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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연, 문화 그리고 집 - 08
깜보입니다
2006. 10. 18. 15:38
의생활, 가구 그리고 집
예전과 비교하여 우리의 일상생활 중에 많은 가장 변화가 있었던 것이 바로 의복부분이다. 이제 정장을 입는다고 하면 서양에서 들어온 '양복'을 생각할 정도로 이제 우리의 의생활 부분은 완전히 서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우리의 옛 옷이 '한복'이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구한말까지도 옷이라고 하면 당연히 한복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서양에서 들어온 옷을 '양복'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역전되어 '한복'이 특별한 옷으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사이 '개량한복'이라고 하여 한복의 대중화를 시도하는 노력도 있지만 이것조차도 어떻게 보면 '한복'이라기 보다는 '한복'에 접근하려는 '양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복과 양복의 수납의 방법에 있어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복은 평면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복의 수납 역시 평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옷장은 수직의 구조를 가진 옷장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옷을 수직으로 걸도록 만든 의걸이장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19세기말에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개량된 옷장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 전통의 옷장은 기본적으로 수평으로 수납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옷을 수직으로 보관하는 것과 수평으로 보관하는 것은 가구의 구조에 있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조선조 가구가 수직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우선 옷의 구조가 주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집의 구조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집이 온돌로 변화하면서 앞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집의 천장이 낮아진다. 이러한 집에서 높이가 높은 장이 들어온다는 것은 집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된다. 가뜩이나 낮은 천장에 높은 장이 들어오면 천장이 더욱 낮아 보이고 답답하게 된다. 그래서 가구도 그에 맞추어 변화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의걸이장을 둘 수 있는 집은 상대적으로 큰집일 것으로 생각한다. 구한말에 지어진 아산의 윤보선생가(중요민속자료 제196호 1907년)의 사랑채(1920년경)나 구한 말에 지어진 윤보선가(서울민속자료 제27호)을 보면 집이 크고 높다. 이러한 규모의 집에서 의걸이장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갓댁이라고 하여도 윤증고택, 하회의 대가 등과 같이 지방에 지어진 대부분의 집에서는 의걸이장은 어울리지 않는다.
기타의 생활과 집
우리 생활에서 최근 들어 많은 변화가 생긴 부분이 침구이다. 요사이 많은 사람들 침구로서 침대를 선호하고 있다. 왜 침대를 선호하는 이유 중에는 '이불 개기가 싫어서'라는 것도 많았다. 그러나 침대를 선호하는 것은 은연중 서구의 삶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하여간 침대가 방에 들어오게 되면서 변화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방의 용도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예전 한옥에서는 방의 용도가 지금의 거실, 응접실, 식당, 침실 등과 같이 다양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침대가 들어선 방은 개인의 사생활이 우선되는 곳이다. 침대가 있는 아이의 방은 부모님도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렇게 사생활이 중요하게 된 것은 가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전과 같이 창호지로 문을 바른 방은 창호지만큼이나 사생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완전하게 폐쇄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만큼 사생활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에서 들어온 집 구조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폐쇄되어 있다.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행동을 조심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말을 뒤집어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동을 조심하기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폐쇄된 방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히는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남의 방에 들어갈 때 조심하게 된다. 이처럼 폐쇄적인 집의 구조에다가 침대까지 들여놓으면 이곳은 더욱 사적인 영역이 되고 만다. 침대가 있는 안방은 부부만의 전용공간으로 인식되어 어느 누구도 감히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집 구조와 각종 가구의 변화는 생활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온다. 요사이 대부분의 거실에는 응접 셋트라는 것과 텔레비젼이 설치되어 있다. 소파와 탁자가 들어서고 나면 가구가 없는 거실에 비하여 많은 차이를 보인다. 32평형 아파트인 내 집에는 응접 세트라는 것이 없다. 우리 집에는 손님-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열댓 명까지-이 자주 오는 편이라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있다는 응접세트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만일 집안에 응접세트가 있었다면 다양한고 많은 수의 손님을 치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손님을 치를 수 있는 인원은 기껏해야 대 여섯 명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상의 손님이 온다면 탁자와 소파를 옮기느라 번거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구가 거실을 차지하고 나면 손님을 초대한다는 것부터가 그리 쉽지 않게 된다. 과거처럼 집에 손님이 자주 모시지 못하는 것은 사생활을 중시하는 경향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왔을 때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때문도 한 원인이다.
