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장문화재埋藏文化財’라는 말은 아직도 일반 국민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여겨질 것이다. 따라서 ‘발굴 조사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문화재’라고 하는 편이 매장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겠다. 이에 대해서는 그럴 만한 까닭이 없지 않다. 『문화재보호법』에 명시된 매장문화재의 정의에 따르면, “土地·海底토지·해저 또는 建造物건조물 등에 包藏포장된 文化財문화재”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의 존재 여부 그 자체를 인지하는 일은 물론이고 그 모습을 비교적 원상 그대로 살려내기 위해서는 땅이나 수면 등 피복 물질을 정교하게 제거하는 과정, 즉 발굴 조사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장문화재, 왜 중요한가?
사실, 매장문화재埋藏文化財라는 말은 특정 문화재가 남아 전하는 양태를 기준으로 분류한 용어이므로 문화재 그 자체에 대한 본질적 의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문화재文化財’가 무엇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현행 용어의 한자적 의미로 보는 한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서 재화적 가치를 가지는 것(물건)’이라 풀이될 수 있겠다. 그런데, ‘재화적 가치’라는 것은 현재적 관점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으로서 문화 행위를 행하였던 과거 사람들의 입장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문화재’보다는 ‘문화유산’이 알맞다는 지적은 그러한 문제의식의 발로로서 찬성할 만하다. 그것은 ‘문화재’ 혹은 ‘문화유산’이라는 말에 포함된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매장문화재에 대해 보다 실제적으로 다가서기 위한 핵심 키워드가 된다. 문화란, 인간이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살아 나가는데 필요한 것으로서 생물학적 제한을 받는 신체 이외 일체의 모든 수단이라 정의할 수 있다.
특정 시기의 문화는 다양한 행위, 즉 문화적 행위로 나타나며 그러한 각각의 문화적 행위는 거의 대부분 물질 자원을 수반하게 된다. 21세기의 문화 속에서 문화 행위를 하는 개별 주체가 되는 각자의 하루 생활을 돌이켜 보면 그러한 점은 분명해 질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다시 잠들 때까지의 행위는 거의 모두 문화적 행위이고, 그 행위 전반에는 수많은 물질이 매개되어 있다. 그런데 특정 시기의 문화 행위에 부수되었던 물질 자료 가운데 형태를 유지한 채 남아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해당 물질의 재질이나 그것이 놓여 있는 환경 등에 따라 다르며, 적어도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은 역시 토지나 수면 등에 의해 덮여 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문화유산은 매장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 즉 매장문화재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땅속이나 수면 아래 남아 있는 과거 문화 행위의 산물이 곧 매장문화재 혹은 매장 문화유산인 것은 아니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난관을 견디고 지중에 남아 있더라도 마지막 관문, 즉 현재의 우리들에게 인식되지 않으면 이를 매장문화재라고 인정할 수 없다. 매장되어 있는 문화유산이 알려지게 되는 가장 큰 기회는 역시 국토 개발이며, 그 정도는 경제 성장에 비례한다. 매장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조사 연구에 대해 앞선 나라가 곧 선진국임은 이러한 사정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매장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조사 연구는 매장된 문화재에 대한 그 중요성이나 가치를 자세히 거론할 겨를은 없으나, 한 마디로 말해 과거의 인간 문화 실상에 다가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어느 작가는 “과거를 아는 일은 밤하늘의 별을 아는 것만큼이나 놀랄만한 작업이다.”라고 하였듯이 과거를 아는 것은 첨단기술이 눈부신 지금에도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한 인간의 인격적 성숙에 있어 자신의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함을 알듯, 한 민족 혹은 한 국가의 역사적 정체성은 세계화된 오늘날에 이르러 더욱 절실함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최근 동북아시아에서는 한·중·일 삼국 사이의 ‘역사 분쟁’이 진행되고 있거니와 이럴 때일수록 그 원천 자료라 할 문화유산 특히 매장 문화유산에 대한 우리의 성숙한 이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

매장문화재를 둘러싼 각양각색의 문제들
매장문화재의 발견 소식은 그 특성상 늘 참신하여 거부감이 없으며, 특히 민족 혹은 국민적 정체감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크든 작든 역사적 긍지를 강한 여운으로 남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매장문화재와 관련된 뉴스에는 집단 민원이 수반되기도 하고 관련자들의 비리로 얼룩진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 포착되곤 한다. 사실, 그러한 점은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에나 있을 수 있는 그늘진 모습의 단면이라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필자는 바야흐로 매장문화재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징후로 받아들이고 싶다.
