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재기의 현대미술 스케치](9)내 안의 나와 마주하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자화상
미술가들은 시대·지역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자화상 작업을 한다. 사진은 맨 위 왼쪽부터 윤두서(1710·녹우당), 뒤러(1500·독일 알테 피나코텍), 렘브란트(1660·루브르박물관), 고희동(1915·국립현대미술관), 나혜석(1928 추정·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프리다 칼로(1940·텍사스대), 이쾌대(1940년대 후반·개인), 피카소(1972·후지TV갤러리), 천경자(1977·서울시립미술관), 앤디 워홀(1986·크리스티 제공), 윤석남(2018·작가), 서용선(2009·개인), 김수환 추기경(2007), 신디 셔먼(2020·인스타그램 캡처)의 자화상. 괄호 안은 작품 제작 연도·소장처 등. 경향신문 자료사진
혹시 자화상을 그려본 적이 있는가. 화가도 아닌데 무슨! 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다. 그럼 자화상이라도 그릴 듯 자신을 꼼꼼하게 살피고 들여다본 적은 있을까.
스스로를 찬찬히 뜯어보고 자화상을 그리겠다는 시도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겉모습은 물론 보이지 않는 자신의 내면세계까지 시각화한다. ‘내 모든 것’의 시각물이 자화상이다. 전통적 의미의 자화상을 그리고자 한다면 정체성과 만나야 한다. 그러자면 ‘나는 나를 얼마나 아는가?’란 물음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자화상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실존적 물음에 대한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작업했다. 한 인간으로서, 예민한 감각을 지닌 뛰어난 창의성의 예술가로서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물은 것이다. 다양한 이유로 그려진, 갖가지 사연을 품은 자화상들이 전해진다. 현대미술에서도 자화상 작업은 계속된다. ‘셀피(selfie)’ 등 개념이나 제작 이유·매체·방식·재료 등은 달라졌지만 ‘나는 도대체 누군가’란 물음이 이어지면서다. 전시장의 자화상 앞에 선 관람객은 작가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내면까지 슬며시 더듬을 수도 있다. 그의 자화상이 ‘너는 누구냐?’고 묻고, 나를 비춰주는 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내가 그리는 나
자화상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세계까지
‘내 모든 것’의 시각물…
결국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실존적 물음에 대한 응답
‘윤두서 자화상’, 극사실 묘사와 자의식 표출로
18세기 조선서는 극히 드문 명작…
서양선 뒤러·렘브란트 등 화가 있는 곳
어디서든 자화상 작업 이뤄져
매체·재료·제작 방식 등 다변화된 현대미술, 얼굴만 아니라
온몸·특정 상황까지 포함시켜 개념 자체 급변…
작가 정체성·개인적 측면 넘어 사회적 메시지도 담아
자화상 하면 누구의 어떤 작품이 생각나는가. 세계적으로 이름난 자화상들이 많다. 필자는 300년 전인 1710년경 조선의 한 선비가 그린 자화상이 먼저 떠오른다.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이다. 한국 회화사에서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명작이다. 도발적으로까지 강렬한 눈빛의 자화상 앞에 서면 시공을 넘어 공재를 만나는 듯하다. 검은 먹물과 흰 종이의 어우러짐만으로 그렇게 그렸다. 극적으로 파격적인 구도, 콧구멍 밖으로 삐져나온 코털까지 보이는 극사실적 묘사, 빼어난 표현 능력과 당대 지배적 사상·화법을 깬 선구자적 면모, 까다로운 회화 기법인 배채법 적용 등이 어우러졌다. 더욱이 그는 서양의 화가나 조선의 화원이 아니라 시·서·화로 심신수양을 한 선비가 아니던가.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공재의 자의식이다. 자의식 없는 자화상은 있을 수 없다. 그는 아마 끝없이 자아성찰을 했고, 18세기의 많은 이들과 달리 자의식을 갖췄다. 고려시대에도 자화상이 있었다는 문헌기록은 있지만 작품은 전해지지 않는다. 공재가 살던 시기 전후의 자화상도 극히 드물다. 자의식적 측면에서 두드러진 자화상은 한 세대가 지나서야 나타난다. 조선 후기 예술계를 대표하고, 단원 김홍도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표암 강세황(1713~1792)의 자화상이다.
한국 근현대미술에서의 자화상도 많다. 남녀 첫 서양화가인 고희동(1886~1965)과 나혜석(1896~1948)은 물론 이쾌대·김환기·이중섭·장욱진 등 여러 작가들의 자화상이 잘 알려져 있다. 김종영 등 조각가들의 자각상도 있다.
그런데 ‘국민화가’ 박수근은 다른 서양화가들과 달리 자화상을 남기지 않았다. 당대 한국화(동양화)가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자화상이 없다고 자의식이 약하거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술사가·평론가인 최열은 “박수근 등 자화상을 그리지 않은 작가들은 작품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자의식을 투영해내고 있다”며 “근대 한국화가들의 자화상이 드문 것은 서양화가들과 달리 근대 서양미술에 관심이 적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도 화제를 모으는 자화상이다. 이후 현대의 윤석남(82)을 비롯해 서용선(70), 변웅필(51), 신진 작가 등 여러 동시대 작가도 주목받는 자화상 작업을 하고 있다.
