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황에서 칼럼을 써야 하다니, 마치 하기 싫은 숙제 같다. 야권 후보들과 그들을 지지한 우리 스스로를 먼저 격려하고 싶다. 우리와는 판단을 달리했지만, 자신들의 지지 후보를 당선시킨 동료 시민들에게는, 축하한다. 하지만 우리가 승복하는 것은 그들의 의견도 아니고 박근혜 후보의 가치와 비전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선거 결과가 갖는 민주성의 의미는, 그 표 차이만큼만 승복한다는 데 있다. 그 이상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다시 강조하고 싶다. 시민은 정부를 운영할 권리를 위임하지만 동시에 비판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 말이다. 반대는 허용되어야 하고, 반대 세력 역시 다음 선거에서는 승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기회가 충분히 향유되어야 민주주의란 뜻이기도 하다. 결과가 나왔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도 아니다. 집권당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보여준 잘못은 시정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집권당이 이 문제를 경시하고, 선거는 끝났다는 태도로 넘어가고자 하는 순간, 집권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는 커질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한 큰 이유의 하나도, 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이 그 이후 제대로 조사 및 처리되지 않은 데 있다. 우리들의 미래 시민이라 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과정의 잘못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언론을 비롯한 여론 관련 종사자들 역시 돌아볼 일이 많아 보인다. 개표 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한마디로 여론조사에 농락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선거를 지배했던 그 많던 여론조사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더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질 수 있었는가. 언론들은 그렇게나 과도하게 여론조사를 동원했어야 했을까. 투표 당일 문자를 통해 날아 들어오는 ‘카더라’ 식의 여론 조사에 잔뜩 기대를 하던 필자는, 개표를 지켜보는 내내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 다음날 언론보도에는 화가 났다. 높은 투표율에도 야권이 패배한 이유가 유권자의 연령구성에서 20~30대가 줄고 50대 이상이 늘어났기 때문이란다. 그런 식의 해석이라면 투표율이 낮든 높든 선거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는 것인데, 뒤늦게 똑똑한 척하는 일은 보기 괴롭다. 민주주의의 핵심 정치 과정인 선거를 보도하면서 시민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야권도 생각할 일이 많다. 무엇이 보수표의 결집을 가져왔는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세대에 치우친 선거운동의 한계는 무엇이었는지부터 생각해봤으면 한다.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앞세우다보니 어떤 정부 혹은 어떤 집권당이 되겠다는 차원에서 큰 인상을 주지 못한 점도 돌아볼 일이다. 정당이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후보만 앞세우고 민주당은 감추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바닥으로부터 움직이는 당 조직의 활성화 없이 붕 뜬 여론에 의존해 정치하는 방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정당은 정당다울 때 위력을 갖는다.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는 한 후보의 태도 역시 잘못이다. 민주주의 선거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시민이지 누군가 정의 구현자임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공적 토론의 역할은 상대에게 모멸감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태도는 보수적 정향을 갖는 유권자들을 자극하고 결집하게 할 뿐이다. 야권의 지식인들 역시, 역사의 후퇴를 막아야 한다거나 역사에 죄를 짓는다는 식으로 겁박하지 않았어야 했다. 역사와 옳음을 앞세우는 일은 민주적 태도와 양립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패배를 인정할 수 없어서 50대 이상의 나이든 시민들에게 경멸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창피한 일이다. 선거는 졌지만, 시민다움에서나 인간적으로 패배할 수는 없다. 각자의 정당을 추스르고 서로를 격려하며 과거로부터 배워 힘을 키워갔으면 한다. 그것으로 오늘의 패배가 다 극복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작은 거기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다가올 박근혜 정권과 가장 효과적으로 싸우는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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