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펌)민노당이정희의원

깜보입니다 2009. 10. 28. 13:23

속 시원한 의정활동 ‘압박정희’… 민노당 이정희 의원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경향신문
 
ㆍ“송곳처럼 날카롭지 않고는 이 뻔뻔한 벽 허물 수 없잖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국회에서 한나라당 명패를 팽개치고, 대학 22년 선배인 총리 후보에게도 또박또박 따져묻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압박정희’란 별명과 달리 자그만 몸집에 소녀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문학축제에서 시를 낭송하듯 부드럽고 다감한 목소리로 “송곳처럼 날카로워지지 않고는 이명박 정부의 이 답답하고 뻔뻔한 벽을 허물 수 없다”고 말했다. 이해찬 전 총리가 후원금을 보내고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 의원은 “보통사람의 마음과 눈으로 의정활동을 할 뿐”이라고 답했다. 최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소득수준 상위 10% 가구가 전체 자산의 절반 이상을 갖고 있다”며 자산 소유 불균형 문제를 지적한 것도 ‘보통사람의 마음과 눈’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소녀처럼 웃으며 송곳처럼 찌르는 이정희 의원을 지난 25일 휴일 아침의 썰렁한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다른 여성 의원들보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한동안 생각한 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처지와 제 눈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저도 애 키우며 일하는 엄마여서 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기성 정치인들의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와 달라 보이고 자신들과 비슷한 모습이라 공감대를 느끼나 봅니다.”

-서울 강남의 여고 출신이고, 대입 학력고사(지금의 수능) 전국 여자수석을 했습니다. 평탄하게 자라온 것 같은데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쟁하는 이유가 있나요.

“어릴 때 가난했어요. 시골에서 상경한 아버지는 봉천동에서 두부공장을 시작하셨고 지금껏 운영하세요. 질퍽한 시장 안의 공장 옆방 한 칸에서 유년기를 보냈죠. 장마철이면 항상 물이 집까지 흘러넘쳐 요가 흥건해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후 사당동 등에 살았고요. 서문여중에 다닐 땐 여유있는 방배동 친구들과 경제적으로 다소 열악한 총신대 인근 친구들이 반반이었는데 서문여고에 진학하니 대부분 잘 사는 친구들로 바뀌었어요. 중학교 때 공부 잘 하던 친구들 중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상업계 고교로 갔기 때문이죠. 전 운이 좋아 대학도 가고, 변호사에 국회의원까지 됐어요. 많은 이들이 흘린 땀과 그들의 땅을 딛고 올라선 게 아닌가 싶어 책임감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 가난했다고 다 사회의 아픔을 고민하지는 않지요.

“빈곤 문제에 눈뜬 가장 중요한 계기는 1992년의 윤금이 사건입니다. 동두천에 갔다가 쉼터를 방문해서 여섯살 소녀를 만났어요. 기지촌에서 클럽에 다니던 엄마와 미군 아빠 사이에 태어난 예쁜 아이였는데, 아빠는 본국으로 떠나고 엄마는 빚 때문에 도망가 클럽 여주인이 키우고 있더군요.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엄마가 나타나 빚을 갚거나, 10년쯤 키우면 종업원을 시켜 돈벌 수 있기 때문이라는 여주인의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망울을 보며, 세상은 우연과 우연의 만남인데 이 아이는 왜 여기 있고 저는 왜 여기에 와 있나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런 문제를 풀지 않고는, 모르는 척 눈감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국회의원을 제안받고 이틀 만에 결정했다고 하던데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민주·진보세력이 위축되고 상황이 어려워져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무엇보다 다른 당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에서 제안했기에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해오던 일, 제 철학과 민주노동당의 정책이 다르지 않아 서로 갈등하고 속상해할 일이 없겠다 싶었어요.”

-그 결정에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국회의원이 이렇게 일 많고 고생스러운 직업인 줄 알았다면 단 이틀 만에 결정내리지는 않았을 겁니다(웃음). 법 만들고 토론하는 일이 주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거리에서 마이크도 잡아야 하고 찾아다닐 곳도 많고, 또 이 정부에 절망하느라 너무 힘듭니다.”

-초선 의원으로서 경험한 한국 정치의 현실은 어떤가요.

