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석조 미술 분야에 속하는 석탑, 석불, 석등, 당간지주 등은 그것들이 만들어질 때부터 특정 불교인과 관련 없이 신앙과 예배, 그리고 공양의 대상으로서 모든 불도들의 대상적인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석조부도와 탑비는 만들어지는 목적이 특정인을 위한 것이며, 만들어진 이후에는 모든 불도들의 공경과 예배의 대상적 조형물이 된다. 위의 것들은 신라와 고려의 모든 승려들이 세울 수 있는 조형물이 아니라, 당시 승려로서는 최고의 직책이라 할 수 있는 왕사나 국사를 역임한 경우 및 그러한 지위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았거나 입적후 위의 지위에 추증된 고승들을 대상으로 국왕의 윤허가 있어야만 건립 된 것으로 파악 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석조부도의 각부의 명칭이나 기본적인 것에 대하여 석탑, 석불, 석등과 비교하여 이해 하기 쉽게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부도는 선종이 유행한 통일신라 말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부도는 신라 원광법사와 혜숙의 부도 및 백제 혜현의 부도라 전하고 있어 한국의 부도 조성 시점은 당나라 정관연간(627∼649)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전흥법사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이다.
부도는 원래 붓다의 음역으로 불또는 불교를 의미하였고, 뒤에 가람 탑이나 승려의 묘탑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석조부도의 부분별 명칭과 특징을 알아보자
석조부도는 석탑이나 석등과 같이 크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
기단부는 지대석, 하단석 불상 대좌부의 양식과 강한 친연성을 보이지만 부분적으로 분명한 차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하대석과 상대석 상부에 마련된 탑신 괴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불상 대좌부의 하대석이 상하 2단으로 결구 될 경우 하단석은 팔각으로 하여 각 면에 안상이나 사자상을 조각하고 상단석은 복련문을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석조부도의 하대석은 불상 대좌부의 동일한 결구 수법으로 보이지만 불상 대좌부에서는 볼 수 없는 운룡문이 장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석조부도 기단부가 불상 대좌부의 양식을 채용 하였지만 석조 부도는 새로운 요소들이 적용 되었다.
이것은 불상과 석조부도가 모두 종교적인 조형물이지만 그 기능상의 차이에서 기인 한 것으로 보인다. 즉, 불상의 대좌부는 신앙과 예불의 대상으로서 이미 여래의 지위를 증득한 불상을 본안한 시설로 종교적인 대상물이 봉안 된 것이다. 그러나 석조 부도는 입적한 고승의 유골이나 사리가 봉안 되는 시설로 신앙과 예배의 주요 대상이기 보다는 묘탑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입적한 고승의 영혼이 머무는 전당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불법 수호적 성격이 강한 사자와 함께 용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석조부도 자체가 극락을 표출한 조형물이며 극락왕생에 대한 인식과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상 대좌부의 상대석 상면은 불상의 신체에서 흘러내린 옷주름 표현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무런 문양이나 장식이 없다. 그런데 석조부도 상대석 상면에는 탑신석을 받치기 위한 탑신 괴임이 탁자나 난간 형식으로 높게 마련되거나 괴임대 형식으로 낮게 마련된다. 이와 같이 석조부도가 탑신괴임을 높게 마련한 것은 불상과는 달리 석조부도의 탑신부는 목조건축물을 번안한 부분으로 벽체부와 지붕부에 해당한다. 따라서 석조부도의 탑신괴임은 팔각당형건물의 기단부와 외곽에 설치된 난간형식의 구조물을 전이 하는 과정에서 간략화 내지는 생략되어 번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불상의 대좌부와 석조부도 상대석 상부는 형식적으로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다.
또한 석조부도의 기단부는 신라 말기에 건립된 석등의 기단부와도 양식적으로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 석등은 지대석을 놓고, 곧바로 복련문이 장식된 하대석을 결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안상이 장식된 하단석과 연화문이 장식된 상단석을 2단으로 하여 하대석을 결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대석 복련문에는 귀꽃이 장식되기도 한다. 그런 다음 간주석을 세우고 앙련문이 장식된 상대석을 결구 한다. 또한 석탑의 기단부에서도 석조부도와 동일한 결구 수법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기단부의 상하에 연화문이 장식된 석탑이나 고려시대에 들어와 많이 건립되는 육각이나 팔각형 평면의 석탑에서 석조부도의 기단부와 동일한 결구 수범을 볼 수 있다.이
이와 같이 석조부도 기단부가 선대나 동시대에 건립된 불상 대좌부, 석등이나 석탑의 기단부등과 강한 양식적 친연성을 보이고 있는 점은 석도조형물의 건립 목적이나 기능은 다르지만 상호간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석조부도의 기단부 양식은 조선시대 팔각원당형 석조부도로 계승되며 .한편 왕릉 앞에 건립된 장명등의 기단부와 동일한 양식을 보이기도 한다.
지대석은 석조부도 하부에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 하고 그 위에 마련되는 부재로 대부분이 1석이나 2석으로 결구 된다.그리고 지대석 상면은 각형이나 호형의 게임단을 두어 하대석을 받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지대석의 평면은 팔각형과 사각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려시대 석조부도는 초기에는 신라의 영향을 받아 팔각형과 사각형이 동시에 활용되다가 잠차 사각형의 평면이 많이 채택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려시대 대부분의 석조부도 하대석은 팔각의 평면을 유지하고 있는 데 일부 특수형 석조부도와 고려말기에 건립된 석종형과 석탑형 석조부도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된 것이 사각형이다.
