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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스크랩)

깜보입니다 2010. 10. 14. 08:52

이런 건물, 인류가 다시 만들 수 있을까
건축 이야기 2010/10/12 15:08   http://blog.hani.co.kr/bonbon/28831

 
일단 한 번 보기만 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건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건물.
 
그런 건물을 살면서 두 번쯤 만난 것 같다.

하나는 타지마할, 또하나는 종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빛이 바뀌는 모습속에서 건물의 느낌이 변하는 모습을 하루 종일 보고 싶은 건물들이었다.


그리고 한 건물을 더하게 됐다. 중국의 상징 자금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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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을 찾아간 것은 두 번째. 최근 중국 출장 중 짬을 내 자금성을 찾았다. 

어차피 이 거대한 도시만한 집을 하루에 모두 돌아보기는 포기했다. 궁궐의 정전, 핵심 건물인 태화전 하나라도 보자고 마음먹고 갔다.
 
그러나 태화전 하나조차 보기 벅찼다. 앞으로도 최소 대여섯번은 더 찾아가야 어렴풋이 뭔가 느낄 수 있을 듯한 건물이다.
하루 이틀 봐서는 감도 오지 않을 듯한 파악불가능의 거대한 산 같은 인류 최고의 집, 그게 자금성이다.

 
자금성으로 가는 성벽길은 실로 웅장하다. 감히 들여다볼 엄두도 못내게 하는 저 높은 담장만으로도 이미 강력하고 웅장하다. 굳이 화려한 치장을 보태지 않아도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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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금성의 첫 관문인 천안문이 보인다. 베이징의 악명 높은 안개는 낮이 되어도 가실 줄을 모른다. 흙먼지와 매연이 뒤섞여 도시 전체가 희미하게 가려진다. 그리 멀지 않은 천안문이 희뿌옇게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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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은 이름 그대로 `금지된 붉은 성'이다. 영어로는 The Forbidden City'. 그냥 `금지된 도시'다.

 

누가 이 이름을 번역했는지 모르지만 볼수록 잘한 번역이다.

금지된 성이 아니라 도시. 그냥 궁궐이라 옮기기엔 너무나 컸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름에 `금지'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황제가 사는 곳이니 아무나 못들어 가는 곳, 들어가면 멋대로 나올 수도 없는 곳.
 
그러나 건축적으로 봐도 분명 자금성은 `금지된 건축'이다.

자금성이 가장 독특한 이유는 저 담장 너머로 아무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우뚝선 성벽 담장만 보인다.

성벽의 높이는 10미터, 그 두께는 좀 더 두꺼워야 하는 아래가 8.5미터, 위가 6.7미터다. 평균 두께가 7미터가 넘어 왠만한 집 한 채 두께다. 그만큼 철저하게 꽁꽁 가렸다.


이렇게 철저하게 외부에서 은페된 건물은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보는 것조차 금하는 절대 공간. 들어가며는 실로 거대한 건물들이 압도해오지만 바깥에서는 짐작조차 못하는 건물.

이런 공간 연출 솜씨는 자금성을 이해하고 구경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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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천안문이다. 천안문 앞에는 중국의 문화 아이콘 화표가 있다. 저 돌조각 기둥이 화표인데, 우리로 치면 신성한 곳 앞을 알리는 홍살문이나 지리 안내표 역할을 하는 장승, 일본으로 치면 도리이 같은 물건이다. 이젠 황궁 알림판 역할을 한다.

 

저 천안문은 엄밀히 말하면 자금성의 정문은 아니다.
중국 베이징과 조선의 한양은 여러겹의 성들로 이뤄진 도시였다. 가장 중심에 황궁인 자금성과 경복궁이 있고, 동심원을 이루며 성들이 에워싼다. 성 하나가 뚫리면 다음 성이, 또 다음 성이 황제와 왕을 지키는 구조다.
 
