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또 하나의 사회혁명이 되어야
신동기 인문경영 칼럼니스트 입력 2018.03.04. 1
검찰에서부터 비롯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화예술계로 옮겨 가더니 그야말로 요원(燎原)의 불길이 되어 무서운 속도로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간간히 제기되었다 유야무야 수그러들고 말았던 성폭력 문제가 이번만큼은 사회 환경과 사람들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듯하다.
성희롱·성추행 그리고 성폭행과 같은 성폭력의 발생원인은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신분제 사회의 잔재인 권위주의, 조직 내 위계에서 발생하는 권력 남용의 문제, 업무 속성에 따른 환경의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리의식 정도이다.
권위주의는 ‘어떤 일에 있어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라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사람 위에 사람을 두거나 사람 밑에 사람을 두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사람간의 관계를 평등하게 여기지 않는 비민주주의적 사고방식과 태도이다. 그 원인으로는 이 땅의 역사와 개인의 불완전한 이성 활용, 둘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왕정시대를 주체적으로 청산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으로 신분제가 역사의 무덤으로 들어간 지 100년이 넘었고, 초·중·고 12년간 마르고 닳도록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반 가문이 자랑이고 국모(國母)와 같은 왕정시대 언어에 원초적 저항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불완전한 이성 활용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공경하는 ‘존경’의 기준을 잘못 갖고 있다는 것이다. 존경의 대상은 부(富)나 지위 또는 능력이 아니다. 칸트가 주장한 것처럼 존경의 대상은 오로지 ‘도덕’이다. 부·지위 또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이로울 뿐이고, 거기에 부도덕이 더해지면 그것은 수많은 이들에게 고통이고 사회에 재앙이 될 뿐이다. 인간의 품질 기준은 도덕이다. 도덕적인 인간만이 가까운 이와 사회에 보탬이 되고, 아울러 인간의 타고난 속성인 이기주의를 극복했다는 데서 일반 사람보다 더 높게 평가받을 자격이 있다. 공리주의(功利主義)적 측면으로나 도덕적인 측면 모두 높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조직 내 권력의 문제는 정확히 말해 권력 자체가 아닌 권력의 남용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조직 내 권력관계는 본질적으로 계약관계이자 균형의 관계이다. 위계상 위·아래가 업무상 위임·수임의 계약관계이고, 각각의 위치에서 모든 조직 구성원은 ‘권한’과 이와 같은 무게의 ‘책임’을 갖는다. 따라서 조직 내 구성원 간 계약관계와 각 구성원의 권한·책임 균형의 원칙이 제대로 설정되고 조직 운영 규칙이 합리적으로 명백하게 집행되면, 조직 내 권력 남용은 사실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
업무 속성에 따른 환경의 문제는 일의 내용과 그 일이 요구하는 주요 소질이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다. 숫자를 다루는 일은 정확하고 꼼꼼한 자질이 필요하고, 심사와 같은 일은 합리적인 의심을 필요로 하고, 문학이나 예술은 뛰어난 감성을 요구한다. 성 관련 범죄는 바로 이 감성 활동을 온상으로 이용하려들기 쉽다.
법은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일일이 다 규제하고 구속할 수 없다. 따라서 법 저촉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이것은 옳지 않으니 하지 않는다’라는 윤리의식을 갖는다면 그것은 최상이다. 윤리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최소한 법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가져야 한다. ‘이런 행동을 하면 내가 몇 년간 감옥에 갇히고, 나와 가까운 이들이 나로 인해 고통을 받을 수 있겠구나’하는 마음이다. 물론 법이 제대로 집행되는 사회에서는 바보 아니라면 누구나 당연히 법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다.
‘도덕 수준’과 상관없이 ‘능력’ ‘지위’만으로 평가하는 인식이 문제
미투 운동이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요원의 불길이 되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4가지 원인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에서 가해자로 지목되는 이들은 흔히 거장·왕·교주·독재자로 불린다. 권위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언어들이다. 아니 사실이 그렇다. 본인은 신분제 사회의 왕이나 귀족처럼 약자에게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주위 사람들은 그이의 ‘도덕 수준’과 상관없이 ‘능력’과 ‘지위’만으로 그를 사람 위의 사람으로 떠받든다. 권위주의의 전형이다. 왕정시대의 유산과, 능력·지위를 ‘존경’의 자격으로 여기는 이성의 결핍 탓이다.
문화예술계는 일반적으로 느슨한 조직이다. 거의 프리랜서 신분이면서 구속력은 강하다. 계약 관계는 분명하지 않은데 업계 구속력은 오히려 일반조직보다 더 강하다. 이를테면 찍히면 그 바닥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이런 환경에서 신참자는 보장과 권한은 약하면서 부담과 의무만 많이 지기 쉽다. 정점으로 갈수록 권한은 많고 책임은 약하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책임은 많고 권한은 약하기 쉽다. 조직 아닌 조직, 프리랜서 아닌 프리랜서 환경이 가져온 매우 불합리한 상황이다. 그 결과 권력의 남용이 작용할 틈이 상존한다.
문학이나 예술은 인간의 속성 중 이성 아닌 ‘감성’을 주로 다룬다. 그런데 그 감성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가 사랑 또는 남녀관계다. 사랑과 남녀관계의 궁극적 표현은 대체로 성(性)적이다. 소설이나 영화 또는 연극에서 성과 관련된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시나 노래 가사에서도 비유·은유 또는 직설적으로 성적 내용이 자주 드러나는 배경이다. 일 자체가 ‘감성’ 분야이고 그 감성에서도 성과 관련된 부분이 많다면, 권력을 가진 이가 나쁜 의도를 가질 경우 ‘일’과 ‘성적 범죄’의 경계를 일부러 흐릴 가능성 역시 상존한다.
법은 약자에게는 죽음의 덫이고 강자에게는 귀찮은 방해물 정도인 거미줄이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제도만 있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바보여서가 아니다. 공고한 기득권 카르텔로 언제든지 법을 거미줄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거장·왕·교주·독재자로 군림하면서 거침없이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이것들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사회에서 법은 그들에게 거미줄에 불과하다. 좋은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격하면서도 공정한 법 집행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권위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권력 남용에 대한 엄격한 제재, 일과 범법의 경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 그리고 윤리의식 고양이 중요하다.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근절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조직에서의 성폭력 근절, 그리고 보다 건강한 사회, 이성적인 민주주의 사회실현을 위해서도 그렇다. 미투 운동, 또 하나의 사회혁명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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