“평범한 국민들은 국회에서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도 합리적 토론을 거쳐 사회가 개선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모습은 그 기대에 너무 어긋나죠. 민주주의라고 해도 절대 다수의 의견이 존중되고 합의가 이뤄지는 상황이 아니고, 국민 여론이 너무 많이 무시됩니다. 그래서 점점 두렵습니다. ‘MB 악법’이라 불리는 법들이 통과될 때, 지난 7월의 방송법 과정 등에서 느낀 갈등이 앞으로 남은 임기 내내 되풀이되지 않을까 해서죠.”

-가장 좌절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기륭전자 사건 때는 아주 많이 슬펐고 제일 크게 절망한 건 쌍용자동차 사건이에요. 그 현장에서 ‘이것이 21세기의 한국 맞나’란 의문이 들 정도였어요. ‘농성 노동자라고 물 마실 권리, 몸 씻을 권리가 없나. 화재 위험에 노출되어도 되나’란 의문과 함께 그런 상황들이 너무 절망스러웠습니다. 8월5일 새벽 공장 쪽으로 들어가는데 밖엔 소방차, 경찰차가 둘러싸 있고 잠시후 검은 연기가 나더니 “사람이 떨어졌다” “불 났는데 소방차가 안 온다” 등의 소리와 연락이 왔어요. 오후 6시 헬리콥터 소리가 나더니 굴뚝에 있는 농성자들이 로프를 잡고 올라가더군요. 사람들을 비인간적 상황에 몰아넣고, 극단적인 고통에 처하게 해놓고 그들이 억지로 양보하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인가란 자괴감에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잘 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순간이 있을 텐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없네요. 많은 격려도 받고 조금씩 보람을 느끼긴 하지만, 깊은 슬픔을 씻을 만한 크기는 아닙니다.”

-만약 이 의원에게 용산참사 해결의 전권이 주어지면 뭘 할 겁니까.

“가장 쉽고 빠른 해결방법은 수사기록을 공개하는 겁니다. 객관적 자료인 수사기록을 통해 처벌할 사람은 처벌하고 그에 따른 보상이 이뤄지고 구속자나 수배자에게도 진실을 바탕으로 법이 적용되면 실타래 풀리듯 풀릴 겁니다. ‘사실’은 힘이 있으므로 사실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죠. 그 다음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재개발과 재정비가 용산 지역만이 아니라 내년, 내후년엔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될 텐데 본격적 재개발을 시작하기 전에 상가 입주자들에 대한 권리나 보상 문제가 협의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용산참사가 일어날 겁니다. 무엇보다 진실이 밝혀져 장례를 빨리 치르고 유가족을 쉬게 해드리고 싶어요. 정운찬 총리가 해결해 준다기에 기대했는데 아직 아무 행동이 없어 실망했습니다.”

-국회의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뭔가요.

“진심이죠. 국민의 아픔을 제 일처럼 아파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자신도 원할 수 있는 진심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던질 수 있는 헌신도 필요합니다. 체면 차린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더군요. 국회에서 질의와 입법활동만 하기엔 우리 사회가 너무 힘들고 합리적 대화가 힘든 상황이죠. 국회란 공간에서 ‘제 직무는 이런 것’이라고 제한하면 그만큼 국민들과 신뢰 쌓기는 힘듭니다.”

-왜 이 정부에 그토록 반기를 듭니까.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지난 25일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활짝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 서성일기자

“숨이 막혀서입니다. (크게 한숨 쉰 뒤) 정말 답답합니다. 제가 87학번인데 1987년 6월의 경험은 ‘우리도 모일 수 있다. 우리도 말할 수 있다’란 거였어요. 세상을 느리게나마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죠. 그런데 21세기 MB정부에선, 걸어가면 ‘시위’, 주저앉으면 ‘집회’,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공무집행방해’로 규정하고 인터넷 댓글도 못 쓰게 합니다. 명박산성을 쌓을 때만 해도 “그렇게 얘기해도 안 들리나?” 정도였는데 이젠 “아예 말도 못해?”란 말이 절로 나와요. 그 전엔 정책의 문제여서 보수진영의 정책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일부 이해했는데 상식을 무너뜨리니 못 참겠어요. 국회의원 이전에 국민으로서 가슴아픈 기저에 ‘사람이 죽어가는데 나라가, 정부가 이래서 되나?”란 분노가 생기기 때문에 항의하고 투쟁하는 겁니다.”