저 천안문은 자금성 바깥 황성의 문이었다. 높이만 34미터가 넘는 거대한 문이다. 모두 5개의 문이 있다. 아시아에선 홀수로 문을 내길 좋아한다. 좌우대칭에 중심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가운데 문은 물론 황제만 다니는 문이다.
이 어문을 황제가 아닌데도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황후가 황제와 결혼할 때는 이 문으로 들어왔다. 중국을 치맛폭에 감싸 지배했던 서태후도 저 어문을 드나들진 못했다. 후궁 출신이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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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거대한 초상화가 보인다. 1949년, 이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천안문 앞 광장은 그래서 중국 현대사의 상징이다. 100만명이 모이는 이 거대한 광장도 천안문의 위용 탓인지 그리 넓어보이지 않을 정도다.
 
천안문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거대한 문이 나온다. 아직도 자금성은 시작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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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을 지나면 이제 자금성의 진짜 정문, 오문이 나온다. 우리로 치면 경복궁 광화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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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은 철저하게 중심축을 기본에 놓고 좌우 대칭으로 지었다. 문을 지날 때마다 또다른 건물이 드러나는 저런 광경은 자금성 건축의 매력이자 특징이다.  

드디어 등장하는 오문. 사람을 압도한다. 양쪽으로 긴 벽을 거느리고 공간과 사람을 품는다. 세계 최고의 나라 중국, 중국을 지배하는 황제인 천자의 품 안에 모든 것이 담긴다는 중국의 오만한 폼잡기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장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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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은 그 덩치가 실로 산만하다. 건물 높이는 38미터인데 그 두께도 36미터나 된다.
역시 가운데 문은 황제만이 다닐 수 있다. 물론 시집오는 황후도 결혼하러 올 때만 저 문으로 들어올 수만 있고, 저리로 나가지는 못한다. 황제의 문으로 나갈 수만 있는 또다른 이들이 있다. 황제 앞에서 치르는 마지막 과거 시험에서 1등 2등 3등 합격자만 저 문을 통해 자금성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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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으로 들어가면 다시 거대 건물이 나온다. 반복도 이런 반복이 없다. 천자의 공간으로 가는 길은 이리도 여러 단계와 관물을 거쳐야 한다. 

저 문 안쪽으로 보이는 새 등장 건물은 태화문이다. 건물처럼 보이지만 역시 문이다.

 

태화문은 태화전으로 가는 문이다.

태화전은 자금성의 정전, 그러니까 황제가 집무하고 의식을 치르는 최고의 건물이다. 자금성의 핵심인 정전이니 그 앞에 다시 문을 둔다. 우리나라 경복궁의 정전 근정전 앞에 근정문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복궁 역시 광화문을 지나면 흥례문, 흥례문을 지나면 근정문, 그리고서야 근정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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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을 지나 태화문 앞으로 나가면 거대한 돌다리가 등장한다. 궁궐의 금천에 놓이는 금수교다.

중국과 우리나라 궁궐에는 저렇게 금천이 꼭 흐르게 만들었다. 사악한 기운이 궁궐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상징적 장치다. 그래서 금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물 위로 다니는 실용적 목적이 아니라 영역과 영역을 나누기 위한 경계의 다리다. 

날이 흐려 사진이 꿀꿀한데다, 각도가 잘 안나온 관계로 자료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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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다리가 5개다. 천안문과 오문이 문 5개가 있는 것과 맞췄다. 가운데 다리는 당연히 천자만 건넌다. 

저 다리 너머 보이는 건물이 태화문이다. 태화전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태화문 앞에는 가장 유명한 자금성의 명물이 있다. 청동으로 만든 사자상이다.

사자상은 동쪽과 서쪽 두마리가 있다. 동쪽에는 수컷이, 서쪽에는 암컷이 있다. 자세히 보면 발 아래에 있는 것이 다르다.

동쪽 숫사자는 여의주를 쥐고 있고, 서쪽 암컷은 새끼를 누르고 있다. 아래 사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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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니 당연히 동쪽.

중국이 가장 즐겨 만드는 조형물이 사자다. 저 사자상은 그 오리지날인 명품이다.

왜 사자상일까? 사자가 황제를 지키는 동물이라 믿어서였다.

 

사자라는 상징은 따져보면 참 흥미로운 아이콘이다. 중국 뿐만 아니라 앙코르와트 유적으로 유명한 캄보디아도 사자를 성스러운 동물로 여기고 수많은 사자상을 만들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중국이나 캄보디아 등에 사자는 없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사자와 모습은 조금 다르고 상상으로 만들어낸 부분이 많은 모습이지만 갈기가 복슬복슬한 사자의 모습은 분명하다. 사자를 본 적도 없는 중국과 캄보디아가 사자를 자국의 상징으로 했다는 점은 사자라는 동물이 풍기는 강한 이미지의 힘이 얼마나 사람을 사로잡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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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태화문을 오른다. 장중한 계단 가운데 구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돌조각이 펼쳐진다. 

