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방역모델 한국의 위기.. 외신이 주목한 특이점
임상훈 입력 2020.12.11. 07:12 댓글 838개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한국의 코로나19 3차 유행 대처에 쏠린 눈
[임상훈 기자]
"세계적 방역 모델로 소개되는 민주주의 국가 한국에서 다수의 전염병 감염원이 발생하고 있는 것에 한국 정부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 프랑스 <르 피가로> (Le Figaro) 12. 2
"최근 한국에서 3월 초 이후 가장 높은 감염률을 보이고 있다. 확진자가 급증할 때마다 정부와 국민들은 이에 대응했고, 그때마다 감염률이 몇 주 안에 감소했다. 그러나 이번 유행은 다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 미국 <타임> (Time) 12. 4
세계 주요 언론들이 최근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추세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 모범국가로 거론되던 한국이 다시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 2차와 달리 감염원이 집중돼 있지 않고 산발적으로 퍼져 있는 이번 3차 유행은 정부와 방역당국을 한층 긴장시키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매뉴얼에 없는 새로운 대응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맞선 첨병
▲ 영국서 세계 첫 화이자 코로나19 백신 일반 접종 시작 영국이 세계 최초로 화이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일반 접종을 시작한 8일(현지시간) 런던의 한 병원 백신센터에서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
ⓒ 런던 AP=연합뉴스 |
한국의 방역 모델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한국이 코로나19 청정국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 1차 유행 당시 한국에서는 전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확진자가 많이 발생했다. 8월 말부터 한 달여 동안은 하루 신규 확진자가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2차 유행도 겪었다.
세계가 한국의 경우를 눈여겨본 이유는 두 차례 위기를 겪는 등 실제 코로나19 피해를 겪으면서도 정복당하지 않고 저항하면서 앞으로도 인류가 맞을 수 있는 또 다른 대유행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새로운 가능성을 한국이 제시했기 때문이다.
신종 전염병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유행이 발생했을 때 인명 피해와 경제 등 사회 전반의 균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역 원칙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장기전에 대비하면서 백신과 치료제가 발견될 때까지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2020년 한국은 공중 보건 위기 상황에서도 집요할 정도로 모범적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냈다. 좀 더 강한 통제를 원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정부와 방역 당국은 끝까지 국민의 집단 지성을 믿고 자발적 생활 방역에 호소했다. 국민도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 개인 위생 등 생활 방역을 지키면서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이행했다.
일부 종교 활동과 정치 활동, 유흥업소의 부주의가 있었지만 정부는 강제적 통제를 최소화했다. 반복되는 명백한 집단 감염 위험 활동에 대해서만 통제를 했다. 확진자 동선 확보를 위한 신용카드와 휴대전화 사용 내역 확인, 폐쇄회로 화면(CCTV) 확인에 대한 사생활과 인권 침해 문제도 논란이 됐지만 가능한 한 익명성이 보장됐고, 무엇보다 공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이 됐다.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방역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한 국민의 집단 지성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 집단 지성의 발현에는 오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주권을 찾기 위한 끈질긴 노력을 한 한국 국민의 높은 정치의식도 일조했다. 대유행 위기 속에서 한국 국민은 방역의 대상으로 남지 않고 방역의 주체가 되기를 원했다. 그것이 꾸준한 생활 방역의 근간이 될 수 있었다.
일부 서구 언론이 피상적으로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서구에는 한국인들의 철저한 방역 지침 준수 비결이 유교적 순종주의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이해한다면 한국인들이 얼마나 전복적 정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된다.
한국인들은, 적어도 20세기 이후 한국인들은 정치·사회·경제적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 국가를 먼저 생각했다. 독재 정치가 극에 달했을 때 국민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목숨을 걸고 저항했고, 외환 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의 절체절명 순간에는 장롱에 묻어둔 소중한 재산을 줄을 서 내다 팔았다.
코로나19의 세기적 대유행으로 국가의 전반적 체제가 위협을 받을 때 한국인들은 누적된 정신적 피로와 옥죄어 오는 경제적 어려움에도 방역의 원칙을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독재에 저항하는 정신, 국가 부도를 막겠다는 정신처럼 주인의 역할 즉, 자신에게 주어진 주권을 구체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적극적 주권 행사의 결과 한국은 다수의 다른 국가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집단 봉쇄를 피하면서도 효과적 방역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집단 봉쇄를 피한 결과 한국인들은 각자 이동의 자유를 지켰을 뿐 아니라 국가 경제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었다.
