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적인 이탈리아의 대리석 조각은 세계적으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성당이나 궁전, 고택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리석 조각품들은 그 규모나 정교함에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렇듯 이탈리아에 대리석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화강암이 있다. 물론 우리의 석조각들은 이탈리아나 유럽의 석조각에 비해 세밀한 느낌은 떨어진다. 그러나 그 재질의 특성을 알고 나면 우리 선조들이 남겨 놓은 유산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리석과는 비견할 수 없이 강하여 다루기조차 힘든 화강암, 그 단단한 돌을 떡 주무르듯 다듬어 놓은 우리 선조들의 솜씨를 알고 나면 자부심마저 차오른다. 석조각의 꽃이라 부르는 부도를 통해 우리나라 석조각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한다.
부도는 무엇인가?
부도浮圖는 고승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하는 묘탑이다. 따라서 부도는 탑과 함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석조물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묻는 장례 방식이 크게 유행하였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불교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고 당시 종풍을 일으킨 구산선문은 스승인 조사들의 사리와 유골을 담은 묘탑을 중요한 예배의 대상으로 삼아 많은 부도들을 건립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부도가 세워진 것은 삼국시대 말엽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문헌상의 기록일 뿐이고, 실제로는 9세기 중엽부터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부도는 신라 문성왕 6년(844)에 제작된 전흥법사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이다.
부도의 구성과 형식을 살펴보면…
부도는 탑과 마찬가지로 기단부·탑신·상륜부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탑과는 또 다른 생김새를 지니고 있다. 먼저 기단부는 탑과 달리 연꽃문양을 새겨 넣어 화려하고, 다음으로 탑신부는 단층집 모양으로 정교하게 꾸며졌으며, 마지막으로 상륜부는 불탑보다 간결하다. 또한 부도의 형태는 팔각원당형, 방형, 오륜형, 복발형(종형)으로 구분된다. 팔각원당형 부도는 우리나라 부도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기단·탑신·지붕이 모두 8각형이고 단층이다. 이 부도의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지붕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기단이나 탑신부에는 사자·연꽃·비천상·사천왕이나 팔부중상 등을 새겨 넣고 있다. 이러한 모습의 부도는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보다 우수한 작품들이 대거 제작되었다. 방형부도는 팔각원당형에서 벗어나 평면 사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그리 흔치 않다. 고려시대 부도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이 이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오륜형 부도에서 오륜이란 고대 인도의 5대 사상을 표현한 것으로, 우주의 근원인 땅·물·불·바람·공空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륜형 부도 역시 흔치 않으며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국보 제102호)이 그 대표적인 예로 전해져 온다. 복발형(종형) 부도는 인도의 복발탑에서 유래된 부도이다. 이는 전체적으로 형태가 간결하고 종 모양으로 생겨 종형부도라고도 불리는데, 조선시대 부도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평가된다.
연곡사 동부도 (국보 제53호)
지리산 자락의 천년고찰 중 하나이지만, 여느 사찰에 비해 고즈넉한 피아골 연곡사에 자리한 부도이다. 절집 분위기만큼 전체적으로 단아한 모습이나, 조각만큼은 정교하고 화려하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신라 말기에 만들어졌으며, 부도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도선국사(827~898)의 부도라는 설이 있을 뿐이다. 이 부도는 팔각원당형의 부도로서 지대석 위에 기단과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 하대석에는 각각 여덟 마리의 사자가 새겨져 있으며, 중대석 각 면에는 팔부중상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석에는 두 겹의 앙련으로 둥근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몸돌은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져 비스듬한데, 몸돌 각 면에는 문비형·사천왕상·가마 등이 조각되어 있다. 또 지붕돌은 목조건축의 지붕 구조를 따르고 있는데 아래쪽은 좁은 골을 지닌 서까래와 부연, 위쪽은 기왓골과 막새기와로 표현되어 있다. 