그리고 태화문을 지나면 자금성 최고의 장면, 세계 건축사의 하이라이트, 궁극과 극한의 공간인 태화전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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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전.

 

이 건물 하나를 위해 지금까지 이 많은 문과 길을 거치도록 이 거대한 궁을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자금성을 찾은 것 역시 이 건물과 주변 모습이 만들어내는 이 장면 하나를 보러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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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은 앞서 말했듯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중심축을 극도로 강조한 건축물이다.

가운데를 중시하는 中 사상은 중국 관념의 핵심이다. 나라 이름이 중국인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운데에 있는 나라라는 중화사상을 잘 보여준다. 그 중국의 가운데에 세상을 다스리는 황제가 자리잡는다. 그 황제를 위해 온나라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지은 자금성, 그 자금성의 가운데를 황제가 오간다. 그리고 궁의 정확히 가운데에 황제의 집, 저 태화전이 있다.

실제 자금성을 위에서 보면 철저한 좌우대칭 중심축 구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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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해자로 둘러싸고 데칼코마니처럼 좌우를 대층으로 짰다. 가운데 까만 네모칸 구획선 같은 것이 자금성을 두른 해자고, 그 아래 전문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이 시가까지 이어진다. 뒤로도 산을 배치해 중심축을 완성했다.

 

그리고, 자금성의 모양은 정확한 네모다.

중국 사람들은 땅은 네모꼴이고 하늘은 동그랗다고 믿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이다. 그래서 집 역시 네모로 지었다.

중국의 가장 전통적인 가옥이 사합원이다. 사합원은 높다란 담을 쌓은 직사각형 건물로, 그 안에 다시 집들을 네모 단위로 배치한다. <홍등> 같은 중국 영화의 무대가 되는 옛 중국 가정집들이 이 사합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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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람들이 저렇게 네모 건물을 좋아했던 것은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선 밀집된 주택들의 구획을 나누기도 쉽고 평지여서 우리처럼 지형에 따라 건물을 융통성있게 배치하기 어려웠던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집에 대한 중국 철학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집들은 담들이 높다. 저 사합원은 사방에서 결코 안이 보이지 않는다.

높은 담장을 선호한 이유는 도둑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기의 소우주인 집을 철저하게 차단시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고 집안의 복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금성은 저 사합원을 그대로 거대하게 뻥튀기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높은 담, 네모난 구성, 그리고 내부의 공간 구성도 역시 저 사합원처럼 네모 집들이 반복되는 구조가 같다.

 

자금성은 땅의 주인인 천자의 집이다. 땅이 네모라고 믿었으니 당연히 네모꼴이다.

땅의 주인 천자는 하늘을 대신이 백성을 다스리는 존재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 천자인 것이다. 천자는 하늘의 도리를 따라 세상을 다스린다. 하늘의 아들이니 유일하게 천자가 우러러보는 대상은 하늘 뿐이다. 천자가 지배하는 곳이 자금성이고, 하늘에 의식을 치르는 곳이 천단이다. 중국을 지배하는 두 건축물이 바로 자금성과 천단이다.

하늘을 상징하는 천단은 그래서 당연히 동그랗게 생겼다. 바로 너무나 유명한 이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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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과 자금성은 황제만의, 황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천단은 특별한 의식 때에만 이용하는 건물이지만, 자금성은 황제가 늘 사는 곳이다. 그래서 천자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것만이 궁극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거대하고, 중심축으로 황제의 권위를 드러낸다. 그 핵심에 태화전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태화전 앞은 황제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최고의 공간이다. 이 공간의 중심축에서 태화전을 바라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황제를 알현하러 오는 만조 백관들과 외국의 사신들은 이 길을 따라 태화전에 이른다. 그 중심에서 황제는 뭇세상을 굽어보며 아랫것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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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대무비한 절대 공간의 분위기는 똑딱이 디카론 도저히 잡아내지 못한다. 파노라마로 찍어도 다 담지 못하는 공간이다.

