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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삿갓 (金炳淵) 마지막 땅
깜보입니다
2006. 8. 10. 11:04
김삿갓(金炳淵) 마지막 땅
화순(和順)을 아시나요.
동-곡성,순천 서-광주,나주 남-보성,장흥 그리고 북- 담양이 있는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춘양면과 도곡면 고인돌이 지정 된 곳..
아직도 석탄을 캐는 광산이 있는 곳..
동학혁명과 광주항쟁 때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 되였던 곳..
김 삿갓이 마지막 숨을 거둔 곳..
무수한 탑과 불상이 산, 골짝, 바위에 있는 운주사(雲注寺)가 있는 곳..
사자산문의 철감선사 부도 와 3층 목탑의 쌍봉사(雙峯寺)가 있는 곳..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곳..
전남에서 해남, 순천에 이어 3번째로 큰다는 곳이다..
1988년부터 가보고 싶어 벼르던 곳이다 정비석씨가 마지막으로 쓴 소설 김삿갓을 보면서 화순군 이서면 동복호 赤壁江/적벽강 나룻배 위에서 김삿갓이 마감한 곳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나 보다, 때는 1863년 3월 29일 철종의 마지막 해 이면서 고종이 즉위한 해이기도 하다.
영월 동헌에서의 백일장 김병연 장원급제 시문을 보자 (1826년순조32년)
試題/시제 –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 보라)
曰爾世臣金益淳 / 신하라고 불려 오던 너 김익순은 듣거라
鄭公不過卿大夫 / 정공은 문관이면서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將軍挑李롱西落 / 너는 적에게 항복한 한나라의 이릉(李陵) 같은 놈이요
烈士功名圖末高 / 정시의 공명은 송나라의 악비처럼 길이 빛나리로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忘君是日又忘親 /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一死猶輕萬死宣 / 한번 죽어서는 너무 가볍고 만번 죽어야 마땅하다
春秋筆法爾知否 / 춘추의 필법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此事流傳東國史 / 치욕적인 이 사실은 역사에 남겨 길이 전해야 하리라.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다 홍경래(1811년 12월)가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을 일으켜 가산과 박천을 함락 시키면서 서울로 남진 하고 다른 한패는 곽산, 정주와 선천을 불과 며칠 사이에 모두 석권해 버리는 통에 가산 군수 정시는 문관 이면서도 반란군과 용감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 하였고 선천방어사 金益順(김익순)은 국가 안보의 중책을 맡고 있는 무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이 처들어오자 싸우지 안고 항복 해버려 진압후에 김익순은 역적으로 참형을 당한다. 어쩌랴 이분이 안동 김씨 후예다 안동 김씨 중에서도 장동에 사는 사람들은 세도가 특별히 당당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장동 김씨라고도 하는 김병연의 조부가 아닌가.
홍경래난에 항복할때가 김병연이 4살때 였고 역적으로 체포 되자 당시의 국법으로는 삼족을 멸하도록 되여 있어 깁병연의 어머니 이씨는 자식들만을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병하, 병연, 병호 세아들을 데리고 황해도 곡산으로 자취를 감추고 아버지 김안근은 조부 옥바라지를 하다 조부가 참형을 당하니 울화병으로 석달만에 돌아가시고, 다행히 조부의 정상이 참작 되여 삼족 멸하는 것은 피하게 되여 곡산에서 경기도 광주로 가평, 평창, 여주 등지로 전전하다가 강원도 땅인 열월 산속으로 들어 왔던 것이고 조부에 대한 일은 가슴에만 숨기고 아들이 잘되기 만을 기다렸는데 일이 이렇게 되였으니 한탄만 하루 이틀…
옛날에 程伊川/정이천 선생의 말에 선비에게는 삼불행이 있다 한다 첫째 불행은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고관이 되는 것이고 두번째 불행은 부모의 세도를 등에 업고 고관이 되어 영화를 누리는 것이고 세번째의 불행은 재주가 남달리 비상하여 문장을 함부로 써 갈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김병연은 자신이 세번째에 해당됨을 알게 되고 하늘을 우러러 보기가 부끄럽고 조상에게 욕을 하였으니 평생 죄인이라 이제는 양반의 행세는 물론 갓 대신에 운두가 평평한 보통 삿갓을 한평생 쓰고 속죄 하는 마음으로 모든 영욕에서 떠나 한 조각 구름처럼 살아가기로 결심 하고 길을 떠난다.
