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e이야기
천년 고찰 장곡사
깜보입니다
2007. 11. 14. 01:21
천년 고찰 장곡사 | ||||||||||||||
충남의 알프스라 불리 우는 청양군에 위치한 천년 고찰 장곡사. 푸른 볕이 드는 땅 청양, 이곳이 충남에서 가장 깊은 산골이라 여겨지는 것은 굽이굽이 돌아드는 칠갑산 때문이다. 청양군 한복판에 위치한 칠갑산은 높이가 560m 밖에 안 되는데도, 아흔아홉 고개라 불릴 만큼 골짜기가 깊다. 명당이 일곱 군데 있어 '칠갑'이라 불린다는 칠갑산의 아흔아홉 골에서도 가장 깊은 골에 자리 잡은 장곡사 터는 충남에서 가장 좋은 명당자리로 일컬어진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고 돌아 한참을 들어가야 칠갑산 기슭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장곡사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을 오면서 잠시 나는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에 젖어들었다. 장곡사는 외할머니께서 살아생전 즐겨 찾아 불공을 올리시던 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자가용이나 버스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팔십여 평생을 포장도 안 되어 거친 비포장 비탈길을 훠이훠이 숨을 몰아쉬며 오르고 내리셨을 외할머니를 머릿속에 그려보니 코끝이 시려왔다. 어찌되었건 장곡사가 이처럼 깊은 칠갑산 산자락에 안겨 있었기에 숱한 전란의 화를 모면하며 장구한 천년 세월을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대한불교조계종 공주 마곡사의 말사인 장곡사는 말 그대로 천년 고찰이다.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성왕 12년)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하였고, 그 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쳤다. 창건 이후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고 있으나 고려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 사찰이 고려시대에 꽤 번창 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이곳 장곡사 가람 배치의 가장 큰 특징은 대웅전이 두 채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대웅전이 둘 인 곳은 우리나라에서 장곡사 이곳밖에 없다고 한다. 가파른 언덕위에 상대웅전이, 그리고 그 아래에 하대웅전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놓여 있어,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상대웅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담한 규모의 사찰 전경이 한눈에 들어와 시각적 즐거움 또한 크다.
이 두 채의 대웅전은 건축사적 으로도 주목되는데, 먼저 상대웅전은 고려시대의 기둥과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유문전석(有文塼石)이 남아 있어 역사적인 의의가 깊은 건물이다. 통일신라시대의 바닥과 14세기 양식을 한 배흘림기둥, 그리고 다포집이면서 맞배지붕을 하는 등 공포 위의 것들은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양식을 취하고 있어 이 건물 안에서 수백 년의 세월이 만나고 있는 셈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형식으로 동남향 방향으로 지어졌다. 보물 제162호인 이 건물 안에는 국보 한 점과 보물 한 점이 모셔져 상대웅전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고 있다.
상대웅전 안에 들어서면 가장 오른쪽으로 보이는 불상이 국보 제58호인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 이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철조약사여래상은 채색된 나무 광배를 배경으로 거대한 흰색 석조대좌 위에 앉아 있다. 대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불상은 단정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내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짓고 있으나 왼손 손바닥 위에 약 그릇이 놓여 있던 흔적이 보여 약사불이라 불린다. 하지만 이 약사불보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사각형의 석조대좌가 훨씬 장엄해 보인다.
불상을 압도하는 크기뿐 아니라 모양이 흔치 않은 방형대좌인데다가 네 귀퉁이에 큼직한 귀꽃들이 조각되어 있다. 광배는 원래 석조 광배였을 것이나 파손되어 조선시대에 목조로 다시 만든 듯 하다. 테두리에 불꽃무늬를 새기고, 불신 주위에 꽃무늬를 넣어 그린 것을 보면, 신라 말 고려 초에 유행된 원형광배를 그대로 모방하여 조성한 것 같다. 철조약사여래좌상 옆, 법당 가운데에 모셔져 있는 불상은 보물 제174호인 철조비로자나불 좌상부석조대좌이다. 원래 석등의 대석 이었음직한 높은 대좌 위에 앉아 있는데, 빈약한 체구이지만 딱 벌어진 어깨와 무표정한 인상이 그리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9세기에 유행한 비로자나불 신앙을 받아들인 고려 전기의 불상이다. 법당 왼쪽에 모셔져 있는 불상은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이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나한들을 모신 응진전이 상대웅전 오른쪽에 있고, 나머지 전각들은 언덕 아래 모여 있다.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이 오십 계단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 언덕에 나뉘어 있다.
보물 제181호로 지정된 하대웅전은 상대웅전과 방향을 달리해 서남향이며, 조선 중기의 건물이다. 다포계이면서도 단정한 맞배지붕을 얹어 임진왜란 이후에 유행한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법당 안에 들어서면 정면에 금동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복장에서 나온 기록에 의하면 1346년(고려 충목왕 2년)에 조성되었다는 흔치 않은 고려시대 불상이다. 고려 후기 불상 양식의 편년 설정에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보물 제337호이다.
대웅전 두 채와 응진전, 운학루, 그리고 몇 채의 요사채가 전부인 조촐한 사찰에 국보 1점과 보물 4점을 간직한 장곡사. 규모에 비해 이만큼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절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에 각각 약사여래를 봉안하고 있는 이 절은 영험 있는 약사도량으로도 이름이 높아, 건강을 기원하려는 많은 신도들이 찾는다. 특히 상대웅전의 약사여래는 난치병을 낫게 하는 영험 있는 부처님이라는 소문이 나 있기도 하다. 장곡사는 현재 비구니 스님들의 기도 도량으로 이용 되고 있다.
장곡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이 사찰의 느낌은 아늑하고 편안하다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올여름 아이들 방학이 되면 꼭 다시 한 번 찾아 꼬불꼬불 이 길을 다니시던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섰다. ▶ 문화재청 홍보담당관실 사무관 이철규 | ||||||||||||||
게시일 2007-02-28 09:32: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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