한발짝 더 나아가면 시야가 탁 트이며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역 전체가 이 건물 권역으로 가득 찬다. 사람 시야의 최대치를 채우는 아이맥스를 건축으로 표현한 공간이다.
 
앞서 자금성이 바깥에선 절대 안의 건물들이 안보이는 특이한 건축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 정반대를 목격할 수 있다. 자금성 내부에선 바깥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금성의 전각들뿐.
자금성이 그 규모보다 오히려 작아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훨씬 더 거대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건축적 기법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사진에 잡히지 않은 양쪽 공간이 부채꼴로 펼쳐져 하늘 전체가 정말 둥글게 보이기도 한다. 천자의 집을 연출한 이 디자인이 자금성이 세계 최고의 건축 유산으로 꼽히는 이유일 것이다.
 
건축적으로도 흥미로운 점들이 가득하다.
우선, 이 태화문 기단이 앞 광장보다 높게 만들어 동선을 오르고 내리는 변화를 준 점이다. 비슷한 구조의 경복궁은 이렇게 높게 정전을 바라보게 하지 않았다. 이렇게 중심축을 따라 몇번의 관문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등장하는 태화전을 보고 탄성을 지르게 한 다음 아래로 내려가 다시 낮은 위치에서 황제에게 다가가게 하는 장치다.
그런 뜻을 구현하는 것이 자금성이기에 자금성 구경은 그런 의도에 따라 보아야 제맛이다. 중심축에 서서 중심을 바라봐야 건축의 의도를 제대로 만날 수 있다. 그 중심축의 핵심이 바로 저 태화전을 바라보는 이 곳 태화문의 기단이다.
 
그래서 태화전 아래로 내려가면 보는 높이가 달라지면서 느낌도 달라진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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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간 전체로 가득 보이는 하늘.
사진에선 흐린 날씨지만 파란 하늘이 펼쳐지면 자금성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된다. 바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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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하늘과 자금성뿐이다. 천자의 집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천상의 집이 실제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느낌, 이런 풍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자금성은 中의 건축, 天의 건축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빛의 처리와 연출이다.

자금성의 건물들은 모두 노란 기와지붕이다. 검은 기와가 파란 하늘과 대비를 이루는 우리 궁궐 건축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노란 색은 음양오행으로 볼 때 흙의 색, 그리고 가운데의 색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을 품고 만들어내는 흙, 가운데에서 하늘 대신 땅을 다스리는 천자의 색이 됐다. 그래서 노랑 지붕이다.

 

기법적으로도 우리 궁궐 기와와 다르다. 저 기와들은 유약을 발라 구워 표면에 광택을 냈다. 지금은 때가 많이 묻어 덜해졌지만 밝은 날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저 기와와 짝을 이루는 것이 돌 기단이다.

자금성의 주요 건물들은 계단이 있는 돌기단을 옥의 일종인 한백옥이나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은은하게 빛을 품는 돌들이다. 햇빛을 받은 기와가 위에서 반짝거리고, 역시 빛을 머금은 기단부가 은은하게 빛을 담는다. 황제의 공간에 어리는 서광을 건축으로 풀어낸 것이다. 몇백년 전, 저 자금성이 지어졌을 때 빛이 공간을 가득 감싸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런 빛의 건축이 자금성이다.

이제 한백옥으로 만든 계단으로 올라 태화전 앞으로 나아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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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상징인 용이 조각된 거대한 계단이다. 이 계단 기단은 3단 구성이다.

건물의 위계가 철저했던 옛날, 기단을 3단으로 쌓는 것은 황제만이 가능했다.
건물의 배치도 마찬가지. 황제는 중앙에서 남쪽을 본다. 그래서 황제가 쓰는 건물은 모두 정남향이다.
반면 나머지 사람들이 쓰는 건물은 동서쪽을 바라본다.
계급이란, 신분이란 이렇게 철저하다. 건축은 그런 옛 문화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건축을 보는 것은 역사와 문화를 쉽게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그래서 자금성을 보면 중국 문화와 역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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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계단 옆으로는 청동 그릇이 있다. 향로다. 태화전 앞에도 향로들이 있다.

