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e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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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보입니다 2007. 11. 5. 19:24
삼청사의 문화재청

문화재청장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청장으로서 내게 봉착한 뜻밖의 힘든 일은 의례적인 점심식사였다. 비서관의 청장 일정 관리가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몰랐다. 청장은 밥먹는 것도 큰 일 중 하나였다. 뭔 놈의 청장 점심 스케줄이 항시 그렇게 꽉 짜여 있고 밥 먹으러 가면서 자동차로 가야하는지…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약속이 없어 편하게 점심을 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그제사 처음으로 느긋이 청사 앞에 있는 식당가를 거닐다 된장찌개 하는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청사를 돌아오는데 한 식당의 상호가 <삼청사 복집>이라고 쓰여 있었다. 복집은 알겠는데 삼청사는 무슨 뜻인가? 직원에게 물어보니 대전에 있는 정부청사를 정부 제3청사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제1청사는 서울. 제2청사는 과천. 제3청사는 대전. 삼청사에 근무하면서 삼청사라는 호칭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일반 국민들도 대전에 정부청사가 있는 것은 알아도 삼청사라는 호칭은 잘 모를 것 같고, 이 곳 삼청사에는 어느 부서가 있는지 잘 모를 것 같다. 나도 문화재청장이 되고 나서야 알았으니까.

관세청, 병무청, 특허청, 중소기업청, 산림청, 통계청, 조달청, 문화재청 등 8개청이다. 원래는 철도청이 있었는데 작년부터 철도공사로 전환됐다. 그래서 청이란 청은 다 대전에 모여 있는 줄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부조직에는 삼청사의 8개청 이외에도 대검찰청, 경찰청, 해양경찰청, 국세청, 식품의약안전청, 농촌진흥청, 소방방재청, 기상청 등 8개청이 더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성이 강한 동물이어서 계기만 있으면 동질성을 찾는 버릇이 있다. 장관들은 장관들끼리 동질감을 갖고 있듯이 청장들은 청장들끼리 친숙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해양경찰청, 기상청, 통계청이 차관청으로 승격됐을 때는 이를 축하하는 청장들의 모임도 있었다. 더욱이 삼청사의 청장들은 같은 건물에 근무하기 때문에 그 친화감이 더하다. 그래서 삼청사의 청장들은 한 달에 한 번, 매달 3번째 화요일에 모이는 삼화회(三火會, ,또는 三和會)라는 모임이 있다.

삼청사의 삼화회 청장들이 때로는 정보를 나누고, 상의도 하고, 자랑도 하고, 신세 한탄도 하는데, 한번은 청마다 업무가 과중함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어느 청의 관할 영역이 가장 넓은가에 대해 서로가 피곤한듯 자랑하는듯 말하고 나섰다.

먼저 산림청장이 “우리는 관할 면적이 200억평입니다”라고 하여 모두들 놀랐다. 참고로 남한 전체는 300억 평, 서울은 2억평, 제주도는 6억평이다.

그러나 경찰청장, 소방방재청장은 국토 전체 300억평 전체라고 했다. 이에 질세라 해양경찰청장은 바다 면적은 육지의 4배이므로 1200억평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억 단위로 관할영역을 말하는데 문화재청은 별 것 있겠냐는 분위기였다. 이에 나는 지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면적은 5대 왕궁과 13개 왕릉지구를 포함하여 약 1억평 됩니다. 이외에 문화재 보호지역이 3억 5천 만평입니다. 그리고 전국의 땅속에 묻혀 있는 매장문화재의 발굴 조사를 관리하니 그것이 300억평이고, 지금까지 바다에 침몰해 있는 고대 선박이 약 200척 있으니 바다 면적 1200억 평도 제 관할에 있습니다. 게다가 독도, 홍도, 마라도 등 천연보호구역과 설악산, 한라산 등 명승지도 제 관할이고. 독수리. 오골계, 진도개, 정이품소나무, 마을숲 등도 제가 관할하고 있으며 여기에 인간문화재라고 불리는 중요무형문화재도 제 소관입니다.”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자 모두들 문화재청의 관리 영역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며 정부 46개 부.처.청 중에서 가장 범위가 넓다고 웃으면서 “인정한다 인정해”라며 나의 주장에 억지로 동의하여 주었다. 그러나 ‘인생도처에 상수가 있다’고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더니 기상청장이 이론을 제기하고 나왔다. 기상청장은 “관할 영역으로 말하자면 저희들은 평수로 계산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하여 모두들 한바탕 웃고 말았다. 그리하여 문화재청은 기상청 다음으로 넓은 면적을 관리한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문화재청이 무얼하는 곳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분들이 하도 많아서 나는 이 이야기를 곧잘 해 오고 있다. 그러면 왜 청들이 대전의 삼청사에 몰려 있는가. 혹자는 부가 아니라 청이니까 삼청사에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묘하게 돌려서 말하곤 한다.

그러나 청이 부가 아니어서 삼청사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청이라는 곳이 정부 부처 중에서 낮은 지위에 있는 소외지대일 수도 없고, 국정의 변두리일 수도 없다. 청들이 삼청사에 모여 있는 것은 모두가 구체적인 현업과 현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대전에 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즉 부는 정책기능이 주이지만 청은 현장 활동과 전국적인 민원 사항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말할 수 있을 때 문화재청장으로서 삼청사에 근무하고 있는 것의 타당성과 자존심이 살아난다.

이렇게 말하면 모두들 문화재청의 업무 범위도 알게 되고. 대전에 있는 사정도 억지로라도 이해도 해주곤 한다. 그러면서도 의문을 제기하기를 문화재청에 무슨 민원 사항이 그렇게 많냐고 되물어 오곤 한다. 실제로 문화재청은 갈등관리 민원이 상당히 많다. 문화재보호구역과 사적지 주변의 현상변경 그리고 토지 이용에서 문화재발굴로 인한 개발과 보존의 대립은 시시각각 일어난다. 지금 현재 걸려 있는 민원 문제도 많지만, “문화재청은 자성하라”, “문화재청장 물러가라”라는 플란카드가 떨어질 날이 없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문화재청에 무슨 민원이 그렇게 많냐고 의문을 제기해 올 때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문화재청에 민원 사항이 뭐 그리 많겠냐고요? 모르시는 말씀, 영조40년, 1764년에 생긴 민원을 아직껏 해결 하지 못한 것이 있답니다"

그게 뭐냐고요? 그것은 아주 길고 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음번에 해드리겠습니다.
게시일 2006-10-31 13:0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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