소동파의 적벽부의 적벽강은 이렇다
淸風徐來 / 맑은 바람이 서서히 불어 오고
水波不興 / 물결은 일어나지 않고
浚萬頃上茫茫 / 망망한 물위로 떠가노라면
如憑虛御風 / 마치 바람을 타고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만 같다.
김삿갓은 55세에 병을 얻게 되여 따뜻한 강진으로 내려가 안복경 진사댁에서 요양하며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자 마지막 길을 재촉하여 10여일 만에 간신히 화순 동복으로 신석우댁을 찾아간다 그 유명한 중국의 적벽강이 축소 된 勿染赤壁/물염적벽이 이곳에 있단다 100m 이상의 절벽과 물에 비친 경치를 보기 위함인가 아니면 그곳에 취해 보려 함 인가 매우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 하고 적벽강에 혼자서 배에 올라 하늘을 벗 삼아 물을 벗 삼아 둥둥 떠 자연으로 귀천 한다. 그 후 아들인 김익균은 부친의 행적을 수소문하여 아버지의 묘를 찾아 유골을 집근처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으로 옮기게 된다.
오늘의 답사는 화순 지역이고 당일 코스로는 매우 먼곳이다 아무튼 아침날씨는 맑지는 안해도 좋은 편이다 처서를 며칠 앞 두어서 그런지 제법 선선한 편이다 그래도 매미는 여전이 울고 있고 출발지인 현대 백화점 주차장에 도착하여보니 창경궁 최선생님을 비록하여 여러분의 지킴이 선생님들과 동행하게 되니 즐거운 마음이다 그리고 은박지로 싸아 잘 익힌 고구마까지 주시니 고마운 마음 넘친다 창밖의 벼들은 매우 싱싱하고 드문 드문 벼 이삭이 나온게 보인다 이 상태로는 틀림 없는 대풍년으로 여겨 진다 벼만 잘되면 무엇하랴 쌀이 남아 돈다니 무슨 의미가 있으랴 옆 좌석의 아내는 걱정거리가 있나 보다 벼만 잘되면 되나 밭에 고추들을 좀 봐 말라 죽고 있자나 때이른 김장 걱정인가 보다, 버스는 광주를 지나 나릿재 고개를 넘으니 화순 땅이다 점심식사 식당에 도착하여 보니 간판이름 “오메! 인자오셨소”(061-371-7722) 친근한 이름 값어치 만큼 별난것도 있다 차를 섞은 생두부와 두부탕이다 약간의 색갈이 있고 맛이 제법 구수 했다.
일행은 화순군청 문화관광과(061-370-1224) 심홍섭씨의 호남 사투리 말씨의 안내로 먼저 쌍봉사로 간다 가는 도중 이곳의 도곡면과 춘향면에 걸처 있는 고인인돌이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 되였다고 한다 지금은 주위 정리가 안되여 차량으로는 못 간다 하며 고창의 고인돌 못지 안다 하면서 자랑도 한다 쌍봉사에 도착하니 다른 절과는 다르다 옆도 아니고 바로 입구 옆에 개량식 화장실이 아닌 절간식의 해우소가 있다 그리고 들어서자 마다 3층 목탑의 대웅전이 눈에 확 들어 온다 1984년 화재로 전소되고 1986년에 복원 하였는데도 옛것 같이 보인다 3층까지 통층은 아니고 1층에는 석가 삼존불을 모셔있고 2-3층은 기둥으로 연결 되여 있다. 화재시 현판과 불상만은 구해내서 그러한지 현판에는 약간의 흔적이 있다 뒤편 대숲에는 철감선사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 부도는 정말로 정교하다 팔각지붕, 기왓장과 골, 암막새 와 수막새, 서까래와 부연, 수미좌, 사자좌, 연화좌 등이 세밀하게 조각 되여 있고 옆의 부도비에는 비가 없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내용중에 어느 집안과 관련된 것이 있어 그 집안의 노인이 없앴다고 마을에서는 전해지고 있다고 하며 철감선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마련하여 그의 종풍을 이어 받은 징효대사가 영월의 법흥사에서 사자선문을 열었다 하고 이곳은 화순군 이양면 증리 인데 쌍봉리란 마을 이름도 있어 쌍봉사라고도 한다고 한다.
