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새해가 밝아오고 곧 설이 다가오면 우리의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온 나라가 설 축제에 휩싸여 추위도 잊는다. 이는 우리만의 아름다움에 젖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풍악 소리가 울리며 볼거리도 많고, 무엇보다 가족과 친지들과의 귀한 만남이 더욱 소중한 때이다. 세시풍속 중에 가장 큰 설 명절을 앞두고, 흥겨움의 대명사가 되는 춤과 노래에 관해 한 번쯤 생각해 봄 직하다. 우리는 즐겁고 신명이 나면 어깨가 들썩거리고 소리가 절로 난다. 이는 우리의 몸이 신명이 나면 저절로 움직여지는 본능적인 모습이다. 이 ‘절로’라는 정서는 바로 한국춤의 특성이 되는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의 본질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 몸에 깃든 신명의 몸짓
우리의 춤은 중국이나 일본과도 다르며, 서양춤과는 말할 것도 없이 판이하다. 우리 춤은 흥겨움에 빠져들어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다가 신명이 정점에 오르면[動] 자신도 모르는 무아지경에 빠져 한 순간 정지되듯이 멈추었다가[靜] 더 큰 최고 경지의 움직임[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춤은 춤동작의 형태와 형태가 이어지는 춤이 아니라 선과 선이 연결되는 춤인 까닭이다.
정중동은 ‘표면적으로는 조용한 가운데 내면적으로는 부단히 움직임’을 나타내며, 동중정은 ‘겉으로 강하게 대치하고 있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춤은 움직임 자체가 표현전달의 수단이다. 그래서 움직임의 질質과 양量은 몸짓 표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몸짓의 질은 긴장과 이완이 혼합되어 정지된 상태를 나타내는 ‘정적靜的 움직임’과 춤 폭이 크고 변화가 많은 ‘동적動的 움직임’의 조화로부터 결정된다. 또 이러한 정적 움직임과 동적 움직임을 드러내기 위한 내적 현상과 외적 현상의 조화를 이루는 ‘중적中的 움직임’이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중적인 춤동작은 정靜도 아니고 동動도 아니지만 정과 동을 화합시키기도 하고 또는 대립시키기도 하는 등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중적인 춤사위는 ‘어르는 사위’로서 맺고靜 푸는動 감정을 조절해주므로 동적 동작과 정적 동작을 생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움직임의 긴장을 극대화하는 맺힘의 정靜, 어르는 춤사위로서의 중中, 푸는 춤사위로서의 동動을 달리 생각하자면 한국춤의 성격은 동적인 것 아니면 정적인 것이라는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정과 동이 교차하고 동시에 동적인 움직임 속에 정적인 상태가 내포되고, 반대로 정적인 움직임 속에 동적인 상태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정중동은 움직임[動], 정지됨[靜]의 의미보다는 ‘움직이는 듯 마는 듯’, ‘서 있는 듯 마는 듯’ 혹은 ‘움직일 듯 말 듯’, ‘서 있는 듯 움직이는 듯’ 등 춤 기법의 행동하는 양상을 이른다. 즉, 멈춤 안에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안에 멈춤이 있어 하나의 움직임 안에 정과 동이 융합되어 있고, 나아가서는 마음속에서 ‘절로’ 일어나는 감정이 되는 것이다.
정중동과 동중정이 내포된 우리 춤사위
한국춤이면 ‘정중동’과 ‘동중동’이 내재되어 있지 않은 춤사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컨대, 정재呈才는 정재대로 정중동의 멋이 멈춘 듯이 움직이며 흐르고 있는 유장미를 내재하고 있고, 민속춤은 민속춤대로 즉흥성을 띠고 정중동과 동중동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영남의 덧배기춤에서 배김사위는 자유롭게 춤을 추다가 배김 장단이 들려오면 누구나가 약속을 한 듯이 허튼춤으로써의 긴장이 고조되어 공중으로 뛰어 오르듯이 춤추며 땅을 향해 배겨주는 정적 동작으로 맺는다. 이 광경은 가히 숨이 막히는 아름다움으로 출렁이며 다음 동적 동작으로 가기 전 어깨춤이나 어깻짓으로 어루며 중적 동작을 완성하고 있다. 이후 어루기의 중적동작과 맞물려 풀어서[動] 다음 춤가락의 대목으로 진행된다.
