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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연, 문화 그리고 집 - 05

깜보입니다 2006. 10. 18. 10:34
5. 기술의 발전과 집

'자연재료로 집을 지으면 절반은 이미 자연적인 집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자연 상태의 재료를 이용하여 집을 짓는 것이 환경친화적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 한옥이 자연을 닮아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은 우리네의 집이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져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꼭 우리 나라의 집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를 둘러보아도 전통가옥이 있는 전원의 풍경은 그 지역과 잘 어울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러한 것은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지역 환경에 맞는 건물들이 세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공업화 이전에 세우진 대부분의 집은 이렇게 환경친화적 모습과 인간의 척도에 가까운 집으로 지어졌다. 결국 자연을 닮은 집이 지어지는 것은 인간 -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집을 지었을 때 느껴지는 감성이 아닐까 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상생(相生)하는 한계 내에서의 인간의 능력은 결국 자연의 일부일 수밖에 없어 어떠한 집을 짓든 간에 자연스러운 집이 되는 것이다.

건축에서의 기술의 발전이란 새로운 가능성 창출을 의미한다. 현대건축의 다양함은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이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역사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양함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도 기술의 발전 때문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량생산에 의한 대단위 주거의 개발, 집의 형태의 다양화, 보온효과 및 냉난방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실내환경의 변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건축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분야를 나누어 분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느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그 문제가 단순히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재료가 새로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관련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재료가 개발되었다는 것은 주변의 상황이 이미 성숙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현상이 부각되었다는 것은 그에 연관된 분야가 서로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영향을 준 결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기적 관계를 모두 언급하는 것은 현상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상황을 단순화 시켜 재료와 구조 역학, 공법 및 도구, 설비기술, 기술과 의식 변화 등으로 나누어 이러한 변화가 집의 구조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변화하였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로 한다.

재료와 구조역학의 발전과 집

기술의 발전 중에서 집에 가장 현격한 영향을 미친 것은 새로운 재료의 개발과 구조역학의 발전이다. 현대 건축에서 중요한 발명을 꼽으라고 하면 철근콘크리트와 철골구조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발명이다. 세 가지의 발명은 현대 건축의 흐름을 완전하게 바꾸어 놓았다. 이것이 발명되기 이전의 재료로는 고층건물이나 넓은 경간의 건물의 건축이 쉽지 않았다. 또한 1880년 독일의 지멘스사에 의하여 발명된 전동식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현재의 고층빌딩은 존재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 나라의 주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는 철근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었던 주거 양식이다.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은 집의 내부 구조도 변화시키고 있다. 집에서 방의 크기는 기둥간의 거리에 의하여 결정된다. 특히 목조구조에 있어 기둥간의 거리는 모든 부재의 크기를 결정짓는다. 기둥간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부재의 크기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여 커지기 때문에 무조건 기둥사이의 거리를 넓힐 수 없다. 이러한 취약점을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일거에 해소하여 준 것이다. 예전 같으면 아주 부자나 또는 절과 같은 특수한 건물에서나 가능하였던 구조를 일반들도 쉽게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것은 단순히 재료의 개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재료와 함께 재료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역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철근 콘크리트의 발명은 이러한 연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콘크리트와 철이라는 이질 재료의 장점만을 교묘히 연결하여 철근 콘트리트라는 재료를 발명하였다. 이러한 철근 콘크리트는 구조역학의 도움을 받아 가능성을 점점 확장시켜갔다. 얼마 전까지도 철근 콘크리트의 기둥간의 거리는 9m를 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러한 것이 이제는 콘크리트 및 철근의 강도 증가로 12m 이상의 경간도 가능하고 특수 공법을 활용하면 그 이상의 거리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의 사고들 변화시켜 더욱 새로운 건축물의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대규모의 건물이 속속 들어서게 된 것이다.