다음은 38세의 짧은 삶으로 마감한 (중종 14년 1519년)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지이다 중종반정의 공신중에서 하자가 있다고 하는 76면의 공신을 명단에서 삭제 시키는 혁명적인 개혁 “위훈삭제” 과연 삭제되는 분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곳이어 기묘사화로 이곳 화순의 능주로 귀양와서 1개월만에 사약을 받는다 광해군 2년 1610년 도학을 중흥 시켰다는 공로로 스승인 김굉필과 함께 학자의 최고 명예인 문묘에 배향되니 위훈삭제 보다는 훨신 값지지 안한가 이어서 운주사로 향한다
영구산(靈龜山) 운주사 일주문을 들어서 보라 다른곳의 것보다 대단히 화려 하다 외부로 보기 좋고 내부는 매우 복잡한 다포양식 이지만 빈틈없는 단청은 마치 대웅전 내지는 궁궐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일주문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 서자 마자 산과 산 사이에 저멀리 한 골짜기에 뛰엄 뛰엄 줄도 서지 안하고 서 있는 탑들이 있다 잘생겼다고 하면 틀렸다고 할것이고 못 생겼다고 하면 생각이 깊지 안다고 할것이고 게다가 3, 5, 7, 9층으로 층수도 다향하다 모양은 정형 정사각형을 벗어나 원반 항아리 모양들을 쌓아 올리고 장소 마저도 일정치 안하다 산위 절벽 냇가골짝이 바위위에 다듬은듯 하기도 하고 안 다듬은 것도 같은 돌덩어리를 크기대로 올려 놓기도 하고 불상 또한 마찬 가지다 절벽에는 마애불상이 절벽 밑에는 작은 불상들이 돌집안에는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는 불상들 무수한 탑과 무수한 불상들의 기준이나 일체감을 찾기에는 매우 혼란 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대웅전에는 썰렁하다 시대와 맞지는 안은 전설이지만 도선국사가 우리나라의 지형을 보니 배의 형상인데 금강산을 머리쪽으로 영남쪽엔 산이 많고 호남쪽에는 산이 적으므로 배가 동쪽으로 기울어 땅의 정기가 흘러 갈수 있다 하여 그것을 막기 위하여 이곳에 천불천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의 유적은 고려 후기의 양식이고 도선국사는 신라 말기 사람이라 전설이라고 이해를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맞는듯도 싶다, 대웅전을 가로 질러 “와불님 뵈러 가는곳” 이란 방향표시를 따라 개울을 건너 산등성이로 올라 가니 등성이 바위마다 탑이 있고 바위밑에는 불상이 있다 이곳 탑의 특이한 점은 기단이 따로 없이 자연석을 이용 한것이다.
커다란 넓적한 바위에 두 부처가 조각 되여 있다 흔히 와불이라 하는데 와불은 아니다 와불은 옆으로 두러 누은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반듯하게 누은 모습이다 보기에도 굉장하다 내려오는 설에 의하면 세우려고 했던 것이라 한다 모습으로는 맞는듯 싶다 조금 산 아래로 내려오니 칠성 바위가 있다 북두칠성의 7개별의 위치 모양과 각 별의 밝기 내지는 크기에 따라 크고 적게 표현 되여 있다 요즈음 한 천문학 교수에 의하여 역사스페셜에 방송 된것과 같이 불규칙한 이곳의 모습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별자리를 이곳으로 옮겨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의 별자리 모양과 탑 불상의 모양이 어느 부분은 동일하고 다른 부분은 거의 비슷하다 아마도 작은 하늘인 셈이다.
참고로 이곳의 석탑은 12기와 석불 70여기가 남아 있다 운주사 건립시기는 고려시대 몽고군이 처들어와(1238년) 경주의 황룡사 구층목탑이 불태워지고 대신에 인왕도량을 급히 만든 것이 운주사라 한다 그리고 1481년(성종12년)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고 천불천탑이 있다고 하고 1495년(연산군 1년)에 중창 1632년(인조 9년)에 폐찰 상태 1918년 (순종 11년)에 인근 사람들의 시주로 허름한 건물로 중건 1984년 전남대학교에서 발굴조사에서 운주사(雲舟寺)로 알고 있었으나 암막새 기와에서 운주사(雲住寺)로 확인 되였다.
