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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읍 김동수 가옥

깜보입니다 2006. 7. 28. 18:32

정읍 김동수 가옥


김동수가옥 평면도(안행랑채가 현재와 다름 현재는 ㄷ자형임)

 

 

김동수가옥(중요민속자료 26호)은 1784년 현 주인의 7대조인 김명관이 지은 건물로서 풍수의 이야기 거리가 많은 곳이다. 원래 전라도 지방은 실학자인 박제가가 그의 저서인 북학의北學議에서 "전라도 일대가 우심하게 나쁜 버릇이 물들어서 열 집이면 아홉 사람이 지관地官 노릇을 한다."고 할 정도로 풍수에 대한 믿음이 강하였던 곳이었다. 김명관도 풍수 길지인 좋은 터를 찾아다니다 이 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집의 전 주인이었던 김동수님도 역시 이곳이 풍수상 길지라는 믿음이 강하였다고 한다.

 

이 집의 터는 풍수상으로 지네형국의 명당이라고 한다. 뒷산인 창하산은 지네를 닮았다고 하여 지네산으로 불려지며, 오공리(五公里)라는 지명도 원래는 지네를 가르치는 오공(蜈蚣)이었으나 일제 때 현재와 같은 한자 표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이 집 앞에는 동서로 긴 장방형의 연못이 있는데 이러한 형태로 된 것은 지네의 먹이인 지렁이를 상징하여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연못을 건너의 조산인 화견산의 화기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여러 사람이 집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풍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집 앞에는 나무가 울창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 역시 풍수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 나무는 집의 건너편에 보이는 안산인 독계봉(獨鷄峰)과 조산인 화견산(火見山)의 화기로부터 집의 풍수형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심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김광언선생은 나무를 많이 심은 것은 지네가 습한 곳에서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늘을 만들어 주기 위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나무는 대문을 중심으로 왼편에 40그루, 오른편에 2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는데 왼편의 나무는 지네산까지 연결되게 하여 지네산의 맥이 이어지도록 하였다고 한다.


문간마당


 

김동수가옥은 1400여 평의 넓은 대지에 지어져 시원하고 밝다. 김동수가옥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는 문간마당이다. 대부분의 집은 대문을 지나면 대개가 사랑마당으로 직접 진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은 대문을 들어서면 담으로 둘러싸인 문간마당에 들어서고 다시 중문을 지나 사랑마당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가 나온 것은 대문의 위치 때문일 것이다. 집의 배치를 보면 소슬대문의 동쪽에 사랑채가 있고 소슬대문 바로 앞쪽에 안채가 위치하고 있다. 집터가 워낙 넓다보니 안채와 대문사이에 공간이 너무 넓고 소슬대문이 안채의 중문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어 안채가 들여다보이는 것 때문에 완충공간이 필요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담으로 둘러진 완충공간을 만들고 보니 안채 앞마당이 넓어 허해지는 것도 방지하고 출입자가 자연스럽게 제어될 뿐만 아니라 안채가 들여다보이는 문제도 해결되었다. 또한 사랑채를 지나 안채로 들어가는 과정이 복잡해져 안채에 대한 내외의 형식이 한층 강화되었다. 

안채 전경


 

이 집 특징은 안채에 있다. 안채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ㄷ자 형태일 뿐만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외관의 형태만 대칭을 이룬 것이 아니라 방의 배치까지도 철저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터를 잡을 때 도와주었던 승려가 계획하여 주었다고 한다. 어쨌든 ㄷ자 형태의 집은 가끔 볼 수 있는 형태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대칭을 만든 것은 다분히 권위적인 행태에서 출발한다. 스님이 잡아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집의 형태에서 권위를 찾으려는 주인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안행랑채


 

김동수가옥의 안채도 ㄷ자 이지만 안행랑채도 큰 ㄷ자 형태로 안채를 감싸는 형태를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안행랑채는 ㄴ자 형태였는데 최근 안사랑채 쪽의 날개 부분을 새로이 추가하여 ㄷ자 형태로 만들었다. 아마도 집주인의 고증에 의해 다시 고쳐지은 것 같다. 지금의 모습이 원래의 모습이었다고 한다면 안채를 계획한 분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안채가 ㄷ자 모양을 하는 경우 행랑채는 대개 ㅡ자형을 하고 있어 튼 ㅁ자 형태 또는 <디>자 형태를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렇게 안채를 크게 감싸는 형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ㄷ자 형태의 안채 앞에 바로 행랑채를 붙이면 안채의 마당이 좁아 답답하다. 대부분의 집이 이러한 형태의 마당을 가진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행랑채를 대문채 쪽으로 물려 지음으로서 넓은 마당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개방이 되는 부분은 양날개를 꺾어 감쌈으로 내외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한 것이다.