매장문화재의 발견 및 조사 연구의 기회는 한 나라의 경제 성장 정도에 비례하고 있다는 점은 전술한 바로서, 우리나라의 경제적 성취는 세계적으로도 눈에 뛰는 압도적인 사례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국토 개발에 수반된 매장문화재의 발견 및 조사 연구의 빈도는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1946년에 처음 우리 스스로 발굴 조사를 시작한 이후 1990년까지는 비교적 완만하게 증가하였으나, 1991년에 조사 건수가 100건을 넘어선 이후 거의 수직선에 가깝게 급격히 폭증하면서 2004년 말 이후에는 마침내 1,000건을 돌파하여 2006년에는 1,300건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우리와 유사한 역사문화 환경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예에 비추어 볼 때 2015년경 약 10,000건을 넘어서는 정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매장문화재의 발견 기회 및 조사 연구의 수요(이하, 조사수요라 한다)는 그간의 문화재보호법 관련 조항의 신설 및 보완 등 일련의 매장문화재 정책의 성공적인 피드백이라 할 수 있으며, 고도 성장기 국토 개발 수요에 부합된 적절한 정책적 노력의 결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관련 법률에 의해 발생되는 조사수요에 대처할 조사 인력 및 조사 기관 등 매장문화재 조사 연구 및 공급 분야에 대한 제도적 보완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시기상으로 가장 처음, 국토 개발의 수요와 무관한 학술적 목적의 매장문화재 조사 연구 주체는 국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 등이었는데 이들의 역할은 이후에도 이어졌으며, 1994년에 들어 처음으로 구제 조사, 즉 개발에 따른 조사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기관이 지역 학계 주도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대학박물관이 조사수요의 대부분을 담당했던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른바 발굴 조사와 관련된 비리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민간 주도의 전문법인의 설립이 점차 많아져 2006년을 기준으로 현재 38개 전문 조사 기관이 설립·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현재 조사수요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재단법인은 목적 사업을 위해 출연된 재산을 모태로 하는 것임은 잘 아는 바와 같은데, 현재 매장문화재 조사수요를 담당하는 법인들의 재원은 조사를 담당하는 고고학계 또는 개인 등 민간에서 출연한 영세한 재원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는 여러 가지이겠으나 우선 열악한 시설을 필두로 전문 인력의 재생산에 따른 적절한 처우의 어려움, 기관 운영의 불투명성 등으로 나타나며, 이들이 매장문화재 보호와 활용을 목표로 하는 국가 정책적 수요에 부응하는 공익성·공공성 높은 공급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법률에 의해 발생되는 매장문화재에 대한 국가적 수요를 거의 전적으로 민간에만 의존하고 있는 경우는 선진 여러 나라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민간의 창의가 매우 중요한 기업 활동 영역에서는 국가의 간섭이 적을수록 혹은 민영화가 이뤄질수록 그 효율성이 제고될 수 있음은 잘 아는 바이지만, 그 결과물이 국민 공유의 자산이 되는 매장문화재를 두고 발견부터 조사 연구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민간에만 일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부 조사 기관들의 일탈 사례는 이러한 근본적인 배경과 무관하지 않으며, 조사수요에 적기 대응하지 못하는 본질적 요인인 조사 전문 인력의 태부족 현상 역시 이른바 3D로 인식되는 열악한 현장 근무 여건에 상응하는 합리적 보수와 장기적 신분 안정 등의 문제들이 선결되어야만 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임에도 민간 조사 연구 법인들은 2006년에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이하 한문협)를 결성하고 나름의 표준화와 공공성·공익성 제고를 위해 여러 모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민법에 의해 설립된 사단법인체로서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따라서 이와 같은 문제점을 잘 아는 문화재청에서는 한문협의 특수법인화를 위해 입법안을 국회에 발의해 놓고 있으나 아직 법안 처리가 계류 중이다. 이것이 조속히 매듭지어지지 않으면 당장 한문협의 운영 재원부터가 문제이며, 민간법인 나름의 자생적 노력은 허망하게 무너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대책은 있다!!!
