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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세불三世佛과 삼신불三身佛에 대하여

깜보입니다 2012. 12. 18. 12:22

삼세불三世佛과 삼신불三身佛에 대하여

 

글은 별도 파일로도 올려놓았습니다.

 

서序

 

이 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할 것이 있다. 이 글은 불신관佛身觀에 대한 글로서 개인의 견해임을 이해해야 한다. 불교의 체계가 여러 스승들이 수천 년 동안 연구한 결과이다. 따라서 몇 권의 책과 몇 편의 논문을 읽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종교란 사람마다 느끼는 바에 따라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개념정리라는 차원에서 읽어보고 불신관의 발전에 대한 것은 아래 참고서적을 읽고 따로 공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한다.

 

 

삼세불에 대하여

 

내가 불신관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본 것은 얼마 전 숭림사 보광전에 대한 글을 쓰면서 숭림사 보광전에 있는 삼신불에 대한 개념 때문이다. 지금은 모신 불상이 예전과 다르지만 과거에 숭림사 보광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우측에 약사불 좌측에 아미타불이 있었고, 이것을 삼세불三世佛로 불렀다는 것이다. 즉 약사불을 과거불, 석가모니불을 현재불, 아미타불을 미래불로 인식해 과거, 현재, 미래를 대표하는 부처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즈음 그려진 불화에서 대부분 이런 구도로 표현되고 있다고 한다.(참고문헌 : 삼불회도/삼세불화 참조)

 

삼세불은 이런 명칭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불신관佛身觀과는 차이가 있다. 지금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불은 연등불, 석가모니불, 미륵불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보광전이 지어진 17세기에는 삼세불의 개념이 지금과 달랐다는 것이다.

삼세불의 출현에 대하여 염점자는 “이상적인 불타는 지금 살아있을 때 수행에 의해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생에 쌓은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란 개념에 과거에도 여러 불이 있었다는 <본생담本生譚>이 유행하면서 세상에 나타난 석가에만 국한하지 않고 수많은 부처를 인정하는 삼세제불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하면서 “과거불사상은 나아가 미래불사상을 낳게 되었으며, 미래불로서 십호구족한 미륵불의 출연을 예언하기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초기대승경전에 나타난 불신설/104-6쪽)

 

** 주 1) 과거불에 대해서 남전 즉 남방불교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과거칠불過去七佛 이전에 연등불練燈佛 등 18불을 추가하여 24불내지는 25불설이 있다고 한다.(초기대승경전에 나타난 불신설/105쪽)

 

양은용은 <통일신라 開元3年(715)銘 石造一莖三尊三世佛立像에 관한 연구>에서 707년에 중국에서 제작된 삼세불은 약사불/석가불/미륵불이었고 일본 양평사의 경우 1243년 초창 때는 미타/석가/미륵을 모셨다가 1798년 조성한 삼세불은 약사/석가/미타불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또한 중국에서는 연등/석가/미륵을 수삼세불竪三世佛로 약사/석가/미타불을 횡삼세불橫三世佛로 부른다고 한다.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양은용은 처음에는 삼세불이 연등불, 석가불, 미륵불이었던 것이 후대로 가면서 주 신앙대상이 바뀌면서 미타불, 석가불, 미륵불로 그리고 후대에는 약사불, 석가불, 미타불로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다.(상기서 11,12쪽)

 

양은용의 논문에서 보듯이 18세기말에 만들어진 일본의 삼세불이나 중국의 예를 볼 때 조선후기에 동양 삼국에서의 三世佛觀은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지금의 삼세불관은 다시 초기로 회귀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변화된 것은 아래 링크에서 언급했듯이 “불교의 교리나 논리에 관한 부분이 아니고 시대적 배경과 중생의 원에 더욱 밀접한 문제라 경전 상에서 그 해답을 찾기에는 어렵지 않을까.”라고 한 것처럼 경전상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필요에 의해 변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삼세불에 대한 문답

http://www.sejon.or.kr/dharma89/reopen/qna01/qna_011202.htm

 

 

삼신불에 대하여

이제 전반적인 삼세불관의 변화에 대한 것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삼신불三身佛에 대한 것을 살펴볼까 한다. 불신관은 방위에 의한 불신관 등 여러 불신관이 있다. 이것은 화신불化身佛의 개념이 발전되면서 여러 변화신變化身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삼신불에 대한 것이다. 삼신불은 법신불法身佛/보신불報身佛/應身佛(또는 化身佛)을 말한다. 화엄경에서 이야기하는 삼신불은 법신불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보신불로 노사나불盧舍那佛, 응신불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이야기하고 있다.

 

삼신불 개념을 간단히 말하면 법신불은 본래부터 존재했던 법 그 자체를 말하고, 보신불은 과보果報에 의해 얻어진 불신으로서, 오랫동안 쌓아온 공덕으로 부처가 된 것을 말한다. 응신불/화신불은 우리를 구제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부처를 의미한다. 석가모니불은 우리를 구제하기 위해 법신불이 변화하여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면 화신불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오랜 수행을 통해 해탈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보신불일 수 있어 화신불/보신불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삼신불관이 처음 석가모니가 불교를 전파할 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 석가는 윤회나 영혼 등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 매우 말을 아꼈다고 한다.(주 2) 따라서 처음에는 석가모니를 위대한 스승으로 생각하는 개념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석가모니를 차별화하는 과정에서 신격神格이 더해지면서 인간으로서의 석가와 신격으로서의 석가를 구별하면서 개념으로발전한 것이다.

