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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펌]준경묘에 얽힌 백우금관의 전설

깜보입니다 2008. 12. 21. 09:44

준경묘에 얽힌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전설

목조(穆祖;이안사)가 전주에서 부친 이양무 대장군과 함께 삼척 활기리로 이주하여 어렵게 살다가, 어느 날 부친께서 세상을 떠났다.
목조가 부친의 묘 자리를 찾던 중, 지금의 산소자리에 쉬다가 문득 잠이 들어 꿈결에 상자승이

"허허, 대지로다. 이곳에 묘를 쓰면 5대 후에 왕이 나겠구나!" 앞에 가던 도승이
"네 이놈, 어디 함부로 떠드느냐?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 다고 했거늘, 어디 함부로 입 밖에 내느냐?" 하고 꾸짖자,

목조가 깜짝 놀라 일어나 도승에게 달려가
"대사님, 청이 있사옵니다. 방금 지나가시면서 하신 말씀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하고 애원하자,
"도승이 이곳에 묘를 쓰자면 개토제에 소 백마리를 잡아 써야하고, 관은 금관으로 해야 하며, 술은 백 동이를 준비하여 장사를 지내야 하오."하니 목조가
"대사님 그것을 틀림없이 하겠습니다." 도승은
"당신이 바로 묘 자리의 임자이니, 묘를 쓰도록 하시오."하고 좌향과 각종 법도를 가르쳐 주고

"내가 간 뒤에라도 믿어지지 않거든 오늘밤이라도 이 자리에 계란 하나를 묻고 멀리서 지켜보면 알 것이오. 그리 해 보시오."하고 도승은 수십 보를 걷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이날 밤 목조는 이곳에 계란을 묻고 멀리서 지켜보니, 자정이 넘어 과연 수탉이 홰를 치며 우니 밤중에 울리는 소리가 심산유곡을 흔들어 놓더라.
목조는 가난하여 소 백 마리와 금관을 구할 길이 없어 여러 날 궁리한 끝에 때마침 처가에서 흰소[白牛]를 빌려다 잡아 백 마리로 대신하여 개토제를 지내고, 누런 귀리 짚으로 관을 엮어 금관 대용으로 하고, 술 백 동이를 준비하여 180호 근속자들과 장례식을 성대히 치렀다. 때는 1231년(고종 18) 태조고황제가 조선왕조를 창업하고 등극하기 꼭 162년 전의 일이다. 

 

李花 210호 2008.7월

 

출처 : 종묘를 사랑하는 사람들
글쓴이 : 최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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