-반 MB 전선을 위해 민주·진보진영의 대연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공감합니다. 그것이 국민의 명령이라면 연합을 해야 하고 서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왜 우리가 연합해야 하는지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각 당의 지지도를 올리기 위해서나 의석수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 하나라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와도 연대해야죠. 그러려면 지금 갖고 있는 걸 먼저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요. 자기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의 감동을 자아내고 지난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질의와 의정활동으로 ‘송곳’ ‘압박’ ‘깐깐’ 등의 형용사가 이름 앞에 따라다닙니다.

“원래 마음도 약하고 부드러워요. (곁에 있던 보좌관이 ‘우리도 의원님의 장외활동에 깜짝놀랄 때가 많다’고 부연 설명했다) 제가 날카로워 보이는 첫번째 이유는 현 정부의 상황이 답답해서 그걸 못 참아서 그렇고요. 둘째는 변호사란 직업 때문이죠. 의뢰인들에겐 일생에 한 번 당하는 법률적 문제라 절박한데, 법정이란 공간에서 그 사람을 대신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접니다. 그 사건에 대해 그 의뢰인보다 더 잘 알고 당당하게, 진실만을 이야기하면서도 완벽히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다 그렇진 않지요.

“제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활동한 덕분이죠. 인권의 새로운 영역을 파헤치고 현실의 벽을 뚫어 나가는 역할을 하려면 송곳처럼 뾰족해질 수밖에 없어요. 국회의원은 국민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것이 최상이고, 아니면 국민들이 들어서 속시원해지는 말이라도 하려니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하게 됩니다.”

-별명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게 있나요.

“별명이 많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제 팬카페의 한 분이 만들어준 ‘내 마음 같은 그녀’란 표현입니다.”

-단식도 하고, 시위 현장에서 다치기도 하는데 평소 겁이 없습니까.

“늘 제가 실수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힘의 80%는 정확하고 명료한 자료에서 나오기 때문에, 논쟁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려면 불합리한 사람이 돼서는 안 됩니다. 사실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으려면 그들을 설복할 상식과 논거를 입증해야 하는데 그 힘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사실과 근거를 열심히 찾고 확인하다보니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듭니다. 주변 사람들을 너무 고생시키죠.”

-가정에서도 송곳아내, 깐깐엄마인가요.

“보통사람처럼 살면서 아이도 낳고 싶어 스물아홉에 결혼했어요. 명절이면 시댁도 가는 보통 주부인데 하루에 3~4시간밖에 못 자는 생활을 하다보니 남편에게 너무 많이 의지합니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 겨우 시간이 나서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두 아들 앉혀놓고 때 밀어주고 손톱 깎고 귀 파주면서 모처럼 엄마 노릇했다고 뿌듯해했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여자 대통령감’으로 언급하던데, 최종적 목표는 뭡니까.

“민주노동당의 집권입니다. 땀 흘려 일하는 정직한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거죠.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민주노동당이 집권해야 가능할 것 같아요. 우리 당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일상과 행복을 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면서 희망을 봅니다. 불과 1년반 전만 해도 제가 국회의원이 될 줄 전혀 몰랐듯 인생은 알 수가 없죠. 전 국회의원이 된 후에 저 스스로를 바다에 띄워 놓았습니다. 마음과 몸을 비우고 가장 낮게 국민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 이정희는 누구인가

비례대표로 정계 입문 “대충은 없다”
이정희 의원(40)은 보통사람임을 강조하지만 사실 ‘엄친딸’이다.
대입 학력고사(현 수능) 전국 여자수석 출신이며, 서울대 법대 재학 중엔 총여학생회장을 지냈다. 사시 합격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했다. 가장 싫어하는 말은 대충 하지 뭐”다. 국회의원 일이 힘들지만 “잘 할 때마다 1만원씩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지지자들이 “오늘도 1만원 보냈다”며 다는 댓글에 힘을 얻는다.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