지난 1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 제조업의 구매관리자 지수(PMI)가 지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면서 이는 한국 보건 당국이 3차 유행과 씨름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을 강화한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러시아의 <크라스나야 배스나>는 지난달 30일 보도에서 한국의 코스피 지수가 같은달 27일 종가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면서, 코스피 지수와 원화 가치가 상승하는 배경으로 코로나19 확산에도 한국 증시가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1일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을 전하면서 예상치 1.9%보다 높은 2.1%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예상 외의 결과에 대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에서 한국 경제가 반등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위기는 한국 문화에 포함돼 있다"
▲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검사를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682명 늘어 누적 4만98명이라고 밝혔다. |
ⓒ 연합뉴스 |
이렇게 9개월여 동안 팬데믹 속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경제 피해를 줄이면서 성공적 방역을 해온 한국이 이제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11월 이후 3차 유행을 맞고 있는 한국은 지금까지의 양상과 다르게 특정 진원지를 지목할 수 없는 다발적 감염 사례들을 접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피해 규모는 미국이나 서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다. 미국은 여전히 신규 확진자가 10만~20만 명 사이를 오르내린다. 프랑스도 지난달 8일 8만 6천 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를 기록했고 지금도 여전히 신규 확진자가 1만 명이 넘는다. 한국은 10일 0시 기준 전체 누적 확진자가 4만 98명이다.
그렇지만 외신들은 이제 한국식 방역이 시험대에 오르기 시작했다고 전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한국의 모델만이 민주주의와 경제를 지키면서 방역에 성공해 왔기 때문이다. 첨병은 늘 외롭다. 적에게 제일 먼저 노출될 위험이 크고 제일 먼저 찬바람을 맞는다.
동선 추적과 공격적 테스트, 환자 핀셋 격리 등으로 상징되는 한국식 방역이 건조하고 기온이 낮은 계절로 접어들면서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게 될지, 아니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매뉴얼이 요구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여러 의미로 방역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다. 역학조사관을 포함한 방역 요원들의 피로도 역시 한계점을 향해 가고 있다. 백신이 개발돼 영국에서는 접종까지 시작이 됐지만, 백신으로 확진자 추이를 바꾸려면 아직 몇 달은 더 걸릴 것이다.
이에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국민은 녹아웃(knock-out), 방역 요원은 번아웃(burn-out)될 것인가. 그렇지 않고 백신이 실질적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한국식 모델이 여전히 힘을 발휘해 줄 것인가. 많은 외신들이 주목하고 있듯 분명 코로나 한국 방역 모델은 도전을 받고 있다.
▲ 프랑스의 <르 피가로> 신문은 지난 2일 자 보도에서 대규모 코로나19의 확산은 곧 경제 둔화와 가족의 슬픔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내려 한다고 전한다. |
ⓒ <르 피가로> |
이런 가운데 외신들의 기대 어린 관심도 늘고 있다. 프랑스의 <르 피가로> 신문은 한국의 코로나19 제3차 유행과 관련한 지난 2일 자 보도에서 한국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3차 위기를 막아내려 한다고 전했다. 그 이유는 대규모 코로나19의 확산은 곧 경제 둔화와 가족의 슬픔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럼 주권자 국민의 역할은 무엇일까? <르 피가로>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코드를 거론한다. 이 신문에 따르면 한국은 여전히 사실상 전시에 있으며 북한의 포격 사정거리 안에서 항상 경계심 속에 살고 있다는 것. 신문은 한국에 근무하는 한 프랑스인 기업인의 말을 인용해 한국의 기업들은 정부의 조처에 앞서 빠른 대응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한다.
한국인들의 문화 코드에 배어 있는 위기 대응 능력과 기동성, 이것이 한국 방역 모델의 근간일 것이다. 국민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주권의식, 그리고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방역 당국의 역학조사, 이것이 이미 한국의 기업문화에 녹아 있는 위기관리 능력이 아닐까?
한국은 이제 3차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르 피가로>는 같은 재한 프랑스 기업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위기는 한국 문화 안에 이미 포함돼 있다." 한국인들에게 위기는 일상의 도전의 대상이라는 것.
그는 말한다. "위기는 한국을 마비시키기는커녕 더 강하게 만든다." 과연 한국인들은 찬바람이 강해지는 코로나19 위기 앞에서 더 강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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