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떡
정휘창 지음
서기 1942년.
나라도 없고 우리의 말도 못 쓰던 슬픈 시대였습니다.
경상북도 문경의 산골,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초여름의 긴 해도 저물어 교실 마룻바닥에 어둠이 서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돌아가고 없는 5학년 교실에서 복순이는 혼자 마루를 닦고 있습니다.
눈물이 똑똑, 마룻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복순이의 어깨에는 어깨띠가 하나 걸려있습니다.
어깨띠는 일본말로 "국어만 쓰기"라고 적혀 있습니다. 복순이는 이 어깨띠 때문에
지금 벌청소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강복순"은 집에서만 부르는 이름이고 학교에 가면 "가네우미"라는 일본말로만 부릅니다.
"강복순"이 "가네우미 보쿠준"으로 바뀐 것은 복순이가 2학년 때입니다.
복순이는 배가 고팠습니다. 아침에 쑥밥을 먹었고, 점심은 송기떡을 먹었습니다.
빨리 집에 가야 어머니 일손을 도와 드릴 텐데 더욱 걱정입니다. 아버지 생각도 났습니다.
아버지는 지난해 여름에 보국대로 잡혀 가고 안 계십니다.
일본 어느 탄광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지난 가을에 편지가 왔을 뿐입니다.
복순이는 오쿠라 교장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생각합니다.
오쿠라 교장 선생은 일본 사람입니다.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덧니가 오른편 윗니에 하나 있고,
대머리가 벗겨진 모습이 보기 흉합니다. 아이들이 덧니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기무라 선생님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4년전에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부임해 올 때는
박 선생님이었는데, 이제 기무라 선생님으로 성이 바뀌었습니다.
복순이가 어깨띠를 걸치게 되고 벌 청소를 하게 된 것은 송기떡 때문입니다.
송기떡이란 "조센고"를 썼기 때문입니다. 조센고란 한국말이란 뜻입니다.
그 때 일본말을 국어라 했고, 국어만 써야 했습니다. 한국말을 한개라도 쓰면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국어 사랑" 또는 "국어만 쓰기"라고 적힌 어깨띠를 만들어 놓고,
누구든지 한국말을 쓰는 아이들을 찾아 그 어깨띠를 못벗으면 벌청소를 해야 합니다.
어깨띠를 걸고 있는 아이가 가까이 오면 모두가 조심을 하기 때문에, 어깨띠를 주머니 속에 감추고
아이들 사이에 섞여 놀다가, 무심코 한국말이 나오면 그것을 걸어 주기도 했습니다.
복순이는 공부를 잘했고 성질도 차분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한굴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송기떡 때문에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 때는 먹을 것이 모자라서 사람들은
늘 배가 고팠습니다. 농사를 지어놓으면, 공출이란 이름으로 일본 정부에서 거의 다 가져가 버립니다.
늦은 봄이 되면 대부분의 집에서는 양식이 떨어집니다. 이 때를 보릿고개라 합니다.
보리가 나올 때까지 넘겨야 할 힘겨운 고개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쑥이나 송기를 먹으며
보리쌀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송기는 소나무의 껍질입니다. 소나무의 겉껍질을 벗기면 속껍질이 있습니다.
이것을 벗겨와서 삶은 다음, 방망이나 절구로 찧어 이겨 콩가루를 묻히면 송기떡이 됩니다.
아이들은 점심 도시락으로 흔히들 송기떡을 가지고 왔습니다.
오늘 복순이도 송기떡을 가지고 왔습니다. 송기떡 몇개를 먹고 찬물을 마신 뒤
운동장 버드나무 그늘에서 공기를 받고 놀았습니다. 이 때, 학교를 돌고 있던 교장 선생님이 다가왔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복순이의 담임인 기무라 선생님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기무라 선생님이 주감 이었습니다.
"곤니찌와 (안녕하십니까?)" 아이들이 인사를 했습니다.
"응 점심은 먹었느냐 ?" "하이(예)"
"무엇을 먹었지 ?" 하고 하필이면 복순이에게 물었습니다.