그리고 운주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중장터가 있단다 말 그대로 승려들의 장터이다 매월 보름에 쌍계사는 차를, 화엄사에서는 목탁, 발우, 목기, 내장사에서는 백지, 창호지, 닥지, 대흥사에서는 유기, 무위사는 자기 송광사에서는 염주, 법상을 서로 물물 교환한 곳이다, 화순에는 화순선철도가 있다 탄광철도로 화순과 복암에 이르는 11.1 Km, 이 철길로 화순읍내를 벗어나면 남쪽에 벽나라 마을이 있다 이곳에 마을 신앙으로 돌로된 “벽나리 민불”로 불상인지 장승인지 또는 미륵인지를 분간키 어렵다 한다, 쌍봉사 가기전에 학포당, 죽주서원, 동복으로 가면 가수리 목장승과 솟대가 있다
더 끝으로 가면 김삿갓 마지막 땅인 물염적벽이 있는 동복호로 가는 길인데….. 떠날때 안내지의 세부사항에는 제외 되였지만 혹시나 그곳으로 지나지나 안하나 하는 조그만 바람이 있었고 이번 기회에 칡 꽃을 자세히 보고 가려 했는데 그만 잊었군 장장 14시간의 긴 버스 여행…. 이제는 각각 돌아가야 하는 시간…
내년 봄 동복호 물염적벽 답사 계획을 미리 세워 본다…
2001년 08월 21일
덕수궁 지킴이
김 근 성 쓰다
일정 소개:
2001년 08월 19일 07시 09분 - 현대 백화점 주차장 출발.
10 시 38분 - 광주 인터체인지 통과
11 시 30분 - 화순 오메!인자오셨소식당도착
13 시 00분 - 쌍봉사 도착
14 시 05분 - 조광조 적려유허지 도착
14 시 52분 - 운주사 도착
16 시 20분 - 운주사 출발
17 시 17분 - 광주 인터체인지 통과
19 시 25분 - 회덕 인터체인지 통과
21 시 05분 - 서울 양재역에 도착
화순(和順)을 아시나요.
동-곡성,순천 서-광주,나주 남-보성,장흥 그리고 북- 담양이 있는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춘양면과 도곡면 고인돌이 지정 된 곳..
아직도 석탄을 캐는 광산이 있는 곳..
동학혁명과 광주항쟁 때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 되였던 곳..
김 삿갓이 마지막 숨을 거둔 곳..
무수한 탑과 불상이 산, 골짝, 바위에 있는 운주사(雲注寺)가 있는 곳..
사자산문의 철감선사 부도 와 3층 목탑의 쌍봉사(雙峯寺)가 있는 곳..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곳..
전남에서 해남, 순천에 이어 3번째로 큰다는 곳이다..
1988년부터 가보고 싶어 벼르던 곳이다 정비석씨가 마지막으로 쓴 소설 김삿갓을 보면서 화순군 이서면 동복호 赤壁江/적벽강 나룻배 위에서 김삿갓이 마감한 곳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나 보다, 때는 1863년 3월 29일 철종의 마지막 해 이면서 고종이 즉위한 해이기도 하다.
영월 동헌에서의 백일장 김병연 장원급제 시문을 보자 (1826년순조32년)
試題/시제 –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 보라)
曰爾世臣金益淳 / 신하라고 불려 오던 너 김익순은 듣거라
鄭公不過卿大夫 / 정공은 문관이면서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將軍挑李롱西落 / 너는 적에게 항복한 한나라의 이릉(李陵) 같은 놈이요
烈士功名圖末高 / 정시의 공명은 송나라의 악비처럼 길이 빛나리로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忘君是日又忘親 /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一死猶輕萬死宣 / 한번 죽어서는 너무 가볍고 만번 죽어야 마땅하다
春秋筆法爾知否 / 춘추의 필법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此事流傳東國史 / 치욕적인 이 사실은 역사에 남겨 길이 전해야 하리라.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다 홍경래(1811년 12월)가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을 일으켜 가산과 박천을 함락 시키면서 서울로 남진 하고 다른 한패는 곽산, 정주와 선천을 불과 며칠 사이에 모두 석권해 버리는 통에 가산 군수 정시는 문관 이면서도 반란군과 용감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 하였고 선천방어사 金益順(김익순)은 국가 안보의 중책을 맡고 있는 무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이 처들어오자 싸우지 안고 항복 해버려 진압후에 김익순은 역적으로 참형을 당한다. 어쩌랴 이분이 안동 김씨 후예다 안동 김씨 중에서도 장동에 사는 사람들은 세도가 특별히 당당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장동 김씨라고도 하는 김병연의 조부가 아닌가.
