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펌) 송씨 부인의 알 수 없는 탁월함

깜보입니다 2020. 5. 11. 14:55

송씨 부인의 알 수 없는 탁월함


[책&생각] 이숙인의 앞선 여자

역사 속 여성들의 실제 행적을 열람하다 보면 이념형인 다소곳함과는 정반대인 경우들이 많다. 여자란 재주가 덕을 능가해서는 안 된다고 세뇌를 시키지만, 탁월한 재주로 역사의 이면을 채운 인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 가운데 세종의 며느리로 역사에 등장하여 단종·세조·예종·성종·연산군·중종의 여섯 왕과 통큰 거래를 한 송씨(?~1507)의 수완은 단연 압도적이다.

송씨는 세종과 소헌왕후가 마지막으로 낳은 8남 영응대군(1434~1467)의 부인으로 간택되어 왕실에 입성한다. 그런데 분명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혼인 4년 만에 시아버지에 의해 쫓겨난다. 4명의 며느리를 내친 경력으로 보아 세종은 자식의 부부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한 병통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 세종은 내시부의 요원들을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에 내려보내 영응의 배필감을 다시 찾게 하고, 결국 재혼을 성사시킨다. 그리고 반년 남짓, 안국방에 주변 민가 60채를 헐어내고 지어 준 영응의 집에서 세종은 눈을 감는다. 이제부터 송씨가 다시 등장한다.

3년 상을 치른 영응대군은 조카인 단종의 허락을 얻어 부인 정씨와 이혼하고 전처 송씨와 재결합한다. 남몰래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이 딸 둘을 낳았던 것이다. 부모가 내보낸 부인을 다시 들이는 것은 예가 아니라는 대신들의 빗발치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종은 숙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결합에 성공한 그들은 곧이어 친정 조카를 왕비로 밀어넣는 쾌거를 이룬다.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가 바로 그녀의 조카이다. 대군 부부는 안국방의 저택에다 재물 또한 누거만(累巨萬)이었다. 늦게 낳은 아들을 너무 사랑한, 아버지 세종의 유언으로 내탕고의 모든 보물을 받게 된 영응은 노비 1만명을 거느리는 거부가 된 것이다. 그런 영응대군이 34살의 젊은 나이로 죽자 모든 재물과 보물은 송씨에게 돌아갔다.

일러스트 장선환
일러스트 장선환
아버지 세종으로부터 어린 아우의 후견인 자격을 받았던 세조는 그 부인과 딸을 극진히 보살피고 많은 재물을 내려준다. 왕의 비호를 받는 송씨의 권력도 점점 높아졌다. 송씨는 딸 길안현주와 사위 구수영을 띄우기 위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대신들을 초청하여 곧잘 연회를 베풀었다. 송씨에 대한 왕의 비호는 대를 이어 계속되는데, 어릴 때 송씨 집에서 양육된 성종은 그녀 집으로 행차하여 수십 석의 곡식을 하사한다. 송씨에 대한 특혜가 지나치다며 신하들이 공격하면 성종은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송씨는 임금의 뜻에 영합한 대사헌을 움직여 송사 중인 재산·전답·노비 등을 차지하고, 왕실 재산인 답십리의 채전(菜田)과 양천의 초장(草場)을 불하받는다. 허허벌판인 암태 목장을 나라에 헌납하자 성종은 호조에 명하여 값을 쳐주게 한다. 성종이 보위에 오를 때 송씨는 자신의 저택을 기증했는데, 바로 연경궁(延慶宮)이다. 통 크게 베풀고 거둬들이는 방식으로 왕과 거래를 한 셈이다.

새 왕이 탄생하자 송씨는 각종 보물과 노리개를 바치고, 연산군의 신하들은 그런 물건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이치에 어긋난다며 난리를 피운다. 송씨는 재산을 쾌척하여 절을 창건하고, 절 출입이 잦는가 싶더니 결국 추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중 학조와 사통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연산군은 소문을 보고한 신하를 도리어 옥에 가두고 사관에게 명하여 송씨에 관한 소문을 기록에서 삭제하라고 한다. 하지만 실록에는 이 말까지 기록되어 있다. 70을 바라보는 송씨에게 그 추문은 어쩌면 시샘으로 인한 모함일 수도 있겠다. 송씨에 대한 험담은 기록 곳곳에 보이는데, 질투심이 많고 성품이 사나웠다고도 한다. 폭군 연산군이 폐위되고 새 왕 중종이 들어섰다. 다시 중종의 마음을 사로잡은 송씨, 그녀의 죽음에 왕은 소선(素膳)으로 애도를 표한다. 한편 송씨의 딸 길안현주는 5남 5녀를 낳았는데, 증손자 구사맹의 딸이 인조의 모후 인헌왕후다. 인조의 후손으로 계승된 조선후기 왕들은 송씨의 핏줄이기도 하다. 바뀌는 왕마다 통큰 거래를 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한 그 자체로도 송씨의 능력은 특별하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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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44110.html#csidx0ae7f047f9fbef79724a5a08a7b0f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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