안채 퇴간의 판장벽과 문


 

안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대청전면 퇴칸의 양끝에 설치되어 있는 판장벽 부분이다. 마당으로 면해있는 부분은 판장벽에 창이 설치되어 있고 퇴칸 부분에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의 문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는 이 집에서만 볼 수 있다. 이 문은 안방이나 건넌방에서 바로 퇴칸으로 나오도록 하기 위하여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설은 겨울철을 위해 설치된 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겨울철 대청의 모든 문을 닫아 놓고 판장벽에 설치되어 있는 쪽문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함으로서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안사랑채 전경


 

김동수가옥에는 안사랑채가 있다. 안사랑채는 다른 곳에서는 별당으로 불리는 곳이다. 안사랑채는 안손님의 거처나 출가하기 전 딸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안사랑채는 원래 이 집을 짓기 전에 주인이 기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집이라고 한다. 따라서 집이 웬만한 집의 안채의 규모로 구성되어있다. 전면 6칸 반의 규모로 가운데 두 칸이 대청으로 꾸며져 있고 좌우에 방이 배치되어 있다. 왼쪽의 칸 반은 부엌으로 꾸며졌다. 대청의 칸이 다른 방의 칸살에 비하여 작기 때문에 대청이 4칸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좁아 보인다. 아마도 임시거처로 계획하였기 때문에 대청을 크게 만들지 않은 것 같다.


사랑채전경(오른쪽 끝이 하인방임)


 

김동수가옥의 사랑채는 간결하면서도 단아한 모습을 보인다. 사랑채는 전면 5칸 측면 3칸의 집이다. 중문 쪽의 두 칸은 대청으로 꾸며졌고 안쪽의 두 칸은 방으로 꾸며졌다. 방은 ㄴ자 형태로 3칸의 규모인데 전면에 있는 2칸이 어른이 사용하였고 뒤쪽의 한 칸을 아들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뒤쪽의 방을 아들이 사용하게 한 것은 며느리가 기거하는 안채의 건넌방과 연계 때문이다. 사랑채와 안채의 연결은 사당 쪽에 있는 좁은 골목을 따라 이루어진다. 좁은 골목을 지나면 바로 건넌방의 뒤쪽에 이르게 된다. 집안의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서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건넌방의 뒤쪽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는데 새신랑이 드나들 때 편리하도록 한 것이다.

 

사랑채의 대청은 집 규모에 비하여 매우 넓어 육간대청이다. 대청의 규모를 보면 이 집을 드나드는 손님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사랑채의 모든 문을 들어 열면 사랑방에서 한눈에 드나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바깥 사랑 마당 모든 곳을 살펴볼 수 있어 시원함을 더해준다. 사랑채에는 우측 끝에 반 칸 크기의 조그마한 방이 있다. 이 방은 주인의 몸종을 위한 방으로서 어린 하인이 기거한다. 어린 하인은 주인을 만을 위한 몸종으로서 주인의 수족역할을 하였다. 아침 세숫물로부터 시작하여 옷을 챙긴다든지 하는 개인의 자잘한 심부름을 담당하였다.

 

김동수가옥은 풍수 상으로 길지에 자리 잡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씨 집안은 이 집을 짓고 가산이 크게 불었다고 한다. 한해 추수로 1200석을 하는 거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집터가 명당자리이고 12대까지는 그 기운이 미칠 것이라는 풍수해석을 굳게 믿은 김명관은 후손에게 이곳을 절대 떠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집이 화를 당하여 무너지더라도 정확한 위치에 다지 지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안채의 땅속에 표적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땅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였다. 그러나 7대를 넘지 못하고 빈집이 되고 말았다. 집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앞의 안산을 쪽을 바라보니 안산의 일부가 잘려 나가고 있었다. 풍수의 근간이 흩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풍수의 덕을 보기는 글러진 것 같다.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최성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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