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e이야기

통일신라 국보급 ‘불교 공양구’ 무더기 발굴

깜보입니다 2009. 2. 5. 23:40

통일신라 국보급 ‘불교 공양구’ 무더기 발굴
‘삼국유사’ 산실인 경북 군위군 인각사 경내서 발견
향로·금고 등 10여점…독창적 병향로 제작법 드러나
하니Only 노형석 기자
» 경북 군위군 인각사 경내에서 확인된 국내 최고의 9세기 통일신라시대 공양구 발굴 현장. 흙 속에 유물이 봉안된 금구와 정병의 모습 등이 보인다.
<삼국유사>의 산실로 유명한 경북 군위군 인각사에서 국내 최고(最古)인 8~9세기 통일신라시대 국보급 불교 공예품들이 무더기 발굴됐다.

조계종 산하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범하스님)는 지난 12월 인각사 경내의 묘탑지 추정 유적을 조사하던 중 세계적 희귀유물로 국내에 두점밖에 전하지 않았던 완형 손잡이 향로(병향료)와 금고(사찰에서 대중을 불러 모을 때 치는 쇠북)를 비롯해, 당대 고승의 소지물이었던 향합, 정병, 완 등의 국보급 공양구, 중국산 청자완 등 10여점을 발굴해 보존처리 중이라고 5일 밝혔다.

발굴된 공양구들은 8세기 중반~9세기의 것들로, 사리기를 제외한 불교 공양구로는 시기가 가장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유물은 대부분 고승의 무덤격인 묘탑지 추정 유적의 땅 속에서 금고 안에 봉안된 채 발견됐다. 핵심 유물인 병향로와 정병은 금고 부근에서 9세기께의 중국산 햇무리굽 청자완(찻잔)와 같이 발견됐다. 고대 승려의 공양구가 온전한 갖춤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막 발굴된 병향로의 모습이다(위). 2003년 경남 창녕 말흘리에서 출토된 병향로. 군위 인각사 경내에서 출토된 병향로와 외형이 비슷하다.
발굴된 손잡이 향로는 자루 모양 화로와 받침대, 손잡이로 구성되어 있다. 손잡이 끝 부분에 정교한 사자상이 조각된 추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안정된 기형에 문양을 절도있게 새김한 이 병향로는 독창성이나 기품면에서 기존 국내 소장품은 물론 일본, 중국 등지의 전래품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다. 국내에 전하는 통일신라 병향로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한 8~10세기대 전래품(출토 경위 미상)과 2003년 경남 창녕 말흘리 출토품밖에 없다. 외국에는 일본 나라의 고대 왕실 보물창고인 쇼소인과 중국의 분묘 출토품 가운데도 비슷한 기형의 향로가 전한다. 향로 공예품의 꽃으로 꼽히는 병향로의 경우 그동안 국내 전래품의 제작 경위가 명확치 않아 중국산 수입설이 제기됐던 상황이어서 이번 발굴이 지니는 의미는 자못 크다. 유물을 감수한 최응천 동국대 교수(금속공예사 전공)는 “놀라운 발견”이라며 “기존 중국풍 병향로와 모양새나 기형 등의 차별성이 두드러져 통일신라 때 이미 독자적 제작 기법이 정립됐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거의 녹슬지 않은 채 발견된 국내 최고의 청동정병과 고려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양식을 보여주는 금고도 주목된다. 특히 볼록한 허리에 완벽한 형태미를 갖춘 정병은 충남 부여 부소산에서 나온 기존 9~10세기 유물보다 앞서며 예술성도 훨씬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승려의 발우로 추정하는 금동그릇과 굽다리 그릇은 경주의 인공 연못 안압지에서 나온 신라 왕실의 고급 그릇들과 모양새가 거의 같다는 점에서 당시 인각사의 높은 지위를 암시하고 있다. 함께 나온 중국산 햇무리굽 청자완(찻그릇)도 9세기 월주요 가마에서 만든 기준 유물로, 당시 활발하던 국제 문화교류의 실상을 보여준다.




연구소쪽은 통일신라 시대 국사(나라의 스승)에 상당하는 고승이 열반하자 묘탑을 짓고 그를 기리기 위해 생전 공양구를 함께 묻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각사는 13세기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하다. 세간에는 고려시대 사찰 역사만 주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발굴로 통일신라 때부터 국찰에 버금가는 높은 지위를 지닌 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절 창건부터 일연의 <삼국유사>편찬 때까지 인각사의 역사는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다”며 “이번 발견으로 공양구를 지녔던 통일신라 고승의 정체를 둘러싸고 학계에 흥미로운 논쟁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소쪽은 2월9일 현장 설명회를 열어 출토 유물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 금구 속 봉안 유물들을 가까이서 찍은 모습. 굽다리 접시, 탑모양의 향합 뚜껑이 보인다.

» 발굴 당시의 청동 정병.

노형석 기자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