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까지 북한 땅에 속했던 곳. 한국전쟁 당시 세계전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치열했던 격전지. 이제는 남한 땅에 속해 휴전선 바라보며 철의 삼각전망대, 최북단 월정리역, 제2땅굴, 노동당사, 백마고지 전망대 등 이른바 '안보교육 1번지'로 남아있는 곳. 바로 강원도 철원군 일대다.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다'는 말 그대로 한국전쟁은 철원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이것이 철원의 전부는 아니다. 한반도에서 철원은 선사시대로부터 고구려, 통일신라, 고려, 조선, 그리고 남북분단에 이르는 지금까지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채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철원(鐵原)의 지명은 고구려 때 철원(鐵圓), 쇠둘레, �두르 등으로 불리다 신라 경덕왕 16년 철성(鐵城)으로 바뀌게 되며, 다시 고려 충선왕 2년 지금의 철원(鐵原)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른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철원은 '쇠가 많이 나는 들판'이라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서인지 어떤 이는 땅이름을 두고 "철원이라 하여 그 많은 쇠붙이를 불러모았는가!"라며 오늘날 전쟁의 폐허가 된 철원을 탄식하기도 했다.
오늘날 소위 '안보관광지'로만 알려져 있는 철원의 역사는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갈말읍 토성리에 세워진 북방식 고인돌은 그 연대가 2천5백년 경으로 추정되며 인근의 연천 전곡리 등과 더불어 선사시대 유적들이 다수 출토되기도 했다. 또한 철원은 고구려의 부활을 꿈꾸며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궁예궁터로 유명하다. 하지만 현재 궁예궁터는 비무장지대 안쪽에 있어 남과 북 모두에게 잊혀진 갈 수 없는 유적지로 남아있다.
무엇보다 철원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한탄강(漢灘江)이다. 강을 중심으로 인간의 역사가 형성되고 시작되었듯, 한탄강은 철원지역을 휘감아 돌며 부침의 세월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한탄강은 금강산 아래쪽 추가령지구대에서 발원하여 평강, 철원, 연천을 두루 적시며 임진강으로 합류되는 총연장 136㎞의 긴 강이다. 은하수처럼 길고도 넓으며 절벽을 휘감아 돈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일찍이 신라 진평왕이 빼어난 절경에 반해 노닐었던 고석정은 한탄강을 대표하는 명승지다. 게다가 고석정은 관군에 쫓기던 임꺽정조차 이곳의 절경에 감탄해 잠시 노닐었을 정도라 하니 한탄강 계곡과 더불어 마주한 고석정의 승경은 새삼 탄복을 자아낸다.
현재 철원군청은 이곳 고석정에 임꺽정 동상을 비롯해 총 공사비 7억 규모의 '임꺽정 테마파크'를 조성, 적극적인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임꺽정이 고석정에 노닐었다는 기록은 사료는 물론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민중들의 입을 통해 설화로 전해질 따름이다. 이 지역이 임꺽정과 인연이 있다면 아마 서울방송 대하사극 임꺽정의 '청석골' 무대세트가 지금의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 매월대 앞 골짜기에 세워진 것이 확인된 전부일 것이다. 매월대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비분했던 생육신 김시습의 은거지로 이곳 역시 그 흔적만 남아있다.
고석정에서 상류 쪽으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의 나이아가라폭포라는 직탕폭포를 만날 수 있다. 폭 80m 높이 5m로 규모면에서 나이아가라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생김새만큼은 영락없는 나이아가라다. 직탕폭포에서 상류 쪽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칠만암과 마주치게 된다. 철원팔경 중 하나인 칠만암은 마치 수 만개의 바위를 한곳에 모아 놓은 것 같다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특히 제주도, 울릉도와 더불어 현무암 대지로 이루어진 이곳 철원 특유의 현무암 경치가 볼만하다. 한편 겸재 정선이 금강산을 가는 도중 그 경치에 반해 한 폭의 진경산수화로 화폭에 옮겼던 삼부연 폭포는 강을 조금 더 내려와 한탄강과 합류하는 지류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 한탄강은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절경을 자랑하며 '레프팅'의 명소로도 꼽히지만 이곳에 서려있는 역사만큼은 '한탄(恨歎)' 그 자체다. 한때 후고구려의 옛 영광을 찾는 듯하다가 부하 왕건에게 패퇴하여 궁예가 눈물로 건넜던 이 강은 한국전쟁 때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로 물들기도 했다. 이제는 분단의 세월 너머 휴전선 사이로 남과 북을 말없이 흐르고 있어 결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요즘 철원은 이러한 민족사의 비극을 뒤로한 채 통일의 꿈에 잔뜩 부풀어 있다. 과거 서울과 금강산을 잇는 철도의 분기점이자 시발점이 이곳 철원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천혜의 자연조건과 기름진 철원평야는 통일 신도시로 거듭나기에 부족함이 없다. 때마침 현존 유일의 '남북합작' 다리 '승일교' 옆에는 새로운 철교를 통해 많은 차량들이 드나들고 있다. 분단의 세월만큼이나 낡아버린 승일교로는 이제 더 이상 통일의 열망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일까? 분단의 현장을 찾아 '통일의 꿈을 비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진 까닭이다.
동해안 바닷길이 아닌, 분단의 철조망을 녹여 금강산 철길 따라 통일의 레일을 까는 그날을 고대한다.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강임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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