영남의 춤이라면 성별 차이 없이 덧배기춤과 배김사위가 드러나지 않는 춤이 없다. 동래 수영야류를 비롯하여 고성, 통영, 진주오광대, 진주 한량무, 진주 삼천포농악, 동래학춤, 부산농악, 함안농악, 밀양백중놀이의 양반춤, 병신춤, 범부춤, 오북춤 등에서 정중동의 배김사위를 배제한 춤은 없다. 특히 밀양백중놀이의 양반춤과 범부춤, 병신춤은 현장에서의 즉흥성이 돋보이는 춤이다. 범부춤은 장고재비와의 대무對舞에서 배김사위를 하며 정중동의 멋을 한껏 발휘하고, 병신춤은 제각기 불구의 모습으로 배김사위를 할 때면 관중석에서는 배를 잡고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근대 민속학자의 대가였던 송석하 선생은 경상도 배김사위의 형태가 서부경남(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과 동부경남(동래야류와 동래학춤, 수영야류), 밀양지역(북춤, 병신춤 등)의 다름이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이는 정적 동작의 형태가 지역마다 다르고, 중적 동작인 정지된 춤사위가 제각각이며, 푸는 동작으로서의 동적 동작도 그 지역마다 색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영남춤 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탈춤 전반에서도 각 과장별로 멋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봉산이나 강령탈춤의 노장과장이나 말뚝이춤에서 ‘정지하듯이 멈춘 듯하다’라는 것은, 신명나는 춤으로 이어지는 대목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농악의 개인 장기춤에서도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채상모놀음을 하는 경우에 정중동•동중동의 동작은 자반뒤집기나 한발 차고 돌기 등에서 연이어지는 동작소로 드러난다.
또 불교 의식무용인 나비춤과 법고춤, 바라춤 역시 정중동으로 힘찬 역동성을 한층 표출해 내고 있다. 예컨대, 나비춤에 있어 사방요신의 정적 동작은 동적 동작과 연이어지며 중적 동작이 두 동작을 잘 이어주고 있다. 법고춤 역시 너울너울 가사를 휘날리며 점잖게 춤추다가, 북울림으로 넘기기 전에는 역동적인 동작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정중동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파격성과 일탈, 한국춤의 아름다움
무대예술로 승화된 대표적인 민속춤으로서 살풀이나 승무, 태평무 등에서도 한 장단 안에 움직임의 동작이 변화하기 보다는 두 장단이나 세 장단을 제자리에서 박자대로 움직이지 않고 멈춘 듯 움직인다. 이렇게 여백의 아름다움이 발산되고, 살풀이 수건이나 승무의 장삼이 용솟음쳐 몰아치는 춤사위로 진입하는 모습은 긴장과 이완을 통해 보는 이의 감정을 최고의 경지로 이끈다.
이처럼 한국춤은 정적 요소만으로, 또한 동적 요소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다. ‘정’ 혹은 ‘동’으로만 이루어진다면 예술로서의 일탈을 이루는 멋스러움이나 신명 등 한국춤의 미적 특성인 알갱이가 없는 무미건조하고 공허한 춤이 되었을 것이다. 정과 동의 순환과 변형, 그리고 통합을 필요로 하고 이를 실현시켜주는 요인이 ‘중中’이다. 중은 정과 동을 알맞게 조화시켜 주고 각각의 성질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되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한국춤에서 내면적 흐름이 밖으로 드러난 정으로서 동을 함축하면 ‘정중동’을 이루고, 동으로서 정을 함축하면 ‘동중동’을 이룬다. 춤동작의 구조에서 살펴보면 ‘정’은 감정을 맺는 동작이고, ‘중’은 감정을 어루는 동작이며, ‘동’은 감정을 푸는 동작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중동’은 맺는다는 것은 곧 응어리진 마음을 모은 것이고, 푼다는 것은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서 흥겨운 신명에 젖는 역동성을 드높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춤은 끝없이 움직이면서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자연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으로 결국 우리의 정서인 ‘절로’되는 감성과 같이 몸과 마음이 하나 됨을 추구한다. 이것은 바로 한국예술의 부분적 독자성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한국춤의 미적 특성이 되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며, 한국 전통 문화의 지긋한 내면과 그 파격성, 그리고 일탈을 지닌 한국춤의 미적 아름다움이다.
글•김미숙 경상대학교 민속무용학과 교수 사진•문화재청, 진주삼천포농악보존회
'문화유산e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설화가 깃들어 있는 불구, 목어 (0) | 2012.03.27 |
---|---|
[스크랩]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가구 (0) | 2012.03.21 |
[스크랩] 간절한 하소연을 담은 옛 문서, 소지 (0) | 2012.02.23 |
[스크랩] 3천년 전, 한반도가 품은 세계적인 수수께끼 1부, 2부, 3부, 4부, 5부 (0) | 2012.02.18 |
[스크랩] 의궤 2부 조선 최대의 이벤트 정조의 화성행차 (0) | 2012.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