".........." 복순이의 여윈 볼이 발갛게 상기되었습니다.
"아노(저어), 아노......." 송기떡이란 일본말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노 송기떡 먹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자, 곁에 있던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습니다.
오쿠라 교장 선생님의 얼굴빛이 언짢아졌습니다.
"조센고 쓰카우나 (조선말 쓰지 마라)" 하고는 교무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송기떡"만 한국말로 썼다면 혹 용서 받을 수도 있었는데 "먹었습니다."라는 말을 썼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얼마 후, 복순이는 교무실로 불려 갔습니다. 담임 기무라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어깨띠를 걸어 주었지만,
매우 성이 난 얼굴이었습니다. 복순이는 이것을 다른 아이에게 걸어 주어야 벌청소를 안 하게 됩니다.
복순이는 남이 실수하는 것을 억지로 찾아내기도 싫었고, 한국말 쓰는 아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벌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복순이가 마룻바닥을 다 닦고 책걸상을 제자리로 옮기고 있을 때, 기무라 선생님이 왔습니다.
아직 성이 안 풀렸는지, 마무 말도 안 하고 복순이 어깨띠를 벗겨 교탁 위에 던져 버렸습니다.
"청소는 그만두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복순이가 교문 밖으로 나서려는데, 뒤에서 기무라 선생님이 뛰어왔습니다.
"나도 너희 마을에 볼 일이 있단다. 함께 가자."
복순이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고개를 떨군 채 걸었습니다. 기무라 선생님도 말없이 걸었습니다.
기무라 선생님은 가끔 달을 쳐다보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복순이 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습니다.
복순이가 아무 말도 없는 것은 걱정과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한번 썼기 때문에 국어 (일본어)와
수신 (도덕) 점수가 깎일까 걱정이고, 어깨띠를 걸고 벌청소를 한 것을 온 학교의 아이들이 다 아는데
부끄러워 어쩌면 좋을지 모릅니다. 송기떡을 일본말로 뭐라고 하는 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참 걸었습니다. 학교에서 복순이의 마을까지는 십리 길입니다. 그 사이에 황티라는 고개가 있습니다.
옛날에 호랑이가 나타났었다는 곳입니다. 황티재를 반쯤 넘어갔을 때였습니다.
"복순아" 하는 기무라 선생님의 목소리에 복순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기무라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일본말이 아닌 한국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순아, 아버지한테서 편지 자주 오느냐?"
부드러운 목소리는 역시 한국말 이었습니다. 복순이의 눈에 눈물이 솟았습니다.
마루바닥을 닦을 때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었습니다.
"아니오" 하는 한국말이 겨우 복순이의 입술을 빠져 나왔습니다.
"참고 견디어야 한다. 머지않아 아버지가 돌아오시게 될 것이다."
"예" 복순이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습니다.
"복순아, 개구리는 어떤 소리로 울지 ? "
"............"
"복순아, 힘을 내야지, 자, 큰 소리로 대답해 봐. 개구리는 어떻게 울지 ?"
"개굴개굴"
"그렇지 부엉새는 어떻게 울지 ? "
"부엉부엉"
"그렇다, 개구리가 부엉부엉 울어서야 되겠느냐?"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나, 복순이의 가슴이 후련해지는 듯 했습니다.
어느덧 복순이의 마을 들머리까지 왔습니다.
"복순아, 잘 자고 내일 또 학교에서 만나자. 내 볼일은 너를 여기까지 데려다 주는 일이었단다."
"예 ? "
"하하하 속아서 원통하냐 ?"
"아, 아, 아니오, 그게 아니고 ......"
"강복순이 너도 내 이름 한번 불러주겠니 ?"
"박, 박........"
"박태원, 내 이름은 박태원이다."
"박태원 선생님 "
"오, 그래, 하하하."
박태원 선생님은 웃음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박 선생님, 박태원 선생님."
복순이는 박 선생님이 사라져 간 어둠을 바라보며,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2003. 5. 23 지음
정휘창 지음
서기 1942년.
