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18세 선거권은 고등학생도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상징성을 선물한다. 교과서 안에서 지식으로만 존재하던 민주주의가 이제 삶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교과서 밖으로 걸어 나온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면, 선관위는 최근 “고등학교의 정치화 등 교육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며 입법 보완을 주문했다. 이참에 학교와 정치, 그리고 선거와 관련된 몇 가지 점들을 짚어본다.
첫째, 지금까지 학교에서 정치담론은 일종의 금지어이고 회피어였다. 교육의 정치중립성은 정치를 가르치지 말라는 뜻으로 읽혔다. 반면, 교육기본법에서 교육은 정치를 가르치되, “어떠한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의 전파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는 단서조항을 달고 있다. 즉 제대로 된 정치교육을 하라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뜨거운 정치적 쟁점들은 각색되지 않은 논쟁적 형태 그대로 교실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둘째, 교실의 정치화를 염려하기보다 오히려 전향적으로 정치의 교육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야당 원내대표가 “교실이 정치판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염려했지만, 더러운 정치판을 깨끗이 정화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를 교실 안에 집어 넣는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정치 속에서 새로운 가치들이 실험되고, 정치 속에서 새로운 것이 학습되며, 그 학습결과를 평가하여 차기 투표에 반영하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학습정치’라고 부른다. 촛불을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왔던 시민들이 보여준 엄청난 학습력에 비해서, 여의도의 프로 정치인들은 심각한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 미래가 없는 것은 그 안에 학습력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 18세 학생들이 단편적 정보만으로 투표할 거라고 우려하지만, 사실은 성인들이 더 문제이다. 정치지형을 읽어내는 정치문해력도 하나의 문해력이라고 한다면, 한국 중장년 성인들의 일반 문해력은 청년세대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OECD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16~24세 젊은층의 문해력은 영국을 훨씬 앞지르고 있는 반면, 55~65세 인구의 평균 문해력은 그들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치현실이 하나의 ‘문제’라면, 그 안에서 오답과 정답을 가려내는 일은 학생들이 선수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수능에서 정답 찾는 것보다 정치지형을 읽는 일이 쉬울지 모른다.
성인들은 정치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국회의원이나 정당을 선택할 때도 주로 경험이나 호감도에 의지한다. 하지만 이제 정치선진화를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전 국민이 각자 제대로 된 정치교육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가치와 헌법적 원리들을 기준으로 어떤 정당 혹은 어떤 후보가 헌법적 가치에 더 합당한지, 그 원칙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일은 결코 학교에서만 해야 할 교육은 아니다. 정당 강령과 정책을 읽고 분석하며, 의회를 모니터링하면서 그것이 구현되는 과정을 관찰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도 삶의 지혜만으로 되지 않는다.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는 당사자들의 몫이지만, 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사유는 별도의 교육을 필요로 한다.
이제 평생학습시대이다. 정치쇄신은 국민 모두가 정치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사고쇄신을 하면서 시작된다. 평생직업능력개발도 중요하지만 평생시민교육도 정치사회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훨씬 더 정치 친화적으로 커야 한다. 스웨덴 청년정치가 툰베리 같은 리더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면서 한국의 정치는 물갈이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선거교육은 학교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마을교육공동체 안에서 주민자치와 마을민주주의가 만나고, 그 안에서 어릴 때부터 정치담론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길러낼 수 있다. 정치를 주제로 대화하더라도 “싸우지 않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타협과 소통의 문화가 불편하지 않은 생활정치문화가 만들어진다. 지역의 다양한 평생교육기관들과 시민교육단체들이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가 염려하는 것처럼 학교 안에서의 선거운동이 과열되고, 학생들이 잘 몰라서 불법선거에 동원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고등학생들의 선거캠프 참여는 독려될 만하다.
투표는 정권을 심판하는 도구이지만 새로운 학습이 없는 투표는 심판에 대한 또 다른 심판의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 18세 투표가 반영된 새로운 정치지형도가 궁금하다. 그 결과는 4월에 드러난다.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창비-시절과 기분;김봉곤 (0) | 2020.05.06 |
---|---|
고창 (0) | 2020.04.10 |
(펌)유배지에서 꽃피운 문학 (0) | 2020.01.03 |
여행의 인문학 (0) | 2019.12.20 |
(펌)우리궁궐지킴이 (0) | 2019.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