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탑 ‘완벽한 아름다움’ 비결은 ‘황금비율’
입력 : 2010-10-25 21:44:50ㅣ수정 : 2010-10-25 21:44:50
ㆍ김효율 교수 논문서 밝혀
‘삼층석탑의 형식은 거기에서 최고의 완성을 보게 된다.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는 정제된 아름다움, 단아한 기품과 고귀한 덕성, 빼어난 미모를 갖춘 조화적 이상미의 전형이 거기에 있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불국사 석가탑을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모범답안”이라고 표현했다.
통일신라시대의 걸작 유산인 ‘불국사삼층석탑’(석가탑·국보 21호·사진)이 지닌 ‘정제된 아름다움’의 비밀이 풀리게 됐다.
‘삼층석탑의 형식은 거기에서 최고의 완성을 보게 된다.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는 정제된 아름다움, 단아한 기품과 고귀한 덕성, 빼어난 미모를 갖춘 조화적 이상미의 전형이 거기에 있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불국사 석가탑을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모범답안”이라고 표현했다.
통일신라시대의 걸작 유산인 ‘불국사삼층석탑’(석가탑·국보 21호·사진)이 지닌 ‘정제된 아름다움’의 비밀이 풀리게 됐다.
석가탑이 황금비율 원리에 따라 건설되면서 탑 구석구석에 ‘황금분할’은 물론 ‘황금구형’, ‘황금사선’이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황금분할은 1:1.618의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분할 비율로 이집트 피라미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등 고대부터 세계적으로 건축·미술 등에 응용됐다. ‘신의 비율’로도 불리는 황금분할은 지금도 명함·신용카드·담뱃갑·컴퓨터 모니터 등의 가로·세로 비율에 적용되고 있다. 황금구형은 두 변이 황금비율을 이루는 직사각형을, 황금사선은 석탑의 지붕돌(옥개석) 등에 나타나는 사선의 경사도를 직삼각형의 빗변으로 간주할 경우 밑변과 높이의 비율로 표시할 수 있는데 이 비율이 황금비율인 사선을 말한다.
인천대 김효율 교수(60·무역학)는 최근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의 ‘신라문화’에 발표한 논문 <석가탑의 황금비율>에서 “석가탑 각 부위에는 황금분할, 황금구형, 황금사선이 적용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석가탑의 황금분할·황금구형·황금사선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석가탑 각 층의 몸돌(옥신) 높이와 지붕돌 높이는 황금분할이다. 1층의 경우 지붕돌 높이는 843㎜, 몸돌 높이는 1364㎜로 양측 비율은 1 대 1.168의 정확한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다. 3층은 몸돌 높이 424㎜, 지붕돌 높이 685㎜로 1 대 1.616, 2층은 1 대 1.684를 보여 황금비율에 부합한다.
석가탑의 황금분할은 3개층 각 층은 물론 탑 머리장식(상륜부)인 스투파(노반·복발)·앙화, 탑의 기단부에서도 확인된다. 김 교수는 “수직적 분할로 볼 때 석가탑은 모두 6개의 황금분할로 이뤄져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2층의 경우 오차는 사리공 설치로 인한 특수 구조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실제 1966년 12월 당국은 도굴꾼들의 석탑 훼손에 따라 석가탑 해체 복원공사를 벌였고, 2층 사리공에서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 등이 발견됐다.
석가탑에서는 기단부부터 상륜부까지 황금구형도 곳곳에 응용됐다. 폭과 높이의 비율에서 볼 때 기단부는 물론 각 층, 상륜부에서 황금구형이 확인된다. 황금사선도 찾아진다. 각 층의 지붕돌 윗부분의 사선인 6개의 우동, 지붕돌 받침 하단에서 지붕돌 처마의 하단을 바라보는 앙각의 선인 6개의 ‘앙선’이 바로 황금사선이다. 김 교수는 “석가탑의 우동, 앙선들이 황금사선인 데다 층별로 변화까지 수용하고 있어 관람객이 보기에 탑을 더 생동감있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논문은 또 석가탑의 수직적 기본구도가 6개의 정사각형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이번 논문은 석가탑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만들고, 이미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황금비율이 적용됐음을 확인시켜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 교수는 “관람객들이 석가탑에서 황금비율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더 수준 높은 감상이 가능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서울대 총불교학생회장 출신인 김 교수는 “개인적 관심으로 꽤 오래 연구를 해왔는데, 석가탑에 적용된 선조들의 정밀과학 수준에 저도 놀랐다”며 “앞으로 불국사의 황금비율 등도 연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석가탑은 불국사가 세워질 때인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감은사탑, 고선사탑과 더불어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걸작으로 꼽힌다. 석가탑은 탑을 만든 석공인 백제의 아사달과 그의 부인 아사녀의 전설이 얽힌 ‘무영탑’으로도 유명하다.
인천대 김효율 교수(60·무역학)는 최근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의 ‘신라문화’에 발표한 논문 <석가탑의 황금비율>에서 “석가탑 각 부위에는 황금분할, 황금구형, 황금사선이 적용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석가탑의 황금분할·황금구형·황금사선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석가탑 각 층의 몸돌(옥신) 높이와 지붕돌 높이는 황금분할이다. 1층의 경우 지붕돌 높이는 843㎜, 몸돌 높이는 1364㎜로 양측 비율은 1 대 1.168의 정확한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다. 3층은 몸돌 높이 424㎜, 지붕돌 높이 685㎜로 1 대 1.616, 2층은 1 대 1.684를 보여 황금비율에 부합한다.
석가탑의 황금분할은 3개층 각 층은 물론 탑 머리장식(상륜부)인 스투파(노반·복발)·앙화, 탑의 기단부에서도 확인된다. 김 교수는 “수직적 분할로 볼 때 석가탑은 모두 6개의 황금분할로 이뤄져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2층의 경우 오차는 사리공 설치로 인한 특수 구조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실제 1966년 12월 당국은 도굴꾼들의 석탑 훼손에 따라 석가탑 해체 복원공사를 벌였고, 2층 사리공에서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 등이 발견됐다.

이번 논문은 석가탑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만들고, 이미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황금비율이 적용됐음을 확인시켜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 교수는 “관람객들이 석가탑에서 황금비율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더 수준 높은 감상이 가능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서울대 총불교학생회장 출신인 김 교수는 “개인적 관심으로 꽤 오래 연구를 해왔는데, 석가탑에 적용된 선조들의 정밀과학 수준에 저도 놀랐다”며 “앞으로 불국사의 황금비율 등도 연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석가탑은 불국사가 세워질 때인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감은사탑, 고선사탑과 더불어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걸작으로 꼽힌다. 석가탑은 탑을 만든 석공인 백제의 아사달과 그의 부인 아사녀의 전설이 얽힌 ‘무영탑’으로도 유명하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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