나라도 없고 우리의 말도 못 쓰던 슬픈 시대였습니다.
경상북도 문경의 산골,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초여름의 긴 해도 저물어 교실 마룻바닥에 어둠이 서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돌아가고 없는 5학년 교실에서 복순이는 혼자 마루를 닦고 있습니다.
눈물이 똑똑, 마룻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복순이의 어깨에는 어깨띠가 하나 걸려있습니다.
어깨띠는 일본말로 "국어만 쓰기"라고 적혀 있습니다. 복순이는 이 어깨띠 때문에
지금 벌청소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강복순"은 집에서만 부르는 이름이고 학교에 가면 "가네우미"라는 일본말로만 부릅니다.
"강복순"이 "가네우미 보쿠준"으로 바뀐 것은 복순이가 2학년 때입니다.
복순이는 배가 고팠습니다. 아침에 쑥밥을 먹었고, 점심은 송기떡을 먹었습니다.
빨리 집에 가야 어머니 일손을 도와 드릴 텐데 더욱 걱정입니다. 아버지 생각도 났습니다.
아버지는 지난해 여름에 보국대로 잡혀 가고 안 계십니다.
일본 어느 탄광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지난 가을에 편지가 왔을 뿐입니다.
복순이는 오쿠라 교장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생각합니다.
오쿠라 교장 선생은 일본 사람입니다.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덧니가 오른편 윗니에 하나 있고,
대머리가 벗겨진 모습이 보기 흉합니다. 아이들이 덧니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기무라 선생님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4년전에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부임해 올 때는
박 선생님이었는데, 이제 기무라 선생님으로 성이 바뀌었습니다.
복순이가 어깨띠를 걸치게 되고 벌 청소를 하게 된 것은 송기떡 때문입니다.
송기떡이란 "조센고"를 썼기 때문입니다. 조센고란 한국말이란 뜻입니다.
그 때 일본말을 국어라 했고, 국어만 써야 했습니다. 한국말을 한개라도 쓰면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국어 사랑" 또는 "국어만 쓰기"라고 적힌 어깨띠를 만들어 놓고,
누구든지 한국말을 쓰는 아이들을 찾아 그 어깨띠를 못벗으면 벌청소를 해야 합니다.
어깨띠를 걸고 있는 아이가 가까이 오면 모두가 조심을 하기 때문에, 어깨띠를 주머니 속에 감추고
아이들 사이에 섞여 놀다가, 무심코 한국말이 나오면 그것을 걸어 주기도 했습니다.
복순이는 공부를 잘했고 성질도 차분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한굴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송기떡 때문에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 때는 먹을 것이 모자라서 사람들은
늘 배가 고팠습니다. 농사를 지어놓으면, 공출이란 이름으로 일본 정부에서 거의 다 가져가 버립니다.
늦은 봄이 되면 대부분의 집에서는 양식이 떨어집니다. 이 때를 보릿고개라 합니다.
보리가 나올 때까지 넘겨야 할 힘겨운 고개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쑥이나 송기를 먹으며
보리쌀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송기는 소나무의 껍질입니다. 소나무의 겉껍질을 벗기면 속껍질이 있습니다.
이것을 벗겨와서 삶은 다음, 방망이나 절구로 찧어 이겨 콩가루를 묻히면 송기떡이 됩니다.
아이들은 점심 도시락으로 흔히들 송기떡을 가지고 왔습니다.
오늘 복순이도 송기떡을 가지고 왔습니다. 송기떡 몇개를 먹고 찬물을 마신 뒤
운동장 버드나무 그늘에서 공기를 받고 놀았습니다. 이 때, 학교를 돌고 있던 교장 선생님이 다가왔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복순이의 담임인 기무라 선생님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기무라 선생님이 주감 이었습니다.
"곤니찌와 (안녕하십니까?)" 아이들이 인사를 했습니다.
"응 점심은 먹었느냐 ?" "하이(예)"
"무엇을 먹었지 ?" 하고 하필이면 복순이에게 물었습니다.
