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집을 이해하는 것은 쉬울 것 같으면서도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고 수많은 건물을 지어보았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답사를 해본 입장에서도 집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모든 사람이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집에 대해서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전문가라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전문가적인 지식은 자신에 관련된 문제에 한해서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집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기 시작하면 현재의 관점에서 상식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여지없이 깨져버립니다. 집을 보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은 생활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실하게 머리 속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즉 생활을 떠난 집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가장 기초적인 문제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특히 옛집을 둘러볼 때 그냥 어떠한 골동품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중요한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을 볼 때 특히 한옥의 경우 목구조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합니다. 사실 한옥이나 우리 고건축 모두가 목구조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목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생활사에 대한 이해입니다. 당시의 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따라 집을 이해하는 폭이 달라집니다. 목구조의 경우도 도구의 발달이나 자연환경 또는 사회환경에 따라 구조가 달라집니다. 조선 후기에 들어 도랑주가 쓰이게 되는 것은 나무 부족사태로 인한 것입니다. 톱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대패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따라 집구조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목구조 이전의 문제입니다. 기술발전환경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어쨌든 집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구조 또는 생활의 변화입니다. 예를 들어 남녀유별의 사고가 있었던 조선의 집과 그렇지 않았던 고려의 집구조는 어떻게 달랐을까요. 온돌이 왜 서민에게 먼저 보급되었을까요. 왜 서민의 집은 초가이고 부자집은 기와였을까요. 서민들은 왜 안채와 사랑채가 구분되지 않았을까요 등등의 문제는 결코 집의 목구조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사회생활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이렇게 들어가게 되면 마을의 구조도 이해가 되고 개인의 집구조도 이해가 됩니다.
여기에 시대적인 상황을 더하게 되면 집에 대한 이해가 완벽해지는 것입니다. 창녕의 성씨고택(창령군 문화재자료 제355호)을 보면 벽돌과 철물까치발(?)을 사용하였습니다. 우선 벽돌 특히 붉은 벽돌이 우리 건축재료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892년 정초식을 갖고 공사를 시작한 명동성당이 최초입니다. 명동성당은 재료와 기술자를 중국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붉은 벽돌을 사용해 집을 지은 것은 모두 이 이후의 집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산 윤보선 생가도 1907년에 지었는데 행랑채와 사랑채(1920년 경 지은 것으로 추정)에 벽돌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집의 사랑채에는 물익공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갑오경장이후 사회의 신분제도가 와해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또한 유리가 새로운 소재로 등장하면서 집에 유리가 많이 사용됩니다. 윤보선 생가, 전주 학인당, 청원 이항의 가옥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시대 지어진 건물의 또 하나의 특징은 층고가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서양건물의 영향을 받아 변화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 보니 층고를 높이기 위해 고창을 내고 이를 설치하기 위한 헛창방과 창방을 받치는 소로 구조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냥 목구조를 이해하는 공부만으로는 살펴보기 힘든 내용입니다.
또한 절에 대하여 잠깐 이야기하면 탑의 변천사항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탑은 현재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강원대 김도경교수는 탑을 건축물의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본인도 이러한 관점에 적극 동의하는 바입니다. 탑과 금당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건축설계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탑과 금당과의 관계는 건축계획에 있어 중요한 핵심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탑의 변천과정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 집니다. 일탑 1금당식에서 쌍탑으로 쌍탑에서 다시 단탑으로, 최종으로는 탑이 없는 절이 지어집니다. 그리고 탑 크기의 변천을 보면 탑의 위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배 대상으로서의 탑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탑이 예배대상의 중심이었다가 예배 중심이 금당으로 변화되면서 탑의 배치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일탑 삼금당과 일탑 일금당의 배치는 불교에 대한 신앙대상의 변화와도 관계 있습니다.
이러한 불교의 종교적인 변화는 불국사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불국사는 한 절에 모든 불교신앙을 수용하는 관점에서 계획되었습니다. 지금의 개념으로 보면 불교신앙에 원스톱서비스의 개념이 도입되어 계획된 사찰입니다. 불국사는 당시 중요시되었던 모든 불교의 신앙대상이 한 절에서 예배가 다 이루어지도록 계획된 것입니다. 이러한 통불교적 사고가 불국사를 기점으로 한국만의 불교건축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불교신앙의 변천에 따른 집구조의 변화와 불상과의 관계는 유구를 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불상을 보면 높은 좌대에 좌불형식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좌대가 매우 화려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또한 가끔 광배 뒷면에 불상조각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불상의 조각은 불상이 독존으로 모셔져 있고 사면에서 불상을 다 살펴보는 것을 전제로 조각된 것입니다. 이러한 불상을 모시는 금당 또한 이러한 개념에 충실하게 지어져야 합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초기의 금당을 보면 불상이 건물 거의 정 가운데 모셔져 있고 불상을 중심으로 사면에 기둥을 두어 불상이 모셔져 있는 공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불상이 모셔져 있는 부분에 고맥이돌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건물구조는 우요삼잡이라는 불교의식과 잘 맞아져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초기의 불당과 후기의 불당을 비교해보면 수미단의 위치가 점점 뒤로 물러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불교의식이 후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실내 공간으로 한정되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교건물도 예배대상이나 방식에 따라 변화되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집을 보는 재미가 늘어납니다.
사회현상을 공부하면서 집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집 구조를 통하여 과거의 사회상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예시한 금당의 변화를 통하여 명확하지 않지만 예불의 변화를 역추적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국사의 배치를 보면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의 배치와 다릅니다.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에 초창인 절을 보면 어느 정도 풍수지리설의 개념이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불국사의 경우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풍수지리설의 개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8세기 경까지는 우리나라에서 풍수지리의 개념이 건축에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집을 보면 집에서 안채와 사랑채의 구분이 조금씩 사라져 갑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이미 알고는 있지만 남녀를 구분하는 유교적 색채가 사라져 간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초기의 한국교회를 보면 목사가 설교하는 강단을 중심으로 건물이 ㄱ 자로 지어진 것도 있습니다. 목사의 모습은 모두 볼 수 있으되 남자신도와 여자신도는 결코 서로를 볼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생활이 건물 구조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활사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축구조도 알아야할 중요한 대상이지만 전체적인 집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에는 조금은 부수적인 문제입니다. 당시의 생활을 이해하고 집을 바라보면 많은 것이 새롭게 보입니다. 현재의 아파트와 과거의 한옥을 비교해보면 너무도 다른 구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사고와 생활의 변화가 집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한옥의 목구조를 공부하는 것보다 생활사를 공부하는 것이 집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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