홍경래난에 항복할때가 김병연이 4살때 였고 역적으로 체포 되자 당시의 국법으로는 삼족을 멸하도록 되여 있어 깁병연의 어머니 이씨는 자식들만을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병하, 병연, 병호 세아들을 데리고 황해도 곡산으로 자취를 감추고 아버지 김안근은 조부 옥바라지를 하다 조부가 참형을 당하니 울화병으로 석달만에 돌아가시고, 다행히 조부의 정상이 참작 되여 삼족 멸하는 것은 피하게 되여 곡산에서 경기도 광주로 가평, 평창, 여주 등지로 전전하다가 강원도 땅인 열월 산속으로 들어 왔던 것이고 조부에 대한 일은 가슴에만 숨기고 아들이 잘되기 만을 기다렸는데 일이 이렇게 되였으니 한탄만 하루 이틀…
옛날에 程伊川/정이천 선생의 말에 선비에게는 삼불행이 있다 한다 첫째 불행은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고관이 되는 것이고 두번째 불행은 부모의 세도를 등에 업고 고관이 되어 영화를 누리는 것이고 세번째의 불행은 재주가 남달리 비상하여 문장을 함부로 써 갈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김병연은 자신이 세번째에 해당됨을 알게 되고 하늘을 우러러 보기가 부끄럽고 조상에게 욕을 하였으니 평생 죄인이라 이제는 양반의 행세는 물론 갓 대신에 운두가 평평한 보통 삿갓을 한평생 쓰고 속죄 하는 마음으로 모든 영욕에서 떠나 한 조각 구름처럼 살아가기로 결심 하고 길을 떠난다.
소동파의 적벽부의 적벽강은 이렇다
淸風徐來 / 맑은 바람이 서서히 불어 오고
水波不興 / 물결은 일어나지 않고
浚萬頃上茫茫 / 망망한 물위로 떠가노라면
如憑虛御風 / 마치 바람을 타고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만 같다.
김삿갓은 55세에 병을 얻게 되여 따뜻한 강진으로 내려가 안복경 진사댁에서 요양하며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자 마지막 길을 재촉하여 10여일 만에 간신히 화순 동복으로 신석우댁을 찾아간다 그 유명한 중국의 적벽강이 축소 된 勿染赤壁/물염적벽이 이곳에 있단다 100m 이상의 절벽과 물에 비친 경치를 보기 위함인가 아니면 그곳에 취해 보려 함 인가 매우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 하고 적벽강에 혼자서 배에 올라 하늘을 벗 삼아 물을 벗 삼아 둥둥 떠 자연으로 귀천 한다. 그 후 아들인 김익균은 부친의 행적을 수소문하여 아버지의 묘를 찾아 유골을 집근처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으로 옮기게 된다.
오늘의 답사는 화순 지역이고 당일 코스로는 매우 먼곳이다 아무튼 아침날씨는 맑지는 안해도 좋은 편이다 처서를 며칠 앞 두어서 그런지 제법 선선한 편이다 그래도 매미는 여전이 울고 있고 출발지인 현대 백화점 주차장에 도착하여보니 창경궁 최선생님을 비록하여 여러분의 지킴이 선생님들과 동행하게 되니 즐거운 마음이다 그리고 은박지로 싸아 잘 익힌 고구마까지 주시니 고마운 마음 넘친다 창밖의 벼들은 매우 싱싱하고 드문 드문 벼 이삭이 나온게 보인다 이 상태로는 틀림 없는 대풍년으로 여겨 진다 벼만 잘되면 무엇하랴 쌀이 남아 돈다니 무슨 의미가 있으랴 옆 좌석의 아내는 걱정거리가 있나 보다 벼만 잘되면 되나 밭에 고추들을 좀 봐 말라 죽고 있자나 때이른 김장 걱정인가 보다, 버스는 광주를 지나 나릿재 고개를 넘으니 화순 땅이다 점심식사 식당에 도착하여 보니 간판이름 “오메! 인자오셨소”(061-371-7722) 친근한 이름 값어치 만큼 별난것도 있다 차를 섞은 생두부와 두부탕이다 약간의 색갈이 있고 맛이 제법 구수 했다.