자세히 보면 계단을 장식하는 문양들은 용과 구름들이다. 계단 모서리는 아예 구름모양으로 디자인한 것들이 많다. 이렇게 하늘을 상징하는 용과 구름들 이미지 사이로 저 향들이 연기를 뿜어내면 정말 천상의 공간처럼 연출된다.

태화전의 72개 기둥들도 모두 용과 구름으로 치장했다. 하늘을 연출하기 위해 구석구석 상징을 넣은 것이다.

 

이런 수많은 코드와 비유가 자금성 전체를 이루고 있다. 중국 문화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자금성은 그 자체로 중국 문화 백과사전이자 하나의 거대한 상징체계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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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전. 그렇게 높게 솟아보였던 지붕이 바로 아래서 보면 얇아보인다. 그래서 높였을 것이다.

저 기둥들을 보자. 빨간 색에 광택이 난다. 돌기둥 같지만 나무기둥이다.

 

저 나무는 중국 아래 쓰촨에서 가져왔다. 궁궐을 짓기 위해 대륙을 가로질러 나무를 운반한 것이다. 그 나무에 옻칠을 해서 저렇게 광을 냈다. 이 궁궐을 짓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개고생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안됐다. 중국에서 천자는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천자를 위해 백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늘의 아들이니까.

 

이제 황제의 시선으로 태화전 앞쪽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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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넓은 마당은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주변에 비교할 대상들이 없어 그리 넓어보이지 않지만 실로 넓다.

 

자금성을 이리도 거대하게 지은 데에는 중국 황제의 권위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주변 나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대장치용 건축이란 측면도 있다.

중국은 스스로 늘 세계의 중심, 하늘의 나라라고 떠들어대지만 실제 전쟁에서는 한번도 화끈하게 제대로 이웃 국가들을 제압해본 적이 없다. 만리장성이 나라를 지킨 적은 한번도 없었고, 늘 뚫리기만 했다. 이민족에게 늘 지는 것은 물론, 오랫 동안 식민지로 복속되어온 것이 중국 역사다. 원나라와 청나라에 지배된 기간만 수백년이다. 군사력으론 슈퍼파워다운 모습을 결코 보여주지 못했다. 안에서 자네들끼리 싸움만 지지리도 해댔다.(<삼국지>를 보라)

 

그러면서도 황제 국가로 주변 나라들을 복속시킨 원동력은 문화였다. 소프트 파워의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근대 이전 중국이다. 실제 드러나는 물리적 힘, 곧 군사력이 하드 파워라면 문화적 우월성이나 이미지의 힘으로 남들을 스물스물 따라오게 만드는 힘이 소프트 파워다. 소프트 파워의 핵심이 문화고, 중국은 문화로 주변 나라들을 아우 나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얼마나 센 나라인지 보여주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그 핵심이 자금성이었다.

조선을 비롯한 주변 나라 사신들이 그 먼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베이징에 들어와 다시 전문-천안문-오문-태화문을 거쳐 이 곳에 도달하면, 바로 저 상상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건축이 눈앞에 펼쳐진다. 절로 중국이 정말 대단하구나, 조공 바치면서 형 나라로 모셔야겠구나 실감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중국이 저 자금성을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크게, 온 나랏돈을 끌여다가 지은 것은 그런 정치적 목적에서였다. 자금성의 넓이는 74만3000제곱미터, 평수로 환산하면 22만5000평쯤 된다. 자금성에 살았던 환관만 20만명. 도시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닌 크기다.

 

방은 몇개였을까? 일반적으로 9000여개, 처음에는 9999개였다고들 한다. 9는 황제의 숫자다. 절대수인 1만개가 아니라 하나를 뺀 숫자다. 전설처럼 자금성에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원래 방이 모두 1만개인데, 오로지 황제만 아는 비밀의 방 하나가 숨어있다는 소문도 있다. 1만개나 9천개나 엄청나기는 엄청나다.

 

경복궁은 그럼 방이 얼마나 됐을까?

