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스크랩] 서양 시계와 시간의 分秒는 언제부터 쓰였나?

깜보입니다 2012. 12. 2. 09:04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서양 시계는 경종3(1723)부터 기록되어 있고 또한 모형을 따라 새로 만들도록 하였으니 이 때부터 조선의 서양 시계는 사용 시점으로 추정되며,

고종19(1882) 조미 수호조약에 시계 수입시 관세율이 정해 진 것으로 보아 이 이전부터 시중에 이미 사용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2)시간의 分秒 기록은 순조(純祖) 즉위(1800) 실록부터 日蝕 11건에 分秒의 기록이 보이며(月蝕도 동일하다) 그 이후 헌종부터는 실록에 보이지 않고 발생 된 사실만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分秒를 사용한 것은 이때 부터로 추정된다.

 

경종 3년(1723) 10월 9일(을묘) 서양 시계를 관상감에 내려 새로 만들게 하다

서양국(西洋國)의 문신종(問辰鍾:앉혀 놓게 만든 시계의 일종)을 관상감(觀象監)에 내려 새로 만들게 하였다. 이것은 진하사(進賀使) 밀창군(密昌君)이직(李樴)이 돌아올 때에 청(淸)나라 임금이 우리나라에 보낸 것이다. 그 법(法)이 매우 정밀하고 교묘하여 밤이나 낮이나 비올 때나 흐릴 때나 쉽게 시각을 추측할 수 있는데, 관상감에서 모형을 따라 새로 만들 것을 계청(啓請)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下西洋國問辰鐘於觀象監, 令新造。 是進賀使密昌君樴回還時, 淸主送於我國者也。 其法極精妙, 晝夜雨陰, 易以推測晷刻, 本監啓請依樣新造, 上許之。

 

고종 19년(1882) 4월 6일(신유) 조미 조약을 체결하다

-前略-

현재 미리 정한 세칙(稅則)은, 대략 민생의 일상용품과 관계되는 각종 입항 화물의 경우 시장가격에 근거하여 100분의 10을 초과하여 세금을 징수할 수 없으며, 사치품과 기호품인 양주·여송연(呂宋煙)·시계와 같은 것들은 시장가격에 근거하여 100분의 30을 초과하여 세금을 징수할 수 없다.

-後略-

 

순조 즉위년(1800) 8월 15일(을축) 월식하다

월식(月蝕)하였다.【묘시(卯時) 초에서 진시(辰時) 초까지 2분(分) 27초(抄)의 월식이었다. 처음에는 동북쪽부터 어그러져서 정북(正北)으로 먹어들어 가기를 심하게 하였으며 다시 회복된 때는 북쪽에서부터 둥글어졌다.】

乙丑/月食。【自卯初, 至辰初, 食二分二十七秒。 初虧東北, 食甚正北, 復圓西北】

 

순조 2년(1802) 8월 1일(기해) 일식이 있다

일식(日食)이 있었다.【신시(申時) 초부터 유시(酉時) 초까지 8분 44초 동안 일식이 진행되었는데 처음에는 서남(西南)쪽이 이즈러졌고 정남(正南)쪽에서 몹시 심한 일식 현상이 일어났으며 다시 동남(東南) 쪽에서 둥글어졌다.】

己亥朔/日有食之。【自申初, 至酉初, 食八分四十四秒, 初虧西南, 食甚正南, 復圓東南】

출처 : 종묘를 사랑하는 사람들
글쓴이 : 최준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