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펌)홍현보-한국판뉴딜

깜보입니다 2020. 11. 5. 11:08

[왜냐면] 한글 창제와 한국판 뉴딜 / 홍현보

입력 2020.11.05. 10:26

서예가 쌍산 김동욱씨가 광목천 위에 훈민정음 서문 108자를 대형 붓으로 쓰는 행위예술을 하고 있다. 서예가 김동욱씨 제공

 

 

홍현보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교육부장

 

정부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선도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재조명해봄으로써, 한국판 뉴딜 정책 선언과 연결지어 한글 창제라는 역사적 결정이 한국판 뉴딜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규명해 보고자 한다.

모든 나라가 처음 세워지면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말과 글의 통일을 위해 맞춤법과 표준어를 만드는 일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조선도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였으니 태조 4년에 공표한 <대명률직해>와 <경제육전>이 그것이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는 원나라 쿠빌라이나 명나라 주원장처럼 문자를 만들거나 한자의 음과 뜻을 정비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 모든 학문의 바탕이었던 중국의 경전과 각종 서적들이 모두 한자(한문)로 이루어졌고 외교적으로는 거대한 명나라의 위압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라 밖의 변화와 혼란이 조선에도 엄청난 외교적 위기를 가져왔고, 정치적·사회적·학문적으로도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었다. 첫째, 한자의 발음이 문제였다. 둘째, 조선의 문자 생활이 엄청난 혼란 속에 놓여 있었다. 셋째, 민본애민정책을 펼치려는 세종에게 큰 장애물이 되었다. 넷째, 구습에 물들지 않은 새롭고 뛰어난 인재가 필요했다.

이런 상황 속에 세종대왕이 언문(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새로운 변혁의 시대가 시작됐다. 첫째, 1443년 우리 겨레는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우리만의 문자를 갖게 되었다. 둘째, ‘용비어천가’를 지어 조선의 글자로 조선 왕권의 정통성을 노래할 수 있었다. 셋째, 의금부와 승정원 관리들에게 임금의 진솔한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었다. 넷째, 학문을 위해 필수 과목인 사서삼경을 한글로 번역하라고 지시해 선진 문물과 역사, 철학 등을 모든 백성이 고루 배울 수 있게 했다. 다섯째, 일반 백성이 한글로 정치적 발언을 하게 됐다.

한글 창제 뒤 60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한글로 지식을 얻고, 제 뜻과 논리를 펼치며, 어렵지 않게 정부 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게 됐다. 이것은 먼저 세종의 정책이 민본애민정신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의 표출이었기에 가능했다. 민초들은 이 글자를 버리지 않았고, 한글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겨레의 독립정신을 고취시켰으며, 해방 후 반민주와 권위주의에 항거한 풀뿌리 민주시민의 표상이 되기도 했다. 나아가 다가올 남북의 동질성 회복과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가장 절대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세종은 나라 안팎에서 정치, 사회, 문화, 외교적으로 엄청난 혼란과 위기를 맞았다. 중국의 왕조가 바뀌고, 지배 민족이 바뀌면서 문자생활도 어지럽고, 외교적 교섭도 어렵게 됐다. 새로운 나라 조선이 선진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온 백성이 말과 글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했지만, 중국 글인 한문과 한자로는 도저히 백성들과 소통하기 힘들었고, 백성들이 생각과 뜻을 제대로 밝힐 수도 없었다. 중앙정부와 지방관리 사이에 정책이나 지시 내용이 잘 소통되지 못했고, 학문(정보)의 축적도 이룰 수가 없었다. 한글 창제는 세종의 뉴딜 정책이었다. 한글을 창제함으로써 온 국민이 한문 공부도, 의사소통도, 국가 정책의 전달과 수용도 모두 쉽게 이룰 수가 있었고, 외국어 학습 능력이 높아져 외교력을 키웠다.

정리하자면, 세종의 뉴딜 정책인 한글 창제 사업이 국가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백성 중심의 정치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백성만 생각한 세종의 과학적 발상이 우리 겨레의 문화를 세계 위에 우뚝 서게 만들었고 세계 문화사를 바꾼 위대한 업적이 되었듯이, 오늘날 코로나19로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지만 국민의 삶과 행복을 위해 국가 지도자가 새로운 결단과 혁신 정책을 펼침으로써 이 위기가 위대한 도약을 위한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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