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醬’이란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음식 맛을 낼 때 조미료로 사용되는 식품이다. 우리나라의 장은 콩으로 만든‘두장豆醬’으로 중국의 문헌인『삼국지 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 (290년경)』에‘고구려 사람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표기되어있어 우리민족이 일찍부터 장담그기, 술빚기 등 발효식품을 잘 만들어 먹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에 신문왕神文王이 부인을 맞이하는 납폐 품목에‘장醬’과‘시 : 메주’를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고려사高麗史』「식화지食貨支」에 1018년(현종 9)과 1052년(문종 6)에 굶주린 백성에게 구황작물로 곡식과 함께 장을 지급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부터 장은 우리 민족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식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음식 감칠맛의 숨은비밀 ‘콩’
음식 맛은 장맛이라는 말처럼 한국의 음식솜씨는 장맛으로 평가된다. 흔히 한국음식은 구수하고 감칠맛이 나며 깊은 맛이 특징이다. 이는 오랜 시간과 정성의 숨결이 느껴지는 발효의 맛 때문이다. 농경사회인 한국에서는‘벼’와 함께‘콩’이 많이 재배되었고 콩을 주재료로 한 다양한 장류가 발달하게 되었다. 쌀 문화권인 한국은 쌀을 주식으로 하고 채소류를 부식으로 한 식단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고기 대신 콩으로 보충하였고, 대표적인 발효음식인 장류를 탄생시켰다.
우리나라 고유의 간장과 된장은 콩과 소금을 주원료로 하여 만든다. 먼저 간장, 된장의 주재료는 콩으로 만든 메주다. 메주를쑬때는 가을에 수확되는 햇콩으로 알이 굵고잘여물어 벌레먹지 않은 것을 선택하며푹삶아 쪄서 콩의 무름성을 좋게 하여 발효성을 높였다. 한편 좋은 메주는 겉은 단단하고 속은 말랑하며 곰팡이는 흰색, 노란색을 띠어야 한다. 검은색이나 푸른빛이 도는 것은 잡균이 번식한 것이므로 장을 담그면 쓰다. 따라서 메주색은 붉은빛이 도는 황색, 밝은 갈색이 나게 뜬 것이 좋다.
장류 조리방법의 특징 및 변천사
우리나라 전통장은 초기에는 간장과 된장이 섞인 걸쭉한 장이었다. 삼국시대에는 간장과 된장으로 분리되었으며, 장독에 용수를 박아 용수(간장이나 술 등을 거를 때 쓰는 용구) 안에 고이는 즙액이 간장이고 건더기는 된장이었다. 고려시대로 와서 간장의 분리기술이 발달되면서 간장을 장즙醬汁이라고 하였다. 간장은 된장에서 추출된 용액으로 여러 해를 묵힐수록 빛깔이 짙어지고 감칠맛이 도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장류의 맛은 조선시대에 뿌리를 내렸다.‘간’은 소금기의 짠맛salty을 의미하고, 된장은‘되다hard’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중기에 고추가 유입되면서 1700년대『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처음으로 고춧가루를 넣어서 만든 고추장의 제조법인 만초장蠻椒醬이 기록되었으며 고추장, 고춧가루가 음식의 조미료로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각종 장류는 음식종류에 따라 가려서 간을 맞추는 것이 일종의 음식비법이 되었다.
햇간장은 주로 맑은 장국에 쓰고, 묵은 진간장은 무침음식이나 조림음식에 쓴다. 맛있는 고추장 조림음식엔 햇고추장을, 장아찌에는 묵은 고추장을 써서 음식의 제 맛을 낸다. 묵은 된장으로는 된장찌개, 햇 된장은 쌈장으로 만들어 음식의 맛을 더한다. 장류는 음식의 맛을 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육류와 만나 장조림을 만들고, 다양한 채소와 만나 장아찌를 만든다. 김치와 장류가 만나면 장김치가 되고, 떡과 만나서 떡을 만들기도 한다.
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장醬을 담그면 시어진다?