철근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발전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콘크리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예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미감도 만들어 내었다. 우리는 '회색 도시'라는 단어를 심심치않게 듣는다. 이것은 콘크리트를 외부로 노출시켜 집을 지음으로서 도시 전체가 회색 빛을 띠게 되었기 때문에 나온 신조어(新造語)이다. '회색도시'라는 단어는 콘크리트의 발명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단어이다. 콘크리트가 발명된 초기에 형성된 새로운 재료에 대한 경이는 재료가 지닌 고유의 색상에도 매료되게 만들었다. 근대의 건축가들은 구조재로 개발된 콘크리트의 구조적 특성뿐만 아니라 감각적 속성까지도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 때문에 콘크리트가 외부로 노출되는 건물을 많이 설계하였다. 많은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시도 때문에 도시의 색깔이 변하게 되고 그에 따라 도시의 이미지가 회색 빛을 띄게 되었다. 이러한 회색 이미지는 도시가 안고 있는 모순과 중첩되어 '회색도시'라는 신조어로서 정착된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콘크리트에 대한 매력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콘크리트가 가지고 있는 형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가소성(可塑性)과 특유의 냉정하고 melancholy한 분위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건축가들이 콘크리트에 매료되어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기술의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집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유리 제조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창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예전의 집에서 창은 일정 크기이상을 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것이 유리의 제조기술이 발전되면서 창의 크기를 무한으로 확장시켜놓은 것이다. 이제는 유리만으로 된 집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기술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유리의 발전은 채광문제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예전의 집은 채광면적의 한계로 어두웠다. 그러나 유리의 발달로 이제는 그러한 집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예전의 집에서 창을 크게 내지 못한 것은 단지 유리제조기술상의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리는 열전도율이 매우 높고 창문의 기밀성이 낮아 창의 면적을 넓게 하면 할수록 추위에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도 복층유리의 개발과 창틀의 기밀성을 높여줌으로 거의 완벽하게 해결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집을 밝게 만들고 조망을 확보하기 위하여 창문의 크기를 점점 크게 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창의 크기가 변화한다는 것은 외관(外觀)의 변화를 의미하며 결국은 집 전체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개념의 창으로는 과거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비례를 찾기는 힘들다. 이렇게 재료의 변화는 집의 전체 개념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구조적인 재료의 개발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지만 도료의 발전을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다. 도료의 발달은 색상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우리에게 제공하였다. 우리 나라의 경우 고려시대까지만 하여도 집에 많은 색을 입혔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서는 절, 관아 공적인 건물과 사가(私家)의 사당에서만 단청이 가능하게 규제하였다. 색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규제는 위계를 잡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재료의 구입이 쉽지 않아 규제를 하지 않을 경우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단청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도 있어 일반인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예전에는 집에 색을 칠한다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두 가지 문제 중 경제적인 문제가 기술개발로 쉽게 해결되었다. 요사이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건물에 색을 칠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재료라고 할지라도 어떠한 색의 도료를 칠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점은 특히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 주었다. 이제 건축에서 색상이라는 것은 과거와는 달리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와는 다른 건축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 자연환경에 의하여 결정되는 재료를 사용함에 따라 나타나게 되는 지역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찾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것보다는 각각의 개성을 찾는 것을 오히려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바로 재료를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에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법, 도구의 발전과 집

예전의 집은 많은 대부분 수공업으로 생산하였다. 그러한 집이 금세기에 들어오면서 집을 짓는 개념이 완전히 변화하였다. 과거에는 장인의 솜씨가 매우 집을 짓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현재는 아주 고급의 건물이 아닌 이상 장인의 솜씨가 그리 중요한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재료, 공법, 도구가 현장에서 투입되는 사람을 최소로 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량의 주택보급과 공사비 절감을 위하여 공법 및 도구의 개발의 방향이 사람이 직접 하는 작업을 지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되고 보니 집에서 섬세한 손맛을 느끼기가 힘들게 되었다. 옛집과 현대의 집과를 비교할 때 현재의 집이 더 차게 느껴지는 것은 재료를 구사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도구나 공법은 수요에 의하여 개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새로운 구조 방식이 개발되면 구조방식을 현실로 실현하기 위하여 공법이 개발한다. 도구도 같은 원칙 때문에 개발된다.

