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대동여지도 이야기

깜보입니다 2007. 12. 13. 15:36
대동여지도 이야기



대동여지도 이야기의 유래를 따라가 보면...

대동여지도의 경우는 어떨까. 조선총독부가 1934년에 출간한 「조선어독본」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동여지도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내용은 크게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김정호가 딸과 함께 지도를 만들어 바치자 대원군이 국가 기밀이 새어 나갈 것을 염려해 지도판을 압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옥에 가두었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일본이 러일전쟁 때 그리고 토지조사 사업 때 이 지도를 이용했다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이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관한 이 이야기는 식민사관에 의해 사실관계가 왜곡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실마리가 어디 있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조선어독본」에 앞서 김정호와 대동여지도 이야기를 최초로 전한 사람은 최남선이었다. 그는 1925년 10월 8일과 9일자 「동아일보」에 <古山子를 懷함(下)-드러나가는 大潛龍>이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대동여지도는 국가 기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한 관원에 의해 몰수되었으며, 뒷날 청일전쟁 때 청·일 양국 군대에 의해 이용되었다고 전한다. 「조선어독본」은 최남선이 말한 이야기의 골격을 계승하면서도, 판목을 압수한 장본인을 대원군이라고 적었던 것이다.  


왜 오랫동안 목판 소각설을 부정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대동여지도의 목판은 어떻게 된 것일까. 최남선이 ‘몰수’되었다고 말한 이 목판에 대해 조선어독본은 ‘압수’되었다고 전했다. 엄밀히 말하면 목판이 몰수 혹은 압수되었던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당시 목판이 소각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이 증폭되면서 대동여지도의 목판은 오랫동안 ‘소각’되었다고 여겨져 왔다. 숭실대 박물관에 목판 1장이 남아 있었지만, 이 단 한 장의 목판은 대동여지도 목판이 ‘소각’되지 않았다고 말할 만한 증거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1995년 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여러 장의 대동여지도 목판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도하 일간지의 문화면을 넓게 장식할만한 놀라운 소식이었다. 목판 발견은 목판 소각설의 허구를 벗겨낼 결정적인 증거로 여겨졌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좀 다른 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목판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목판 소각설이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었던 것일까?
이렇게 질문해 보자. 목판을 불사르고 지도를 소각했는데 뒷날 청군과 일본군, 그리고 조선총독부는 어떻게 이 지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는가. 조선에서 이 지도를 여전히 중요하게 관리하고 있었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적어도 최남선의 이야기와 「조선어독본」의 이야기만 비교·분석해 보았더라도 목판 소각설이 윤색된 결과임을 추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약간의 기초 연구만 있었더라도 목판 소각설의 허구를 좀 더 직접적으로 논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동여지도 목판본은 지금 공공도서관에 분산된 채 소장되어 있다. 규장각에도 여러 벌의 대동여지도 목판본이 있다. 그 중 한 벌의 지도 첫 면에 찍혀 있는 도장이 눈길을 끈다. ‘學部圖書’, ‘編輯局保管’이라는 선명한 글자들이다. 이 도장들은 대원군이 실각한 이후에도 조선 정부가 대동여지도를 보관·관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으니, 오랫동안 목판 소각설을 부인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동여지도 목판이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목판 소각설을 부인할 수 있게 되었다고 흥분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목판은 왜 그렇듯 오랜 시간동안 국립박물관에서 잠자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까. 이 점을 물었어야 옳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목판이 발견된 그 시점까지만 하더라도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지도를 전공한 학예사는 한 명도 없었다. 90년대 후반부터 한 명의 학예사가 있었고, 지금도 그런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현재 국내에 대동여지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십여 명을 넘지 않는다.
물론 관련된 연구 인력 수와 체계가 넓지 못한 것은 문제이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에 대한 학계의 문제의식이 단편적인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대동여지도의 계보를 밝힘으로써 한국 지도학사를 재구성하려는 연구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역사적 콘텍스트에 입각한 간학문적 패러다임의 연구방법론 개발이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고지도야말로 간학문적이며 통섭적인 연구에 가장 적합한 소재이다. 그런데도 우리 학계에 고지도 연구자가 많지 않은 것은 왜일까. 학자들이 무관심하기 때문에? 사실은 지도 자료에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료에 대한 접근성만 높아진다면, 역사지리·한국사·동양사·회화사·건축사·서지학·자형학 전공자들의 다양하고도 풍부한 분석이 얼마든지 가능해질 것이다.
개인 연구자가 개별 박물관들을 찾아다니면서 모든 고지도들을 열람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물론 실제 그런 방식으로 연구하는 성실한 학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기초적인 정리 작업을 언제까지 개인 연구자의 발품에 의존할 것인가. 이에 고지도 소장처와 소장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링크하여 사이버 상에서 고지도 박물관을 구현하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되었을 때 고지도 연구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자유로운 해석,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 배우성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사진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