또한 요즈음 같이 텔레비젼과 응접세트의 천편일률적인 배치는 우리의 생활을 텔레비젼 중심으로 고정시켜 버리고 만다. 대부분의 응접세트는 텔레비젼을 향하여 고정되어 있다. 따라서 다양한 방향으로의 모임을 가지는 것이 힘들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는 가족간이든지 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이든지 모임과 대화의 다양성을 제약하게 된다. 워낙 텔레비젼의 오락적 성향이 강해서 요사이 가정 여가생활의 대부분이 텔레비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가구의 위치 배치를 바꾸거나 아예 응접세트를 없애버리고 나면 다른 형태의 행위가 일어나게 되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텔레비젼에 대한 이야기를 한 가지 더해보자. 90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아파트 거실에 놓여진 장식장의 높이는 60cm정도이다. 이러한 높이로 장식장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젼을 보는 것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2-30인치 텔레비젼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장식장 높이를 문갑정도로 낮출 경우 소파에 앉아 텔레비젼을 시청할 때 내려다보게 된다. 텔레비젼을 내려다보는 것은 그리 편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을 없애기 위하여 장식장을 높인 것이다. 이렇게 높던 장식장이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장식장의 높이 30cm이하로 낮아졌다. 이러한 변화가 생긴 것은 텔레비젼의 대형화 때문이다. 텔레비젼이 40인치 이상으로 대형화되면서 높은 장식장 위에 텔레비젼을 놓게 되면 올려다보는 상황이 발생되어 텔레비젼을 보는데 불편하다. 따라서 장식장도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높이가 낮아진 것이다. 이렇게 가구의 변화에 따라 집의 내부가 변화되는 예는 안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 안방의 바닥 마감재에도 변화가 왔다. 예전 같으면 안방만은 한실의 분위기를 내기 위하여 대부분 민속장판 같은 한옥의 장판류가 깔렸으나 요사이는 마루무늬 장판으로 변하고 있다. 마루무늬로 변화한다는 것은 이제 안방도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침대가 안방으로 들어오면서 안방도 서구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화장대도 높아지고 의자에 앉아 화장하는 등 안방에서의 모든 생활이 서구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즉 안방조차도 좌식생활에서 입식생활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안방의 마감재도 과거와는 달리 거실과 같은 마루무늬 장판으로 변화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텔레비젼 보는 시간을 줄이고 가족간의 대화를 늘이자'는 캠페인이 많았지만 최근 '컴퓨터하는 시간을 줄이자'는 쪽으로 캠페인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생활에서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주장하는 사람은 텔레비젼은 최소한 가족이 같이 보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컴퓨터는 극히 개인적인 생활이고 중독증이 강하여 텔레비젼보다 가족의 유대를 저해하는데 더 위해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텔레비젼이나 컴퓨터나 가족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가구의 변화는 단지 가족간의 유대 문제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집의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에는 전화에 대한 배려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요사이 지어지는 아파트에서는 모든 방에 다 전화기 단자가 설치된다. 그만큼 전화가 필수품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휴대전화가 일인 일대로 보급된다면 아마도 전화기 단자는 없어질 지도 모른다.
컴퓨터의 급속한 보급은 일반인들에게 잘 느껴지지 않지만 집에 변화를 가져온다. 지금 현재의 집은 컴퓨터에 대한 대응이 잘 되어 있지 않다. 한 예로 컴퓨터에는 많은 전기플러그가 필요하다. 이것은 컴퓨터가 도입되었던 초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컴퓨터에 모뎀용 전화선과 모니터 전원와 본체 전원 그리고 조금 갖추었을 때 프린터 전원정도가 필요하였던 것이 요사이는 스피커, 외장형모뎀, 스캐너 등의 전원이 별도로 필요하다. 앞으로는 기기의 발전에 따라 추가로 전원이 더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집이 이러한 변화에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를 설치한 방에는 전선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것을 보게된다. 그래서 요사이는 멀티탭이라고 하여 플러그를 많이 꽂을 수 있는 기구를 사용한다. 사무소 건물에는 20년 전부터 이러한 컴퓨터 환경 변화에 대하여 대응해왔지만 아직 집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미래의 집은 이러한 컴퓨터에 대한 대응에 대하여 보다 깊은 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최근에 지어지는 아파트나 주택에서는 미래 컴퓨터 환경의 변화에 대하여 대응하기 위하여 미흡하지만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예로 최근 초고속 통신망 발전되면서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는 모두 이러한 초고속 통신망설비에 대한 설비를 하고 있다. 과거에 지어져 이러한 설비를 갖추지 못한 아파트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개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컴퓨터에 대한 설비는 급배수 배관과 같이 일반인들에게는 가시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건축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요사이 집을 짓는데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부분이다.