사각 평면의 하대석은 조선시대 석종형 석조부도가 본격적으로 건립 되면서 일반화된 수법이다. 예외로 팔각의 탑구를 볼 수 있는 것은 석탑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석조부도의 밀림을 방지 하고 신성성을 강조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 된 것으로 보인다.
하대석
하대석은 복련문이나 운룡문이 장식된 1단으로 마련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석조부도가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부는 목조건축을 번안한 부분으로 크게 탑신석과 옥개석으로 결구되어 있다. 탑신부의 조영이 팔각당형의 건물에서 번암되었음은 그 형식과 양식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탑신부의 구성 수법에서 가장 주목 되는 것은 당대의 목조 건축물을 그대로 번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탑신부를 구성하고 있는 탑신석은 팔각당형 건물의 벽체부에 해당 되며, 옥개석은 지붕부를 그대로 번안하여 치석되었다. 이런 점에서 신라시대 석조부도는 당대의 목조 건축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현실에서 목조 건축의 양식을 이해 는 데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해 준다.
이러한 석조부도의 탑신부 결구 수법은 평면은 다르지만 석탑과 유사하며, 특히 석등과는 강한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 석탑의 경우 1층 탑신에 사리를 봉안 할 경우 표면에 문비를 새기거나 문비 좌우에 사천왕이나 인왕상을 조각하기도 한다. 석등의 화사석은 석조부도의 탑신석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그 평면이 팔각으로 동일하면 화창이 마련되어야 하는 기능적인 차이로 인하여 문비는 새겨지지 않지만 사천왕상이나 보살상을 조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중에서 석등의 화사석과 옥개석은 석조부도와 세부적인 치석수법이 다르지만 탑신부와 일맥상통하고 있어, 팔각원당현 석조부도의 조형과 시원적인 양식의 성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건립된 석조부도의 탑신석은 1석으로 결구 되었는데 평면은 고려 말기에 석종형 부도나 석탑형 사리탑의 출현으로 원형이나 사각형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팔각형이다. 이후 조선시대 건립된 석조부도에서도 원구형이나 석종형 부도가 보편화 되기 까지는 팔각형의 평면이 가장 일반적이다
탑신석은 아무런 문양이 새겨지지 않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석조부도가 각면 외곽에 우주를 세우고 상하에 인방을 가로 질러 사각형으로 구획되어 있다. , 그리고 문비는 1면에만 마련되기도 하고 대칭형으로 2면과 4면에 마련된다.
고려시대의 석조부도에서는 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2면에 문비 마련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고려 전기에 건립된 석조 부도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후기가 되면 문비를 마련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리고 문비 안에는 일반적으로 굳게 닫혀진 자물쇠나 문고리가 표현되는 데 그것은 석조부도가 고승의 유골이나 사기를 봉안한 기념물이기 때문에 수호적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탑신석에서는 다른 부재와는 달리 불법수호의 의미가 강한 신장상이나 보살상이 조각되기도 한다. 이것은 석조부도에서 탑신석이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사천왕은 불교의 호법신으로 수용되어 다양한 역할변화를 거쳐 통일신라시대 이후 호국 신으로 정착되어 크게 성행 하면서 불교 조형물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호법 신장상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석조부도의 주인공을 탑신의 표면에 음각하는 것이 일반화 된다.
옥개석은 탑신석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평면이 팔각형을 유지하고 있다. 옥개석은 목조 건축물의 지붕부에 해당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신라시대 건립된 석조부도의 옥개석은 목조 건축물의 처마나 지붕부을 번안하여 치석된 경우가 많다..
고려시대 건립된 석조부도의 옥개석은 건립 수량이 증가함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 된다.고려시대에 건립된 석조부도의 옥개석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크게 전각형, 석등형, 혼합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전각형은 옥개석의 하부와 상부를 치석함에 있어서 목조 건축물의 지붕부를 그대로 번안한 형식이다.
석등형은 옥개석의 하부에 서까래나 부연을 비롯하여 상부 지붕면에도 기왓등을 번안하지 않은 유형, 혼합형은 옥개석의 처마부는 서까래와 부연을 번안하고 지붕면은 기왓등을 표현하지 않고, 합각부의 내림마루만 목조건축의 마루부를 번안한 유형이다.
전각형 옥개석은 신라 시재부터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이 채택된 옥개석이다
상륜부는 인도의 복발형 탑파에서 유래 되었으며, 인도탑의 소형화가 중국을 거쳐 한국 탑파의 상륜부에 적용 되었다고 한다.
상륜부는 석탑형, 석등형, 보주형, 다보형,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석탑형은 석탑의 상륜부와 평면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팔각형으로 노반과 복발석을 마련하고, 여러단의 보륜석을 올리고, 앙화석과 화엄형의 보주등이 결구 된 유형이다.
석등형은 석등의 상륜부와 동일한 결구 수법을 보이거나 옥개석의 소형 보개석이 상륜부에 마련된 유형이다.
보주형은 현재 남아 있는 부재들이 완전하지 않고 보주만을 결구 하였던 상륜부는 거의 없어 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특졀항 부재를 마련하지 않고 보주를 중신으로 간략하게 상륜부를 결구한 유형이다.
다보형은 연화문 등 화려한 문양이 장식된 노반석, 복발석, 보륜석, 앙화석, 보주석이 결구 되거, 봉황석이나 화려한 보개석이 마련된 유형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법천사 지광 국사 현묘탑의 상륜부도 원형과 팔각형의 평면이 조화롭게 활용되면서 연화문, 가릉빈가, 운문, 영락문, 화문 등 각종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된 다보형으로 결구 된다.
경복궁에 있는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다보형의 대표
화엄사의 부도들은 대부분이 석종형입니다
참고서적-신라와 고려시대의 석조부도-임기표 학연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