7000여칸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타고, 일제 강점기에 마구 헐려 지금은 썰렁해졌지만 그 규모는 우리의 예상 이상으로 크다. 자금성과 견줘도 전혀 꿀리지 않는 규모다. 그럼에도 자금성처럼 압도적이지 않다. 그건 두 궁궐이 건축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다. 중국의 궁궐과 조선의 궁궐이 누가 더 위대하고 훌륭한 것은 없다. 생각이 다르고, 재료가 달라 자연스럽게 궁궐도 달라진 것일뿐.

 

실제 경복궁과 자금성의 크기가 얼마 정도인지 대비시켜보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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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아래 황두진 건축가의 글을 눌러보세요

http://www.doojinhwang.pe.kr/jboard/?p=detail&code=doojin1&id=84&page=1&mode=srch&what=comment&request=

여기까지 오기에 1시간 넘게 걸렸다. 이제 자금성의 반을, 그것도 양쪽은 거들떠도 못보고 중심축만 따라서 일직선으로만 왔는데도 그렇다. 물론 자금성은 넓다해도 직선으로만 빠르게 걸으면 1시간 정도에도 가로지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양옆으로 펼쳐진 여러 볼거리를 찾아본다면 며칠을 걸려도 힘들다. 그래서 10번은 가야할 건물이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날도 시간이 없어 결국 태화전 이후는 빠르게 지나가야 했다. 태화전 이후는 결국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 중국 방문때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태화전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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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전은 뒤도 꼭 봐야 한다. 건물 앞 뒤의 계단들이 장관이기 때문이다.

뒤로 펼쳐지는 계단의 풍경은 실로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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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짝 더 나아가면 또 다른 느낌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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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단 기단도 역시 좌우대칭. 반대편이다.

동시에 찍었지만 색감이 다른 이유는 너무 하늘이 우중충해 석양 모드로 찍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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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태화전 기단 돌계단과 조각들은 규모가 엄청나다.

개인적으로 자금성의 최고 장면을 꼽자면

태화문에서 태화문을 바라보는 아이맥스 공간 연출이 베스트1,
그리고 이 태화전 기단은 베스트2다.

기단에 있는 기둥은 모두 1488개. 기둥에 달린 용머리는 1142개라고 한다.

용머리는 그냥 장식이 아니다. 배수구여서 용의 입으로 물이 나온다고 한다. 비가 오면 잘 빠지게 하는 배수시설이자, 수많은 용들이 물을 뿜는 장관을 연출하는 장치다.

도대체 왜 저렇게 돌계단에 신경을 썼을까.

둘 계단 위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황제였기 때문이다.

중국 문화권에서 황제는 유일하게 계단 맨 위에 올라 아래를 거느리는 존재다. 그래서 계단 아래를 다스리는 지존, 곧 `폐하'가 호칭이 된다. 그 아랫급인 왕은 `전하'다. `전'은 왕이 쓰는 중요한 건물에 붙이는 이름이다. ~전이란 건물들은 그래서 궁궐에서 가장 높은 건물들이다. 황제만이 폐하이기 때문에 조선의 임금들은 전하였다. 그러다가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고종이 황제가 된 다음은 폐하가 됐다.

그리고 태화전 뒤로 중요한 두 건물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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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건물은 중화전, 그 뒤 더 큰 건물은 보화전이다. 태화전과 함께 삼총사를 이루는 태화전 딸림 건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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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사각형인 이 중화전은 쉽게 말하면 휴게실이다. 황제가 태화전에서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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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보화전은 규모가 말해주듯 중화전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왕조가 바뀔 때마다 용도가 들쭉날쭉했는데, 명나라 때에는 아주 중요하게 쓰여서 황제가 즉위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할 때에는 파티장으로 주로 쓰였고, 파티나 의식을 준비하는 황제가 옷갈아입는 옷방 역할을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보화전 뒤쪽으로는 황제와 그 가족이 잠자고 먹고 하인들이 살고 자는 생활영역이다. 내려가기전, 역시 돌계단이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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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계단에 들인 중국의 정성은 상상 이상이다. 이 보화전 뒤 계단은 그 중에서도 백미다. 가운데 경사로는 황제가 가마타고 다니는 길로, 정식 이름도 있다. 이름하여 `운룡대석조'. 구름과 용으로 장식했다.

포크레인도, 기중기도 잘 없던 옛날 이 돌길을 만드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을까. 최대한 큰 돌을 찾아 하나로 조각작품을 만들어야 했으니 돌을 찾는 일도 어려웠다.

