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펌) 임신한 여성을 위하여

깜보입니다 2020. 12. 13. 14:52

신비롭지 않은 임신을 위하여

등록 :2020-12-11 10:43수정 :2020-12-11 10:48

 

[책&생각] 임소연의 여성, 과학과 만나다
⑦임신과 여성
임신부 장기와 다름없는 태반, 임신 부산물로 취급되는 현실
2014년 태반 연구 시작…실시간 관찰 위해 임신여성 중심 돼야

2016년부터 미국 국립보건원 아동 및 인간 발달 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해 인간 태반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미국 유전학자 다이애나 비앙키. 인간 태반 모형을 들고 있다. 미국의사협회(AMA) 에드 허브

 

입덧은 새 생명의 잉태를 알리는 반가운 신호이자 임신 기간 동안 여성이 겪어야 하는 신체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이다. 임신부의 절반에서 많게는 80%가 경험하는 흔한 증상으로 대개 메스꺼움과 구토로 나타난다. 보통 임신 4~5개월 이전에 사라지지만 심한 경우 임신 기간 내내 지속되거나 입원 치료를 필요로 하는 등 개인차가 크다.이렇게 임신부를 괴롭히는 입덧은 흔히 배 속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증세로 여겨진다. 임신한 여성이 입덧 탓에 음식을 가려 먹으면 태아에게 해로울 수도 있는 물질이 몸 안에 들어올 일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이다. 이에 따라 입덧이 심할수록 건강한 아기를 낳는다는 속설이 전해지기도 하고 엄마라면 아기를 위해 입덧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부담이 임신부에게 가해지기도 한다.

입덧은 태반의 발달과 함께 나타난다

 

입덧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태아를 중심으로 임신을 이해하는 관점과 연결된다. 그러나 임신 기간 동안 여성의 몸에서 자라는 존재는 태아만이 아니다. 사실 입덧은 태아보다 태반과 더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태반에서 분비되는 융모성 생식샘 자극 호르몬은 임신 과정에 꼭 필요한 호르몬이지만 이 호르몬이 작용하면 모체의 구토 중추가 자극되어 입덧이 유발된다. 입덧이 가장 심한 때인 임신 3~4개월은 태반이 가장 활발하게 발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한 연구는 임신 초기 입덧으로 임신부가 음식을 덜 먹는 현상과 태반 발달 사이의 관계를 몸속 호르몬의 수치 변화로 설명한다. 입덧은 음식물 섭취를 줄이는 방식으로 인슐린과 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를 적게 분비되도록 해 태반 발달에 간접 기여한다는 것이다. 탄수화물 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은 음식물 섭취 시 높아진 혈중 포도당 농도를 낮추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인슐린이 분비되면 태반의 융모성 생식샘 자극 호르몬 생산이 억제돼 태반의 성장이 느려진다. 음식을 먹을 때에 인슐린과 구조가 유사한 호르몬인 I형 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도 분비되는데, 이 물질은 임신부가 가진 영양분이 임신부의 체내 조직을 합성해 지방을 축적하는 데 쓰이도록 해 태반 발달을 더디게 한다.

태반은 태아의 부속물 이상의 역할을 한다

태아를 중심으로 임신을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태반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보면 태반은 포유류의 태아 발달에 필요한 기관으로서 엄연한 모체의 일부에 해당한다. 기관 또는 장기란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기능적 단위를 형성하는 조직의 집합을 가리키는 말로, 이 정의에 따르면 태반은 심장, 간, 폐 등과 다를 바가 없다.물론 이 태반이라는 기관은 여느 장기와 달리 모체의 일부에 태아의 일부가 결합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인간의 난자와 정자가 만나 형성된 수정란은 세포 분열을 거듭해 50~100여개의 세포로 나뉜다. 이 단계에 이른 수정란을 배반포라고 하며 자궁 쪽으로 이동한 배반포가 자궁 내막에 붙으면 비로소 착상이 이루어진다. 착상된 배반포의 각 부위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게 되는데, 배반포 안쪽 세포 군집은 태아로 자라고 세포 군집을 감싸 안은 바깥쪽 세포층인 영양포는 모체의 자궁 내막과 융합해 태반을 형성한다.이렇게 형성된 태반은 주로 모체와 태아 사이에서 필요한 물질을 교환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모체는 태아에게 산소, 포도당, 아미노산, 단백질, 호르몬, 모체의 항체뿐 아니라 바이러스나 약물 성분, 알코올 등 체내로 들어온 이물질 등을 전달하고, 태아는 모체에게 이산화탄소와 노폐물 등을 전달한다.나아가 태반은 모체의 영양분을 태아에게 제공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태반의 대사 작용으로 만들어진 물질은 태아의 에너지원이 되며 세포 분열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쓰인다. 융모성 생식샘 자극 호르몬, 프로게스테론 등 태반이 만든 다양한 호르몬은 임신을 유지하고 태아에게 적합한 자궁 환경을 조성해 준다. 입덧을 포함한 여성의 임신 경험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면 태아와 모체를 연결하는 태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탯줄로 이어진 태반과 태아. 태반은 착상부터 대략 임신 13주차까지 빠르게 성장한다. 이 시기에 태반은 대개 태아보다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래 사진) 출산 때 배출된 태반. 얇은 필름 같은 양막 아래로 태반의 복합 혈관계(파란색)가, 위로 탯줄(흰색)이 보인다. 사이언스