연중 일하기 좋은 계절이란 없다. 발굴 조사 현장을 비롯한 야외 작업에 종사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말의 뜻을 잘 이해할 것이다. 특히 장마가 끝난 요즈음의 일기란 더 말할 것이 없다. 이 시간에도 국토 개발에 따른 매장문화재의 보존을 위해 그 발견·조사·연구에 많은 땀방울을 흘리는 사람들이 현장에 있다. 사실 조사 현장에 근무하는 조사 인력들은 최근 매장문화재를 둘러싸고 회자되는 여러 문제에서 책임을 추궁해야 할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노고의 대가는커녕 싸잡아 매도되는 억울함을 하소연할 길이 없는 피해자들일 뿐이다. 이제, 이들을 위해서라도 희망의 미래를 상정하고 그 길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간 조사 공급 부문의 제도화에 상대적으로 등한시하였던 국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 없이는 근본적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일석일조에 달라질 수 없으며, 첫술에 포만감을 느끼려 해서도 안 될 것이지만 나름의 길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매장문화재 조사·연구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안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므로, 당연히 공급이 확대되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즉, 조사·연구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특정 분야의 전문 인력 확보는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며, 인적 자원이란 물적 자원처럼 한 차례에 걸쳐 일괄적으로 공급한 다음 사후 관리 없이 방치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약 1,000명 정도의 전문 인력이 활동하고 있으나 2006년을 기준으로 현재 약 400명이 부족하다. 대학의 고고학 관련 학과에서 배출되는 졸업생이 연간 800명 정도인 현실에서 이러한 부족 현상은 기이하다 할 것이지만 전술한 문제들로 인해 매장문화재 조사·연구 분야에 종사를 희망하지 않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들이다. 그러므로 그 대책은 자명하다. 전문 인력에 대한 합리적 보수 제공, 자기 발전을 위한 근무 여건 개선, 신분 안정 등 장기적인 비전 제시 등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예산이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현재의 조사수요에 적기 대응하지 못함에서 야기되는 사회적 비용이 필자가 추산하건대 연간 3,000억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적절한 정책적 방안 마련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하겠다. 개발에 따른 매장문화재 지표 조사 의무 면적을 상향 조정하여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은 애당초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형국일 뿐이며, 조사원의 신규 확보 없이 지금과 같은 성격의 민간 조사 기관의 수만을 늘리는 것 역시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전문 인력 공급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은 그 실현의 용이성이나 시의성 등에 따라 단기 대책과 중장기 대책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한문협의 특수법인화와 전문 인력의 자격 법정화, 한문협 소속 회원 기관에 대한 공영화 확대, 고령 전문 인력의 활용 방안 마련 등이 골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매장문화재 현장 조사 이후의 처리 문제이다. 사실 개발과 관련해 유발된 구제 조사의 경우 조사 과정 그 자체보다는 이후의 처리 과정에 대해 첨예한 사회적 관심이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조사 후 현장 보존은 당초 개발 계획의 무산을 의미하므로 민간 시행자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생사여탈이 결정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재청 관련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되어 문화재청장이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최근 사회 문제로 비화된 예들로 보아 몇 가지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장 보존 결정의 객관적 기준 마련이다. 예컨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될 수 있는 정도의 중요성을 가진 것만을 대상으로 한다든지 하는 등의 것과 같다. 사실 발굴 조사가 완료된 유적은 학계만의 관심 대상일 수는 없다. 고고학 자료를 충분히 추출하는 과정이 발굴 조사이므로 이를 완료하였다는 것은 곧 해당 문화재에 대한 학술적 자료를 완전히 확보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적 중요성이나 국민적 관심에 의해 그 장소는 현장에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이때는 무엇보다 국민들의 공감 혹은 동의가 결정의 핵심 사안임은 두 말할 필요 없다. 그러한 결정이 내려지면 대상 유적에 대한 토지 매입이나 정비·복원 등의 조치가 최우선으로 원활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그 과정이 원활하지 않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어 마치 그 지역이 혐오 지점으로 전락되며, 애써 사회적 비용을 들여 발견·조사한 문화재가 제 가치를 잃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러한 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처 간 조정이 원활한 수준의 정부 기구 산하에서 ‘문화재보존활용위원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학계의 전문가로만 구성된 현행 문화재위원회와 달리 각계의 전문적 의견을 참고로 객관적이고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사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총리 산하에 이러한 기능을 하는 위원회를 두고 있는 일본의 예가 참고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행 매장문화재 발견·조사 등과 관련한 행정 절차의 합리적 조정이다. 이는 기간 경과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문화재보호법 관련 조항의 시행령에는 모든 발굴 조사의 허가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게 되어 있다. 순수 학술적 목적을 위한 발굴 조사의 경우라면 이러한 절차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겠으나, 개발에 수반된 구제 조사의 경우에는 매장문화재가 발견되면 반드시 시굴 혹은 발굴 조사를 해야 하므로 굳이 그 허가 여부의 심의를 위해 문화재위원회의 개최를 기다릴 까닭이 없다. 그러므로 발견 즉시 지표 조사 결과 신고에 이은 시굴 조사, 발굴 조사, 계획 신고, 접수로써 허가에 갈음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어느 무엇보다 필요하다 말할 수 있겠다.
▶글 /사진 제공 : 박순발 교수(충남대학교 고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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