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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선암사(仙巖寺) 은목서(銀木犀) 향기(香氣) 05

깜보입니다 2006. 10. 17. 09:47

어느새 선암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깟 기사 몇 줄 쓰고 선사모냐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전국의 어느 가람보다 제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절이 선암사입니다. 해마다 봄이면 매화 향기 그리운 편이었는데, 이번 가을 행보 한 번으로 은목서 향기 또한 그리워질 것입니다.


^ 이번 글의 모티브인 초원장의 유자숙 님. 사진 안 찍겠다는 걸 억지로 찍었는데, 님의 의사에 반한다면 댓글 달아주시길.

 

^ 초원식당 전화번호 다 보이시나요? 지역번호는 061.

 

그래서인지 요즘 선암사 뉴스를 접하면 걱정스런 마음에 크게는 우리나라 불교를, 작게는 선암사의 앞날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선암사를 찾았던 지난 10월2일은 한바탕 회오리를 겪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 어떤 사태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절 입구에 내걸린 플래카드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절집 안에 종무실 앞에 내걸린 대자보를 읽는 마음은 돌연 무거워졌던 것입니다. 열심히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산대회 결의문


부처님 법(法)을 1600년 동안 단일 문도(門徒)로 사자상승하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법맥이 이어온 우리 조계산 선암사는 전통의 사법(寺法)과 사규(寺規)에 의해서 사찰의 최고 의결기구인 선암사 재적승(在籍僧) 전산대회(全山大會)를 개최하여 본 사(寺)의 사법사규를 부활하고 자주권을 회복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한다.


1. 태고종 총무원은 선암사 불법침탈 음모를 즉각 중단하라.

2. 지난 30일 선암사 주지의 불법해임을 즉각 철회하고 사과하라.

3. 도선암을 비롯한 선암사 재산을 즉각 반환하라.

4. 그동안 총무원에서 일방적으로 제정한 총림법, 운영위법 등은 모두가 불법이니 이를 즉각 파기하라.

5. 선암사의 모든 운영권과 자주권은 선암사 재적승에게 있으며 총무원의 개입을 반대한다.

6. 선암사에 대한 월권과 불법을 자행한 총무원장은 즉각 사퇴하라.


만약 이를 시행하지 않을 때 선암사 모든 재적승은 대동단결하여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수호하고 역대 선조사님들의 법맥(法脈)을 간직한 선암사를 지키고자 총무원의 선암사를 침탈하기 위한 어떤 계략도 즉각 분쇄할 것이다.


조계산 선암사 자주권 수호 비상대책위원회



^ 물봉선

 

전산대회라는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전체 산문 큰 집회라는 뜻이겠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태고종 종정을 비롯한 총무원장의 의지에 반하여 기존의 재적승들이 힘을 합쳐 선암사를 지키겠다는 것인데, 법률적 대표자와 실제 선암사 승려들 사이에 틈이 생겨도 한참 생긴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제가 찾아간 그 때도 선암사 승려들이 종무소에 모여 주야로 순찰을 돌고 번을 서는 일을 밖에서도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인 서기 529년 아도(阿道)에 의해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됐고,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한 뒤 조선 영조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해붕(海鵬)이 중창했습니다. 유일한 태고종 본사로 강원(講院), 선원(禪院), 율원(律院)의 3개 스님 교육기관을 모두 갖춘 사찰로 현재 스님 140여명이 수행 중입니다.


^ 쑥부쟁이

 

그런데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전 주지인 금용 스님측이 총무원이 요구하는 행자 합동 득도 법회를 거부했고, 총무원이 주지직을 해임 결의하고 새 주지로 승조 스님을 임명했는데 이 새 주지에 대한 거부의 몸부림을 꼴사납게 세간에 보여준 것입니다. 승조 스님은 선암사 말사인 암자의 재산을 빼돌린 장본인이라는 주장도 여기에서 불거진 볼상 사나운 일입니다.


피차간의 설전 공방이 몇 차례 진행된 뒤 물리력을 동원하여 새 주지가 선암사에 들어간 것은 여느 세속과 한 치도 틀림이 없거니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경내 각 당우를 본부로 하여(새 주지가 종무소를, 전 주지측은 팔상전을 쓴다고) 양측이 대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리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승려들이 연행되었는가 하면, 양측이 서로를 법률에 고소해 놓고 있어서 일반인들의 걱정은 꽤 길게 오래갈 것으로 보입니다.


차제에 한국 불교의 다양성, 종파와 계파별 역사성을 무시해버린 이승만 정권의 몰지각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종과 교종으로 대별되고 각기 재산권의 독립은 물론 종파별 특성이 엄연했던 한국의 불교였거늘 모든 재산권을 조계종에게 주어버린 독선 내지는 착오는 그렇다치더라도 그런 것을 덥석 받아들인 조계종의 원로들의 모습도 딱한 노릇이었던 것임을 말해두고자 합니다.

선암사의 사태를 보는 일반인의 한 사람인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종파간 다양성을 최우선 가치로 하여 법률이 정하는 최소한의 요건을 제외하고는 사찰별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는 일에 각 종파별 원로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좀더 구체적인 공부를 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만 접습니다.



^ 이름을 알려주세요.

 

 은목서의 향기가 아직도 코끝을 맵돕니다. 매화향서껀 온갖꽃들이 피워내는 선암사의 향기가 오래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은목서의 향기


^ 선암사 뒷간의 향기는 손숫물 확독에도 서려 있습니다.


 

이상 종묘2반 최이해였습니다.

 

출처 : 종묘를 사랑하는 사람들
글쓴이 : 이그저어바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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