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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책 이야기-지금까지 총파업은 없었다…여자들이 부엌에 있었으므로

깜보입니다 2020. 10. 16. 10:58

가사노동 임금운동 핵심이론 제공한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선집
1970년대부터 자본주의 재생산노동, 여성운동, 여성건강 이슈 모아

페미니즘의 투쟁: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부터 삶의 보호까지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이영주·김현지 옮김/갈무리·2만9000원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개봉되었다. 일본에서 영화를 본 분이, 혼자 온 여자들이 유난히 많던 극장 안이 김지영이 복직을 포기하는 순간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 찼다고 했다. 나 역시 <82년생 김지영>을 보던 극장에서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는데.

 

페미니즘이 제기하는 문제는 국가와 문화권별 특징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세계적인 것이다. 페미니즘 이론을 ‘수입’하는 형태로 처음 접한 나라들에서도 이 운동이 급속도로 퍼져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언제나 그 ‘어디에서나 같다’는 측면에서 온다. 가부장제에 국적이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 역시 국적이 없다. 페미니즘은 정치 운동이지만 여성의 삶을 바꾸려는 구체적인 사회운동이며, 가정에서 ‘사랑으로 하는 노동’을 필두로 노동, 공동체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생활 밀착형이 된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식은 국가별로 구체화한다. 과거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에서 호주제 폐지가 주요한 쟁점이었던 것처럼.

가사노동 임금 그룹과 위원회 컨퍼런스에 참석한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토론토, 1975년. 갈무리 제공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는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정치법학부 및 국제학부 교수로,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여성이 처한 환경을 연구해왔다. <페미니즘의 투쟁>은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30여년간 쓴 글 가운데 그의 정치사상적 흐름을 보여주는 글을 모은 선집이다. 책 앞머리에 실린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여성과 공동체 전복>(1972) 이탈리아어판 서문은 이탈리아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음을 언급하며, 그간 마르크스주의라고 여겨졌던 것과 여성의 경험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하락했는가뿐만 아니라 왜 하락했느냐는 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상황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이 소비의 중심이자 숨은 노동력 예비군인 건 맞지만 가족은 동시에 ‘생산의 중심’이다. “자본주의에서 생산되는 다른 모든 상품과 달리, 여성이 생산하는 상품은 인간, 다시 말해 노동자이다.” 이탈리아 자본은 다른 산업 국가들보다 남성을 가사 서비스에서 더 많이 ‘해방’시켜 공장에서 최대한 착취당하게 만들었고, 임금은 여성으로 하여금 유난히 많은 양의 ‘가사노동’을 어떻게든 하도록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여성 시민이 노동자로 고용되기 시작한 이후로도, 이탈리아에서는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지속된 불황의 결과 덜 불안정한 일자리는 남성에게, 낙후된 부문의 일자리는 여성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사노동 임금 집회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가운데). 베니스 미스뜨레, 1975년. 갈무리 제공

 

“노동 인구의 절반이 파업하는 동안 다른 절반은 집 안 부엌에 있었다면, 이는 총파업이 아닙니다. 우리는 총파업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남성, 대개는 큰 공장에서 일하는 남성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동안 그의 아내와 딸, 누이, 어머니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1974년 3월 ‘총파업에 대하여’ 연설문) 전체 계급의 착취는 각각의 여성 착취를 매개 삼아 구축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성이 집 안에 머문다고 간주하는 모든 상황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집 밖으로 나와 가정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페미니즘을 다룬 여타의 책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주장이다. <페미니즘의 투쟁>의 장점은,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임금노동을 선택하기로 한 여성들이 증가함에 따라 여성의 이중 노동을 유지하기 위한(여성이 가정에서 가족을 위해 노동해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대전제였다) 노력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시간의 흐름과 유럽 국가별 차이를 통해 조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성관계도 노동이다.” 나폴리, 1976년. 갈무리 제공

 

이 책은 동성애 운동이 섹슈얼리티를 권력에서 떼어 내려는 시도라고 언급하는데, 동시에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기 전에는 자본주의 사회가 동성애적이라고 지적하는 대목도 재미있다. 여성은 하루 종일 가정에 머물고 남성은 공장과 사무실에 있음으로써 하루 종일 서로와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은 이성애를 종교로 승격시키는 동시에, 여성과 남성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여성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젊은 남녀가 핵가족을 구성하는 대신 교대로 협력하는 일이 가능해지자, “여성들은 흔히 혼자 살았고, 남성과 살기보다 여성들끼리 같이 살았다. 그리고 대개는 아이를 갖지 않았다.” 여성의 건강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재생산과 연관된 것이다. “여성의 성생활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능으로 대체되었다.” 임금 경제나 임금 없는 경제 모두에서 여성의 주된 책무는 개인을 재생산하는 일이며, 양쪽 모두에서 임금 없는 주체의 전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잉의 역사: 여성과 의학의 관계’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자궁 절제술 남용 문제를 고발하는데 비백인 여성이 백인 여성보다, 더 가난하고 덜 교육받은 계층의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많이 자궁절제술 수술을 받게 되는 추이와 관련한 문제제기다. 이 논의는 마녀사냥(마녀로 고발당한 여자들은 대부분 치유자나 산파였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50년부터 1650년까지 여성 10만여 명이 마녀라는 고발을 당해 고문을 받고 산 채로 불태워졌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여성 살해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여성들이 장악하고 있던 대중 의학, 특히 산부인과 지식이 말소되었다. 남성의 전문적인 학문 구축으로 산부인과가 자리 잡자, 여성의 ‘자연스러운 특성’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변화가 생기면 전부 난소 질환으로 환원되었다. 여성의 성격 장애를 고치는 수술로 부인과 수술이 남용되기 시작했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는 1980년대부터 토착민 운동과 에코페미니즘에 관심을 기울였다. 4부 ‘파괴와 고통을 넘어: 땅과 바다를 살피다’가 저자의 그런 관심사를 담았다. 지속가능한 건강한 세계를 고민하는 일이 화두인 시대에, 앞서 고민한 여성학자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가치일 것이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가 지난 7월 말 갈무리 출판사에 보낸 편지. 1943년생인 달라 코스따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출간되지 않은 이번 한국어판 선집이 저자와 출판사 간의 따뜻한 협력 관계 덕분에 나오게 돼 무척 기쁘다”며 “건강상의 문제로 독자들에게 내 생각의 길을 안내할 수 있는 서론을 추가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밝혔다. “저의 열정이 모든 줄에 새겨져 있는 이 책이 자극제가 되어 읽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다른 세상의 건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갈무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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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66012.html#csidxd483d8068b740b39c0f849cf5d25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