 

다행히 베이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돌을 찾았다고 한다.

문제는 250톤이나 되어서 도저히 옮길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 방법을 짜냈다.

길에 도랑을 파고 물을 부어 얼음이 얼면 그 빙판 위로 돌을 밀어 옮기는 것을 생각해냈다. 엔지니어들은 정말 위대하다!

그런데 돌을 발견한 것은 하필 여름이었다. 그래서 반년을 기다려 겨울이 되자 맨땅에 새로 도랑을 50킬로미터나 팠다. 도랑에 물을 채워야 하니 우물도 팠다. 십리마다 우물을 파서 도랑 채우고 얼리고 밀어서 가져와 만들었다. 
 
직선으로만 계속 오니 단조롭고, 또 옆쪽도 약간이라도 봐야할 일. 옆길로 잠시 샜다. 자금성 특유의 거대한 붉은 담 사잇길이 펼쳐진다. 중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꼽는 자금성 베스트3. 중국을 속하는 책들의 표지 사진으로 많이 쓰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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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멋진 컷은 자료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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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금성이란 부페에서 겨우 계란 하나 정도 맛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북문인 신무문으로 두 시간여 만에 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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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문은 북현무 남주작 좌청룡 우백호에서 북쪽인 현무에서 따와 지은 이름이다. 우리나라 경복궁 북문도 신무문이다.
신무문을 나서면 다시 산이 나오고 그 산에 올라 자금성을 굽어봐야 하건만 시간이 없다.ㅠㅠ

신무문 바깥에선 자금성을 둘러싼 해자를 볼 수 있다. 자금성 명장면 베스트4 쯤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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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성 모서리엔 이런 멋진 망루 건물을 지었다. 자료사진으로 감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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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은 너무 크고 압도적이어서 비인간적이고 정이 안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맞는 말이다. 질리고 짜증나게 하는 건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건축적으로만 보면 분명 실로 대단한 건물이다.

그 어떤 건물도 이렇게 `장소 만들기'의 효과를 극대화하지 못했다. 단일 건물 하나가 굉장한 경우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등도 있지만 그 둘러싼 공간 전체가 자금성처럼 함축적이고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얽혀 정치적 퍼포먼스를 연출하진 못한다. 

동시에 자금성처럼 백성을 괴롭히고 쥐어짜서 만든 건물도 드물다. 전제정치란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중화사상이란 얼마나 백성들과 주변 국가를 세뇌조작하고 바보로 만드는지 자금성처럼 확실하게 보여주는 건축물도 없다. 자금성은 건물만 봐서도 안되고 환상을 품고 봐서도 안되는 그런 건물이다.

 

그런 점에서 평등세상을 꿈꾼 이들, 새로운 세상을 꿈꾼 이들에게 자금성은 악과 부조리의 절대 상징이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적처럼 중국 공산혁명을 이뤄낸 마오쩌둥은 우매하고 전제적이고 나약했던 중국의 표상이었던 저 자금성을 집권 직후 헐어버리려 했다. 지금 관점으로 보면 실로 반문화적이며 우악스런 짓이라고 하겠지만 그만큼 자금성의 갖는 의미가 컸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인류 차원의 건축 유산은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마오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을 만들어낸 주역인 저우언라이(주은래) 수상이 마오를 간곡히 말린 덕분이었다.

저우언라이의 각고의 노력끝에 자금성은 이제는 황제의 궁궐에서 인민의 박물관으로 바뀌어 중국의 중심에 그대로 버티고 있게 되었다. 1987년 유네스코는 자금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저우언라이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자금성을 보고 감동이든 분노든 새로운 경험을 한 모든 이들은 저우언라이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어찌됐든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건물 가운데 이 건물만큼 장중하고 관념적이고 정치적인 건물도 드물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바뀐 현대 이후, 이렇게 넓게 화끈하게 짓는 건물은 좀처럼 짓기 힘들지 모른다. 

정녕 특별하고 이상한 건축이 있다면 그게 바로 자금성이다. 앞으로 몇번이나 중국을 가게 될지 모르지만, 베이징을 갈 때 이 건물에 매번 찾아가게 될 것 같다.

by 구본준  http://blog.hani.co.kr/bonb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