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원릉 봉분 억새풀 이야기 | ||
건원릉은 구리시 북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동구릉에서도 제일먼저 조성된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가 모셔진 왕릉입니다. 일반 능원에서는 사초지의 잔디를 수시로 벌초하지만 건원릉 봉분의 사초는 잔디가 아닌 억새풀로 일년에 한번만 벌초를 합니다. 이러한 궁금증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적어봅니다. 태조는 고려 충숙왕 복위 4년(1335) 10월11일에 화령부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함흥에서 성장하여 백두산과 압록강, 두만강 일대는 무예를 익히는 수련장이었고 용맹과 활솜씨가 뛰어났습니다. 건원릉은 태조 이성계가 1408년 5월24일 창덕궁의 별전에서 돌아가시고 그해 9월9일 자시(23-01시)에 임금님이 영구(靈柩)를 받들어 임광제(臨壙祭-광(壙):시신을 묻기 위해 판 구덩이)를 행하고 현궁(玄宮)을 검암(儉岩)에 계좌정향(癸坐丁向-북북동에서 남남서방향)의 언덕에 봉안(奉安) 하였으니 지금으로부터 598년 전에 조성된 왕릉입니다. 어느 가정이나 마찬가지로 왕릉에서도 일년에 한번은 제사를 지낸답니다. 왕릉에서는 제향(祭享)이라고 해서 사람과 신이 접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각 봉향회(奉香會)벌로 조성된 전주이씨 종친들이 제향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원릉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주관으로 옛날 형식으로 제사를 재현하는 산릉제례(山陵祭禮)를 매년 6월27일 거행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기억해 두셨다가 가족과 함께 구경하심도 좋은 추억거리가 되실 것입니다. 오시는 손님이 대략 2,000명 내외로 전국 각지의 전주이씨 종친뿐 아니라 일반국민, 학생, 남녀노소 등 다양한 계층의 참배객들이 행사를 참관하고 있습니다. 동구릉은 조선 왕릉의 일대 가족묘를 상징하듯 16분상 17위의 왕릉이 조성된 조선제일의 명당자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문에서 100m 올라가면 다른 능과 비교가 되는 홍살문이 서있습니다. 대개 능 앞에 홍살문이 있지만 동구릉만은 정문 입구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면 머리를 조아리라는 의미의 붉은 석간주(石間) 색칠을 한 신문(神門), 홍문(紅門), 홍전문(紅箭門), 홍살문 등으로 불리어지는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박아 놓고, 가운데에는 태극 문양으로 조성된 홍전문(紅箭門)이 먼저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동구릉에는 ①태조 건원릉 외에도 ②제5대 문종 및 현덕왕후 권씨의 현릉 ③14대 선조 및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의 목릉 ④16대 인조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휘릉 ⑤18대 현종 및 명성왕후 김씨의 숭릉 ⑥20대 경종 비 단의왕후 심씨의 혜릉 ⑦21대 영조 및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원릉 ⑧24대 헌종 및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의 경릉 ⑨추존 문조 및 신정왕후 조씨의 수릉(24대 헌종 부모)이 1855년 8월26일 안장되면서 이곳을 동구릉이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며 450여년 간에 걸쳐 왕릉이 조성되었던 역사적인 문화공간임에 틀림없습니다. 동구릉을 관람하시면 우측으로 세 번째 능에 다다르면 봉분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는 건원릉 억새풀이 보입니다. 다른 능원은 일년에 한두 번 이상은 봉분의 벌초를 하지만 유독 건원릉 봉분만은 벌초가 되어 있지 않고 억새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니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의문점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한 구경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한번쯤은 시간을 내시어 직접 방문해 보셔도 시간이 아깝지 않으실 겁니다. 이번 기회에 건원릉 봉분의 억새풀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하시고 주변에 다른 사람에게도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억새풀은 사전적 의미로 볏과의 여러해살이풀, 참억새와 비슷해 꽃 이삭이 좀 짧고, 잔 이삭은 까끄라기가 없으며, 들이나 물가에 자라는 다년생 풀로 풀이되었습니다. 또한 봉분의 억새풀에 대해서는 관리자나 사무실 직원, 정문의 매·수표 근무자들에게 반드시 물어보는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억새풀에 대해서 명쾌하게 대답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태조의 유언에 따르면 항상 고향 함흥을 그리워하며 내 죽으면 함흥 땅에 묻어달라고 하였습니다. 태조가 승하하고 태종이 아버지 태조를 한양(서울)에서 몇 백리나 멀리 떨어진 함흥 땅에 묻는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모양새가 좋지 않고, 살아서 사이가 좋지 않은 견원지간으로 비쳐진 함흥차사(咸興差使-조선 초 함흥으로 간 이성계를 모셔 오기 위해 태종이 보낸 사신. 이성계(李成桂)는 왕자의 난으로 두 아들 방번(芳蕃)·방석(芳碩)과 정도전(鄭道傳) 등 심복을 잃고 정치에 뜻이 없어져, 정종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1401년 고향 함흥으로 갔다는 뜻)란 얘기가 전해오듯이 태종이 살아생전 아버지의 노여움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자 함흥으로 여러 번 차사(差使-중요한 임무를 위하여 파견하는 임시직)를 보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성계는 사신들을 잡아가두고 돌려보내지 않거나,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을 때나 회답이 더딜 때의 비유(比喩)로 함흥차사란 말이 쓰이기도 합니다. 