예전과 비교하여 우리의 일상생활 중에 많은 가장 변화가 있었던 것이 바로 의복부분이다. 이제 정장을 입는다고 하면 서양에서 들어온 '양복'을 생각할 정도로 이제 우리의 의생활 부분은 완전히 서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우리의 옛 옷이 '한복'이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구한말까지도 옷이라고 하면 당연히 한복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서양에서 들어온 옷을 '양복'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역전되어 '한복'이 특별한 옷으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사이 '개량한복'이라고 하여 한복의 대중화를 시도하는 노력도 있지만 이것조차도 어떻게 보면 '한복'이라기 보다는 '한복'에 접근하려는 '양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복과 양복의 수납의 방법에 있어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복은 평면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복의 수납 역시 평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옷장은 수직의 구조를 가진 옷장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옷을 수직으로 걸도록 만든 의걸이장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19세기말에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개량된 옷장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 전통의 옷장은 기본적으로 수평으로 수납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옷을 수직으로 보관하는 것과 수평으로 보관하는 것은 가구의 구조에 있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조선조 가구가 수직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우선 옷의 구조가 주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집의 구조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집이 온돌로 변화하면서 앞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집의 천장이 낮아진다. 이러한 집에서 높이가 높은 장이 들어온다는 것은 집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된다. 가뜩이나 낮은 천장에 높은 장이 들어오면 천장이 더욱 낮아 보이고 답답하게 된다. 그래서 가구도 그에 맞추어 변화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의걸이장을 둘 수 있는 집은 상대적으로 큰집일 것으로 생각한다. 구한말에 지어진 아산의 윤보선생가(중요민속자료 제196호 1907년)의 사랑채(1920년경)나 구한 말에 지어진 윤보선가(서울민속자료 제27호)을 보면 집이 크고 높다. 이러한 규모의 집에서 의걸이장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갓댁이라고 하여도 윤증고택, 하회의 대가 등과 같이 지방에 지어진 대부분의 집에서는 의걸이장은 어울리지 않는다.
기타의 생활과 집
우리 생활에서 최근 들어 많은 변화가 생긴 부분이 침구이다. 요사이 많은 사람들 침구로서 침대를 선호하고 있다. 왜 침대를 선호하는 이유 중에는 '이불 개기가 싫어서'라는 것도 많았다. 그러나 침대를 선호하는 것은 은연중 서구의 삶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하여간 침대가 방에 들어오게 되면서 변화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방의 용도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예전 한옥에서는 방의 용도가 지금의 거실, 응접실, 식당, 침실 등과 같이 다양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침대가 들어선 방은 개인의 사생활이 우선되는 곳이다. 침대가 있는 아이의 방은 부모님도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렇게 사생활이 중요하게 된 것은 가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전과 같이 창호지로 문을 바른 방은 창호지만큼이나 사생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완전하게 폐쇄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만큼 사생활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에서 들어온 집 구조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폐쇄되어 있다.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행동을 조심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말을 뒤집어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동을 조심하기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폐쇄된 방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히는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남의 방에 들어갈 때 조심하게 된다. 이처럼 폐쇄적인 집의 구조에다가 침대까지 들여놓으면 이곳은 더욱 사적인 영역이 되고 만다. 침대가 있는 안방은 부부만의 전용공간으로 인식되어 어느 누구도 감히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집 구조와 각종 가구의 변화는 생활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온다. 요사이 대부분의 거실에는 응접 셋트라는 것과 텔레비젼이 설치되어 있다. 소파와 탁자가 들어서고 나면 가구가 없는 거실에 비하여 많은 차이를 보인다. 32평형 아파트인 내 집에는 응접 세트라는 것이 없다. 우리 집에는 손님-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열댓 명까지-이 자주 오는 편이라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있다는 응접세트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만일 집안에 응접세트가 있었다면 다양한고 많은 수의 손님을 치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손님을 치를 수 있는 인원은 기껏해야 대 여섯 명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상의 손님이 온다면 탁자와 소파를 옮기느라 번거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구가 거실을 차지하고 나면 손님을 초대한다는 것부터가 그리 쉽지 않게 된다. 과거처럼 집에 손님이 자주 모시지 못하는 것은 사생활을 중시하는 경향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왔을 때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때문도 한 원인이다.
