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스크랩] 반차도

깜보입니다 2007. 11. 25. 23:47

조선시대 기록문화와 정보디자인 三

당시의 정보디자이너,화원 화가 김득신을만나다

먼저 모르는 사람이 많을 테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름은 김득신 본관은 개성이다. 자는 현보(賢輔)이며, 호는 긍재(兢齋)이다. 우리 집안은 유명한 화가를 많이 배출한 화원 집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도 화원에 들어가 초도첨절제사(椒島僉節制使)의 벼슬을 지냈다.
주로 작업한 것은 화원 내에서 그린 초상화나 왕실 기록물들이지만, 후대에는 오히려 여가시간에 틈틈이 그린 풍속화들이 많이 알려져 있다.
화풍은 아무래도 단원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내세울만한 작품으로는 [파적도(破寂圖)], [귀우도(歸牛圖)], [귀시도(歸市圖)], [오동폐월도(梧桐吠月圖)], [신선도] 등이 있다. 참고로 1822년에 죽었다.

현대에도 반차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제작 당시의 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윤2월 28일), 어명에 의해 의궤제작을 담당할 의궤청이 설치되었다. 도판을 그릴 화원으로는 나를 포함해, 이인문, 장한종, 이명규 등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직접 언명은 안되어 있지만 단원 선생님도 참여하셨다.
당시 무고한 모함으로 관직을 박탈당한 상태라 공식적인 직책을 맡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큰 일에 선생님이 참여하시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왕께서 따로 부르셔서 비공식적이나마 총감독을 수행토록 하셨다.
이 의궤를 위해 따로 활자, 요즘말로 하면 서체를 새로 만들었을 만큼 방대한 작업이라 기간도 꽤 오래 걸렸다. 지금 기억으로는 작업이 모두 끝나기까지 2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당시 화원 화가들이 기록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지켜야만 했던 원칙이 있었나요?
절대적으로 지켜야만 했던 원칙은 없다. 다만 행렬의 순서는 정해진 반차에 어긋나서는 안되었고, 직접적인 묘사는 당시 통용되던 시각적 언어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된다.
예를 들면, 우리 시대에는 원근법에 입각해 사물을 보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거나 꼭 필요한 경우를 빼놓고는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림의 방향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는데 왜 반차도는 꺼꾸로 뒤에서부터 보도록 되어 있나요?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책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보도록 되어 있는데 유독 반차도만 왼쪽이 앞을 향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덕에 보기 편하게 되어 있지만요.
보통 반차도는 두루마리로 제작되었는데, 그 관례가 그대로 지켜진 것이다. 당시 두루마리 그림은 왼쪽부터 펼쳐서 보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왼쪽을 행렬의 앞으로 두었다.

이 그림에서 가장 감탄스러운 것은 각 인물들의 표정이나 자세가 너무 생생하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많은 인물을 그리면서 지루하지 않게 표현하려면 매우 힘들었으리라 생각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에 임하셨나요?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솔직히 말해, 이 그림에 그려진 사람과 말 등의 다양한 자세에는 약간의 속임수가 있다. 아마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단번에 눈치챘을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고, 또 시간이 많더라도 이 많은 양의 인물, 혹은 말들의 자세를 모두 제각각 그린다는 것은 무리이다. 이런 경우,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은 소위, 시각적 어휘 내에 있는 기본 단어들을 다양하게 조합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 한 마리를 묘사하는 데 우리가 사용한 어휘는 모두 8가지이다. 우선 치켜든 머리와 조금 내려간 머리, 이 2가지 종류의 머리가 있다. 앞다리는 모두 4가지 정도의 변화가 있으며, 뒷다리는 2가지 양상의 모습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변수들을 조합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최대한 중복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옆에 나오는 10마리의 말을 살펴보면 결과적으로 똑같은 포즈의 말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각적 단어들의 조합은 많은 양의 같은 대상을 각각 개성 있게 묘사하는 아주 경제적인 방식이다.
나를 비롯해 [반차도]를 제작하는 화원들은 이런 방법을 사용해 비슷하지만 다양한 문장들을 생산해 내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얼마만큼 적절한 조화, 혹은 세부적인 묘사가 가능한지는 화가 각각의 역량에 달린 것이다.