태조 이성계는 죽을 때 고향인 함흥 땅에 묻히기를 원했으나 뜻을 따르지 못한 아들 태종이 대신해서 함흥 땅의 억새풀로 봉분을 해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억새풀은 자르면 죽어버리는 성질이 있어 추석을 전후해서 벌초를 하지 않고 가을이 지나도 그대로 두었다가, 겨울이 지나고 한식이 되어서야 한차례 벌초를 하는 것입니다. 건원릉 봉분 억새풀을 베기 위해서 직원들은 한식이나 청명 날에 미리 준비해둔 마른명태와 막걸리를 한잔 부어놓고 정중하게 재배를 드린 후에 풀베기작업을 시작합니다. 억새풀을 자르면서 먹는 막걸리 맛은 정말로 일품입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막걸리 한잔을 마시는 그 기분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90년대 후반 무렵일 것입니다. 건원릉 병풍석이 이완되어 본청에서 직접 사업을 발주하여 병풍석 바로잡기 공사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병풍석을 해체할 때 일일이 고유넘버를 표시해두고 혹시라도 순서가 뒤 바뀌는 것을 대비하여 감독자는 만반의 공사 준비를 체크하여 바로잡기 공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안전에 대비해 봉분위에 천막을 쳐놓았는데 그로 인한 햇볕 차단으로 정상적인 생육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봉분 억새풀에 물주기를 소홀히 하여 중앙 부분이 말라죽게 되었습니다. 공사는 마무리작업을 하고 철수를 하였지만 봉분의 억새는 생육이 불량하였습니다. 직원들은 궁리 끝에 건원릉 바로 우측 14대 선조의 능인 목릉 북동쪽 중앙에 다행하게도 자라는 억새가 있어 한식을 전후해 억새 일부를 옮겨 심어 무사하게 봉분의 사초를 푸르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럼 태종이 아버지 태조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효도하고자 유년기 시절 활을 쏘고 무예를 익히면서 자란 고향땅 함흥 억새풀의 유래에 대하여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인조 020 07/03/19 (올해) 001 / 홍서봉이 건원릉의 사초에 대해 아뢰다 상이 주강에 자정전에서 《서전》을 강하였다. 동경연 홍서봉(洪瑞鳳)이 아뢰기를,“건원릉(健元陵) 사초(莎草)를 다시 고친 때가 없었는데, 지금 본릉에서 아뢰어 온 것을 보면 능 앞에 잡목들이 뿌리를 박아 점점 능 가까이까지 뻗어 난다고 합니다. 원래 태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북도(北道)의 청완(靑)을 사초로 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다른 능과는 달리 사초가 매우 무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무뿌리가 그렇다는 말을 듣고 어제 대신들과 논의해 보았는데, 모두들 나무 뿌리는 뽑아버리지 않으면 안 되고, 사초가 만약 부족하면 다른 사초를 쓰더라도 무방하다고들 하였습니다.”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식(寒食)에 쑥 뿌리 등을 제거할 때 나무뿌리까지 뽑아버리지 않고 나무가 큰 뒤에야 능 전체를 고치려고 하다니 그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지금이라도 흙을 파서 뿌리를 잘라버리고 그 흙으로 다시 메우면 그 뿌리는 자연히 죽을 것이다. 예로부터 그 능의 사초를 손대지 않았던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였던 것이니 손을 대서는 안 된다.”하였다. (원전) 34 집 321 면【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궁관(宮官) 유교(遺敎) : 遺(끼칠 유) 敎(가르침 교) 유명(遺命) : 遺(끼칠 유) 命(목숨 명, 명령을 내리다) : 임금이 죽을 때 남긴 명령. <동의어> 유교(遺敎)①. 청완() : 靑(푸를 청) (물억새 완) 사초(莎草) : 莎(향부자 사) 草(풀 초) 잔디. 사초 : 무덤에 떼를 입히는 일. 인조 028 11/12/22 (경진)001 / 예조가 능의 풀에 대해 건의하다 예조가 아뢰기를,“신들이 삼가 본조의 낭청이 각릉(各陵)에 부정이 있나 없나를 조사하여 올린 서계를 보건대, 동도(東道)와 서도(西道)가 각각 같지 않았습니다. 서도에 있는 능들은 사초(莎草)가 모두 무성하다고 하였고 잡초가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며 동도에 있는 능 중에서 사초가 무성한 곳은 한두 능에 불과하다고 하였는데, 동도와 서도가 의당 이와 같이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이른바 사초라는 것은 바로 모화관(慕華館-조선시대에, 중국사신을영접하던곳.)에 있는 풀로 그 잎은 가늘면서 짧고 그 뿌리는 연결되어 땅의 표면을 덮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 능에 쓸 때에는 반드시 여기서 가져갔습니다. ......생략 ‘건원릉(健元陵)의 사초가 모화관의 사초와 다르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능위에 이 풀만 남겨 두고 그 밖의 잡초를 모조리 제거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릇 능위에 풀이 빽빽이 우거져 이즈러진 곳이 없는 곳은 사초니 잡초니 논할 것 없이 모두 바꾸지 말게 하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다만 ‘영릉(英陵)에는 잡초가 다른 곳보다 몹시 무성하다.’ 하니, 아마도 바꾸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능침에 관한 일은 중대하므로 대신과 의논하소서.”하니, 상이 따랐다. 【원전】 34 집 541 면【분류】 *왕실-종사(宗社)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내용처럼 원래 태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북도(北道)의 청완(靑) 억새풀을 사초로 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다른 능과는 달리 사초가 매우 무성하다는 것을 이해하셨다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허락하시면 건원릉을 방문하시어 지금도 봉분에 억새가 잘 자라고 있는지 관찰해보시면서, 살아있는 조선왕릉 탐사가 되시기를 고대하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재청 고양지구관리소 이승회 | ||
게시일 2006-12-21 13:15: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