 

** 주 2) 이 문제에 대해서 이중표는 용수龍樹(Nagarjna)의 <중론中論>에서 공성空性을 인용하여 모든 존재가 공성이기 때문에 석가가 침묵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근본불교/42-44쪽)

 

불교에서 석가모니라는 존재가 신격화되는 것은 석가가 열반에 든 후 100년이 지나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나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뉜 것은 계율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으로 나뉜 것이다. 상좌부는 이전의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대중부는 상황에 따라 계율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 차이에서 갈리게 된 것이다.

 

이런 의견차는 스승인 석가모니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상좌부는 큰 스승으로서 인간적인 면을 우선한 반면 대중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신격을 가진 존재로 해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것이 석가의 법(다르마)을 해석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아비달마불교(부파불교)에서 각 파별로 불신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더욱 심화되어 현재의 불신관이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된 이후인 아비달마불교시대에 들어서서는 상좌부나 대중부모두 석가모니 즉 부처의 개념이 신격화되는 것은 분명하며 신격화된 부처와 인간으로서의 부처를 어떻게 보는가에 차이를 두고 있다. 초기불경 중 신격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최초의 불경은 <열반경>이라 한다. <열반경>은 붓다의 최대 가능 수명에 대하여 언급한 최초의 문헌이라고 한다.(붓다의 신격화와 반신격화/247쪽) 이런 개념이 발전하여 부처의 신격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초기 상좌부 불교에서는 석가를 역사적 인물로 파악하고 신격화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상좌부에서도 석가의 초인간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상기서/264쪽) 석가모니에 대해 보수적 해석을 하는 상좌부 역시 인간으로서의 석가관은 점점 변화되어 아비달마불교시대에서 상좌부의 불신관은 “불타와 이승(주 2)이 해탈에는 차이가 없으나 성도成道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발전한다.

 

즉 해탈에서는 차이가 없을지라도 해탈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능력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육체로 나타난 부처는 육체를 쓰고 나왔기 때문에 번뇌에 오염된 존재이고 수명 또한 유한하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좌부에서는 법신과 인간의 몸인 색신色身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귀의처가 법신임을 강조하고 있다.(초기대승경전에 나타난 불신설/111,117쪽)

 

** 주 3) 이승二乘은 성문聲聞과 독각獨覺을 말하는 것으로 성문은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의 길로 가는 사람을 의미하고 독각은 부처의 가르침 없이 스스로 깨달은 사람으로 연각緣覺이라고도 불린다. 독각은 다른 사람이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아비달마불교/315-319쪽)

 

이에 반하여 대중부의 불타관은 모든 부처는 모두 세상에 나왔고, 완전히 번뇌를 벗어났으며, 한마디로 모든 법을 이야기하고, 항상 선정에 들어있으며, 수명도 무한하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세상에 나타난 부처는 중생제도를 위해 나타난 화신이라는 것이다. 즉 대중부에서는 인간 몸을 한 부처를 이상화하여 석가모니는 이미 번뇌를 벗어난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해석은 결국 보신불적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초기대승경전에 나타난 불신설/115-7쪽) 이런 해석은 결국 보신불의 출현하게 하는 것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우리가 지금 말하는 법신불이니 보신불이니 하는 개념이 명확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법신 중심으로 발전한 것은 대승초기라 한다. 초기대승경전에서는 법신과 화신의 개념에 기초하여 전개되었다가 <화엄경> 이후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관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보신불사상의 전개에 대한 일고/19쪽) 이런 모습을 초기 대표적인 대승경전인 <묘법연화경>, <금강경>, <화엄경>에서 찾아보면, <묘법연화경>에서는 그간 법신의 개념이 석가모니불에게 적용되어 석가모니는 영겁이전에 성불하여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으로 나타나서 성불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으로 <묘법연화경>에서 금생에 나타난 석가모니의 신격화가 완성된 것이라 한다.(상기서 126-7쪽)

 

<금강경>에서는 금강경이 있는 “이곳은 탑塔이 되어 모두들 마땅히 공경하여 예배를 드리고 둘러싸면 돌며 각가지 꽃과 향을 그릇에 뿌리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당시 여러 부파에서 강조한 석존의 본체라고 생각했던 탑신앙이 아닌 경 중심의 불교를 이야기하고 있다.(금강경/101쪽) 그리고 이 금강경에서는 형태를 가진 여래는 여래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금강경 여리실견분품, 여법수진분품, 이색이상분품 등 참조) 따라서 부처의 본질은 법신이며 육신을 가진 석존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부처는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닌 법을 신체로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초기대승경전에 나타난 불신설/133쪽) 즉 인간의 석가가 완벽하게 법신의 개념으로 변화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엄경>에서는 명확히 법신, 보신, 화신의 개념이 드러난다. <화엄경>은 부처가 설한 경전이 아니고, 부처, 부처의 세계, 부처가 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법신사상이 강조되어 진리를 법신으로 보고 있으며 <노사나불품>편에서는 비로자나불의 광명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현수품賢首品>에서 화신불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면서 <法華文句 卷 9>의 내용을 근거해 비로자나불을 법신, 노사나불을 보신으로 석가모니불을 응신불로 설명하고 있다.(초기대승경전에 나타난 불신설/137-9쪽) 즉 화엄경에서는 법/보/화의 삼신불의 구체화를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다.

