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조선후기 국왕의 동정과 국정운영 내용 등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일성록(日省錄)’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지난 5월 23일(현지시간)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제10차 회의에서 우리나라 ‘일성록’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을 심의한 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권고하기로 했습니다.
보통 IAC의 등재 권고 결정이 나오면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통상 2∼3개월 이내에 최종 확정하게 되지만 유네스코에서는 IAC 등재 권고 결정이 나면 등재가 확정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일성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간 7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총 9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됐고 아시아에서는 최다 보유 국가가 됐습니다. 세계에서는 5번째로 많은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나라입니다. 이번에 등재된 일성록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중 조선후기 유산인 일성록에 대해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으로 구축된 한국고전종합 DB(http://www.itkc.or.kr)의 도움을 받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란?
* 국보 - 제153호 (1973년 12월 31일 지정)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 - 필사본 2,329책
* 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일성록은 조선 영조 36년(1760년) 1월부터 1910년(융희 4년) 8월까지 151년 동안 국왕의 동정과 국왕이 결정에 개입한 국정의 제반 운영사항을 매일매일 일기체로 정리한 연대기 자료로써, 임금의 입장에서 펴낸 일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입니다. 현재 이 책은 2,329책이 모두 전하고 있으나, 21개월분이 빠져 있습니다.
첫 시작은 정조가 세손으로 있을 때인 1752년(영조 28년)부터 언행과 동정을 일기체로 적은 ‘존현각 일기’며, 이는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도 계속됐습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3년 후인 1759년에 규장각을 설치하고 각 신하들에게 왕이 조정에서 행한 갖가지 사실을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5일마다 초본을 정서해 자신에게 결재를 올리도록 했습니다.
순조 때부터는 승정원일기와 함께 매월 분을 다음 달 20일에 임금에게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며 누락이 있어서 보충해야 할 경우에는 다음 해인 정월에 꺼내서 보충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보고된 초본은 국왕에게 재가를 올린 후 보존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760년(영조 36년) 1월에서 1910년(융희 4년) 8월까지 151년 동안 국왕의 동정과 국왕이 결정에 개입한 국정의 제반 운영사항을 매일매일 일기체로 정리한 연대기 자료인 ‘일성록’이 탄생했습니다. 한 질만 편찬된 유일본이자 필사본으로 현재 전 2,329책 모두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돼 있습니다.
일성록은 정조가 논어에 나오는 증자(曾子)의 말 ‘오일삼성(吾日三省)’ 즉, “나는 매일 세 번 반성한다”는 말의 뜻을 살려 지은 것으로, 매일매일 자신을 반성하는 자료로 삼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입니다. 이는 세계기록유산에 먼저 이름을 올린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함께 조선왕조 3대 연대기로 꼽힙니다.
다른 점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가 국왕을 ‘상(上)’이라 해서 3인칭으로 표현하고 기사들을 시간 순서로 서술한 편년체인 것과 달리 일성록은 국왕을 1인칭 용어인 ‘여(予)’, 즉 ‘나’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 기사 순서도 시간 순서가 아닌 주제 순으로 사안들을 기록한 강목체를 채택, 11개 주제별로 분류해 작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모든 기록을 주제별로 재분류해 편집한 것이다 보니 전문가들은 그 과정에서 국왕의 취사선택이 있었고, 임금의 뜻에 거슬리는 내용은 제외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보다 자세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어 실록을 보충할 수 있는 귀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
▶ 국보 제 153호 일성록 출처 : 문화재청 ☞ 바로가기 |
>> 일성록의 구성과 내용 중에서
일성록은 매사마다 주요 목차를 세워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각 기사 첫머리에 그 내용을 요약한 표제를 붙여 열람하는 데에 편하도록 했고, 사건 기록은 간결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국왕의 분부 재가 같은 경우는 전체를 다 수록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기사 순서는 천문(天文)·제향(祭享)·임어(臨御)·소견(召見), 반사은전(頒賜恩典)·제배체해(除拜遞解)·소차(疏箚)·계사(啓辭)·초기서계별단(草記書啓別單)·장계(狀啓)·과시(科試)·형옥류(刑獄類)의 순으로 구성했으며, 중복본이나 결본도 있습니다. 1873년인 고종 10년에는 경복궁에서 화재가 발생해 상당부분이 소실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후 규장각 원임제학 김학성 등의 지휘 하에 1874년 6월까지 총 492책에 대한 개수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 |
▶ 일성록 본문 내용 중 일부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바로가기 |
<정조 4년(1780년) 1월 7일 자 기록 중>
# “내(予)가 이르기를, ‘군교(軍校)가 격쟁(擊錚)한 사람을 구타한 일은 지극히 놀랍다. 엄하게 곤(棍)을 치라고 분부하라' 하였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이후 평민들이 국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하는 ‘격쟁'을 부활시켰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장교에 해당하는 군교가 격쟁하는 사람을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해당 군교를 엄벌에 처하도록 명한 것입니다.