조선 시대 선조 30년,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선조 임금이 함경도로 피란을 갈 때의 일이다. 국난을 당해 임금이 피란을 가게 되면 반드시‘합장사合醬使’라는 장 을 만드는 일을 관장하는 사람을 피란지에 먼저 보내 장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이에 선조가 장을 맡아 관리하는 합장사合醬使라는 벼슬에 장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신申씨 성을 가진‘신집’이라는 사람을 임명하려 했으나 조정 대신들이 모두 반대했다. 그 이유는 합장 사로 임명된 이의 성씨인 신申과 장 담그기를 꺼리는 날인 신辛일의 음이 같고, 또 신맛을 뜻하는 한자‘산酸’과 음이 비슷해 장이 시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장맛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신씨 성은‘음식이 시다, 장이 시다, 장이 시어서 못 먹게 된다.’는 의미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합장사에는 부적절하다고 하였다.
그 이후 신辛일에는 장 담그기를 삼가고, 신申씨 성을 가진 집안에서는 사돈이나 친지 집에서 장을 담가 오는 풍습이 전래되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할 징조’라고 여겨 장맛 관리에 정성을 기울였다. 장은 모든 음식의 간을 맞추는 중요한 양념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장을 담그는 과정에서 잘못하거나 관리를 자칫 소홀히 하면 장맛이 시어져 먹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시대에는‘합장사’라는 장을 담그는 일을 관장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정도로 장醬만들기에 정성을 다했다. 또한 궁중에서는‘장고마마’라 하여 장을 담당하는 상궁을 두어 장독을 간수할 정도로 장맛에 신경을 썼다. 궁중에서는 장을 담가서 두는 곳을 장고醬庫라고 하였는데, 장고의 책임자는 장을 담그는 것을 지휘하고 관리하며 장을 내어주는 직책을 가졌다.
오랜 세월과 정성을 담아 한해를 준비하는 장 담그기
정월에 하는 일 중 가장 큰 행사는 장 담그기이다. 발효음식이 발달한 우리 민족은 음식 맛은 장맛에서 비롯된다고 여겨 장맛을 중히 여겼다. 특히 집안의 장맛이 좋아야 가정이 길吉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일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장의 맛이 없으면 그 해에 큰 재앙이 온다고 할 만큼 장 담그기는 집안의 큰 연중행사 중 하나였다.
장독풍경을 보면, 장을 담고 나서도 장맛이 좋게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장독 속에 붉은고추, 대추 등을 넣거나 숯과 붉은 고추를 새끼에 엮고 금줄을 치고 청솔가지를 함께 매달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잡귀를 막는 수단으로 고추의 붉은색, 청솔가지의 청색을 싫어하는 잡귀가 장독에 범접하지 못하게 하여 장맛이 변하지 않게 하려는 벽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또 버선본을 종이로 오려 독에 거꾸로 붙였는데 이는 장맛이 변했더라도 다시 제 맛으로 돌아오라고 붙이는 의미와 장을 더럽히는 귀신이 버선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장독대 근처에는 붉은 색깔의 맨드라미, 봉선화를 심어 장맛을 해치는 잡귀雜鬼를 막고자 하였다. 불을 연상시키는 숯도 붉고, 고추도 붉고, 붉은 물을 들이는 봉선화도 붉었으며 맨드라미까지 붉었다. 붉은색은 양陽의색이므로 장맛이 좋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독대 근처는 붉은색으로 가득하였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1766년)』의 장醬의 기록을 보면‘장은 백미百味의 으뜸이니 인간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좋은 찬과 아름다운 고기가 있다 할지라도 좋고 맛있는 찬을 마련하기 어렵고, 특히 가난한 자는 고기를 얻기 어렵더라도 아름다운 장이 있으면 밥반찬이 가히 염려 없으니 가장된 자는 반드시 먼저 장 담그기를 유념할 것이며 해를 묵혀 가며 장을 먹을 수 있도록 마련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니라’한 바 있다. 이렇듯 장은 한국인의 밥상에서 그 어떤 음식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전통 장으로 맛깔스런 한국음식을 만들어 우리의 건강도 지키고 세계인의 입맛도 사로잡아보길 권한다.
글 · 사진. 윤숙자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 떡박물관 관장)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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