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e이야기

의상대사

깜보입니다 2007. 11. 5. 19:58
100년동안 잃어버린 이름, 다시 찾았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지난해를 돌이켜 보는 일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2005년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로 기억됩니다. 그것은 100년 동안 우리 모두가 잘못 알고 사용하였던 내용을 수정토록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 ~ 1101)이 송나라에서 수집하여 간행한 것이 ‘속장’이라고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잘못 표기되어 있던 내용을 ‘교장(敎藏)’으로 바로잡은 일입이다. 국사교과서의 수정은 개인적인 명예를 넘어서 일본학자들에 의한 우리역사의 오류를 바로잡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의천의 교장이 속장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은 1911년에 오노겐묘(小野玄妙)의 「고려우세승통 의천(高麗祐世僧統義天)의 대장경판조조(大藏經板雕造)의 사적(事蹟)」에서 “속대장경(續大藏經)”이라 칭하였고, 1923년에 이케우찌히로시(池內宏)가 쓴 「고려조(高麗朝)의 대장경(大藏經)」에서 “의천의 속장(續藏)”이란 명칭을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1937년에는 오야도쿠죠(大屋德城)가 『고려속장조조고(高麗續藏雕造攷)』라는 책을 간행하여 그 명칭이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후 의천의 ‘교장’은 아무런 의심 없이 ‘속장’으로 불리게 되었고 국내학자들도 그대로 따르게 됩니다. 저 역시 의천의 교장을 속장 내지 속장경으로 배워 그렇게 사용했었습니다.그러던 중 1997년에 보조사상연구회 학술대회에서 대각국사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에 대한 서지적인 검토를 요청받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의천이 송 · 거란 · 일본 등지에서 수집하여 간행한 것은 속장이며, 그 목록이 『신편제종교장총록』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검토해 보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새로 편찬한 제종의 교장 총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각국사 문집』에서도 의천이 수집하여 편찬한 것이 속장경이 아니라 교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나왔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과서 개정은 1997년 10월, 경복궁 동편에 있는 법련사에서 ‘의천의 교장-교장총록의 편찬과 교장간행에 대한 재고찰-’이란 논문을 발표한 지 8년 만에야 이루어 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논문을 발표했을 당시만하더라도 교과서 개정이나 신문에 연구 성과를 발표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논문만 발표하면 제가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알려져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2004년 4월에 순천 송광사 사천왕상 복장에서 ‘속장경’ 12종 14점을 발견했다고 각 신문에서 보도한 것입니다. 속장경은 대장경(경·율·논 삼장 또는 일체경, 불교 경전의 총서를 말한다)의 속편이나 후편을 뜻하는 것인데, 마치 대장경의 속편이 나온 것처럼 떠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송광사에서 발견된 것은 속장이 아니라 교장이었습니다.‘의천의 속장’이 아니라 ‘교장’이란 논문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속장’으로 불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발표된 논문이 있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언론사에 ‘의천의 ‘속장’은 틀린 표현이라고 이의(異議)를 제기했더니, ‘교장’이란 말은 아무도 모르는 용어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발표한 논문은 오래 전의 일이라 신문에 소개할 만한 기사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속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교과서를 바꾸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논문만 발표한다고 해서 바꿔질 교과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육인적자원부에 전화를 하여 교과서 수정 절차를 알아보고 『보조사상』11집(1998.2)에 발표한 논문을 보내고 수정건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국사 교과서 담당인 이충호 장학사가 일본 역사교사서 왜곡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경험이 있어 이해가 빨랐습니다. 당연히 수정에 대한 관련절차를 밟았겠지만, 그 장학사 덕분에 수월하게 고쳐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2005년도 신학기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2005년 3월1일 교학사 발행) 272쪽에 ‘속장(續藏)’ 대신에 ‘교장(敎藏)’이란 용어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KBS 방송국의 역사스페셜(1월27일 방영)에서 대각국사 의천에 관련된 프로가 방영되었는데, 출연자 모두가 ‘속장’이란 말은 사용하지 않고 ‘의천의 교장’으로 표현해준 것도 바로 교과서가 수정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교과서 수정은 단순히 용어를 고친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이며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밝히는 뜻 깊은 작업이었습니다.

교장(敎藏)이란 의천이 세계 각국에 있는 대장경에 대한 연구논문을 최초로 모두 수집하여 간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 이후 오늘까지도 속장(續藏), 속장경(續藏經) 또는 속대장경(續大藏經) 등으로 잘못 불리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역사학자들까지 의천이 수집하여 편찬한 제종의 교장을 대장경의 후편 내지 속편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해인사 고려대장경판도 그 범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조선조에 판각한 사간판(寺刊板)까지도 대장경으로 잘못 이해하는 게 현실입니다. 심지어 저명한 역사학자까지도 “해인사 고려대장경은 초조대장경과 의천의 속장을 포함해서 만들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의천이 수집하여 간행한 ‘교장’은 『대각국사문집』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의천이 19세 때(1073) 쓴 「대세자집교장발원소(代世子集敎藏發願疏)」를 비롯하여「기일본국제법사구집교장소(寄日本國諸法師求集敎藏疏)」,「신편제종교장총록서(新編諸宗敎藏總錄序)」,「대선왕제종교장조인소(代宣王諸宗敎藏彫印疏)」 등에 나타나듯이, 의천도 교장이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의천은 불교를 널리 펴는데 있어 대장경에 대한 연구서의 필요성을 일찍부터 자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세 때인 1073년, 경과 논은 비록 갖춰져 있더라도 장소(章疏;연구주석서)가 없다면 법을 펼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불법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서 국내는 물론이고 요나라와 송나라에 있는 백가의 연구서를 모두 한곳으로 모아서[百家之科敎, 集爲一藏] 널리 유통시키고자 발원하였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장소를 수집했는데, 가장 획기적인 수집활동은 1085년 4월에 임금과 모후에게 편지를 남기고 송나라에 들어간 14개월 동안입니다. 송나라에 있으면서 50여 명의 고승을 만나 각종 교리 문답을 하였고, 1086년에 귀국할 때는 『화엄대부사의론(華嚴大不思議論)』 등 제종(諸宗; 여러 종파)의 교장 3천여 권을 수집하여 귀국하는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의천은 귀국 후에도 송나라에서 사귀었던 고승들과 계속 연락하면서 국내에 없는 장소(章疏) 수집을 계속하였고 마침내 국내는 물론 거란 일본에까지 두루 장소를 수집하여 선종 7년(1090)에 『신편제종교장총록』이라는 목록을 편찬하였습니다.

의천은『신편제종교장총록』의 서문에서 대장경 목록으로 가장 충실한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과 같은 수준의 완벽한 장소목록을 만들기 위해, 20년간의 노력 끝에 편찬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아무런 목록도 없었고, 조사(祖師)들의 저술은 널리 유통되지도 못하고, 국내로 전해 오는 장소 가운데는 내용이 뒤섞인 것이 있으며 잘못되고 빠진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수집한 장소는 반드시 교감(校勘)을 거쳐야 했고,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은 수록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조선시대까지 내려오면서 세계적인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의천의 교장 간행은 당시 고려를 축으로 송, 거란, 일본 등 동북아시아를 불교문화로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의천의 교장은 세계 불교문화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천이 수집한 것은 대장경이 아니라, 대장경 연구에 필요한 논문을 세계 최초로 집대성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각국사 의천이 수집·편찬하여 간행한 것은 대장경의 속편인 속장이 아니라, 연구논문인 교장인 것입니다.



▷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상국
게시일 2006-11-23 12:4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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