# “어제 눈을 치우는 일로 백성들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돼 하교한 바가 있었는데, 오늘 지나는 도로에 눈이 한 점도 없는 것을 보니 폐단이 적지 않았음을 상상할 수 있다. 엄히 처벌해야 마땅하나 이번만은 십분 참작하여 처벌하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는 깊이 유념해서 거행하라."
정조가 자신의 행차를 앞두고 눈을 과하게 치우느라 백성들을 괴롭힌 관원들을 나무란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일성록에는 격쟁, 민란 등 당시 백성들의 정치와 생활상, 서구 과학기술과 문물이 전파되던 양상 등이 담겨 있습니다.
>> 유네스코가 ‘일성록’을 채택한 이유
그렇다면 이번에 유네스코가 일성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채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개인이나 기관, 정부가 각각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채택된 일성록은 문화재청이 신청한 것입니다.
이를 검토한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는 “국왕이 자신의 정치운영을 되돌아보고 반성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독창적인 기록물인 동시에 18∼20세기 동서양의 정치 문화적 교류의 실상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인류 보편적인 가치도 함께 지니고 있다”고 평가해 채택한 것입니다.
일성록의 내용을 보면 조선의 국정 일기지만 동아시아 사회의 동향이나, 중국에 와있던 서양 여러 나라의 동향 등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란?
☞ 세계기록유산에 대해 더 알아보기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은 세계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기록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벌이는 프로그램입니다. 실무는 유네스코 일반정보사업국 산하의 국제자문위원회(IAC, 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가 전반적인 프로그램 계획 및 이행에 자문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담당하며, 사무총장이 매 2년마다 정기적으로 국제자문위원회를 소집합니다.
여기에서 IAC는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세계기록유산 사업의 진행경과를 점검하고 소위원회, 지역위원회 및 사무국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검토하며 이들의 기능과 책임에 대한 자문을 합니다. 세계기록유산위원회는 세계기록유산이 협약의 형태로 강화될 수 있도록 사업 제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사업은 세계기록유산을 인류 모두의 소유물로 간주하고 이를 미래세대에 전수할 수 있도록 잘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훼손되거나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있는 기록유산의 보존과 이용을 위해 기록유산 목록을 작성하고 효과적인 보존수단을 강구하면서 1995년 시작됐습니다.
등재기준은 영향력, 시간, 장소, 인물, 주제, 형태, 사회적 가치, 보존 상태, 희귀성 등을 기준으로 합니다. 등재 대상이 되는 요건은 ▲한 국가를 초월해서 세계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자료 ▲전 세계 역사와 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 및 인물들의 삶과 업적에 관련된 기록유산 ▲형태와 스타일에서 향후 기록문화의 중요한 표본이 된 경우 등입니다.
이 대상은 매우 광범위해 ▲필사본, 도서, 신문, 포스터 등 기록이 담긴 자료 ▲플라스틱, 파피루스, 양피지, 야자 잎, 나무껍질, 섬유, 돌 또는 기타자료로 기록이 남아있는 자료 ▲그림, 프린트, 지도, 음악 등 비문자 자료(non-textual materials) ▲전통적인 움직임과 현재의 영상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원문과 아날로그 또는 디지털 형태의 정지된 이미지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전자 데이터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대표적인 유산으로는 ▲슈베르트 악보 모음집 ▲영화 오즈의 마법사 ▲리브해 노예 기록유산 ▲입센의 '인형의 집' 필사본 ▲안데르센 원고 필사본과 편지 ▲베토벤 교향곡 D 마이너 ▲제임스 쿡 선장의 엔데버호 일기 등이 있습니다.
>>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기록유산
문화재청에서 신청한 ‘일성록’과 5.18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가 신청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이 2011년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리면서 우리나라는 총 9개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됐습니다. 전체적으로 세계기록유산은 2009년 기준 83개국 193건에서 올해 45건이 추가돼 모두 238건으로 늘어났습니다.
☞ 한국의 세계유산 더 보러가기
등재연도 |
세계기록유산 | 소장처 |
1997 | 조선왕조실록 | 서울대 규장각 |
1997 | 훈민정음 해례본 | 간송 미술관 |
2001 |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 프랑스국립도서관 |
2001 | 승정원일기 | 서울대 규장각 |
2007 | 조선왕조 의궤 | 서울대 규장각 |
2007 |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및 제경판 | 해인사 |
2009 | 동의보감 | 국립중앙도서관 및 장서각 |
2011 | 일성록 | 서울대 규장각 |
2011 |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 5.18기념재단, 국가기록원, 육군본부, 국회도서관 등 |
※ 세계기록유산명을 클릭하시면, 자세한 정보를 더 보실 수 있습니다.
※ 참고사이트·문헌
문화재청 (http://www.cha.go.kr)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http://www.unesco.or.kr)
카인즈 (http://www.kinds.or.kr)
네이버 백과사전
>국가지식포털
'문화유산e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옛 다리의 과학성 (0) | 2011.06.21 |
---|---|
[스크랩] ‘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되다 (0) | 2011.06.10 |
[스크랩] 일성록, 5.18민주화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0) | 2011.05.26 |
[스크랩] 한국의 전통 문화와 백색의 감수성 (0) | 2011.05.25 |
[스크랩] 안동 임청각 (0) | 2011.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