일행은 화순군청 문화관광과(061-370-1224) 심홍섭씨의 호남 사투리 말씨의 안내로 먼저 쌍봉사로 간다 가는 도중 이곳의 도곡면과 춘향면에 걸처 있는 고인인돌이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 되였다고 한다 지금은 주위 정리가 안되여 차량으로는 못 간다 하며 고창의 고인돌 못지 안다 하면서 자랑도 한다 쌍봉사에 도착하니 다른 절과는 다르다 옆도 아니고 바로 입구 옆에 개량식 화장실이 아닌 절간식의 해우소가 있다 그리고 들어서자 마다 3층 목탑의 대웅전이 눈에 확 들어 온다 1984년 화재로 전소되고 1986년에 복원 하였는데도 옛것 같이 보인다 3층까지 통층은 아니고 1층에는 석가 삼존불을 모셔있고 2-3층은 기둥으로 연결 되여 있다. 화재시 현판과 불상만은 구해내서 그러한지 현판에는 약간의 흔적이 있다 뒤편 대숲에는 철감선사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 부도는 정말로 정교하다 팔각지붕, 기왓장과 골, 암막새 와 수막새, 서까래와 부연, 수미좌, 사자좌, 연화좌 등이 세밀하게 조각 되여 있고 옆의 부도비에는 비가 없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내용중에 어느 집안과 관련된 것이 있어 그 집안의 노인이 없앴다고 마을에서는 전해지고 있다고 하며 철감선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마련하여 그의 종풍을 이어 받은 징효대사가 영월의 법흥사에서 사자선문을 열었다 하고 이곳은 화순군 이양면 증리 인데 쌍봉리란 마을 이름도 있어 쌍봉사라고도 한다고 한다.
다음은 38세의 짧은 삶으로 마감한 (중종 14년 1519년)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지이다 중종반정의 공신중에서 하자가 있다고 하는 76면의 공신을 명단에서 삭제 시키는 혁명적인 개혁 “위훈삭제” 과연 삭제되는 분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곳이어 기묘사화로 이곳 화순의 능주로 귀양와서 1개월만에 사약을 받는다 광해군 2년 1610년 도학을 중흥 시켰다는 공로로 스승인 김굉필과 함께 학자의 최고 명예인 문묘에 배향되니 위훈삭제 보다는 훨신 값지지 안한가 이어서 운주사로 향한다
영구산(靈龜山) 운주사 일주문을 들어서 보라 다른곳의 것보다 대단히 화려 하다 외부로 보기 좋고 내부는 매우 복잡한 다포양식 이지만 빈틈없는 단청은 마치 대웅전 내지는 궁궐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일주문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 서자 마자 산과 산 사이에 저멀리 한 골짜기에 뛰엄 뛰엄 줄도 서지 안하고 서 있는 탑들이 있다 잘생겼다고 하면 틀렸다고 할것이고 못 생겼다고 하면 생각이 깊지 안다고 할것이고 게다가 3, 5, 7, 9층으로 층수도 다향하다 모양은 정형 정사각형을 벗어나 원반 항아리 모양들을 쌓아 올리고 장소 마저도 일정치 안하다 산위 절벽 냇가골짝이 바위위에 다듬은듯 하기도 하고 안 다듬은 것도 같은 돌덩어리를 크기대로 올려 놓기도 하고 불상 또한 마찬 가지다 절벽에는 마애불상이 절벽 밑에는 작은 불상들이 돌집안에는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는 불상들 무수한 탑과 무수한 불상들의 기준이나 일체감을 찾기에는 매우 혼란 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대웅전에는 썰렁하다 시대와 맞지는 안은 전설이지만 도선국사가 우리나라의 지형을 보니 배의 형상인데 금강산을 머리쪽으로 영남쪽엔 산이 많고 호남쪽에는 산이 적으므로 배가 동쪽으로 기울어 땅의 정기가 흘러 갈수 있다 하여 그것을 막기 위하여 이곳에 천불천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의 유적은 고려 후기의 양식이고 도선국사는 신라 말기 사람이라 전설이라고 이해를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맞는듯도 싶다, 대웅전을 가로 질러 “와불님 뵈러 가는곳” 이란 방향표시를 따라 개울을 건너 산등성이로 올라 가니 등성이 바위마다 탑이 있고 바위밑에는 불상이 있다 이곳 탑의 특이한 점은 기단이 따로 없이 자연석을 이용 한것이다.