또한 요즈음 같이 텔레비젼과 응접세트의 천편일률적인 배치는 우리의 생활을 텔레비젼 중심으로 고정시켜 버리고 만다. 대부분의 응접세트는 텔레비젼을 향하여 고정되어 있다. 따라서 다양한 방향으로의 모임을 가지는 것이 힘들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는 가족간이든지 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이든지 모임과 대화의 다양성을 제약하게 된다. 워낙 텔레비젼의 오락적 성향이 강해서 요사이 가정 여가생활의 대부분이 텔레비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가구의 위치 배치를 바꾸거나 아예 응접세트를 없애버리고 나면 다른 형태의 행위가 일어나게 되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텔레비젼에 대한 이야기를 한 가지 더해보자. 90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아파트 거실에 놓여진 장식장의 높이는 60cm정도이다. 이러한 높이로 장식장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젼을 보는 것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2-30인치 텔레비젼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장식장 높이를 문갑정도로 낮출 경우 소파에 앉아 텔레비젼을 시청할 때 내려다보게 된다. 텔레비젼을 내려다보는 것은 그리 편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을 없애기 위하여 장식장을 높인 것이다. 이렇게 높던 장식장이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장식장의 높이 30cm이하로 낮아졌다. 이러한 변화가 생긴 것은 텔레비젼의 대형화 때문이다. 텔레비젼이 40인치 이상으로 대형화되면서 높은 장식장 위에 텔레비젼을 놓게 되면 올려다보는 상황이 발생되어 텔레비젼을 보는데 불편하다. 따라서 장식장도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높이가 낮아진 것이다. 이렇게 가구의 변화에 따라 집의 내부가 변화되는 예는 안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 안방의 바닥 마감재에도 변화가 왔다. 예전 같으면 안방만은 한실의 분위기를 내기 위하여 대부분 민속장판 같은 한옥의 장판류가 깔렸으나 요사이는 마루무늬 장판으로 변하고 있다. 마루무늬로 변화한다는 것은 이제 안방도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침대가 안방으로 들어오면서 안방도 서구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화장대도 높아지고 의자에 앉아 화장하는 등 안방에서의 모든 생활이 서구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즉 안방조차도 좌식생활에서 입식생활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안방의 마감재도 과거와는 달리 거실과 같은 마루무늬 장판으로 변화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텔레비젼 보는 시간을 줄이고 가족간의 대화를 늘이자'는 캠페인이 많았지만 최근 '컴퓨터하는 시간을 줄이자'는 쪽으로 캠페인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생활에서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주장하는 사람은 텔레비젼은 최소한 가족이 같이 보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컴퓨터는 극히 개인적인 생활이고 중독증이 강하여 텔레비젼보다 가족의 유대를 저해하는데 더 위해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텔레비젼이나 컴퓨터나 가족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가구의 변화는 단지 가족간의 유대 문제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집의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에는 전화에 대한 배려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요사이 지어지는 아파트에서는 모든 방에 다 전화기 단자가 설치된다. 그만큼 전화가 필수품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휴대전화가 일인 일대로 보급된다면 아마도 전화기 단자는 없어질 지도 모른다.
컴퓨터의 급속한 보급은 일반인들에게 잘 느껴지지 않지만 집에 변화를 가져온다. 지금 현재의 집은 컴퓨터에 대한 대응이 잘 되어 있지 않다. 한 예로 컴퓨터에는 많은 전기플러그가 필요하다. 이것은 컴퓨터가 도입되었던 초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컴퓨터에 모뎀용 전화선과 모니터 전원와 본체 전원 그리고 조금 갖추었을 때 프린터 전원정도가 필요하였던 것이 요사이는 스피커, 외장형모뎀, 스캐너 등의 전원이 별도로 필요하다. 앞으로는 기기의 발전에 따라 추가로 전원이 더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집이 이러한 변화에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를 설치한 방에는 전선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것을 보게된다. 그래서 요사이는 멀티탭이라고 하여 플러그를 많이 꽂을 수 있는 기구를 사용한다. 사무소 건물에는 20년 전부터 이러한 컴퓨터 환경 변화에 대하여 대응해왔지만 아직 집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미래의 집은 이러한 컴퓨터에 대한 대응에 대하여 보다 깊은 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최근에 지어지는 아파트나 주택에서는 미래 컴퓨터 환경의 변화에 대하여 대응하기 위하여 미흡하지만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예로 최근 초고속 통신망 발전되면서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는 모두 이러한 초고속 통신망설비에 대한 설비를 하고 있다. 과거에 지어져 이러한 설비를 갖추지 못한 아파트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개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컴퓨터에 대한 설비는 급배수 배관과 같이 일반인들에게는 가시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건축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요사이 집을 짓는데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부분이다.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최성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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