요사이 돌아다니다 보면 새로이 집을 짓거나 구조물을 만들기 위하여 땅을 파헤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예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흉물스럽게 파져 있는 땅을 보면 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예전처럼 땅을 신령시하는 것은 고사하고 땅은 인간에 종속된 부속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는 땅에 대하여 자연스러운 형상을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장풍득수(藏風得水)라는 뜻은 형세를 이용하여 편안하게 살고자 함이다. 그리고 풍수지리설의 형국론(形局論)을 보면 지세의 생긴 모습에 따라 삶의 터전을 잡고자 하는 의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형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하여 적극적일 수 없다. 또한 우리가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매지권(買地券)을 보면 무덤으로 쓰기 위하여 지신(地神)에게 돈을 지불하였다. 오래 전부터 농업을 기반으로 하여 삶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땅은 생명의 근원이었다. 그러므로 땅을 훼손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장비의 발명은 일거에 이러한 생각을 변화시켜 놓았다. 자연 환경의 근간인 땅을 마음대로 변경시킬 힘을 가지게 됨으로서 과거와는 전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땅을 우리가 뿌리내리고 살아야할 곳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땅을 한 낱 재산으로 만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건설 장비는 근래에 개발된 여러 도구 중에서 우리의 자연주의적 건축관을 일거에 변화시킨 도구라고 생각한다. 쇼벨(일명 포크레인), 도져, 기중기 그리고 다이나마이트 등의 발명은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태도를 순응적에서 도전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거에는 지세(地勢)에 순응하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건설장비가 발달하기 전에는 당연히 땅을 판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특히 바위를 깨어 내면서까지 지형을 변형시킨다는 것은 일부 석조물을 만들기 위한 것 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을 지을 때는 당연히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집을 지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공 방법은 땅을 훼손시키지 않기 때문에 자연의 근본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자연을 어느 정도 훼손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 자체가 자연 환경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은 아니었다. 습지의 예를 들면 자연상태에서 습지는 일년에 1mm정도 퇴적된다고 한다. 우리가 흙을 1m정도 덮어버린다고 하면 1000년의 변화를 일순간에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이러한 정도의 일은 문제도 아니다. 이 보다 더한 일도 쉽게 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백두대간의 산들이 채석이라는 미명하에 산 전체를 없애버리고 있는가 하면 골프를 즐기기 위하여 수십 만평의 산천을 마음대로 파헤치고 되메우고 있다. 이러한 것은 과거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인간의 탐욕이 장비의 발전에 힘입어 산하를 마음대로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건축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인구의 급격한 팽창과 도시집중으로 대규모의 주택단지의 개발은 어쩔 수 없는 사회 현상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기류에 힘입어 주택단지를 개발한다는 명목 하에 산하가 망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의 택지개발이 아니어도 개인의 주택을 짓는 경우에도 웬만한 경사지는 파헤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되는 것은 장비의 발전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간 급격한 인건비의 상승으로 같은 조건이라면 축대를 쌓은 것보다 장비를 이용하여 땅을 깍아 버리는 것이 경제적이 되고 보니 이러한 자연의 훼손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경제적 원리에 의하여 우리는 땅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와 땅을 어떻게 가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도구의 문제는 이러한 건설장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장인들이 사용하는 도구의 변화마저도 집을 짓는 방법뿐만 아니라 집의 느낌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 나라의 집을 짓는 도구를 보면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던 도끼에서 자귀로 최근에는 자동도구로 바뀌었다. 도끼로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는 내 자신도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현재 사용되는 도끼의 모습을 보면 저 도끼로 어떻게 집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경험의 한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직접경험이 아닌 것은 경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험하여 보지 못하니 도끼가 얼마만큼 정교하게 나무를 다룰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나의 직업인 건축설계에서 내가 직접 경험한 바 있는 도구의 변화 때문에 발생한 도면의 작성의 변화 및 건축적 사고의 변화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서양에서 건축이 들어온 이래 도면을 그리는 도구는 연필, 홀더, 샤프 그리고 컴퓨터로의 변화하였다. 이를 단순한 도구의 변화의 변화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도구는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킨다. 사람은 도구가 주어졌을 때 도구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한다. 그러므로 도구의 변화는 도구가 가지고있는 특성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연필과 홀더는 심이 커서 정밀한 선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강하게 그리는 선에는 매우 효율적이다. 그러므로 연필을 잘 깎아서 정밀한 선을 그릴 수 있는 수준에 달하게 되어 선의 강약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알게 되면 도면은 매우 힘있는 한 폭의 흑백그림을 그려 놓은 듯한 느낌을 주게된다. 샤프는 그러한 수준은 되지 못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는 강약을 표현할 수 있어 도면의 생기가 있다. 연필이나 샤프를 사용하는 사람은 어쨌든 손의 감각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도구를 다루는 손에서 나오는 힘의 강약을 정밀하게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지 못하면 도면 위의 선이 살아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손으로 그리는 도면은 생산성에 있어 많은 제약이 있다. 도면의 생산성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손으로 그리는 도면의 치명적인 약점은 반복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도면의 생산성이 많이 떨어진다.

컴퓨터의 발전으로 도면을 그리게 된 후 건축도면을 그리는 방식과 개념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컴퓨터의 도면은 모니터 상으로 도면을 그리기 때문에 선의 강약으로 중요도를 표현하지 않는다. 모니터 상의 선의 중요도는 색깔로만 표현될 뿐이다. 최종 단계에서 출력이라는 과정에서만 선의 강약이 표현되기 때문에 그리는 사람에게 선의 강약에 대한 개념은 없다. 또한 자판을 쳐서 도면을 그리기 때문에 손가락의 놀림이 얼마나 빠른가가 중요할 뿐 손에서 나오는 힘의 강약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손의 감각이 발전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실제로 스케치를 시켜보면 명확히 나타난다. 현재 컴퓨터에 익숙한 사람의 스케치 솜씨는 평균적으로 예전 손으로 작업을 하던 사람의 솜씨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컴퓨터에 익숙한 사람들은 건축 전반의 작업을 손으로 하기보다는 컴퓨터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건축인들의 손으로 하는 감각이 점점 저하되어 가는 것이다.

