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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행사 이야기 [송대성]

깜보입니다 2007. 11. 5. 20:56
현충사 행사 이야기 [송대성]

현충사 행사 이야기
 
  금년도 4.28행사(충무공 탄신기념 다례)를 마치고보니 내가 이 행사만 금년까지 꼭 23번 치루고 있는 셈이다. 
  어찌 보면 4.28 행사만큼은 전문가가 다 되어 이골이 날 듯도 하지만 매번 긴장되고 어렵다고 느껴진다. 순수한 문화유산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관련행사 이야기라서 여기에 적합한지 의문이나 행사는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이에 따른 대처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에 행사를 준비하는 우리 청 직원들에게 참고로 내가 겪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1981년 4.28행사 때 일이다. 본전 다례행제가 한참 진행 중인데 갑자기 휴게소 다과회장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날 아침부터 부슬부슬 안개처럼 조금씩 내리던 비가 조금 굵어지는가 싶더니 다과회장 내 천정에서 누수 되어 하필이면 음식이 세팅 되어있는 메인테이블로 물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기와 번와 공사를 한 터라서 그럴 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달려갔다. 지붕에 올라간 관리과 직원이 말하길 기와는 멀쩡한데 기와 빗물이 모여 처마홈통으로 흘러가는 물길의 세멘바닥이 움푹 파인데다 금이 가 있어 물이 이곳에서 금을 따라 천정으로 흘러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행사준비 기간동안 비가오지 않아 이런 상태인줄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다과회가 행사간소화에 따라 폐지되었지만 당시 4.28행사는 본전에서 다례 행제를 끝마치면 경외 주차장에 있는 휴게소에서 다례행사 초청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빈 주재로 다과회, 일명 칵테일파티를 갖도록 되어 있었다.

  그 해 주빈은 취임한 지 두 달도 되지 않는 전두환대통령으로 본전 다례 행제 후 활터에 들러 전국시도대항 궁도대회 시궁을 마치고 오기 때문에 다과회장에 곧 도착할 예정이었다. 다행인 것은 움푹 파인 곳에 모인 빗물을 국자로 다 퍼내니 천정의 물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문제는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지고 있어 다과회 중에 또다시 누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방법은 단 하나 계속 지붕에서 국자로 물을 퍼내는 것 뿐 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직원으로 하여금 기와 밑 물길에 엎드려 행사가 끝날 때 까지 물을 퍼내도록 하였다.

  우리는 다과회장에서 천장만을 바라보면서 제발 빨리 끝나기만을 안절부절 애를 태워가며 기다려야 했다. 별 탈 없이 행사가 끝나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비상시 대비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 주는 사례라 하겠다.

  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해(89년인지 90년인지 불명)에는 이보다 더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주빈이 도착하기 30분도 남지 않았는데 본전에서 분향용 향로가 다리가 주저앉았다는 긴급연락이 왔다. 
  향로는 다례행사 중 헌관과 주빈의 분향에 쓰이는 가장 중요한 제기로 향을 피우기전 숯으로 먼저 밑불로 피우는 데 숯을 너무 많이 넣어 과열로 향로 몸체와 다리를 접착한 부분이 녹은 것이다. 예비용 향로 1개 마저도 녹아내려 향상에 올릴 향로가 당장 없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곧 도착할 텐데 시간은 없고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 때 주민 중에 제례용 향로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동네에 거주하는 직원들에게 알아보니 다행이 한분이 집에 향로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집에 향로를 꺼내놓도록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운전원을 독촉, 업무용 차량에 탑승하여 동네로 향했다. 정문에서 제지하는 경호원에게 사태의 긴급성을 설명하니 통과시켜 주었다. 막상 집에 가보니 향로는 있는 데 녹이 나서 문제였다. 
 
별 수 없이 나는 본전으로 가져가는 동안 차 적재함에 남아있는 가는 모래(세사)로 광내는데 온 힘을
쏟아야 했다. 본전에 향로를 가까스로 전달하고 우회도로를 내려가며 보니 대통령 일행이 홍살문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5분만 늦었어도 행사를 망칠 뻔 했던 것이다. 밑불로 넣을 숯의 양 조절 같은 사소해 보이는 것도 행사전체를 그르칠 수 있다는 교훈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주빈으로 참석한 93년에는 다례행사 제관으로서 뼈아픈 경험을 했다.
다례행사 제관은 관리소장이 담당하는 헌관, 헌관을 보조하는 집사, 축문을 낭독하는 축관 그리고 행사진행의 사회를 맡은 집례 등 4명인데 나는 집례를 담당하였다.

  제례의 하이라이트는 주빈의 헌화,분향 부분인데 행사 순서상 “다음은 대통령이 헌화,분향하시겠습니다. 모두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집례의 멘트가 떨어지면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헌화병 2명이 들고 있는 헌화에 손을 얹고 본전에 따라 올라와 제상 앞에 있는 헌화대에 헌화한다.

  다음은 분향 순서로 향합에 있는 목향을 3번 집어 향로에 넣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묵념한다. 이때 주빈의 묵념 조금 후에 집례는 “일동 묵념”을 외쳐 참석한 초청인사들이 주빈을 따라 묵념하도록 안내한다. 주빈의 묵념 조금 뒤에 안내멘트를 하는 것은 집례가 대통령에게 묵념을 시키는 결례를 하지 않도록 함이었다.

  지금은 권위주의적인 색채가 없어져 이를 문제시 하지 않는다고 하나 당시는 이를 꽤 중시해서 집례가 가장 지켜야할 사항으로 강조되어 왔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부분에서 발생하였다. 헌화를 마친 김영삼 대통령이 한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분향도 묵념도 하지 않은 채 마냥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처음에는 충무공의 영정 앞에서 국정운영을 위한 다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상태가 너무 길어지자 불안해 지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제관들도 내 얼굴을 바라보는 등 무언으로 나의 멘트를 재촉하는 지경이었다.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하였지만 계속 그 상태가 계속되자 대통령이 내 멘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고 어쩌면 기독교 장로인 대통령이 경례를 하지 않으려고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마침내 참다못한 나는 “일동 묵념”을 외치고 조금 후 “바로”를 했다. 그런데 묵념을 마친 대통령이 성큼 향로 앞으로 가더니 분향을 하고 다시 묵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순서절차도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결례를 한 꼴이 되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문책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행사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별고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을 아는 것은 제관들 외에는 대통령과 수행한 장관뿐 이고 초청 인사들은 단하에서 전혀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알려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나는 당시 대통령이 왜 그렇게 오래 동안 계속 서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주빈에 대한 행동요령 전달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좀 더 기다려 보겠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이를 계기로 공식행사시 절차준수의 중요성을 통감하였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서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