커다란 넓적한 바위에 두 부처가 조각 되여 있다 흔히 와불이라 하는데 와불은 아니다 와불은 옆으로 두러 누은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반듯하게 누은 모습이다 보기에도 굉장하다 내려오는 설에 의하면 세우려고 했던 것이라 한다 모습으로는 맞는듯 싶다 조금 산 아래로 내려오니 칠성 바위가 있다 북두칠성의 7개별의 위치 모양과 각 별의 밝기 내지는 크기에 따라 크고 적게 표현 되여 있다 요즈음 한 천문학 교수에 의하여 역사스페셜에 방송 된것과 같이 불규칙한 이곳의 모습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별자리를 이곳으로 옮겨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의 별자리 모양과 탑 불상의 모양이 어느 부분은 동일하고 다른 부분은 거의 비슷하다 아마도 작은 하늘인 셈이다.
참고로 이곳의 석탑은 12기와 석불 70여기가 남아 있다 운주사 건립시기는 고려시대 몽고군이 처들어와(1238년) 경주의 황룡사 구층목탑이 불태워지고 대신에 인왕도량을 급히 만든 것이 운주사라 한다 그리고 1481년(성종12년)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고 천불천탑이 있다고 하고 1495년(연산군 1년)에 중창 1632년(인조 9년)에 폐찰 상태 1918년 (순종 11년)에 인근 사람들의 시주로 허름한 건물로 중건 1984년 전남대학교에서 발굴조사에서 운주사(雲舟寺)로 알고 있었으나 암막새 기와에서 운주사(雲住寺)로 확인 되였다.
그리고 운주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중장터가 있단다 말 그대로 승려들의 장터이다 매월 보름에 쌍계사는 차를, 화엄사에서는 목탁, 발우, 목기, 내장사에서는 백지, 창호지, 닥지, 대흥사에서는 유기, 무위사는 자기 송광사에서는 염주, 법상을 서로 물물 교환한 곳이다, 화순에는 화순선철도가 있다 탄광철도로 화순과 복암에 이르는 11.1 Km, 이 철길로 화순읍내를 벗어나면 남쪽에 벽나라 마을이 있다 이곳에 마을 신앙으로 돌로된 “벽나리 민불”로 불상인지 장승인지 또는 미륵인지를 분간키 어렵다 한다, 쌍봉사 가기전에 학포당, 죽주서원, 동복으로 가면 가수리 목장승과 솟대가 있다
더 끝으로 가면 김삿갓 마지막 땅인 물염적벽이 있는 동복호로 가는 길인데….. 떠날때 안내지의 세부사항에는 제외 되였지만 혹시나 그곳으로 지나지나 안하나 하는 조그만 바람이 있었고 이번 기회에 칡 꽃을 자세히 보고 가려 했는데 그만 잊었군 장장 14시간의 긴 버스 여행…. 이제는 각각 돌아가야 하는 시간…
내년 봄 동복호 물염적벽 답사 계획을 미리 세워 본다…
2001년 08월 21일
덕수궁 지킴이
김 근 성 쓰다
일정 소개:
2001년 08월 19일 07시 09분 - 현대 백화점 주차장 출발.
10 시 38분 - 광주 인터체인지 통과
11 시 30분 - 화순 오메!인자오셨소식당도착
13 시 00분 - 쌍봉사 도착
14 시 05분 - 조광조 적려유허지 도착
14 시 52분 - 운주사 도착
16 시 20분 - 운주사 출발
17 시 17분 - 광주 인터체인지 통과
19 시 25분 - 회덕 인터체인지 통과
21 시 05분 - 서울 양재역에 도착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金根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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