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제2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신경숙의 소설 <부석사>는 바로 이 같은 삶의 소중함과 그러한 삶이 좀처럼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발생하는 기이한 애틋함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 속의 어느 1월1일에,
‘나’는 부석사에 가기 위해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남자’를 만난다.
두 사람은 같은 오피스텔에서 사는 이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인연에 의하여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문득 부석사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용이하지 않다.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떠났는데, 예기치 않게 길을 잃고 목적지인 부석사에는 이르지 못한다.
‘나’와 ‘너’의 단절을 의미하는 부석사의 ‘떠 있는 돌’의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소설은 부석사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혹시 그곳에 이미 도착했을지도 모를 ‘나’의 상념으로 끝이 난다.
“여기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마음뿐이었다.
어깨가 내려앉는 듯한 피로에 점령되어 그는 점점 잠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그녀는 보온통을 기울여 종이컵에 커피를 따른다.
부석사의 포개진 두 개의 돌은 닿지 않고 떠 있는 것일까.
커피를 들지 않은 한 손으로 자꾸만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다.
그녀는 문득 잠든 그와 자신이 부석처럼 느껴진다.
지도에도 없는 산길 낭떠러지 앞의 흰 자동차 앞유리창에 희끗희끗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세부 사실은, 순흥면에서 태어났고
부석면에 큰집 어른들이 여태 살고 있는 나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허술해 보인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나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같은 책에
의하여,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마다 적극적으로 문화관광을 추진해온 저 90년대 이후로
영주, 순흥, 봉화 그 어디의 작은 도로일지라도 ‘부석사’로 향하는 이정표를 찾지 못할 까닭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설 속 인물들이 길을 잃고 말았다는 설정은
그곳을 고향으로 하는 내게 조금 낯설어 보였다.
그러나저러나 이 소설이 ‘큰 세계’와 일치하는 작은 삶은 고사하고,
바로 곁에 서 있는 사람과의 친밀했던 감정마저 일순간에 붕괴되고 마는
오늘의 우리 일상을 적절히 스케치한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앞에 언급한 책에서 최순우가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고 묘사한
바로 그 부석사에서 옛사람들의 종교적 미의식을 환기하는 것은,
우리네 삶이 결코 단속적이지 않으며
저 유장한 세월의 흐름 속에 있음을 재확인하는 성스러운 순례가 되는 것이다.
시 ‘그리운 부석사’에 깃든 절실한 감정의 울림
늦가을 아닌가. 지금 이 시절이라면
부석사에 오르는 길의 은행잎은 다 떨어지고 말았겠지만,
그 나무들의 행렬은 여전히 반듯하고, 마침내 무량수전 앞에 이르러 저 멀리 흘러가는 구름과
그 아래 준령들의 흐릿한 그림자를 바라보는 늦가을의 순례 속에서,
우리는 필경 정호승 시인이 시 '그리운 부석사'에서 호소한 바와 같은
절실한 감정이 아직은 저마다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바로 곁에 선 사람과 무언의 감정을 교감하면서
어떤 조화로운 전체 속에서의 ‘작은 삶’이 주는 위안을 얻는 것이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摩旨(마지)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 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