컴퓨터는 반복생산에 매우 강점이 있기 때문에 도면의 생산성에 있어 손으로 그리는 것에 비하여 상대가 되지 않는다. 또한 자료의 저장능력도 매우 우수하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현재의 설계사무실에서 손으로 그리는 도면을 보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개인의 차원으로 보면 기능이라는 능력은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손을 통하여 직접 익히는 도면과 모니터를 통하여 익히는 도면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벽돌의 상세를 손으로 그리는 것과 모니터을 통하여 그리는 것은 크기에 대한 감각을 익히거나 공법을 숙지하는 것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또한 컴퓨터의 특성인 복사기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면을 새로이 그리려는 것보다는 다른 곳에 저장되어 있던 자료를 복사하여 쓰는 것에 익숙해 있어 그리는 행위를 통하여 대상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과정은 생략한 채 쉽게 도면을 그리려고 한다. 그리고 도면을 제도판 위에 펼쳐놓고 여러 상황을 비교하며 그리는 것과 모니터라는 것을 통하여 부분만을 보고 그리는 것을 비교하여 보면 도면을 구성하는 능력에 차이가 확연히 보인다. 손으로 그린 도면과 컴퓨터로 그린 도면을 비교하여 보면 컴퓨터로 그린 도면이 손으로 그린 도면 보다 훨씬 짜임새가 없다. 결국 컴퓨터의 도입은 도면의 생산성에 향상에 있어서는 매우 유용하지만 개인의 능력의 개발이라는 차원에서는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다. 컴퓨터의 도입에 전제 조건은 다양한 데이터 베이스의 구축이다. 다양한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 없는 컴퓨터의 도입은 건축에 있어 전반적인 질의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건축설계에서 컴퓨터라는 도구의 도입은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것을 전제로 설계질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오고 말았다.

한옥 건축 현장에서도 이와 같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목의 증언에 의하면 이제 현장에서 자귀가 사라졌다고 한다. 예전의 자귀 목수는 자귀만으로도 대패에 버금가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도구가 모두 기계화됨으로써 정밀하고 감각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능공을 찾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자귀뿐만 아니다. 대패를 이용하여 다룬 나무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의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잘 대패질 한 나무는 마치 어여쁜 여인의 고운 피부결을 보는 듯 매끄러움이 눈으로도 깊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 친척의 목공소에서 잘 다듬어진 나무를 보고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감탄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집에서 이러한 감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점 때문에 도구의 변화는 건물을 보는 맛에도 영향을 준다. 현재 돌을 다루는 도구도 기계화되었다. 사람의 손으로 하는 정다듬과 기계로 하는 정다듬은 감각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조금 관심을 가지고 보면 기계로 한 정다듬과 손으로 하는 정다듬에는 차이가 있음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한다면 자연 발생적인 부드러움과 기계적 차가움의 차이이다. 이처럼 도구의 기계화는 건물을 보는 즐거움에도 영향을 준다. 현대의 집이 현대적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재료 등과 같은 문제 외에도 도구의 사용의 한계에서 나오는 결과이다. 도구의 변화는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큰 경제적인 이득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었지만 결국은 기능공의 질적 저하라는 문제도 남겨놓은 것이다.

도구의 변화로 우선 많은 영향을 받는 곳은 문화재 보수 분야이다. 문화재의 보수의 원칙을 당대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건물을 처음 지어졌던 당시의 재료나 공법을 살려 보수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재현이 점점 불가능하여져 가고 있다. 재료도 그러하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장인의 문제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귀를 다룰 수 있는 장인이 없는데 어떻게 예전과 같은 건물을 만들 수 있겠는가. 결국은 장인의 능력의 저하로 예전의 공법으로 건물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신영훈선생은 복원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복원(復元)'이라는 것은 '당대의 것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원(復元)'이라는 단어보다는 중건(重建)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하였다. 과거 우리 목조 건축에서는 자주 상하고 무너지는 목조 건축의 특성상 복원이라는 말이 없었다. 이 대신 같은 규모로 다시 짓는다는 의미로 중건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였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신영훈 선생의 제안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최성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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