서양미술에서 자화상이 본격 등장한 것은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다. 작가의 자의식이 확실하게 녹아든 자화상 작가로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가 손꼽힌다. ‘독일 미술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뒤러는 자신을 예수 초상같이 위엄 있는 종교화 형식으로 표현한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1500) 등으로 유명하다. 그는 작품에 정체성을 드러내는 글을 써넣고 서명을 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화두를 잡은 수행자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끝없이 천착해야 가능한 일이다.
화가가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든 자화상 작업은 이뤄졌고, 풍성한 이야기의 자화상도 많다. 렘브란트(1606~1669)는 명성과 부를 자랑하며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부터 늙고 가난하고 외로운 말년까지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특유의 ‘렘브란트의 빛’으로 그려진 자화상들은 ‘그림으로 쓴 자서전’이란 평가를 받는다.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1889) 등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자화상도 대표적이다. 모델 구할 돈이 없어 자신을 그렸다는 그의 편지는 애잔함을 전한다.
또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1907~1954)는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1940) 등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여러 자화상을 남겼다. 독일계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은 유대인 학살의 와중에 숨어 지내며 ‘유대인 신분증을 쥔 자화상’(1943)을 그렸다. 파블로 피카소가 죽음을 앞두고 작업한 ‘죽음에 직면한 자화상’(1972)은 ‘내가 피카소’라고 외치는 듯하다. 고야나 쿠르베, 뭉크, 세잔, 클레, 실레,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자화상도 이름나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렘브란트·피카소·칼로·파르미자니노 등과 함께 현대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신디 셔먼·트레이시 에민 등의 작품을 ‘10대 자화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 계속되는 물음, 나는 누구인가?
작가들의 자화상 작업은 정체성 확인을 위한 게 대다수이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니다. 자화상을 작품세계의 한 축으로 삼기도 하고, 삶의 기록 수단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림 연습을 위해, 특정한 사건·감정이 생기거나 심지어 “개인전 때 전시장의 구색 맞추기용으로 큐레이터의 요청을 받아” 작업하기도 한다.
한 중진 작가가 “평소 작업이 풀리지 않을 때 자화상으로 몸과 마음을 다잡는다”고 하자, 옆의 다른 작가는 “자화상은 오히려 늘 스트레스를 준다”고 말한다. “자화상 작업이 더 힘들다”는 작가들이 많다.
현대미술에서는 자화상의 매체·재료나 제작 방식도 다변화하고 있다. 회화나 조각을 넘어 영상, 사진, 설치 또는 이들을 융합한 다원예술적 자화상도 이뤄지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미술 개념이 달라진 것처럼 자화상 개념 자체도 급변한다.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 특정한 상황까지도 자화상이다. 팝아트 선구자인 앤디 워홀의 자화상도 그중 하나다. 그는 작업실을 ‘팩토리(공장)’라 부르며 실크스크린을 통해 대량 제작·생산 방식으로 작품들을 ‘찍어’냈다. 자화상도 마찬가지다. 기존 미술품이 지닌 유일한 원본성이나 희소성·독창성 등을 확 뒤엎은 것이다. 마르셀 뒤샹이 소변기로 현대미술의 새 장을 연 것처럼.
이제 자화상은 작가의 정체성, 개인적 측면을 넘어 대사회적 발언과 메시지를 던지는 주요 ‘작품’이다. 행위예술가 생트 오를랑(74)은 한때 자신의 얼굴을 캔버스로 삼은 성형수술 퍼포먼스로 충격을 안겼다. 수술 때마다 그의 얼굴은 달라졌다. 사진작가 신디 셔먼(67)도 스스로가 모델이 되는 자화상 시리즈로 유명하다. 다양한 상황 설정, 분장, 표현 등을 통해 페미니스트적 발언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끄집어낸다.
그동안 만난 자화상 작업을 한 작가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자화상 작업을 하면서 낯설고 딴사람 같은 나 자신을 만날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을 더 알게 된 순간이다. 사실 작가만 자화상을 그리진 않는다. 김수환 추기경의 자화상 ‘바보야’도 유명한데, 현재 나눔의 정신을 계승하는 (재)바보의나눔 상징 이미지이기도 하다.
새해가 어느새 한 달이 지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걱정스러운 기후위기, 불평등의 심화 등 혼란스럽고 불안함 속에서다.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강건함의 소중함이 새삼 다가온다. 한번쯤 자화상 그리기, 아니면 내 자화상을 상상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싶다. ‘나는 누구인가’라며 성찰하는 시간, 나를 좀 더 알아가는 그 시간만큼 소중하고 숭고한 것이 또 있을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1291709005&code=960100#csidxebbb12863cb845e9336c493325f90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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