 

 

결론

 

석가모니가 해탈을 한 후 많은 법을 이야기하였지만 결국 그것을 발전시켜 가는 것은 남은 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처음 단순함에서 출발하여 점점 복잡하게 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불교 역시 그러했다. 이번 삼신불의 변화과정을 보면 초기에는 석가에 대한 순수한 존경이 점점 신격화되면서 석가라는 존재와 석가를 존재하게 한 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불교초기에는 오직 위대한 스승이었던 석가만이 존재했던 것이 석가가 말한 법과 석가와의 관계를 발전시켜 법신과 인간인 석가, 二身으로 구분하여 논의 되었고, 그 후 법에 대한 계속된 탐구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방편으로서의 과거불도 존재하고, 수많은 부처가 존재한다는 다불多佛사상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삼세불의 변화의 과정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당시 주된 신앙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삼세불도 변화해왔다. 즉 불교는 우리가 원하는 신이 무엇인가에 따라 변화되어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 불교는 변화해갈 것이다. 그 방향 역시 우리가 불교에서 무엇을 원하는가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추 신

 

법/보/화, 법/응/화, 법/보/응 등의 불신에 대한 것은 본인이 많이 헷갈렸던 부분이다. 이것에 대한 설명을 정성준은 <보신불 사상의 전개에 대한 일고>라는 논문에서 <금광명경>에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선남자여! 이 법신은 번뇌장이 청정하기 때문에 능히 응신을 나타낼 수 있으며, 업장이 청정하기 때문에 능히 現化身을 나타낼 수 있다. 지장이 청정하기 때문에 능히 법신을 나타낼 수 있음은 공중에 번개가 나타나고, 번개에 의지해 빛이 나타냄에 비유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법신에 의지하여 응신을 나타내고, 응신에 의지하여 지혜가 청정해야 응신을 섭수할 수 있고, 삼매가 청정해야 응신을 섭수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청정한 것이 법여여이며, 이 영와 다르지 않음이 일미여여이며, 해탈여여이며, 구경여여이다. 때문에 제불의 체는 하나로 다름이 없다.

 

위의 경전에 대한 설명으로 “응신은 보신에 해당하며 응신은 주관적 정신인 번뇌장이 청정해져야 가능한 것으로 법신의 실체가 지닌 공덕이 곧 보신으로 구현됨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기서 27쪽)

 

 

첨부파일 불신관정리.hwp

 

참고문헌

근본불교/이중표/민족사

아비달마불교/권오민/민족사

신역 금강경/최대림 역/홍신문화사

불신관에 관한 연구/노권용/한국종교사연구 제7집/1996

붓다의 신격화와 반신격화/안양규/종교와 문화/2000

삼신불설의 전개와 그 의미/노권용/한국불교학 제32집/2002

부파불교의 불타관/노권용/한국종교사 연구 제12집/2004

한역금광명경의 불신론에 관한 연구/최은영/불교연구 20/2004

용수의 불신관과 그 의의/노권용/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29집/2005

밀교의 현신사상의 형성고찰/배관성/불교학보/2005

報身佛思想의 展開에 대한 一考/정성준/불교학보/2005

테라바다의 붓다관/박청환/불교학연구 15/2006

여래장사사의 연구/노권용/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제37집/2007

불신론의 문제-삼신의 성립과정/정호영/人文學志 제35집/2007

초기대승경전에 나타난 불신설/염점자/한국불교학 제 50집/2008

통일신라 開元3年(715)銘 石造一莖三尊三世佛立像에 관한 연구/양은용/문화사학 29호/2008년6월

삼세불에 대한 문답

http://www.sejon.or.kr/dharma89/reopen/qna01/qna_011202.htm

삼불회도(三佛會圖) / 삼세불화(三世佛畵)

http://www.buddhapia.com/_Service/_ContentView/ETC_CONTENT_2.ASP?pk=0001454509&sub_pk=&clss_cd=0002198995&top_menu_cd=0000008277&menu_cd=&menu_code=0002180703&sub_menu=Y

묘법연화경/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B%AC%98%EB%B2%95%EC%97%B0%ED%99%94%EA%B2%BD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09b1586a

금강반야바라밀경/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A%B8%88%EA%B0%95%EA%B2%BD

금강경 [Vajracchedika-Prajnaparamita-Sutra, 金剛經]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03g0271a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최성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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