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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삶이 일군 금빛 다랑이논 ‘그림보다 아름답다 - ’ 통영 ‘야싯골’

깜보입니다 2013. 9. 1. 11:50

 

●  삶이 일군 금빛 다랑이논 ‘그림보다 아름답다’
     1년을 기다려 촬영한 통영 ‘야싯골’의 落照...
 




▲ 산은 검은 비로드처럼 숲이 짙고, 다랑이논은 금빛 하늘을 조각조각 나눠담은 쟁반 같다...


지난 7일 경남 통영시 산양읍 남평리 금평마을 속칭 ‘야싯골’의 다랑이논의 낙조는 밀레의 ‘만종’에
못지 않게 보는 이를 경건하게 만든다. 이 논은 바다를 지척에 두고도 평생을 땅에 기대 살아온
손마디 굵은 농부들의 손길로 만들어진 작품. 이렇듯 인간의 고된 노동이 만들어낸 풍경이 때론
그 어떤 예술품이나 절경보다 아름다울 때가 있다.

야싯골은 마을이 끼고 있는 미륵산 일대에 야시(여우)가 많았다고 해서 붙었다고도 하고, 한자 지명
야소골이 삼군통제영 시절에 무기를 만들던 대장간이 있었다고 해서 풀무 ‘야(冶)’자와 바 ‘소(所)’
자를 썼다고도 전해진다. 지난해 여름 통영을 취재하다가 푸르름 무성한 다랑이논의 거울 같은 물이
어떻게 하늘을 담을까 궁금했다. 1년을 기다려 미륵산 정상 부근 봉수대 자리에서 모내기를 앞두고
논에 물이 가득 담긴 모습을 촬영했다. [NIKON D3 70-200㎜ f18 1/2초 Iso 200]


●  낙조가 빚은 황금빛… 한려수도는 황홀했다...





▲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려수도의 낙조 풍경. 사량도와 남해도 너머로 해가 지면서 석양의
바다가 빨갛게 달궈져 손을 내밀면 데일 것 같다. 미륵산에 오르면 바다가 270도의 각도로 펼쳐
져 일출부터 일몰까지 다 바라볼 수 있다.
 

경남 통영의 미륵산 정상에 선 것은 마침 황혼 무렵이었습니다. 미륵산을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내려 10분 남짓 산길을 올라 정상의 표지석 앞에 섰습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한려수도의
바다는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입니다. 바다는 낙조 무렵의 해를 받아 새빨갛게 달아올랐
습니다. 손을 내밀면 금시 붉게 달아오른 바다에 데일 것만 같았습니다.

미륵산에서 내려다본 풍경의 첫 번째는 당연히 한려수도의 바다이겠지만, 그 바다에 눈을 빼앗
기면 혹시 미륵산 자락아래 다랑이논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륵산 자락 아래 산양면 남현리 야소골. 산자락 비탈면의 다랑이논이 그려낸 부드러운 곡선은
다른 데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그림입니다. 모내기를 앞두고 다랑이논마다 그득 담아놓은 물이
저물녘 하늘의 붉은 기운을 받아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다랑이논을 일군 사람의
노동이 이렇듯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낙조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다랑이논의 색깔에 마음을 빼앗겨 산아래로 내려가는 케이
블카의 막차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 덕분에 푸른 색조의 어둠으로 젖어드는 다랑이논과 야소
골 마을의 집에 하나 둘씩 따스한 불이 켜지는 풍광을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때맞춰
보름달이 환한 날이어서 밤 바다는 달빛에 희게 반짝였고, 고즈넉한 절집 미래사 쪽으로 내려서
는 편백나무 울창한 산길도 훤했습니다.

이즈음 통영에서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곳이 바로 ‘동피랑’입니다. 동피랑이란 독특한 이름은
‘동쪽의 피랑(벼랑)’에 자리한 마을이라 붙여진 것이라지요. 강구안 포구의 중앙시장 뒤편 봉긋
한 언덕에 들어선 달동네 마을인데, 누추한 담벽마다 밝은 색조의 벽화들이 그려졌습니다.
관광객들은 달동네 골목을 장식한 화려한 색감의 벽화를 보러 오지만, 사실 알록달록한 그림의
대부분은 내용이나 두서가 없고, 그저 눈요기에만 그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동피랑 마을을 찾아가보길 권하는 것은 달동네 좁은 골목 사이로 내다보이는 바다의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전깃줄과 깃발처럼 널어놓은 빨래, 베어진 당산나무,
녹슬어가는 쇠창살…. 동피랑은 이런 누추한 것들이 죄다 모여서 하나의 풍경을 이룹니다.

동피랑의 과거를 따라가다 보면 눈물겨운 이야기들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다들 어렵던
시절, 집없는 이들이 몰려들어 제 땅이 아닌 비탈진 벼랑에 다닥다닥 판잣집을 짓고 살았던 동피
랑 사람들.

지금이야 동피랑 골목의 난간에서 관광객들이 강구안의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지만, 얼마 전까
지만 해도 그곳은 동피랑 아낙들의 조바심과 눈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
을 기다리며 저물어가는 포구를 내려다보던 동피랑 아낙들은 고깃배들이 ‘사고가 났다’는 뜻의
흰 깃발을 달고 들어오면 맨발로 한달음에 항구까지 뛰어내려 가곤 했답니다.

혹시 동피랑에 가신다면 산동네로 드는 입구의 백태기(72)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파고다 카페’를
꼭 들러 보시지요. 말이 ‘카페’이지 다 합쳐도 스무 봉지가 넘지 않는 과자와 몇가지 음료수를 파
는 한 평 남짓의 자그마한 구멍가게인 ‘파고다 카페’는 손님이 손수 커피를 타마시고 돈을 내야 하
는 곳입니다.

이름이 왜 하필이면 ‘파고다’일까요. 더듬거리는 백 할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조합
해보니 누군가 이곳을 찾아와서 “여기가 마치 영화 속의 ‘바그다드 카페’같다”고 했다는군요.
이 이야기를 들은 백 할아버지가 다음날 가겟집에다 떡하니 ‘파고다 카페’라고 써넣었더랍니다.
‘파고다 카페’. 귀가 어둡기도 하고, 영화 속의 ‘바그다드 카페’를 알 턱이 없는 할아버지가 지은
이름이지만 다른 어떤 곳의 카페 이름보다 훨씬 더 멋지지 않습니까...

◎  통영 = 글·사진 문화일보 박경일기자, 기사 게재 일자 2009-05-13

 

 

 

 

출처 : 광주민학회
글쓴이 : 조청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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