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4대문 가운데 안타깝게 사라져버린 서대문, 그러니까 돈의문은 원래 어디 있었을까?
일제가 돈의문을 헐어버린 것이 1915년이니, 벌써 93년전이 흘렀다. 500년 넘게 서울 서쪽을 지키던 문은 지금 완벽하게 그 흔적조차 사라졌다. 그래서 원래 서대문이 있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지 서울 토박이들도 알기 어렵다. 대충 지하철 서대문역 서대문 네거리 어디쯤으로만 여길 뿐이다.


▲ 사라지기 전 돈의문의 모습. 아래는 1896년 사진. 문 주변 남루한 서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돈의문은 서울 4대문 중 하나였지만 사실 규모면에선 숭례문(아래 사진)에 비길바는 못되었다. 숭례문이 불타버린게 더욱 아쉽기만 한 이유다.

▲ 숭례문 예전 모습. 위 돈의문과 비교해보면 훨씬 규모가 크고 웅장함을 알 수 있다.
돈의문이 있던 정확한 위치는 바로 경향신문 부근, 정확히는 강북삼성병원 들어가는 언덕 입구쯤이다. 그래서 원래 돈의문터라는 표식을 만들어 놨지만 워낙 작고 보이지 않아 그 언덕을 늘 걸어가는 사람들도 잘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완벽하게 서울에서 소거된 돈의문 자리에 무언가가 들어섰다. 얼핏 봐서는 무엇이 들어섰는지 알기도 어렵다. 건너편에서 보자. 갈색 축대처럼 보이는 부분이다.

얼핏 보면 그냥 나무를 댄 벽처럼 보이는데, 위에 유리까지 설치한 것이 조금 다른듯하다. 건너가서 제대로 보자.

그냥 도로 구조물을 보수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정체가 드러난다.


이 독특한 언덕 축대와 계단은 단순한 길의 일부가 아니라 원래 돈의문이 있던 터였음을 알리기 위해 꾸민 공공미술품이다.
작가는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작품 이름은 <보이지 않는 문>이다.
사라져서 이제는 보이지 않는 돈의문을 기리는 방법으로 공공미술을 고른 이 작업은 작품 자체의 수준을 따지기 전에 그 기획의도와 개념이 '기념비 없는 기념비'란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조형미술품인 동시에 도로 환경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기능도 동시에 함은 물론이다.
돈의문터가 길로 바뀌어 어차피 원형 복원이나 기념은 불가능했기에 옹벽 언덕에 돈의문을 기념하는 아이콘을 만든 것이다.

이 작품 <보이지 않는 문>은 밤에는 축대에 파란 불빛이 켜져 특히 도드라진다.

사진출처=http://www.citygalleryproject.org/
사라진 돈의문, 그리고 정말 옹색하게 남은 돈의문터는 서울이란 얼굴에 난 역사적 흉터다. 그 흉터는 결코 아물지 못하고 방치되어 왔다. 더욱 아쉬운 점은 그런 아픈 상처를 입고도 기억조차 못하고 잊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저 작품 <보이지 않는 문>이 들어섰다고 하지만 여전히 돈의문터는 아쉽기만하다. 그 자리에 들어선 저 공공미술 작품도 실은 공공미술 작품인지, 돈의문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지 행인들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돈의문의 운명이란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이었을까?
구본준 기자 http://blog.hani.co.kr/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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