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보입니다 2019. 6. 24. 12:05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6월 30일부터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지난 2011년 등재를 추진한 이후 8년이 지난 시간 동안 한국의 서원은 '추진→잠정 등재→반려 판정→신청 철회→재추진'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세계유산 등재를 보름여 앞두고 있다.

문화재청은 최근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하 이코모스)가 한국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한국의 서원'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서원은 ▷안동 병산서원 ▷안동 도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 ▷전북 정읍 무성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이다.

안동시는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경우 '하회마을', '봉정사',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 4곳의 세계유산과 세계기록유산 '유교책판' 등을 보유하게 된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 우리나라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3대 카테고리 보유 도시'로 자리잡게 된다.

이근필 퇴계종손이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을 찾은 학생들에게 퇴계선생의 삶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이근필 퇴계종손이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을 찾은 학생들에게 퇴계선생의 삶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우여곡절 겪은 등재 과정

2012년 4월 18일 서울에서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을 포함해 '한국의 서원' 9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한국의 서원은 2011년 12월 9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이후 등재를 위한 다양한 학술회의와 지자체별 지속 가능한 관리 방안, 서원 간 연계 가능성 등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노력이 있었다.

문화재청은 전국 637개 서원 가운데 '사적'으로 지정 보호된 곳인 데다 서원 중에서도 보존·관리가 가장 잘 되고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도 빼어난 곳을 선정해 유산 등재에 나섰다.

2015년 9월 실사단 심사를 마친 이코모스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충족하는 잠재적 가치를 갖추었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국내외 유사 유산과의 비교분석'과 '연속유산의 선택방법', '완전성 맥락 속 유산경계의 선택' 등에서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며 '반려' 의견을 내놨다. 중국·일본 서원과의 차별성을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급기야 문화재청은 2016년 4월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철회했다. 등재가 불가능한 '반려' 판정을 받은 '한국의 서원'에 대한 세계유산 심사가 '등재 불가'를 받아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서 신청 철회 후 보완을 통한 재신청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2016년 8월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은 제1회 이사회를 열고 한국의 서원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 재추진 의지를 밝혔다. 재추진을 위해 이코모스와의 자문계약 제도를 이용, 등재신청서 작성방향을 국제적 시각에 맞춘 탁월한 보편적 가치 도출에 나섰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월 유네스코에 재도전장을 내 1년 반 동안 이코모스의 심사를 받았다. 심사 결과 '한국의 서원'이 조선시대 사회 전반에 보편화됐던 성리학을 전파하는데 기여한 점(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을 인정받았다.

도산서원에서 열린 도산별과 모습. 매일신문 DB도산서원에서 열린 도산별과 모습. 매일신문 DB

◆문화 브랜드로 높은 가치

'한국의 서원'이 가진 세계유산적 가치에 대해 서울대 김광억 명예교수는 "서원은 건축문화재보다 설립 과정, 공간적 구조, 상징 역할과 기능의 여러 면에서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정신문화의 생산과 전수 기제로 이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명예교수는 "서원이 높은 수준의 도학을 실천한 인물을 받들고 그의 가르침을 심화하는 선비들로 구성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며 "서원은 지식 전수의 교육기제를 넘어 인간됨을 핵심으로 하는 실천교육의 기제"라고 평가했다.

이상해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서원은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선현을 배향하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 유생들이 경서를 강독하는 강학 공간, 유식(遊息)을 하는 공간을 근간으로 해서 구성됐으며 동아시아의 성리학 정신과 활동을 보여주는 탁월한 가치를 가진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서원들은 제향 인물의 사상·철학·정신·학문, 그리고 가치관을 중시하는 정신문화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유형의 건축물·경관, 서원에서 생활했던 사람과 그들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또한 서원은 역사와 교육·제향의례·건축·기록·경관 등 다양한 유·무형 문화유산들의 집합체다.

우수 인재들이 '강론'(講論)하고 학문을 토론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제향 인물의 상징성, 서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지식인들 간의 지연과 학연, 여론 형성 등은 서원이 지성적 네트워크의 거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지성문화'라는 무형의 복합적 가치를 지닌 서원문화는 현대사회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와 경쟁력 있는 '한국의 문화 브랜드'로 손색없는 가치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림(士林) 활동의 거점

서원의 건립 주체이자 운영의 핵심인 '사림'(士林)은 지역에서 향약(鄕約)과 사창(社倉) 운영 등을 통해 지역 사회를 자율적으로 운영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사림들은 향촌사회에서의 정치·사회적 활동의 거점으로 서원을 활용했다.

한국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 순흥에 소수서원(백운동서원)이 처음 건립된 이래 17세기에 이르면서 전국에서 경쟁적으로 건립, 발전했다. 서원은 단순히 교육기관으로 기능하지 않고, 사림이 향촌사회에서 정치·사회적 활동을 벌이는 중심으로 변화했다.

서원은 향촌 사회의 지도자 양성처로 기능했다. 향촌사회 교화와 향촌사회를 이끌어갈 주체로서 성리학 지식을 갖춘 사림(士林)의 양성 기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기구로 주목받은 것이 바로 서원이었다.

서원은 정치적 현안에 대해 당대 최고의 지역 지성인 선비들이 여론을 형성했던 곳이다.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 향촌 사림들의 견해를 조율하고 수렴하며, 나아가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당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이러한 여론은 연명 상소, 학문 토론, 그리고 의병 격문(檄文) 등으로 나타났다.

17세기 이후 서원이 유교 교육의 성격보다 학맥의 중심이자 여론 수렴의 장소가 되면서, 서원은 사림이 회합하고 교류하는 장소로 주목됐다. 이 때문에 서원 건축은 제향 공간인 사당과 교육 공간인 강당·숙소를 기본으로 하고, '유식'(遊息) 공간 등 기타 부속 시설을 둔다. 이 중에서 유식 공간은 문학을 통한 교류의 장으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