".........." 복순이의 여윈 볼이 발갛게 상기되었습니다.
"아노(저어), 아노......." 송기떡이란 일본말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노 송기떡 먹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자, 곁에 있던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습니다.
오쿠라 교장 선생님의 얼굴빛이 언짢아졌습니다.
"조센고 쓰카우나 (조선말 쓰지 마라)" 하고는 교무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송기떡"만 한국말로 썼다면 혹 용서 받을 수도 있었는데 "먹었습니다."라는 말을 썼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얼마 후, 복순이는 교무실로 불려 갔습니다. 담임 기무라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어깨띠를 걸어 주었지만,
매우 성이 난 얼굴이었습니다. 복순이는 이것을 다른 아이에게 걸어 주어야 벌청소를 안 하게 됩니다.
복순이는 남이 실수하는 것을 억지로 찾아내기도 싫었고, 한국말 쓰는 아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벌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복순이가 마룻바닥을 다 닦고 책걸상을 제자리로 옮기고 있을 때, 기무라 선생님이 왔습니다.
아직 성이 안 풀렸는지, 마무 말도 안 하고 복순이 어깨띠를 벗겨 교탁 위에 던져 버렸습니다.
"청소는 그만두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복순이가 교문 밖으로 나서려는데, 뒤에서 기무라 선생님이 뛰어왔습니다.
"나도 너희 마을에 볼 일이 있단다. 함께 가자."
복순이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고개를 떨군 채 걸었습니다. 기무라 선생님도 말없이 걸었습니다.
기무라 선생님은 가끔 달을 쳐다보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복순이 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습니다.
복순이가 아무 말도 없는 것은 걱정과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한번 썼기 때문에 국어 (일본어)와
수신 (도덕) 점수가 깎일까 걱정이고, 어깨띠를 걸고 벌청소를 한 것을 온 학교의 아이들이 다 아는데
부끄러워 어쩌면 좋을지 모릅니다. 송기떡을 일본말로 뭐라고 하는 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참 걸었습니다. 학교에서 복순이의 마을까지는 십리 길입니다. 그 사이에 황티라는 고개가 있습니다.
옛날에 호랑이가 나타났었다는 곳입니다. 황티재를 반쯤 넘어갔을 때였습니다.
"복순아" 하는 기무라 선생님의 목소리에 복순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기무라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일본말이 아닌 한국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순아, 아버지한테서 편지 자주 오느냐?"
부드러운 목소리는 역시 한국말 이었습니다. 복순이의 눈에 눈물이 솟았습니다.
마루바닥을 닦을 때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었습니다.
"아니오" 하는 한국말이 겨우 복순이의 입술을 빠져 나왔습니다.
"참고 견디어야 한다. 머지않아 아버지가 돌아오시게 될 것이다."
"예" 복순이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습니다.
"복순아, 개구리는 어떤 소리로 울지 ? "
"............"
"복순아, 힘을 내야지, 자, 큰 소리로 대답해 봐. 개구리는 어떻게 울지 ?"
"개굴개굴"
"그렇지 부엉새는 어떻게 울지 ? "
"부엉부엉"
"그렇다, 개구리가 부엉부엉 울어서야 되겠느냐?"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나, 복순이의 가슴이 후련해지는 듯 했습니다.
어느덧 복순이의 마을 들머리까지 왔습니다.
"복순아, 잘 자고 내일 또 학교에서 만나자. 내 볼일은 너를 여기까지 데려다 주는 일이었단다."
"예 ? "
"하하하 속아서 원통하냐 ?"
"아, 아, 아니오, 그게 아니고 ......"
"강복순이 너도 내 이름 한번 불러주겠니 ?"
"박, 박........"
"박태원, 내 이름은 박태원이다."
"박태원 선생님 "
"오, 그래, 하하하."
박태원 선생님은 웃음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박 선생님, 박태원 선생님."
복순이는 박 선생님이 사라져 간 어둠을 바라보며,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2003. 5. 23 지음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yongbo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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