과정을 거쳐왔고, 현재 그 역사 경관이 고가 고속도로 아래에 파묻혀 있다. 전임 고이즈미 수상은 도시 인프라 시설에 손을 대서라도 그 역사 상징물의 경관을 되찾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실행 여부는 앞으로 시민사회, 이해 관계자, 정치권 등과 같이 다양한 역할 주체들의 치열한 공방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프랑스와 같은 서유럽 국가들은 원래 무형문화재의 자원도 빈약하고 이 분야에 대한 정책적인 관심도 크게 두지 않았다. 그러나 유네스코에서 미국의 반대를 견제하며 문화다양성 협약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정부는 무형문화재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역할이 미미했던 민간단체(NPO)가 무형문화재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책 과정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틀 동안의 주말 세미나에서는 문화재 정책이 시민사회, 이해관계자, 전문가 집단, 정책 담당자 등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어,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의 통합된 접근(multi-disciplinary)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향후 우리 세 사람이 ‘진정성’(authenticity), ‘참여’(participation), 그리고 ‘활용’(utilization)이라는 세 나라의 보편적 정책 의제에 대하여 1년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내년 하반기에 성과물을 내기로 하였다. 나는 한국의 문화재보호구역 지정 제도가 사유재산권 존중의 가치를 경시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보존을 위한 사회적 결단이며, ‘참여’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고, ‘활용’에 의해 그 희생을 최대한 보상하는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 글 : 문화재청 문화유산국장 엄승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