균형 잡힌 몸에 섬세한 조각으로 다져진 연곡사 동부도는 국보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달사지 부도 (국보 제4호)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한적한 시골마을 나직한 뒷산자락에는 고달사지라는 큰 절터가 자리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사방 30리가 고달사 땅이었을 정도로 그 규모가 꽤나 큰 사찰이었지만, 언제 그리고 왜 폐사되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너른 절터에는 원종대사 부도비와 부도, 석불대좌와 원감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달사지 부도가 보존되어 있다. 폐사지의 쓸쓸함이 무색할 정도로 이 유물들은 힘이 느껴지는데, 그 중 압권은 역시 고달사지 부도이다. 이 부도는 높이 3.4m에 이르는 장대한 부도인데, 중대석에 새겨진 용 조각은 금세라도 튀어나올 듯 씩씩하고 장중하며 역동적이다. 기단과 탑신, 지붕돌의 형식을 모두 갖춘 팔각원당형 부도로서, 신라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 초기의 부도이다. 몸돌의 사천왕상과 지붕돌 안부에 새겨진 비천상의 조각이 정교하고, 지붕돌의 기세가 당당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고달사지 부도는 국보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쌍봉사 철감선사 부도 [쌍봉사철감선사탑 (국보 제57호)]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의 쌍봉사는 송광사의 말사로 신라시대에 세워진 고찰이다. 역사에 비해 수수하고 한적한 이 사찰에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부도 중 첫 손에 꼽을만한 걸작이 보존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국보 제57호로 지정된 쌍봉사철감선사탑이다. 철감선사(798~868)는 18세에 출가하여 당나라 유학을 다녀온 후, 문성왕 때에 쌍봉사로 들어와 10여 년 동안 종풍을 떨치다가 경문왕 8년(868)에 입적한 고승이다. 그가 쌍봉사에 있을 무렵 특히 사세가 번창하였는데, 그의 덕망이 널리 알려지자 경문왕은 그를 불러 만나 본 후 스승으로 삼아, 사후에는 철감국사란 시호를 내렸다. 철감선사 부도(쌍봉사철감선사탑) 역시 통일신라시대 석조 부도의 기본양식인 팔각원당형 부도로서, 하대석 하단에는 구름무늬와 구름 사이로 꿈틀거리는 용의 모습을, 하대석 상단에는 사자를, 몸돌과 상대석에는 사천왕과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가릉빈가)를 새겨 넣었다. 몸돌과 중대석의 각 받침에는 연꽃잎을 새겨 화려함을 더했고, 묵직하게 흘러내린 지붕돌의 처마 끝에는 연꽃문양이 새겨진 수막새와 암막새를 얹었다. 전체적인 몸매가 단아하면서도 균형 잡혀 있고, 각 부분의 조각들이 정교하며 매우 아름답다. 우리나라 최고의 부도라고 자부한다.

회암사 무학대사 부도 [회암사무학대사홍융탑 (보물 제388호)]
양주 회암사는 고려시대 3대 사찰의 하나로 지공화상, 나옹화상, 무학대사와 같은 걸출한 고승들이 머물던 대찰이었다. 승려 수가 3천에 이르렀으며, 전국 최대의 사찰로서 조선 명종에 이르기까지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 명종 때 이 사찰에 두터운 신임을 보내던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왕후의 비호 속에 큰 권세를 누리던 보우대사가 유생들의 빗발치는 상소 속에 처형당하고, 회암사는 불길에 휩싸여 폐사되고 말았다. 하지만 절은 폐사되었을지라도 네 점의 부도와 각각 두 점의 부도비, 석등 등이 남아 과거의 명성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을 거쳐 간 지공, 나옹, 무학대사의 부도들이다. 그중 태조 이성계의 스승이었던 무학대사의 부도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부도 중 가장 뛰어난 걸작 으로 꼽힌다. 팔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난간을 두른 다음, 그 안에 팔각원당형의 부도를 세우는 특별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각 층마다 새겨진 용·구름·연꽃 조각이 매우 아름답고 섬세하다. 보물 제388호로 지정되어 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국보 제101호)
임진왜란 때 폐사된 원주시 부론면의 옛 절터 법천사지로부터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다시 경복궁으로 옮겨져 보관되어 온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절의 역사만큼이나 수난이 많았던 이 부도는 고려시대 부도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우선 그 형태가 팔각원당형의 부도에서 벗어난 방형부도이며, 아라비아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화려한 문양이 특히 독특하다. 넓은 지대석 위에 평면사각형의 기단·몸돌·지붕돌이 층층으로 얹혀 있으며, 각 면에는 안상·운문·연화문·초화문·보탑·신선 등이 빽빽하게 조각되어 있다. 지붕에는 장막을 드리웠고, 바로 아랫면에는 불상과 보살·봉황을 새겨 넣었다. 전체적으로 튼튼한 기단 위에 모양을 갖추어 화려하면서도 장대하다. 이 부도는 국보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다.
▶글 : 이인 ▶사진 제공 : coreein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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