세부적인 묘사 얘기가 나와서 드리는 질문인데, 각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의 완성도에 있어 차이가 많이 느껴집니다. 어떤 페이지는 굉장히 뛰어난가 하면 또 어떤 부분은 자세도 어색하고 말들도 생기가 없어 보입니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분담해서 작업을 하다보니 작품의 일관성을 지키기가 힘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밑그림도 밑그림이지만 이 그림은 기본적으로 목판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목판을 파는 각자(刻者)들의 역량에 크게 좌우될 수 밖에 없었다. 양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중요한 부분은 솜씨좋은 각자들이 맡았지만, 조금 떨어지는 부분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도판의 중간에 실린 가마제작도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의궤를 보면 무려 열 두 페이지에 걸쳐 가마설계도가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가마 그림에 커다란 비중을 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실제 행사에서 가마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행차에 사용된 가마는 특별히 새로 제작된 것이었다. 현륭원 무덤에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여기에 타고 갈 특별한 가마가 필요했다.
정보란 것이 새로운 것, 가치 있는 것, 기념할 만한 것이라면 이 가마와 그 다음에 실려있는 배다리(주교, 舟橋)가 가장 대표적인 정보일 것이다. 원래 한강을 건널 때는 직접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이 오랜 관행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배다리를 놓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 행사에 사용된 배다리는 왕께서 직접 설계에 참여하셨고,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기술이 동원된 것이라 자세히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가마제작도의 구성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먼저 전체적인 측면도를 원근법을 적용해 나타내었고, 뒤에 각 면들을 기록하였다. 또 각 면의 세부 부분은 어디에 해당하는 것인지 표시하여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각 부분의 세부도를 실은 이유는 새겨지는 문양이 정확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마 지금 보더라도 가마를 재현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보다 일반적인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대 정보디자인에 있어서 정보의 순도는 생략의 정도와 비례합니다. 즉, 정보를 더 많이 생략할수록 꼭 필요한 정보만 남게 되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정보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에 비해 반차도는 실제 행렬에 참가한 사람들의 수와 대열은 물론 사람들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명백한 정보의 과잉이지요.

한가지 물어보겠다. 백만이 얼마만큼의 크기인가? 백만 개의 물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백만이 얼마나 큰 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숫자란 추상적인 정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것과 문자로 제시하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 행렬에 몇 명의 사람들이 따라갔다고 기록해봤자 읽는 사람은 그 크기를 추측만 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렇게 긴 행렬을 눈으로 직접 보여주면 다르다. 이 [반차도]를 보면, 정말 큰 국가행사였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물론 우리도 생략해도 무방하다고 판단한 것은 과감히 생략했다. 친위부대인 장용위 군사를 그린 부분을 보면 96명의 군사를 10명만 그린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생략되지 않은 사실적인 표현이 정보 전달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 반차도의 제작 목적은 행렬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보존하는 데 있었다.
물론 사람 하나하나를 표현하는 것이 불필요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이 그림은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건 불필요한 정확성이 아니다. 한 시대의 문화가 작은 물건들의 집합이듯이, 이 반차도 역시 그런 작은 표현들이 모여 완성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사용되고 있는 정보디자인 기법, 예를 들면 막대나 파이그래프, 각종 도표, 혹은 지도 표현방식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확실히 많은 발전을 한 것이 사실이고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언어를 비롯한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그렇듯, 그런 장치들은 학습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200년 후에나 통용되는 방법이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그런 그래프나 차트를 본다면 이해하기는커녕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반차도에 나타난 그림들이 그 사람들한테는 더 이해하기 쉬운 정보의 지도인 것이다. 나는 우리가 지킨 방식들이 그 당시로서는 가장 첨단의 방식이고 그 시대 사람들에게 더 좋은 방식이라고 확신한다.

 





인터뷰, 글_박활성 기자



[정리의궤]
[반차도]에 나오는 다양한 포즈의 말들.이들의 다양한 자세는 각각의 기본적인 모양의 조합에서 나온다



















[정리의궤] 중 가마제작도.
무려 열 두 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가마설계도.
각 부분의 위치와 모양이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출처 : 정동환의 블로그
글쓴이 : 정동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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