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제1전시실에서는 ‘제17회 곰달래 서각전’이 열렸다. 이 전시회에서는 김상철 선생을 포함해 그의 문하생 35명의 서각 작품 65점이 선보였다. ‘서각書刻 분야의 장인’이며,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刻字匠 제4호’ 이수자로서 서각의 혼과 맥을 잇고 있는 석촌 김상철 선생. 이날, 서각전이 열리고 있는 경인미술관 전시실에서 그와의 만남을 가졌다.
지난 27년간 ‘서각’이라는 한 우물을 파며 서각을 계승하고 맥을 이어온 사람, 그가 석촌石村 김상철 선생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는 묵묵히 ‘서각’ 하나에 자신의 일생을 바쳐 왔으며. 생계의 위협 속에서도 꿋꿋이 서각을 만드는 전업 작가로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그의 서각 한 작품, 한 작품에는 땀과 열정, 정성이 녹아 있어 산술적인 값어치를 환산할 수 없다. 또한 그는 다작多作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서각은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완성되기까지의 기간을 좀처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작품이라도 짧게는 열흘이며, 270자가 들어가는 ‘반야심경’의 경우는 6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원래 서예를 했던 김상철 선생은 우연히 서각 작품을 접한 뒤, 그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서각의 섬세하고 오묘한 작품 세계를 경험한 그는 ‘철재 오옥진 선생’을 찾아 사사받기를 청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현대적 감각을 접목시켜 높은 예술 가치를 창조하는 종합 예술, ‘서각’ 서각書刻이란, 글씨나 그림을 나무나 기타 재료에 새기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고궁이나 사찰에 갈 때 흔히 보게 되는 현판의 글씨나 그림, 불경에 새겨져 있는 글씨가 모두 서각이다. 이처럼 서각은 시詩, 서書, 화畵에 병칭될 만큼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 우리 고유의 문화 예술이다. 서각의 역사를 보면, 변하지 않는 목재나 석재 등의 재질에 문자나 회화를 기록하여 길이 후세에 남기려고 한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목재나 석재, 또는 다른 재질에 기록하여 표현 욕구를 발한 것이 서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목판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8세기 중엽)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 팔만대장경, 그리고 고궁이나 사찰, 정자나 루樓의 현판懸板 및 주련柱聯 등이 훌륭한 서각 작품으로 남아 있다. “사실 전통에 대한 창작 작업은 대개가 배가 고프죠. 작업에만 열중하면 생계를 지탱하기 힘들어서 이 작업에만 매달리기가 쉽지 않아요. 저 또한 30대 초반에 서각을 배우고 서각 작가로 생활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았어요. 가족들에게도 미안한데, 다행히 아내가 많은 힘이 되어 주어서 오늘까지 전업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동안 저는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자긍심을 갖고 한 우물을 파며 살아 왔습니다. 서각이 많이 알려진 분야는 아니지만, 저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서각을 더 많이 알고 이해할 때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김상철 선생은 “서각은 서예와 달리 입체적인 표현을 할 수 있고 판형에 다양한 색채를 입힐 수 있어 현대 감각에 맞출 수 있으며, 자신만의 다양한 문양과 글자, 그림을 넣을 수 있어 매우 매력적인 예술”이라고 말했다. 또한 나무의 재질에서 오는 느낌이 우리의 동양적인 정서와 맞아 정감 있으며 이러한 서각 작품은 오래 봐도 싫증나지 않으며 오래될수록 은은한 향기를 발산한다고 하였다.
특히 서각에는 여러 가지 각법이 있는데 많이 사용하는 각법은 음각, 양각, 음양각, 음평각, 목판각 등이다. 음각은 판면에서 오목 들어가게 새기는 작업이고, 양각은 볼록 나오게 새기는 작업이며, 목판각은 거꾸로 새겨 판화처럼 찍어내기 위해 새기는 작업을 말한다. 나무의 선택에서부터 나무 다듬기, 조각, 색칠 등 일련의 서각 작업은 그 과정 모두가 매우 섬세하고 오묘하다. 그래서 문양 및 색채 구성, 감각 등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하나의 종합 예술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만큼 서각을 만드는 이에게는 예술적인 감각이 필요하며 ‘장인’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창작에 대한 끝없는 열정,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서각은 초고(육필)를 작성하여 각법을 결정하고 나무를 다듬어 배자를 한 다음 새김질을 합니다. 새김질이 끝난 후 각법에 따라 칠을 합니다. 칠 방식은 수성과 유성을 적재적소에 적절히 칠을 하여 완성합니다.”
문하생들의 서각 작품 모은 ‘곰달래 서각회전’ 17년째 이어
‘달님이 나를 좇아오는 것은 내 마음 속에 예쁜 달이 있기 때문이다’‘달’이라는 제목의 이 글귀는 김상철 선생이 고향집의 밝은 달을 보며 지은 작품이다. 어떤 날은 차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좋은 멘트를 메모지에 적기도 한다. 그 말이 바로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만 있을 것입니다’라는 문구였던 것. 그는 이렇게 좋은 글귀나 직접 지은 글을 서각에 새기기도 한다. 그가 스승으로 있는 문하생 모임인 곰달래 서각회에서는 매년 ‘곰달래 서각회전’을 열고 있다. 1991년에 ‘석촌 김상철 서각전’으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매년 문하생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하는 ‘곰달래 서각회전’을 열고 있다. “곰달래 서각회전은 17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우리나라에 서각을 알리는데 크게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인사동에서 갖는 전시회는 우리 서각 예술을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외국 사람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우리나라 서각의 우수함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곰달래서각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서각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뛰어난 제자와 후배를 양성하여 서각의 발전과 대중화에 보다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서울 화곡동 작업실에서 요즘도 왕성하게 서각 작업을 하고 있는 김상철 선생은 “많은 사람들이 서각을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서각을 널리 알리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 문하생 양성에 더욱 힘을 쏟고, 문하생들이 전시회를 통해 작품성이 향상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3년 후면 꼭 2010년이 된다. 이 때 김상철 선생은 꼭 환갑이 된다고 했다. 91년 선생의 첫 개인전 이후 거의 20년 만인 2010년, 회갑을 기념하여 두 번째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그와의 만남을 맺으며 문화 관련 단체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바라는 점에 대해 넌지시 여쭤 보았다. “서각의 예술성을 많은 대중들이 전시를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를 자주 열 수 있게 지원금을 후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서각에 대한 전문서적이 많이 출간될 수 있도록 서각人 스스로의 연구와 노력도 필요합니다. 또한 언론 매체(신문, TV 등)도 대중들이 서각에 대해 알고 이해할 수 있게 관심을 갖고 보도해 주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전통 예술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젊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입니다.”
▷ 글 : 허주희 ▷ 사진 : 엄성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