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영토와 생명안전을 지키는 길, 여객선공영제
강제윤
동해에만 독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과 중국 사이의 바다, 서해에도 독도가 있다. 서해 독도의 이름은 격렬비열도다. 중국과의 국경에 위치한 태안군 격렬비열도는 동, 서, 북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중국과 가장 가까운 서격렬비열도에 살던 주민이 떠나면서 사유지이던 섬이 매물로 나왔다. 2014년 중국이 민간자본을 앞세워 이를 매입하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사람도 잘 모르는 서해의 외딴 섬이 매물로 나온 사실을 중국이 어찌 알았을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다행히 가격 협상이 결렬되어 서격렬비열도는 팔리지 않았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정부가 서격렬비열도를 포함한 8개 무인도를 외국인 거래 시 허가가 필요한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며 한숨을 돌렸다. 만약 서격렬비열도가 중국인 손에 넘어갔다면 어찌됐을까? 독도 못지않은 영토 분쟁의 씨앗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지금도 틈만 나면 대한민국 영해를 무단으로 넘나드는 중국 어선들이 중국인 소유의 섬이 된 서격렬비열도를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국가 간 분쟁을 키웠을 것이다.
중국이 우리 영토를 넘보게 된 것은 유인도였던 섬들이 무인도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 987개였던 유인도가 2020년에는 465개로 줄어들었다. 40년 동안 522개의 유인도가 사라진 이유는 빈곤과 교통 불편, 열악한 의료시설 등 다양하다. 그중 가장 큰 원인이었던 빈곤 문제는 수산물의 가치가 커지면서 섬의 소득수준이 높아져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무인도가 늘어나는 건 무엇보다 교통 불편 때문이다.
육지에는 다양한 교통수단이 존재하지만 섬사람들에게 여객선은 육지와 연결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그런데 툭하면 끊기는 뱃길 때문에 섬사람들은 고통받고 있다. 먼 바다 섬일수록 교통 단절이 극심하다. 2019년의 경우 연간 여객선 결항일은 울릉도와 포항 147일, 백령도와 인천은 93일, 거문도와 여수는 91일이었다.(「거문항로 여객선 운항 안정화 검토 연구」, 국립목포해양대학교 산학협력단 2021) 그외 대부분의 섬들도 연간 수십일씩 뱃길이 끊긴다. 육지에서는 하루 이틀만 버스나 열차가 멈춰도 난리가 난다. 하지만 섬사람들은 1년에 3분의 1씩 뱃길이 끊겨도 참고 살아야 한다. 선사는 온갖 이유로 배를 띄우려 들지 않는다. 승객이 적을 때는 배를 띄우는 것이 손실이기 때문이다. 풍랑주의보로 여객선이 못 뜨는 경우도 있지만, 소형 어선도 다니는 날씨에 1천톤급 여객선이 결항을 하는 일도 잦다. 규정상 풍랑주의보가 내리지 않아도 운항이 어렵다는 선사의 자체 판단이 있으면 선사는 언제든 배를 띄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여객선 결항에 정부나 지자체도 속수무책이다.
2020년 기준 전국 104개 항로에서 59개 업체 162척의 여객선이 운항 중이다. 그중 자본금 10억원 미만, 보유 선박 두척 미만의 영세업체가 60퍼센트나 된다. 영세업체들이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내려는 것을 마냥 탓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전체 465개 유인도의 16퍼센트인 73개 섬은 여객선은 물론 도선조차 기항하지 않는 교통의 사각지대다. 격렬비열도 역시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 교통 불편이 무인도로 만들었고 중국의 손으로 넘어가버릴 위협에 처하게 했던 것이다. 또 세월호참사 이후 여객선 안전‧서비스 문제의 근본적 개선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여객선 사고는 오히려 증가 중이다. 세월호참사 후 여객선 사고는 연평균 75.6퍼센트나 증가했다. 세월호참사 직전 5년간 연평균 31.2건 발생하던 것이 세월호참사 후 5년간은 연평균 54.8건이나 발생했다. 선령 20년 이상의 노후 여객선도 전체의 22퍼센트나 된다. 선사의 영세성, 수익성 부족 등으로 인한 선박 노후화와 안전관리 투자 미흡이 승객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여객선공영제는 열차나 지하철처럼 여객선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운영해서 해상교통의 불편을 줄이고 안전성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정부도 공영제에 대한 의지가 없지는 않았다. 세월호참사 직후 해양수산부는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혁신대책’을 발표하며 보조항로 등 적자 생활항로 공영제도를 검토하고 민관합동 TF를 구성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약속을 어겼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도 낙도보조항로 공영제 우선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해수부장관도 보조항로 공영제를 추진하겠다고 답변했지만 이 또한 지키지 않았다. 해수부는 공영제를 무산시킨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 2017년 19대 대선 때는 필자가 속한 사단법인 섬연구소가 문재인후보 캠프를 설득해 여객선공영제를 공약으로 관철시킨 바 있다. 하지만 정부 출범 후 국정기획위원회에서는 여객선공영제를 100대 핵심과제에서 제외시켜 여객선공영제 실시가 늦춰졌다. 정부는 2023년까지 준공영제를 확대한 뒤 2026년 낙도보조항로 공영화, 2030년 연안여객선 완전공영제 실시를 로드맵으로 삼고 있다. 이렇듯 여객선공영제를 장기과제로 돌린 뒤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직도 정부가 해상교통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외국의 경우 캐나다는 중앙정부 지원 아래 주정부가 직접 여객선사를 운영 중이고, 노르웨이는 공공도로청이 항로를 직접 관리한다. 스코틀랜드는 공영기업과 그 자회사로 선사를 운영 중이고, 미국 워싱턴주는 직접 선사를 소유·운영한다. 뉴욕시는 1901년 페리 침몰사고 후 1905년부터 현재까지 100년 넘게 교통국에서 페리를 직영하는 공영제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인구 3만 8천명에 불과한 신안군이 4척의 여객선을 도입해 4개 항로에서 여객선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다.
신안군이 실행 중이고 뉴욕시가 100년째 이어온 여객선공영제를 우리 정부는 아직도 실현하지 못하고 10년 후로 미루고만 있다. 세월호참사를 겪고도 안전사고는 오히려 증가하고 교통 불편은 가중되는데 정부는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정부는 여객선공영제를 더이상 미루지 말고 앞당겨 실현해야 한다. 서둘러 해운법을 개정해 공영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 내 여객선공영제 추진 조직을 만들어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해상교통 이용자는 해마다 증가 추세다. 연평균 여객선 승객은 1500만명이고, 유도선 승객도 1500만명이다. 해마다 3000만명이 해상교통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중 섬사람은 3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육지 사람들이다. 육상영토의 4.4배나 되는 우리의 해상영토 중심에 섬들이 있다. 영해기점 23곳 중 20곳도 섬이다. 섬은 영토 수호의 최첨병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객선공영제는 결코 섬사람들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국민들의 생명안전과 대한민국의 해상영토를 지키기 위한 제도다.
강제윤 / (사)섬연구소 소장, 한국섬진흥원 이사
2021.12.15. ⓒ창비주간논평
커버이미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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