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조우한 초가을 주말 오후
하늘빛과 바람이 청명해지는 가을의 문턱에서, 아담하고 어여쁜 생김을 가진 오산외삼미동고인돌(경기도기념물 제211호)을 만났다. 우장문 박사는 28년 째 국사교사로 교직에 몸담고 있기에, 주말 오후에 약속을 잡아 여유 속에서 고인돌에 대한, 고인돌과 얽힌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산 외삼미동고인돌 소재지에 도착하자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유적 숫자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왜 하필이면 이 고인돌에 찾아오게 된 것일까?
“이 고인돌을 잘 들여다보면 답이 나옵니다. 덮개돌 밑에 낮은 돌이 받쳐져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탁자식 고인돌의 받침돌이 쓰러진 게 아닌가 하더라고요. 하지만 잘 보면 받침돌의 모양이 쓰러졌을 때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그 말은 곧, 원래 이런 모양을 가지고 있는 고인돌이라는 거죠. 전국에 있는 고인돌 생김의 흐름을 보았을 때, 경기도 아래에 있는 평택, 안성, 충청도, 전라남·북도에는 탁자식 고인돌이 있고, 경기도 위에 있는 지방엘 가면 보이지 않죠. 이러한 부분에서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이곳이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나뉘는 고인돌의 유형 중에서 과도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죠.”
그는 논문에서 이 고인돌을 변형된 바둑판식 고인돌이라고 지칭했다. 이 유형은 화성·오산 일대에서만 나타나 탁자식과 바둑판식, 혹은 탁자식과 개석식 고인돌의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산외삼미동고인돌의 덮개돌에는 ‘굼’이라고 부르는 성혈이 있었다.
그것이 만들어진 데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무병장수에 대한 기원, 다산과 풍년의 기원 등 고대의 민간신앙의 일종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아득하고 오랜 시간동안 많은 염원을 담아 그 패임이 깊어지고 깊어졌을 성혈. 우리는 변하지 않는 성질을 지닌 고인돌에서 ‘영원성’과 만났다. 이제 옛날 사람들처럼 돌로 성혈을 만들며 빌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나마 내 바람을 그곳에 담았다.
시간과 역사의 예술, 고인돌
우장문 박사가 국사교사로 교직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28년이 지났다. 교직생활 틈틈이 시간을 쪼개 고인돌을 연구하려 산으로 들로 전국을 걸쳐 돌아다니고, 하다못해 가족들과 여행을 가더라도 그 지역의 고인돌을 연구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있어야 했기에 주로 새벽에 다녔다. 그 투박한 모양새 덕에 한낱 돌로 치부될 수도 있었을 고인돌의 가치를 알리는 이, 그의 열정을 보면 고인돌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고밖에 할 수 없다.
“고인돌과의 인연은 대학교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 같아요. 사학도였던 80년대 초반 당시였죠. 유적 발굴은 81년도부터 시작했었고, 고인돌을 만나게 된 건 83년도예요. 충북 제천 황석리 고인돌이었는데, 그때 담당했던 고인돌에서 사람뼈가 출토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었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학사 졸업논문을 고인돌로 충북 제천 황석리 고인돌을 주제로 삼았어요.”
우장문 박사의 고인돌 사랑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84년도에는 경기도 포천의 영북종합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는데, 고인돌이 분포된 지역이었기에 지속적으로 연구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인돌 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2004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에도 학술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대학생 때 고인돌에서 사람뼈를 발굴한 이래로, 고인돌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고인돌을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거워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고인돌을 만나러 갈 때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처럼, 그렇게 설레고 떨리죠.”
고인돌은 시간과 역사의 예술이다. 수천 년 동안 그 자리에서,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선조들의 힘과 삶, 기술을 가리킨다. 고인돌을 만드는 과정조차, 여전히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고대문화를 이렇게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어디 또 있을까. 고인돌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다. 고인돌은 우장문 박사의 가슴속에 피어오른 열정과 활력을 잇는 탄탄한 끈이다. 그렇기에 우장문 박사와 고인돌을 엮은 인연의 매듭은 참 아름답다. 박사는 꾸준한 고인돌 사랑을 다짐하며, 더욱 빛나는 문화재 사랑을 이야기했다.
글 · 박세란
사진 · 엄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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