임신한 여성이 중심 되는 태반 연구 필요하다

 

태아와 함께 생겨나 함께 성장하고, 출산 시 같이 배출되는 태반은 일반적으로 의료 폐기물로 분류되어 버려지지만 다른 한편 태반 주사제의 원료로 재활용되기도 한다. 태반에 태아를 키우고 남은 영양분과 성장 인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는 태반이 태아의 영양 공급원 또는 임신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 정도로 취급되는 현실을 잘 보여 준다.“태반은 임신 기간 동안의 여성과 태아의 건강뿐 아니라 여성과 태아의 평생 건강을 위해 더욱 중요한 기관”인 한편 “가장 이해가 안 된 인간의 장기”이다. 2014년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아동 및 인간 발달 연구소에서 시작된 인간 태반 프로젝트 보고서 서문에 쓰인 말이다. 임신 초기 태반 발달의 영향력은 특히 커서, 임신중독증이라고 불리는 전자간증이나 태아 성장 장애의 발병, 나아가 아이의 성장 과정에 나타나는 성인병 등 각종 질환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상관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힌 연구는 매우 적다.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은 이제껏 태반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수행되었을 뿐 그 자체로 충분히 이해되거나 하나의 장기로 이론화되지 않아 온 점을 강조한다. 태반 연구는 배아 연구나 태아 연구와는 다르다. 후자는 주로 유산되거나 낙태된 태아 표본을 대상으로 하기에 태반의 형태나 발달을 연구하기에 부적합하다. 또한 인간의 태반은 다른 포유류의 태반보다 모체의 자궁 내막에 깊이 밀착되고 막이 얇다는 특징이 있어 유용한 동물 모델을 찾기도 어렵다.

 

임신부 몸의 변화는 과학으로 이해돼야 한다

 

미국 국립보건원 아동 및 인간 발달 연구소 소장이었던 앨런 굿마커는 인간 태반 프로젝트가 출범한 그해 6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대대적인 태반 연구의 시작을 알렸다. 프로젝트의 일원인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소속 시스템생물학자 브라이언 콕스는 지금껏 태반의 상태가 주로 태아의 출산에 비추어 평가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태반 자체의 형태학적 특징과 태반 발달 전 과정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인간 태반 프로젝트에서는 태반 연구의 한계를 극복할 방편으로 임신 기간 동안 태반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기술을 개발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임신한 여성의 동의와 협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과제다. 임신 중인 여성이 단순히 연구의 대상이 되기보다 연구 참여자로서 과학자와 함께 태반 연구를 이끌어 가야 할 필요성과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인류의 절반이 임신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고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의 임신을 통해서 인류가 유지되어 왔음에도 임신은 여전히 신비로운 자연의 영역에 맡겨져 있는 듯하다. 임신에 따른 몸의 변화는 모성으로 감내하기보다는 과학으로 이해되어야 할 영역이다. 그 무엇보다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위해 임신은 더 이상 신비로워서는 안 된다. 태반이 태아를 위해 쓰고 버려지는 물질로 여겨지거나 노화 방지용 주사제의 원료로 쓰이는 것이 아닌, 인간의 장기로서 연구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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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73806.html#csidx11e491a10b43d0c8a4a8ef25f8ce9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