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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을숲 둘러보기(4)---하동 송림

깜보입니다 2006. 8. 10. 10:48
하동 송림(河東 松林)

살다보면 별 것 아닌 사소한 것이 머리 속에 각인 되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십여년 전 청운의 뜻을 품고 상경하여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 때동대문 근처 어느 허름한 골목 비오는 날.
고물상을 겸한 전파상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가
하도 가슴을 저미어서 듣고 또 들어,
가사와 가수 이름을 익혔는데
그것이 바로 당시 잘 나가는 명 카수 박재홍이 부른
"돌라가자 하동포구"라는 노래였습니다.
난 금도 그 멜로디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단하고 버거운 일상이 나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할 자력 같은
마성을 부렸습니다.
참으로 많이 불렸습니다. 돌라가자 고향으로 ---
아마 지금쯤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라갔을 것이고,
가고 있을지도 모를 것입니다.
꾸레미 들고 또는 뻔쩍이는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마을숲은 "고 향" 할 때 어머님 얼굴 다음으로,
소꿉 친구 첫사랑 순이 보다 먼저 떠오르는
동구 앞 혹은 마을 뒤뜸의 해묵은 나무와 숲입니다.
마을 숲은 떠난 자의 보금자리이고. 어린 날의 추억이고 어머님
의 품안 같은 곳입니다.

하동(河東=섬진강 동쪽마을)
이 곳은 앞서 말한 연유로 전에도 몇 번 들렸던 곳입니다.
구례 화엄사. 하계장터와 쌍계사 가는 십리 벚꽃 길.
그리고 근년에 와서 박경리의 토지의 무대가 된
평사리을 보는 한 묶음의 답사 여행 이였지요.
그러나 하동은 숲을 보기보다는 저 유명한 재첩 국을
맛보기 위함이 목적 이였습니다.
가는 길에 송림 숲도 잠시 산책하곤 했었지만
겉 핥기였습니다.
하나 이번은 목적을 가지고 가슴으로 느껴 볼 양으로
솔밭부터 들렸습니다.

하동의 그 해묵은 소나무들은 철저하게 사면이
쇠망으로 둘러싸여 갇혀 있었고 전에 없던 큰길이
한편으로 나서 고역을 치르는 것 같은 안타까웠습니다.
마치 사랑하기 때문에 괴롭히는 스토커나 파파로치 처럼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숲을 괴롭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 군에서는 숲을 반으로 나누워
격년 휴식년제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허용된 지역을 살펴봤습니다.
나로서는 보기싫은 한국 빼고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는
숲속 또는 산속의 체육단련장도 있고 궁도장도 있었지요.
안아보고 쓰다듬어 본 거송들은 생각 보다 건강하게
이곳 사람들의 절개 인양 굳굳해 보였습니다.

섬진강. 경상 전라 산골마을과 들판의 숱한 전설과
애환을 감싸안으며
오백리를 구비쳐 온 강이 이곳 하동 포구에서
마지막 휴식을 얻고
바다로 가는 길목이 솔밭입니다.
좀 거친 모랫벌.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
그 주변의 거북 등 문양을 하고 있는
노송은 한층 기상이 우러러 보입니다.

하동과 광양을 잇는 여러 개의 다리 중에 유일하게
인도가 있는 섬진교 아래의 큰 솔밭,
옛사람들은 여기를 백사청송(白砂靑松)이라 이름했답니다.
300년 정도 묵은 소나무 750여 그루가 백사장 위로
8000여평의 대지에 용트림을 하고 승천하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이곳은 옛날 신라와 백제의 사신들이 모여
군사동맹을 맺은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고.
조선 영조 21년(1745) 당시 이곳 부사이던
전천상(全天祥)이라는 분이
강변 모래 유실과 모랫바람을 막으려 인력으로 심은
소나무들입니다.
이 숲의 전경을 한눈에 보시려면 섬진교를 건너
전남 광양땅 새로난
큰 도로 언덕빼기에 가셔야 합니다.
이번 답사에서는 명물 재첩 국은 맛보지 못했습니다.
갈 길이 분주했기 때문입니다.
악양 평사리 쪽으로 핸들을 잡았습니다.

*** 즐거운 가을 밤 보내셨는지요??
매끄럽지 못한 장황한 글 읽으시느랴
인내심 훈련은 꾀 되실것입니다.
참는것이 미덕이란 말도 있으니--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老巨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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